풍성한 연보의 비밀_2011.04.13.
(고후 8:2-3, 개역)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연보에 대한 권면을 한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도 연보를 준비하고 있었음으로 바울은 그들의 준비가 부족하지 않도록 마게도냐 성도들의 헌신을 인용해 고린도 교인의 헌신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본문에서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의 풍성한 연보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고린도는 잘 발달된 항구도시이자 문화와 문물의 교류가 합류되는 지역이으로 굉장히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 또한, 음란하고 방탕함으로 인해 ‘고린도식으로 산다.’라고 말하면 ‘매춘행위를 한다.’ ‘방탕하다’란 의미로 사용될 정도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풍부하면서도 방탕한 사람들이었다. 이에 반해 마게도냐 성도들은 환난과 많은 시련, 극한 가난과 씨름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풍성한 연보를 통해 많은 교회의 본이 되었고, 고린도 교회의 연보를 위한 자극제로 바울이 인용하기에 이르렀다.
마게도냐의 풍성한 연보에 대한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의 배경과 두 가지 상태를 언급해주고 있다. 배경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이다. 그들의 환경은 결코 안락하지 못했고, 여유롭지 못했다. 그들은 심한 박해와 핍박과 고난 속에서 힘든 신앙의 여정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들의 마음은 그로 인해 깨어 있었고, 방심할 수 없었고, 물러서 잠자고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근신하고 깨어 신령한 두려움과 간구함 속에서 하나님을 섬겼다.
또한, 그들의 두 상태는 첫째, 넘치는 기쁨의 상태이었고, 둘째, 극한 가난이었다. 뭔가 모르게 극명하게 대조적인 이 상태가 진실로 마게도냐 성도들의 상태였다. 그들은 환경적으로도 고난 속에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도 심한 가난과 곤핍 속에서 넉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놀라운 한 가지의 능력이 있었는데 ‘넘치는 기쁨’에 취해있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마게도냐 성도들이 직면한 환경과 그들의 두 상태를 언급하면서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풍성한 연보’를 가능케 한 비결이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마게도냐 성도들은 심한 박해와 고난, 극한 가난 속에서 조금도 여유롭지 못했고, 안심할 수 없었고, 풍요롭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깨어 바라보고 경외함으로 인해 ‘넘치는 기쁨’이 가득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것을 할 수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모든 성도를 섬기는 일에 철저히 참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깨닫게 되는 교훈은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왜 풍성한 연보를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가난해서가 아니며, 우리가 고난과 곤란 속에 있어서가 아니며, 오직 우리는 ‘넘치는 기쁨’이 턱없이 부족한 것일 뿐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고린도식처럼 살아가면서 세속에 물들고, 세속에 기뻐하고, 경건한 기쁨과 성령의 기쁨을 너무나 잊고 있는지 모른다. 그럼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과 풍성한 희락이 없음으로 해서 우리가 더 드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하면서 헌신하지 않는다. 아직 육적인 부족을 더 채워야 할 것이 남아 있다고 변명하면서 영적인 연보를 좀 먹는다.
사실 신앙의 모든 능력과 헌신과 동기부여의 그 바닥에는 ‘기쁨’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도들도 고난 중에 전도하면서도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 13:50-52, 개역)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