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의 더러움_2011.04.13.

(고후 7:1, 개역)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더러움은 누구나 선호하지 않으며, 그것은 피하고 거부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두 가지 더러움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더러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것일까?

먼저, 그 더러움의 정체는 ‘육적 더러움’이다. 이는 다르게 표현할 때 정욕적인 더러움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종종 육신적인 것이 정욕적인 것과 일맥상통하게 쓰여 진다. 이 육적 더러움도 분류될 수 있다.

첫째, 이것은 성적(性的)인 부분에서의 본능적이고, 원색적이며, 색욕적인 더러움을 말한다. 성경이 정죄하는 음란, 호색, 음심 등 이다. 베드로전서는 이런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다고 말한다.
(벧전 4:3, 개역)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둘째, 이것은 세상을 좇는 것이다. 세상적인 가치관과 삶의 목적과 방향. 그것은 ‘육적 더러움’이다. 보다 나은 집, 차, 옷, 유행에 부합하는 헤어스타일, 멋. 세상적인 허영심과 부귀영화에 대한 목적과 갈망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는 더러움이다.
(요일 2:16, 개역)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셋째, 이것은 자기 내면에 있는 이기심과 허영심, 명예욕 등의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의 더러움이다. 사람은 언제나 이기적이다. 사람은 이기적인 원리를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주님은 위대하지만 겸손히 낮아지셨고, 완전한 빛이시지만 죄인보다 처참해지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기심을 뛰어넘은 이타적인 사랑과 자비를 교훈 받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이기심이 자기를 움직이고 있을 때 그것은 ‘육적 더러움’이다.
(유 1:16, 개역)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약 4:1, 개역)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다음으로 더러움의 정체는 ‘영적 더러움’이다. 이것은 주로 영혼 안에 있는 더러움이라 생각할 수 있으며, 외적인 행위로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느 정도 오염되면 필연적으로 외적으로도 표출되게 된다.

첫째, 이것은 모든 교만의 부류들이다. 교만, 오만, 거만, 자만, 고집 등이다. 교만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영적 더러움’중에 하나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실패한 이유와 천사 루시퍼가 타락한 원인도 바로 이 교만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으로 치면적인 실패와 멸망을 일으키는 지독한 더러움이다.
(약 4:6, 개역)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잠 18:12, 개역)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둘째, 이것은 영적 무기력이다. 성령을 소멸시키고, 성령을 근신시키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 안에서 깨어서 행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런 그리스도인은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지게 된다. 그들은 신령한 것을 알 지각이 부족하며, 영적으로 무지하다. 그들은 많은 사안에서 영적으로 분별하여 선택하고, 행동하지 못한다. 영적으로 어두운 것이다.
(롬 8:8, 개역)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고전 3:1, 개역)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셋째, 이것은 우상이다. 우상숭배는 영혼의 더러움 그 자체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에게는 탐심조차 우상숭배이다. 또한,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도 우상숭배이다.
(행 15:20, 개역)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넷째, 이것은 그 무엇보다 ‘거짓된 교리’이다. 바울의 서신서를 보면 대부분의 많은 교회들에게서 이 거짓된 교리의 미혹과 도전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성도들의 영혼이 더러워졌음을 알 수 있다.
(갈 1:6, 개역)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요이 1:7, 개역)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종류의 대표적인 더러움이 있지만 그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우리의 생활과 가치관과 우리의 영혼에 있어서 자주 접하게 되는 더러움들이며, 위험들이다. 어떤 것들은 세상 사람들에게서는 당연히 받아들여질만한 더러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 사람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서 구별되어 ‘교회’(에클레시아)로 불려나왔기 때문에 더욱 그 더러움이 남다르다. 우리를 너무나도 쉽게 더럽히게 하는 이 악한 세대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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