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때를 극복하는 법_2011.04.01
(창 12:10, 개역)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부르심을 받아 위대한 여행을 시작한 아브람이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오래지 않아 기근이 찾아왔다. 이는 전혀 예기치 않은 고난이었다. 그 먼 거리를 동족과 모든 혈연을 포기하고 떠나왔건만 고작 기근이라니... 그러므로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갔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아브람의 선택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고 납득할 것이었다. 그러나 애굽에서 그는 사래를 누이라 속임으로 바로에게 아내를 뺏기고 말았다. 그는 더 큰 시련을 만났던 것이다.
분명, 애굽을 선택한 것은 아브람의 실수요 믿음의 부족이라 생각되면서도 동시에 마치 이것은 아브람을 연단시키려는 하나님의 숨은 의도와 목적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기근을 보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기근을 보내심으로 가나안에 머물러야 되는 아브람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며, 그로 하여금 애굽으로 내려가야겠다는 의지를 시험하셨다. 그때 아브람은 그 시험에 반응하였다.
(창 16:8-9, 개역) 『[8] 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사래가 무자(無子)할 때 하갈은 아브람의 씨를 이을 아들을 낳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오만방자해졌고, 심지어 사래를 비웃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사래의 질투심과 분노에 불이 붙었고, 그는 사래의 학대를 당하게 됨으로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하갈의 정신적 고통이 견디기 힘들만큼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런 하갈에게 하나님은 비통한 말씀하신다. 다시, 사래의 수하로 돌아가 괴로움을 당하라고 말이다.
앞서의 두 사례가 알려주는 공통된 교훈은 견디기 힘든 괴로움과 고난, 시련과 시험의 때에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란 것이다. (아마, 하나님은 이것을 말씀하고 싶어하실 것이다.) 결론은 고난의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하갈은 사래 밑으로 되돌아갔으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에 사래의 밑에서 내어쫓김을 당했다.(창21:10) 결국 아브람 역시, 애굽에서 가나안의 벧엘로 되돌아와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창13:3-4) 하나님 계신 벧엘이 때로는 기근이 있는 고난의 장소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시험의 때를 우리가 어떻게 보내고 극복해야 할 것인지 배우게 된다. 그것은 피하고 싶은 그 현실을 피하지 않는 것이며,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하나님께서 그만이라고 하실 때까지.
(약 1:12, 개역)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야고보서는 말한다. 시험의 때 그 시험을 이기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참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옳다 인정하신다. 죄의 유혹과 같은 시험은 이겨야할 시험이지만 고난의 시험은 참아야 될 시험이다. 그 시험을 잘 참을 때 하나님께 인정함을 얻고 약속의 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을 참되 옳다 인정하심을 얻기까지 참아야 하는 것이다.
(약 1:2-4, 개역)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고난의 시험을 참는다는 것은 곧, 고난의 때를 인내함이다. 하나님은 이 고난의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한다. 왜냐하면 이 시험이 인내를 유도하며, 이 인내를 이룰 때 보다 완전하고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즉, 고난 중의 인내는 성숙의 씨앗인 셈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씀 자체가 곧, ‘인내하라’란 것이다.
하나님은 시험을 허락하신다. 그 시험을 통해 인내함을 배우고, 인내함을 통해 약속된 복을 받으며, 그 인내함을 통해 더욱 온전하게 성숙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험의 때를 극복하는 방법이란 어떤 특별한 진통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내’ 그것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