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호와로 인하여_2011.03.21
(합 3:17-18, 개역)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것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되는 구절이 여기 하박국 3장 17-18절이다. 그는 아무런 물질적인 소출이 없어도 오직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일까? 오늘은 이 사람이 가진 것을 통해 잠재력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어 보자.
이 본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는 이미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가 소유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그는 무화과나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열매는 모자랐다. 또, 그는 포도나무가 있었으나 열매는 전무한 수준이었다. 또, 그는 감람나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소출이 별다르지 않았다. 한편, 그는 밭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밭에는 식물이 없었다. 또, 그는 양우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양은 없었다. 또, 그는 외양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소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있었다. 자기 영혼을 구원하신 기쁨의 하나님을.
그러므로 그가 소유한 것을 나열하면 이러하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밭, 양우리, 외양간 즉, 비록 현재 그는 언뜻 볼 때 모든 것에서 충분한 소출을 얻지 못하는 시골촌뜨기처럼 비춰지고 있지만 사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아무리 많은 양을 얻고, 소를 얻더라도 양우리가 없고 외양간이 없다면 그는 양과 소를 되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돈이 있어서 포도열매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많이 사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이 나무를 소유하기 전까지는 매년 사먹어야만 할 것이다.
이에 반해 세 종류의 유실수와 두 종류의 목축이 가능한 배경을 갖추고 있는 주인공은 언제든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당장은 소출 없이 미약해보였지만 무엇보다 그가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모습, 그의 신앙의 아름다움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소출을 주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은 주실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볼까? 당장 우리 이목을 사로잡는 보기 좋은 열매들과 넘쳐나는 양과 소를 보고 싶어 하진 않은가? 현재 소출의 많고 적음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진 않은가? 숨은 잠재력을 보지 못하고 있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