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우벤의 눈물_2011.2.15
(창 49:3-4, 개역)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야곱이 그의 침상에서 열조에게 돌아가기 전이었다. 각 아들에 대한 축복기도 및 그들을 향한 야곱의 마음에 담아둔 생각들이 흘러나왔다.
르우벤. 그는 장자였다. 가계와 아버지의 유업을 이을 가장 유력한 후보. 그러나 그가 장자라는 육신적인 조건에 비해 그의 자질은 충분하지 못했다. 사실 르우벤의 부족은 우리의 부족이기도 하다.
한편, 르우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면 그도 분명 괜찮은 사람이었다.
(창 37:21-22, 개역)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
요셉의 형들이 한 패가 되어 요셉을 죽이려 할 때 르우벤은 장자로서 동생들의 음모를 중재했다. 그는 요셉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했고, 아비 야곱을 생각해서 보다 부드러운 방편을 찾으려 했다. 적어도 그가 다른 동생들과 한 패가 되어 질투에 대한 극단적인 보복조치를 동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지닌 인격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르우벤에게는 결정적인 한 가지 흠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침상에 올랐다는 사실로부터 드러나는 것이다. 루우벤은 곁에서 만날 수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특별히 나무랄 것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인간적이었고, 자애로움도 갖췄다. 때로는 신중하게 판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충동적이었다. 평온하다가도 일시에 충동에 사로잡혀 행동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그에게는 일정한 일관성과 안정감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는 종종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해버림으로써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렸다.
야곱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위광이 초등하고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그 안에 얼마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지 생각해보자. 탁월하지만 그의 충동적인 경향성 때문에 그는 결코 탁월해질 수 없었다. 이는 마치 삼손을 연상시킨다. 성령의 감동으로 큰 일을 이뤘지만 그 역시 충동적인 여성편애로 말미암아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다.
우리는 다재다능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부분에서 매우 탁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탁월함을 빛나게 하는 것은 일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