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외치는 소리.

(막 1:3, 개역)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은 글로 그리스도를 예비하지 않았습니다. 글은 아예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그는 ‘소리’라는 방법을 통해 그리스도를 예비했습니다. 임박한 그리스도의 등장을 알리기에는 틀어박혀 장문의 글을 쓰고 있는 것보다 소리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세례 요한이 구약의 오래 전 선지자 중 한 명 이었다면 그도 글을 써서 후대에 남겼겠지만 말입니다.

한편, 세례 요한이 소리친 곳은 어디었습니까? 그곳은 광야였습니다. 우리는 ‘광야의 외치자의 소리’에 대해 너무 익숙함으로 이 사실이 지니는 모순을 쉽게 망각해버립니다. 쉽게 말해, 어떤 장사꾼이 물건을 팔고 싶다면 그는 광야로 가지 않고 시내나 시장으로 갔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우리 누구나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저 광야에서 혼자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아올 때까지 거기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모순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째서 그는 ‘중심가의 외치는 소리’가 되지 않고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된 것일까요?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모두가 이 세상에서 머물 장소였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아무 영광도, 인간의 즐거움도 나눌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모습으로 군중들 속에 머물렀지만 늘 외로웠고, 고독했으며 타협할 수 없는 저 언덕 넘어 광야에 머문 그런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머물면서도 끝없이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투명의 거리감을 두고 광야에 머물 듯 살아가는 것입니다. 광야는 그리스도가 지나간 고난의 길이었고, 우리가 지나가야 할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먼저 광야를 통과해 약속의 땅을 들어갔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증거했습니다. 결코 그 분이 이 세상의 중심가나 인간의 중심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영웅으로 환대 받고 추앙 받을 분이 아니심을 자신의 허름한 모습과 ‘광야의 외치는 소리’란 유무형의 방식으로 가르쳐주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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