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분배와 그 소유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최초 교회의 핍박자였습니다. 그 이유를 그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소유에 대해 잘 모르면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여 드릴 수 없습니다.

레위기 25장을 보면 희년과 토지에 대한 규례가 있습니다. 희년은 안식년이라 불리는 7년이 7번 반복된 그 다음해 곧, 5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이 희년이 되면 모든 기업(보통 땅)을 처음 상태로 원상복귀 시켜야 했습니다. 재산이 없어 노예가 된 사람은 풀어주고, 땅을 팔거나 산 사람은 원주인에게 돌려줘야 했습니다. 즉, 땅의 경우 최초 가나안 땅 분배를 했던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각 지파의 기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사회는 질서와 안정을 유지했습니다.

토지는 가장 중요한 기업이었습니다. 넓은 땅을 소유하면 많은 소출을 거두고 거부가 됩니다. 땅을 잃어버린 사람은 소작농(노예)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누군가 개인 파산으로 인해 땅을 팔아야 했다면 그 근족이 그 땅을 다시 사주도록 했습니다.(레25:25)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희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토지에 대한 이런 규례가 단순히 지파의 기업을 유지하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목적만은 아니었습니다.

(레 25:23)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잠 22:28) 『네 선조의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궁극적인 목적은 토지의 소유주가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땅을 선민에게 분배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생활의 터전을 삼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렇다고 그 소유권마저 그들에게 양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땅의 소유는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분배된 땅에 대한 권리를 남용해서 맘껏 사고 파는 것은 월권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토지의 소산물을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다른 의미에서 땅을 분배 받은 모든 지파는 사실상 하나님의 소작농이었던 것입니다.

(신 14:22)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출 23:19)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잠 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땅에 대한 소유 개념과 희년, 안식년에 대한 규례가 모두 흐려졌습니다. 자기 동족으로 노예를 삼고, 희년에 되어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땅을 맘대로 사고 팔고, 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에 대한 개념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소유를 침범하였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일조와 헌물을 요구하십니다. 십일조는 모든 소득의 실제 소유권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직장에서 청지기처럼 일합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기에 소작농은 아니지만 소득의 원천이자 참 소유주가 하나님이심을 정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을 때 곧, 십일조를 떼먹을 때 하나님은 도둑질이라 말씀하십니다.

(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한편, 여기서 도둑질이란 개념을 좀 더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보통 십일조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소득에서 1/10을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자선단체에서 어느 기업가에게 가서 기부금을 요구했습니다. 이 돈 많은 기업가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럼 이 기업가는 도둑놈인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인색할 뿐입니다. 반면, 이 기업가가 회계부서에 회사 공금을 은행에 보관해둘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회계팀장이 그 공금을 횡령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회계팀장은 도둑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치를 적용해봅시다. 만약, 우리의 소득이 우리의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행위로 십일조만큼을 떼서 드린다면 십일조는 하나의 기부금이나 헌금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혹 떼먹더라도 결코 도둑질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게 소유권을 준 소득에서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의미에서 십일조를 떼먹는 것이 도둑질이 되기 위해서는 내 모든 소득도 하나님의 것이지만 무엇보다 십일조는 처음부터 내 소득이 된 적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란 것은 그 자체로 처음부터 내 소유가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건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인쳐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만원을 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 월급은 100만원이라고 말해선 안 됩니다. 내 소득은 90만원이다라고 말해야 됩니다. 10만원은 처음부터 자신의 소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소득이었다면 거기서 십일조를 드리는 행위는 헌금이며, 그것을 떼먹는 것을 도둑질이라고 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십일조는 은밀한 의미에서 헌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하는 하나의 순종적 행위이며, 의무적인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100만원을 벌면 그것을 모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득이라 생각하며, 그 소득을 주신 원천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행위로 1/10을 바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코 십일조를 떼먹는 것은 인색하게 구는 것일 뿐이지 도둑질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것을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 돌려지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같은 물리적은 실체로 존재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100만원을 벌 때 10만원을 받으러 오실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 안에 머무십니다. 우리를 통해 처음부터 하나님의 권리인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마치, 기업가가 회계팀장에게 자신의 돈을 은행에 맡겨두라고 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 십일조를 떼먹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엄연히 도둑질입니다.

(겔 45:10) 『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쓸지니』

그럼 십일조는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월급에서 세금을 제외하고 십일조 계산을 해선 안 됩니다. 연봉이 내 소득입니다. 연봉이란 소득에서 세금을 제하고 받은 것일 뿐입니다. 연봉에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기타의 모든 소득에서도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차량유지비, 자기계발비 등 또는 어떤 물품을 공급받는 것에서도 할 수 있는 대로 십일조는 드려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짜로 무엇을 얻는 것은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공짜를 바래서도 안 됩니다. 또, 할 수 있는 대로 십일조 외 헌물도 해야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