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범죄_2009.12

 

다윗의 치명적인 범죄는 사무엘하 11장에 나온다. 사무엘하는 총24장 인데, 거의 중간에 해당하는 11장-12장에서 다윗이 치명적인 죄를 범하면서 상승곡선을 타던 그의 신앙이 하강곡선을 그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다윗의 범죄란 하나의 분기점을 두고 앞뒤 상황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먼저, 다윗은 왕의 자리에 오르기 전 사무엘상에서 사울의 미움을 받아 죽음의 경지를 오가며 10여년에 이르는 도피생활을 하였다. 그의 심적 고통과 괴로움은 요나단에게 호소한 ‘나와 사망은 한 걸음 사이’라고 하는 말에 잘 나타나있다. 가히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보통 사람이 근심과 고통, 괴로움에 빠지면 영성이 도태되기 마련이다. 대부분이 안정된 기반에서 영성을 누린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다윗이 그 오랜 도피생활에도 불구하고 시편의 많은 찬양과 주님을 의뢰하는 기도, 사무엘상에서 보여주는 믿음의 행보는 과연 하나님의 은혜라 할 수 있다.

특히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에서 기름 부은 받은 자를 헤치 않는 모습은 그의 중심이 얼마나 견고했는가 분명히 드러난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런 절호의 기회를 만나면 살인죄를 지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성령충만했다. 그의 측근들이 하나님이 왕을 삼겠다고 했던 그 약속을 지키는 때가 오늘이라며 매우 그럴듯한 말로 충동했음에도 그는 정확히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분별했던 것이다. 그건 견고한 중심, 영성이 뒷받침 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그리고 다윗은 당당히 사무엘하에 이르러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다. 그는 모든 환란을 벗어나면서 일대 최고의 기쁨과 충만과 은혜를 만끽한다. 그가 실로에서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기며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춤을 췄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상승곡선을 타던 다윗에게 치명적인 분기점이 왔다. 최상의 상태에 이른 다윗이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는 어느새 나태해져있었다. 성령은 소멸했고, 그의 분별력은 어두워졌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마저 살려줄 만큼 분별력이 있었고, 견고한 중심을 보여준 다윗이 최상의 조건을 가진 상황에서 자신의 충성된 신하를 자기 이기심을 위해 죽이는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를 강탈하였고, 성폭행했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섰을 때 넘어질까 주의하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참으로 이 말씀은 지당한 말씀이다. 다윗은 인생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을 때 가장 치명적인 범죄로 넘어지고 말았다. 이로부터 우리는 교훈을 얻는다. 신앙적으로 최적의 조건을 얻은 사람이야 말로 언제나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윗의 이 치명적인 범죄는 그의 신앙에 일대지각변동을 야기 시킨다. 그는 중심을 쏟아 부은 간절한 회개와 통곡으로 돌이키고, 용서를 받고 이로써 하나님의 합한 자란 영예로운 지위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징계는 누구든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범죄한 다윗의 내리막은 바라보기 너무나 처량할 정도이다. 먼저, 동침함으로 잉태된 아이가 병들어 죽게 된다. 아들 암논이 누이 다말을 성폭행한다. 다말은 처량한 신세가 되고, 가장 아끼는 아들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한다. 암논은 죽었고, 압살롬은 도피한다. 다윗의 맘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사면해준 압살롬은 다윗에게 돌아와 반역한다. 다윗은 다시 그 지긋지긋한, 다시는 재회하고 싶지 않았던 도피생활에 다시 자신을 내맡긴다. 심지어 신발도 신지 않고 급히 도망쳤다. 사울에게 도망다닐 때도 신발은 신었을 것이다. 요압은 압살롬을 살해한다. 가장 아끼던 아들이 군대장관의 창에 찔려 죽은 것이다. 다윗은 목놓아 운다. 여기서도 끝이 아니다. 세바가 반란을 일으킨다. 세바의 반란을 잠재운 후 기브온 사람들이 사울로 말미암은 흉년에 대한 해결을 호소한다. 또, 블레셋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다. 그러면서 사무엘하는 말미로 다가간다. 마지막에 24장에 이르러 다윗의 어리석은 인구조사로 재앙이 이스라엘에 임하여 온역에 7만명의 백성이 죽는다. 이로써 사무엘하는 끝나는 것이다.

그 눈물겨운 고난을 딛고 왕이 되어 섰는 줄로만 알았던 다윗이 그 섰던 자리에서 넘어져 남은 생애 계속되는 징계와 고통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신앙의 내리막인 것이다. 이러한 다윗의 신앙의 그래프는 바로 우리 신앙의 그래프이기도 하다. 최적의 조건에서 두려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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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2010-10-19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윗이 최적의 조건을 가졌을때 사실 그떄가 신앙의 끝이 아닌..
이제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신앙생활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외로움이 아닐까..영과 육은 반비례 하는것 처럼. 다윗은 육신이 최적의 조건일때
범죄를 하는 등 영의 최악을 경험했고 회개 이후 영혼의 조건이 최적일때
그의 육신은 어려웠고 고난의 삶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이때 다윗은 진짜 하나님이 함께하는 신앙생활을 느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