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적 신념과 자율의 문제_2010.08.30

통상적으로 우리는 어떤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위해 목회자의 권면을 참고한다. 우리는 목회자를 가장 신뢰한다. 목회자는 적절한 지침을 제공한다. 또한, 목회자와의 교제를 통한 지침을 확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성경적이다. 

  
다만, 어떤 하나의 사안을 놓고서도 그것이 성경에 분명히 명시된 ‘성경의 근거’를 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일 경우는 다른 대안이 없지만, 명시되지 않은 ‘성경적 추론’을 통해 판단해야할 사안일 경우 목회자의 다양한 스타일과 신념에 따라 상이한 답변이 나올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각 상황과 형편에 있어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다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을 수용해야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전적으로 목회자의 소양에 순종해야 생각한다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옳은 것이다. 
 

다만, 이러한 목회적 신념과 소양의 차이가 있음에 대해서 오히려 목회자 스스로가 자신의 관점과 신념을 얼마큼 상대에서 적용시키고 관철시키려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보다 유연해지느냐 경직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목회자를 존중해야 되고,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안에 대해 목회자의 지침을 듣는 것은 옳은 것이다. 그것은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얼마큼의 자율을 소유하느냐도 신중히 생각해볼 부분이다. 
 

목회자는 지침을 제공할 수 있지만 자칫 지침을 관철시키려는 것이 되면 어떤 의미에서는 각각의 그리스도인이 ‘만인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자율성을 부여받은 부분에 있어 의도하지 않은 간섭과 침해를 줄 수도 있는 문제이다. 지침은 필요하지만 우리는 각각의 그리스도인을 상대함에 있어 그들이 누려야할 고유의 자율성, 하나님과 그 사람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그 사람에게 관여하시고, 허락하시는 자율성에 있어서도 존중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교회는 ‘순종을 통한 승리’를 일관되게 가르친다. 또, 누군가는 ‘순종을 통한 승리’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편은 ‘맹목적 순종을 통한 실패’를 말한다. 이럴 경우 우리는 보편적인 관점을 갖고, 순종했지만 실패했다는 사람은 무엇인가 다른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일방적인 추론하려 든다. 이미 가지고 있는 보편적 관점을 합리화시켜 해석하려는 경향을 띈다는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우리는 얼만큼 ‘성경적 추론’의 근거를 통해 그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소 의심스럽다. 오히려 학습한대로 무비판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분명 ‘순종을 통한 승리’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진리이다. 다만, ‘성경의 근거’가 아닌 ‘성경적 추론’의 경우에 자칫 목회자가 상대의 자율성과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좀 더 고려해주지 못함으로 인해 무리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 될 때, 어쩌면 ‘맹목적 순종을 통한 실패’를 말하는 경우를 야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성경의 근거’가 아닌 ‘성경적 추론’의 사안에 대해 나는 상대의 자율성을 자칫 망가뜨리지 않고 존중해주는 겸손과 신중함, 주의 깊음으로 교제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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