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난제해석
R.A.토리 지음, 나채운 옮김 / 성지출판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R. A. 토리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들으면서 그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곤 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한날은 R. A. 토리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였고 몇 권을 책을 구입하였다. 그 가운데 골랐던 책이 바로 이 ‘성경의 난제 해석’이었다.

사실 교회에서 종종 난제에 대한 질의응답을 듣곤 해서 난제에 대한 접근은 내게 특별히 새로운 부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크게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물론, 그것은 내가 그만큼 성경을 읽는 깊이와 넓이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펼치기 전까지 내게 흥미를 주었다. 과연, R. A. 토리가 다루는 난제는 어떤 것일까? 내가 자주 들어본 우리 교회에서의 난제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막상 읽기를 시도하면서 처음부터 나는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맨 앞부분에 다루는 난제는 창조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그것은 내게 전혀 새로운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기 때문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새로운 교리가 분명했다. 나는 이로써 많이 주저하였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R. A. 토리의 신변에 대한 정보를 찾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그가 D.L 무디와 함께 사역하기 도하였고 훗날 D.L 무디 교회의 계승자였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정말 D.L 무디와 친분이 있고 그와 사역하였으며, 계승자였다면 그가 거듭난 크리스천이란 사실을 부인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가 창조에 대한 난제를 다루는 부분은 매우 새로웠다.

창조에 보면 혼돈과 공허.. 그리고 구체적인 창조의 기록들이 날 수대로 나와 있다. 통상적으로 이런 천지창조는 6일간의 사건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토리는 이것이 반드시 6일이 아니라 일련의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리고 창세기 1장의 1절은 혼돈과 공허로 표현됨과 함께 이것이 아담 이전의 인류의 세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얘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가 왜 이런 이해를 하였는지 명확치 않지만 그것은 분명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이 분명했다.

예전에 ‘간극이론’이란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천지를 창조할 때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 후 새롭게 하셨다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토리는 이러한 이론에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간극이론’의 발단은 흠정역에서 REFRESH란 단어 때문인 것인데, 지금은 RE가 주로 ‘다시’란 의미로 해석되지만 당시 흠정역을 기록할 때는 ‘다시’란 의미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것을 재창조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들었다.

아무튼 토리의 창조에 대한 이해는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아담 이전의 인류가 존재한 원시지구가 있었다는 부분은 결코 성경적인 해석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러한 언급이 성경에 전혀 명백지 않은데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며, 모든 성경의 난제를 이해하는데도 큰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한편, 마지막에 언급되는 노아 홍수의 날 심판받아 옥에 있는 영들에게 증거 하신 예수님에 대한 부분도 내게 확신을 주진 못했다. 토리는 동일한 단어가 성경에서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가를 많이 적용하고 있는 모습을 이 책에서 보여주는데 주로 해석되는 의미가 반드시 그 의미로만 해석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토리는 옥의 영들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과 결혼하였다는 부분을 언급하며 바로 이 타락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성경 그대로 해석해서 ‘천사’이며 그들이 옥에 갇힌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천사가 사람과 결혼을 하였고, 타락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상상력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성경에서 타락한 천사는 계명성(루시퍼)로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 루시퍼의 졸개들과 사람이 결혼을 한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천사가 결혼을 하여 또 타락한 천사의 대열에 합류한 것인가?

천사가 사람과 결혼했다는 것은 너무 신비적인 동화같이 느껴진다. 더구나 본래 천사의 역할이 하나님의 시종을 드는 존재이며, 훗날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머물 때 시종을 드는 존재로 지어진 것을 감안할 때 천사가 사람의 세계로 와서 사람과 결혼을 했다는 것은 너무 억지스럽다. 물론, 이러한 그의 주장에 뒷받침하는 성구를 인용하지만 그 성구가 옳은 적용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토리는 유다서의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란 구절을 인용한다. 곧,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나 사람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옥에 갇혔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다서의 이 구절이 반드시 창세기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구절은 교만함으로 땅에 처박힌 루시퍼에게 더욱 해당되는 것 같다.



이 두 가지의 난제에 대한 토리의 견해는 조금은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외의 난제에 있어서 그는 나름의 납득할 수 있는 논리들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잘 아는 난제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생소한 난제들을 다루기도 했는데, 이 점에서 나는 시대와 문화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토리가 다루는 난제는 조금은 흔한 난제라고 생각되지 않은 것들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기독교 문화 위에 있던 미국과 유교문화의 기저가 있는 한국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예를 들면, 가인이 그의 아내를 어디서 만났는가의 문제, 음란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은 불경건하다는 공격에 대한 변호 등이었다.

솔직히 평소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도들에게서 언급되던 난제와 일치하는 부분은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토리가 다루는 난제가 더욱 예리한 시각으로 성경을 볼 때 제기할 수 있는 난제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토리의 이 책은 여러 난제를 다루기보다는 난제 중의 난제를 다루었다는 역자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의 난제에 대한 나의 유감을 표하긴 했지만 그것이 꼭 이 책을 이단시하고 피해야 될 것이라고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님을 알리고 싶다. 누구든지 독자가 스스로 그것은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일지 모른다. 다만, 일반적인 성경관에서 많이 다른 시각이었기에 내가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난제에 대해 접근하고, 난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분이라면. 그리고 미처 발견치 못한 성경의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것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를 이해하면서 성경의 보다 깊은 이해와 진리를 알기 위한 분이라면 이 책을 읽고 충분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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