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엄마한테 뺨을 맞았다며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다고, 뉴스와 신문에서 알렸다. 내가 먼저 본 건 뉴스였는데 논조랄 건 없었지만 아이가 엄마한테 욕을 해서 엄마가 뺨을 때렸다며 이상하게도 살짝 한쪽을 편드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곤 지나가듯이, 경찰이 본 아이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코피를. 엄마한테 뺨을 맞아서 코피를. 신문에는 좀더 어조가 있었다. 어느 신문에서 보면 아이가 아주 함부로인 것 같았다. 게임하고 있는데 밥 먹으랬다고 엄마한테 욕을 하고 맞았다고 신고를 하다니. 그런데 다른 신문을 보니 엄마가 술 문제로 가족 안팎으로 갈등이 많았고, 아이도 자주 때렸다고 한다. 아이는 열 살.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알콜중독과 상습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열 살. 그래도 그렇지 엄마한테 욕을 한 건 잘못이다, 라고 말하는 건 비겁한 일인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 신문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 아이의 사정을 알아줄까? 스마트폰 게임에 중독된, 커서 뭐가 될지 걱정스러운 '요즘 것'이 아니라, 지금 처지가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떤 꼬마로 그 아이를 기억해줄까.

 

*

 

공교롭게도, 미크의 아빠는 알콜중독자다. 언제나 숙취에 시달리거나 술에 취해 있거나 둘 다인 상태란 뜻이다. 미크에게는 지금 엄마가 없고 아주 멋지고 자상한 형이 있다. 수업이 끝나면 미크는 서둘러 집에 가는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집에 형이 먼저 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주 천천히 걷는다. 미크에게는 형이 전부다. 그런데 그 형은 점점 더 자주 집을 비우고, 미크는 아빠 옆에서 더욱 혼자가 된다. 미크의 사정을 알게 된 사회복지국에서 미크와 아빠를 격리하면서 미크는 한동안 시골 마을에서 혼자 사는 고모와 지내게 된다. 그 마을에서 미크는 고모에게 사랑을 받고, 괴팍하고 꼭 그만큼 푸근한 이웃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곳을 사랑하게 된다.

 

절망에 늪에 있던 미크는 새 가족과 이웃을 얻었다. 어린이가 겪기에는 이미 충분한 절망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이야기의 겨우 절반이다. 발버둥치며 거부했는데도 미크는 법에 의해서 위탁가정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은 상상 이상의 학대가 기다리고 있는 지옥이다. 탈출 계획은 좌절되고, 보복이 가미된 학대가 미크를 덮친다. 사회복지국 직원들은 미크의 말을 믿지 않는다. 마침내 탈출에서 성공했을 때 미크는 고모를 찾아가서 말한다. 무덤에서 나왔다고.

 

이제 고모도 있고 마을 사람들도 있으니, 미크를 학대한 사람들은 벌을 받고 미크는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사회복지국에서는 탈옥수를 찾듯 미크를 쫓고, 미크는 친구들과 함께 탈출 계획도 세우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저 홀로 오로지 홀로 법에 맞선다. 목숨을 걸고.

 

절망 다음에 희망이 왔는데, 어떻게 다시 절망이 찾아올까. 그것이 분해 운 날이 나에게도 많았다. 미크도 그랬을 것이다. 늪이 지났는데 왜 다시 늪이 나오는 거지. 무덤에서 나왔는데 왜 지옥이 있는 거지. 절망은 단순히 겹겹이 있지 않고, 절망 다음 희망 다음 절망 다음 희망으로 겹쳐 있다. 죽음 다시 삶 다시 죽음 다시 삶으로 겹쳐 있는 낭기열라, 낭길리마처럼.

 

*

 

미크가 절망을 견딜 때 가슴에 새긴 이야기는『사자왕 형제의 모험』이었다. 미크 자신은 스코르빤이었고, 형은 요나탄이었다. 그를 품어준 시골 마을은 낭기열라, 벚나무 골짜기였을 것이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병약한 스코르빤과 근사한 형 요나탄이 죽음 뒤에 도착한 낭기열라에서 겪는 모험 이야기다. 죽음은 절망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낭기열라는 거대한 절망 위에 세워진 나라다. 그런데 이 세계는 오히려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해, 스코르빤의 병은 치유되어 있고 요나탄은 영웅이 되어 있다. 여기서 펼치는 그들의 모험은 다시 한번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두렵고 절박한 것이다. 이들은 슬프거나 두려워서 또는 절망 때문에 미치지 않으려고 모험의 한가운데서 직진으로 달리고 마침내 또 한번의 죽음 끝에 더욱 빛나는 다음 세계, 낭길리마의 문을 연다. 물론 다음에는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죽음이 한 번이 아니라는 것은 삶이 한 번이 아니라는 뜻이다. 절망과 희망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 있는 것,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것이다.

 

『멀어도 얼어도 비틀거려도』는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바쳐진 작품이면서,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준 아름다고 위대한 판타지를 현실에서 격렬하게, 처절하게 실현해낸 이야기다. 두 작품은 공히 말한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두려울 때 피하지 않는 것이 용기라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쓰레기'가 된다고.

 

*

 

그 열 살이 언젠가 이런 작품들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속 편한 먹물의 소리가 될 것이다. 다만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는 그 열 살이, 이 사실만은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팩트를 전한답시고 "엄마 욕하다 뺨 맞은 초등학생, 경찰에 신고" 같은 헤드를 뽑은 기사들, 싹수가 어떻다는 댓글들은 용기와 상관 없이 그냥 쓰레기다. 구겨서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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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8-0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어도 얼어도 비틀거려도] 읽을래요. 네꼬님이 써준 저 글만으로도 어쩐지 울 것 같아. ㅠㅠ

네꼬 2013-08-09 15:37   좋아요 0 | URL
다락님 울 텐데. ㅠㅠ 책 소개에는 유머도 있다고 하는데, 유머도 약간 슬퍼요. ㅠㅠ 그렇지만 훌륭한 소설.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복사해서 붙인 거 아니에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왕창 축하해요!

다락방 2013-08-09 15:53   좋아요 0 | URL
어므낫. 고마워요!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아 네꼬님이 이렇게 페이퍼 써주니까 난 진짜 넘흐 좋아!! >.<

moonnight 2013-08-10 12:59   좋아요 0 | URL
어멋 다락방님 생일이구나. 축하드려요. ^^ (울다가 웃었어요. ㅠ_ㅠ;;;)

네꼬 2013-08-13 12:22   좋아요 0 | URL
다락님 아직 생일 주간이죠? ㅎㅎ

moonnight 2013-08-1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를 어쩌나. 마음이 너무 아파요. ㅠ_ㅠ;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데 그 귀한 아이를... 네꼬님 말씀대로 그런 처지가 된 건 아이의 잘못이 아닌데. ㅠ_ㅠ;;;; 두 권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눈물바다 될 것 같아요. 우엉. ㅠ_ㅠ;;

네꼬 2013-08-13 12:22   좋아요 0 | URL
우엉. 눈물바다 보증하죠. 그런데 읽고 나면 이상하게 기운이 좀 나요. 문나잇님은 착해서 더 울지도..? =_=

moonnight 2013-08-1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글 너무 좋아요. 훌쩍. -_ㅠ;

네꼬 2013-08-13 12:23   좋아요 0 | URL
꽥꽥. 부끄러워서 오늘은 오리 소리를 내 보았어요.

비로그인 2013-08-1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용기가 안나서 못 읽고 있어요 ㅠㅠ

먹물 하시니 찰스 부코스키가 생각나요^^

네꼬 2013-08-13 12:26   좋아요 0 | URL
아른님, 저 찰스 부코스키 찾아봤잖아요. ㅎㅎ 진짜 먹물인 거잖아요. ㅎㅎㅎ

"얼어도 멀어도 비틀거려도"는 저도 어쩐지 미루다가 읽었어요. 엄두가 안 났거든요. 근데 걱정만큼 슬프지 않고(?) 따뜻하고 유머도 있어요. 아른님 독후감도 기대 되어요!

서니데이 2013-08-14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자왕 형제의 모험>, 저 샀어요.^^ 두 권 중에서는 그 책부터 읽어야 할 것 같아서요.

네꼬 2013-08-22 20:14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제가 댓글을 늦게 봤네요! 재밌게 읽으셨나 모르겠네요. 울지 말고 끝까지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