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했던 대로 지난 2월은 내 영혼이 어디 갔나 싶게 바빴다. 3월은 분홍색으로 물들 거라고 장담했건만, 세상에, 2월에 바쁜 일 처리하느라 밀렸던 덜 바빴던 일들이 이젠 아주 바쁜 일이 되어서 껌을 짝짝 씹으며 날 노려보고 있는 거다. 이건 분명 잘못 살고 있는 거야. 사람은 바쁘면 최악이야. 공포에 질리고 절망에 빠져 급한 불을 몇 개 끄고 오늘은 집에 일찍 왔다. 주말에 해둔 오징어볶음을 밥에 얹어 덮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쓰레기 버리고 세탁기 두 판째 돌리고 있노라니 사람 사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이 단순하고.. 단순하고.. 안쓰러운 삶... 털썩.)
내가 벽에 들러붙어 머리를 찧거나 분연히 일어나 달려가거나 한눈을 팔거나 정진하거나 상관없이 그분이 오신다, 봄이. 요 며칠 사이, 봄 맞이로 마련하고 사랑해준 것들을 짤막하게 적어 둔다.
박뛰엄이 노는 법 (김기정 글, 허구 그림, 계수나무)
가끔 "얘는 커서 뭐가 될까?" 싶은 어린이들이 있는데, 내겐 이 작가가 그렇다. 물론 작가는 '아기 돼지 삼형제'를 키우는 아저씨이지만. 이 작가는 나중에 도대체 어떤 걸 쓰려고 이러는 걸까? 읽을 땐 분명 '에이 이런 뻥이 어딨어? 정도껏 하시지?' 인데 나도 모르게 다음 장을 넘기며 마음이 급해지고 (도대체 이 얘기가 어떻게 되려고!) 다 읽고 나면 은근 역사 의식이 남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싶겠지만 사실이다. (-_-) 이번엔 노는 얘기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죽도록 놀기만 하는 박뛰엄 이야기. '놀기'보다 '뻥'에 포커스를 맞추고 읽으니 더욱 재미나다. 표지 참 좋다. 그림도 참 좋다.... 그림이 반으로 줄었으면 그림도 살고 이야기도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지만! (미주로 달린 노는 법 부록이 제일 재밌다.)
스트레칭 가이드북 (수잔 마틴 지음)
다들 예상하시겠지만 이 책은, 웬디양님에게 코가 꿰어 샀다. -_- 나도 좀 살아보려고. 웬디양님 말씀 대로 정말 요렇게 하면 요기가 땡긴다, 하고 친절한 점선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사진만 봐도 의욕이 막 솟는다. 그래서 나도 몇 개 따라해봤다. (얼굴이며 몸이며 굴러가게 생긴 고양이가 표지의 포즈를 따라하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은,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만큼 웃겨요.) 근데 한 가지 어려운 점이.... 내가 지금 땡기는 이 부분이 원래 땡겨야 하는 부분 맞나 확인하느라고 수시로 동작을 멈추고 책을 보느라 진도가 안 나간다는 것. (쿨럭. 제가 이 모양이에요.)
루비홀러 (샤론 크리치 지음, 이순미 옮김)
독일의 그녀에게 추천 받았던 책. 내가 같은 작가의 <<행복한 파스타 만들기>>에 푹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권했던 책이다. 그녀를 보고픈 마음을 달래고자 (훌쩍) 사서 읽었다. 나쁜 고아원. 바짝 날 선 아이들. 우연한 탈출. 괴상한 노부부. 모험. 도둑. 귀가. 통쾌한 복수. 고전적이고도 늘 성공적인 이야기의 코드에, 작가에 대한 신뢰가 겹쳐져 신나게 빠져들,,,어서 읽으려고 했는데 어쩐지 순탄치 않았다. 내가 책과 호흡을 못 맞춘 걸까? 농담이 등장한 장면에서도 시큰둥, 주인공이 위기에 빠진 장면에서도 시큰둥. 나, 이러다 심장이 바짝 마른 고양이가 되면 어떡하지? 심지어 우울해지기까지... 뭐가 문젤까? 카네기 상까지 받았다는데!
그녀에게 말하다 (김혜리)
역시 많은 분들이 짐작하시겠지만 꽃양배추님의 초강력 부채질에 잘도 넘어가 사버린 책. 글도 잘 써, 마음도 고와(글을 보면 당근 알지), 인상도 좋은 김혜리 언니에게 이제 질투도 안 난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송강호를 두고 "고기를 잡아 회 치는 시늉을 하는 그의 두툼한 손을 보면서 나야말로 이 불가사의한 배우를 냅다 건져올리고 싶어 속이 탔다. 내가 가진 것이 문장이 아니라 덫이나 그물이었다면 오죽 좋았을까, 세 번쯤 혀를 찼다"고 하는데 이쯤 되니 나도 참 기가 막혔다. 같은 사람인데 누군 저렇고 나는 이렇고, 응? 뭐 이래, 응? 김혜리 언니, 언니의 그물에 적어도 고양이 한 마리는 걸렸어요. 걸린 게 생선이 아니라 고양이라서 죄송해요.
에이미 와인하우스, Back to Back
이 언니가 83년생이 아니라 73년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63년생이면 더 좋고. "야, 야, 언니가 살아보니까 인생 별거 아니드라. 까짓거, 맘에 안 드는 인간 있으면 한방 날려 줘. 발로 뻥 차줘. 뒷일은 내가 책임진다." 고 말해주는 것만 같은 강인한 목소리. 춤보다는 건들건들이 어울리는 절묘한 리듬. 덕분에 들으면서 폼 좀 잡았다. 그래봐야 고양이 폼.
그. 리. 고.
주문하면 하루 안에 출고된다고 했는데 제품이 없다며 2주가 넘게 기다리게 했던. CDP. 일껏 기다려서 받았더니 라디오도 되고 테잎도 되는데 CD를 읽지 못했던 CDP. 인터넷 쇼핑 후 교환을 해본 적이 없는 나를 당황하게 한 CDP. 교환하러 제품 페이지를 찾아갔더니 이젠 "품절"이 되었다고 해 나를 경악케 한 CDP. "교환"이 아니라 "반품"을 하고, 동거녀가 쓰던 CDP를 만원에 사려고 마음먹게 한 CDP. 그러나 기어이 "교환"이 되어 버린 CDP.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만나고 보니 너무너무 좋은 CDP. 생긴 건 공 같고 헬멧 같고 그래도 속은 참 순한 CDP.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 얘를 한쪽 어깨에 둘러 메고 건들건들 걷는 시늉하는 놀이를 기어이 했다. (요, 매앤~ 피이쓰~) 동거녀가 웃겨서 죽으려고 했다.
여러분, 우리 까먹지 말아요.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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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에요,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