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친구들 틈에 끼여
추어탕에 소주잔을 돌리고
이차 가서 맥주잔을 기울이다
거나해서 밤늦게 귀가하는 길
누가 또 장렬하게 산화하는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좌르르
빗금 긋듯 꽁무니를 빼는 별
뒷모습 짧아도 아름다운 생이다
흩어져야 빛나는 별똥별이여
너희들은 어디서 무슨 술 먹고
그 무슨 안주를 밤늦도록 씹다가
이제사 뿔뿔이 헤어지는 길이냐

너도 집에 가면 와이프한테
미주알고주알 잔소리 좀 듣겠다
서로 다른 꿈자리로 돌아누운 채
서먹서먹 가라앉는 섬이 되겠다
생은 가끔 외로울 때 빛난다
왁자지껄 술자리 슬그머니 떠
저 홀로 은하 건너 총총히
사라지며 빛나는 별똥별처럼.

임영조, 「별똥별」『시인의 모자』

-

좋아하는 시는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때마다 좋다.

어느 때는 참 따뜻했던 이 시가

오늘은 어쩐지 먹먹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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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02-27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거실땐 콜렉트콜로 걸어도 받아드릴께요~

네꼬 2008-02-28 11:33   좋아요 0 | URL
어쩐지 군인이 된 심정이에요. 무스탕님은 나의 초코파이? (응? 이건 아닌가?)

마노아 2008-02-27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의 전화예요. 아마 방송국에서 보관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또르륵 다이얼 돌아가는 소리. 어쩐지 그 소리가 너무 그리워져요. 기억도, 몸도 기억하고 있는데 보고 만질 수는 없는 추억이에요.

네꼬 2008-02-28 11:35   좋아요 0 | URL
보고 만질 수 없는 추억.

낡은 사진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

옛날 노래에서 들리는 부드러운 슬픔.

마노아님.

Mephistopheles 2008-02-2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이야 토성주 목성주..인간들이 먹는 폭탄주같은 블랙홀주...
안주야 별똥집구이 라던지.. 족별..혹은 별탕..등등.......
(말도 안된다고 하면서도 댓글 저장을 눌러버리는 1人)

네꼬 2008-02-28 11:36   좋아요 0 | URL
술은 그렇다치고, 안주는 정말 맘에 드는데요. 특히 족별. (제가 이래요. 별을 먹어도 육질로 이해하는.... 고기 네꼬, 아시죠?)

Mephistopheles 2008-02-28 21:19   좋아요 0 | URL
(단호하게) 아니요.

비로그인 2008-02-27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었을 때 외로우면 다소 멋진데..
나이들어 외로우면 울적하답니다..


네꼬 2008-02-28 11:41   좋아요 0 | URL
저.. 저는 저....점점... 울적해지고 있.... (털썩.)

치니 2008-02-2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먹서먹 가라앉는 섬이 되겠다' 라는 대목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데요.
네꼬님 말대로 따스하다기보다는 먹먹해요, 느낌이.

네꼬 2008-02-28 11:42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그런데 저는

"생은 가끔 외로울 때 빛난다"

이 구절을 종종 되뇌어요. 이상하게도요, 어떤 땐 그 외로운 빛이 따뜻한 위로가 된답니다. : )

L.SHIN 2008-02-27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의 버튼 전화기보다 저렇게 돌리는 다이얼 전화기가 좋아요. (엉뚱하기는 -_-)

네꼬 2008-02-28 11:51   좋아요 0 | URL
바로 그래서 제가 L님을 좋아하잖아요. (난 어쨌든 L님이라고 하는 게 좋아요.)

L.SHIN 2008-02-29 19:10   좋아요 0 | URL
헤헤. 네팡이 무어라 불러주든 전 다 좋습니다.^^
(그럼, '쿠션'이란 애칭은? ㅜ_ㅜ)

프레이야 2008-02-27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 좋으네요.
서로 다른 꿈자리로 돌아누운 채 서먹서먹 가라앉는 섬이 되겠다...

네꼬 2008-02-28 11:55   좋아요 0 | URL
전, 혜경님이 더 좋은데.
혜경님 글 혜경님 사진 혜경님 이름이 더 좋은데.
: )

웽스북스 2008-02-2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먹 서먹 가라앉는 섬이 되겠다, 라는 부분이 마음에 남네요-
그리구 저도 치익~ 도르르르 콩! 하는 저 다이얼 전화기 좋아해요

네꼬 2008-02-28 11:56   좋아요 0 | URL
웬디양님 댓글 읽고 가만 다시 시를 읽어보았어요.

좌르르 빗금을 긋는 별똥별과
치익~ 도르르르르 콩! 하는 전화기의 다이얼이
어딘가 닮아 있네요.
좋아라.

다락방 2008-02-2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네꼬님의 별똥별 :)

네꼬 2008-02-28 11:57   좋아요 0 | URL
나는 다락님의 전화기.
: )





라고 담백하게 쓰고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 느끼한 나의 마음.

마늘빵 2008-02-28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런 전화기 집에 하나 갖다 놓으면 참 좋겠다.

네꼬 2008-02-28 11:59   좋아요 0 | URL
일단 하나 구해지면 내가 쓰고, 두개 구해지면 하난 나눠줄게요. 약속해요.

: )

마늘빵 2008-02-28 22:39   좋아요 0 | URL
어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저런 공중전화 안 남아있으려나요?

다락방 2008-02-29 00:28   좋아요 0 | URL
세상에 존재하는 핸드폰이란 핸드폰을 죄다 뽀샤버릴까요? 저런 전화로 핸드폰에 전화하는건, 어쩐지 밸런스가 안맞잖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