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월간 <어린이와 문학> 겨울대토론회에 다녀와서는 1박 2일을 (작정했던 대로) 집에서 뒹굴뒹굴했다. 이따금 TV를 틀었는데 우연히도 반가운 두 아저씨를 만났다. 먼저 어젯밤 케이블 TV에서 만난 김창완 아저씨(꺅!). 산울림 1집부터 이번 김창완밴드 앨범에 이르기까지 자신은 항상 '10대들이 들어주었으면' 하는 음악을 만든다는 말에 뭉클하기까지 했다. 누가 그랬더라? 또래의 다른 가수들이 양수리 카페촌으로 무대를 옮기던 시절에 그는 홍대앞을 선택했다고. 아저씨 로커를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 음악은 참 행복하다. 감히 산울림 전집은 사지 못하고 대신 '기념비적인 앨범'(신해철 왈)이라는 김창완밴드 앨범을 사서 열심히 듣는 나는 김창완 아저씨가 출연한 토크쇼가 아주 즐거웠다. 또 한 분은 그동안 특별히 좋아한 적은 없는 코미디언 최양락 아저씨였다. 방송을 재개하기로 맘먹으셨다는데 모 프로그램의 재방송에서 보여준 입담에 오래간만에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막 웃었다. 근데 좀 전에 다른 방송에서 하신 말씀이 참 인상적이다. (그것도 장르라고) '막말개그'를 해대는 김구라에게 가만히 꾸짖는 말씀, '잘 하고 있긴 하지만, 인신공격 개그를 하면 모두가 웃게 되어 있다. 하지만 진짜 개그는 놀림을 받는 상대도 기꺼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이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

 너도 갖고 싶니? / 앤서니 브라운, 웅진주니어 2008 

우리나라에는 얼마 전에 출간된 그림책인데, 판권을 보니 1980년 작이다. 나는 앤서니 브라운의 어떤 그림책들은 좋아하지만, 대체로는 어린이가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지 않은가 하는 걱정을 하곤 했다. (<터널> 같은 그림책은 사실 무섭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이 작가의 진심을 만난 것 같아 정말 반가웠다. 제레미는 자전거고 축구공이고 새로 생긴 것을 자랑하기 일쑤고 샘은 늘 별 말이 없다. 마지막에 제레미가 동물원에 갈 거라는 자랑을 늘어놓을 때 샘은 '듣고 있지' 않았다. 마지막 그림은 공원의 작은 숲을 바라보는 샘의 뒷모습만 보여준다. 그리고 제레미가 왜 '듣고 있지' 않은지 비밀을 밝혀준다. 책장을 덮고도 오래 가슴이 따뜻하다.   

 

  길모퉁이 행운돼지 / 김종렬 글 심숙경 그림, 다림 2006 

어느날 마을에 찾아온 '행운돼지' 상점. 다림질 한 번에 다시는 옷에 구김이 가지 않게 하는 신기한 다리미와 무엇이든 넣으면 두 개를 만들어주는 항아리 등 신기한 물건을 공짜로 주는 정체불명의 상점이다. 온 도시가 돼지로 가득찰 때까지 이 수상한 가게의 장사는 계속된다. 인구에 회자되어온(!) 책이라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에 놀라면서도 이야기가 끝날 때가지 (어느 쪽으로든) 속이 시원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탐욕'에 대한 경계는 이해하겠는데 작가는 어떤 답을 갖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김종렬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겠다.  

 

    

멀쩡한 이유정 / 유은실 글 변영미 그림, 푸른숲 2008  

'멀쩡해 보이려고 무진장 애쓰는 어린이' 들을 위해 썼다는 작가의 말이 통할 것 같다. 멀쩡해 보이는 4학년이면서도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을 늘 헤매는 아이, 할아버지에 대해 써가는 숙제를 번듯하게 해가고 싶은데 술 먹고 골목에서 노래 부르는 것 말고는 별 쓸 말이 없는 할아버지 때문에 난감한 아이, 아무리 기도해도 (살아) 돌아오지 않는 아빠 문제를 비롯해 세상에 불공평한 게 너무 많아 속상한 아이 등 다섯 아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실 관계와 맞지 않아 보이는 대목이 있긴 하지만 그 의미만은 잘 전달 된다. 유은실 작가의 작품들을 좋아하면서도 이걸 아동문학으로 봐야 될지 소설로 봐야 될지 몰라 헷갈리고 한편 서운해했는데, 이번 책을 보니 작가가 '동화작가'로서 입장을 정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비밀 시험지 / 안점옥 글 최정인 그림, 사계절 2008  

친구와의 투닥거림, 한 부모 가정, 할머니와의 우정, 학원의 '친구 데려오기 운동' 등 각 단편의 소재는 비교적 일반적이었는데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솜씨가 (독자로서)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많은 동화작가들이 이야기는 늘어놓고 마무리는 성급히 짓는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 작가는 (그것에 공감하든 아니든) 자기 답을 갖고 있다 싶었다. 그리고 그 답을 보여주는 방식이 참 좋았다. 특히 뒤늦게 한글을 깨친 할머지가 손자에게 남긴 쪽지 '동수야 학원 가는 길에 할머니 교실로 와라. 용돈 탔다.'(비밀 시험지)는 빙긋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원래 공부 못해 / 은이정 글 정소영 그림, 창비 2008 

원래 노래를 못한다, 원래 그림을 못 그린다, 원래 요리를 못한다..처럼 원래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있을 수 있다. 선생님이나 부모들에게는 경악할 일인데 사실, 사실이다.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아이들을 지나치게 격려하고 몰아붙이는 새내기 선생님과, 할아버지를 도와 염소를 돌보는 일은 잘 할 수 있지만 공부는 못하는 찬이, 그리고 찬이의 친구로 새로 온 담임의 일거수일투족이 못 마땅한 진경이가 밀고 당기고 지치고 힘 내고 또 지치고 힘 내면서 소통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진경이 왈, "공부를 못하는 이진경을 상상하면 끔찍하지만 찬이는 아니다. 농장에 있는 찬이를 보면 공부를 못한다는 게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못해도 각자 잘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는 주제는 단선적이고 진부해 보이지만, 그 주제를 위해 이야기를 끌고가는 힘이 아주 좋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진경이와 순진하고 선한 찬이, 철이 덜 들어서 그렇지 책 속 누구보다 순진한 선생님의 삼파전(!)이 설득력 있다. 끝까지 읽고 보면 셋 모두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일제고사로 어린이들을 한 줄 세우기 하려는 음흉한 정부 관계자들은 읽어봐야 이해 못할 이야기지만.  

*  

요즘 읽은 어린이책을 정리하고 보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도 감동의 수위도 작가에 대한 신뢰도 각자 층위가 다르다 싶다. 전에는 어떤 종류의 책이 좋다고 나의 기준이 있었는데 점점 잘 모르겠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된다거나 동심이 우리를 구원할 거라거나 하는 잘못된 주제만 아니라면 대부분의 책들이 나름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 판단은 어린이 독자들 각자의 몫이다. 어떤 책을 좋아하고 어떤 책은 별로라고 여길지, 어른들이 너무 나서서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 같다. 세상엔 다양한 주제를 다룬 다양한 수준의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남들 다 아는 얘긴데 이제야 어렴풋이 이런 생각이 드니 아아 갈 길이 멀구나, 네꼬 씨. 그런데 이거 하나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연한 말이지만) 책을 쓰는 작가들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우리 아동문학 작가들에 대해 내가 갖는 불만이랄까 그런 게 하나 있다면, 선뜻 믿고 좋아할 만한 중견작가의 층이 너무 얇다는 거다. 거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견'이면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록을 연구하는 김창완 아저씨나, 잘 나가는 개그맨 후배에게 쓴소리도 할 수 있는 최양락 아저씨같은 작가들이 우리 아동문학계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비유가 좀 이상한가? 아무튼.) 물론 문학계와 연예계는 다르다. 음악가나 코미디언에게 트랜드를 읽어내는 감각이 필요하다면, 작가들에게는 시대에 촉수를 갖다 대고 호흡하고 자신의 '입장'을 결정하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와 문학> 겨울대토론회의 마지막(토론 내용은 무척 실망스러웠지만)에 들은 이야기는 아주 아주 반갑고 가슴 뛰는 소식이었다. 대운하 건설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성명과 광고, 행사를 진행했던 <어린이와 문학> 관계자들(주로 작가들)이 일제고사 파문을 보고 있노라니 더는 못 참겠는 모양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작가 모임"을 준비한단다. 줄여서 "더 작가"란다. (아휴 이 귀여운 감각들!) '해임교사 집회에 가서 촛불이라도 하나 들고 있자는 심정'으로 모여 앞으로 할 일을 고민해보겠다는, 사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가 무얼 고민하고 있는지 서로 얘기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모임을 준비하는 거란다. 다같이 모여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목소리를 높이는 건 질색이지만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 또한 그 진실을 말하기 위해 수많은 단서들을 살피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 이것은 작가라는 이름에게 주어진 사명이요 족쇄"라는 동화작가 이현의 발제와 "뭐 지금은 우리가 뭘 할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모여서 얘기라도 해보자는 거니까 관심 있는 작가분들은 오셔서 같이 뜻을 모았으면 좋겠어요"라는 겸손하고도 단호한 동화작가 임정자의 모임 홍보 코멘트가 나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역시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으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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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1-1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에 강추하고 태그에도 공감해요.^^
작가들이 이런 시대에 침묵한다면 그건 아니지요~~ 역시 작가들은 살아 있어요.

네꼬 2009-01-13 20:22   좋아요 0 | URL
침묵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생각하고 침묵하는 거랑 그냥 모르는 척 하는 거랑은 다른 것 같아요. 살아있는 작가들, 반갑고 고마운 일이지요. :)

2009-01-13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9-01-11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제가 네꼬님께 고등어로 가지고 놀렸을 때 네꼬님은 웃었어요? 울었어요?

네꼬 2009-01-13 20:22   좋아요 0 | URL
왜요? 울었다고 하면 더 놀리시려고 그러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웃었어요. (고등어는 울었을지도. ㅋ)

마노아 2009-01-11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전에 네꼬님 글을 읽으면 꿈나라에서도 행복할 것 같았어요. 역시 읽기를 잘했네요. 크게 공감하고 크게 마음을 울려요. 이 추운 밤이 한결 따스해졌어요. 이 페이퍼는 별찜이에요!

네꼬 2009-01-13 20:23   좋아요 0 | URL
어므나 마노아님. 공감해주시니 기쁘고 고맙습니다. "더 작가" 들이 앞으로도 우리를 계속 따뜻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건전할 뿐 아니라 능력있기까지 한 작가들이니(!) 우리 함께 기대해 보아요.

치니 2009-01-11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창완아저씨 그 프로는 찜 해두었는데도 술 먹느라 못봐서 너무 아쉬웠는데...헹. 하지만 앨범은 저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서 신나게 듣고 있답니다.
저랑 네꼬님이랑 같은 프로를 봤나봐요 딩굴대면서. ㅋㅋ 최양락아저씨의 컴백에 저도 배꼽 다 빠졌어요. 그리고 김구라씨에게 한 그 말도 정말 속 시원하면서도 멋졌고. 김구라씨가 그렇게 고개를 못들고 얌전한 건 첨 본 거 같아요.
하루 남은 딩굴 시간, 마음껏 즐기시길 ~

네꼬 2009-01-13 20:27   좋아요 0 | URL
'스페셜 에디션'은 그후에 재방송도 몇 번 하는 것 같던데,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김창완아저씨는 주당이라 그날 방송에서도 살짝 홀짝이셨어요. 그러니 치니님이 술 마시느라 못 보았어도 이해해주실 듯. ^^
그쵸, 최양락아저씨 포스에 깜짝 놀라셨죠? 하하. 저는 오래간만에 '마음 편안게' 웃었어요.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저는 오늘까지 휴가였습니다. 이렇게 뒹굴뒹굴 하다가 출근할 생각을 하니 아득하지만 (-_-) 원기는 꽤 회복했어요. :)

프레이야 2009-01-1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음음 (늘 그렇지만) 너무 맛나게 잘 읽었어요.^^
길모퉁이 행운돼지,는 아이들도 꽤 놀라고 무서워하면서 읽더군요.

네꼬 2009-01-13 20:28   좋아요 0 | URL
길모퉁이 행운돼지,는 그러게 아이들이 좀 무서워할 것 같았어요. 저도 무서웠으니까요. (호러 동화는 아닌데 ^^) 맛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쉐프 모드)

다락방 2009-01-11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뭘 어떻게 댓글을 달아야 될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분명히 옳다는 생각으로 이 페이퍼를 추천했어요. 불끈!

네꼬 2009-01-13 20:28   좋아요 0 | URL
다락님이 하는 일이라면 언제나 옳아요. 그러니 내 글도 옳은.... 퍽!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생글생글.

파란 2009-01-11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구경만 하다가 댓글 남기네요. 작가들에게 기대할수 있다는 자체가 아직은 다행이다 싶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네꼬 2009-01-13 20:29   좋아요 0 | URL
파란님 안녕하세요? 인사를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볼멘소리를 하기 전에 작가들이 먼저 움직인다는 게 저도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모두 힘 냈으면 좋겠습니다. 종종 뵈어요.

2009-01-12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3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사춘 2009-01-1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창완 아저씨 같은 네꼬님이세요.
어쩜 변하지 않는 김창완님, 연기도 잘 하시고...
푸근한 얘기 많이 담아 갑니다~

네꼬 2009-01-13 20:36   좋아요 0 | URL
아니 이 말씀을 어찌 이해해야... 제가 김창완아저씨 같다고요?
음.. 물론 제가 김창완아저씨를 좋아하긴 하지만.. 음.. 그게.. 음.
푸근한 건 좋은 거니까 아무튼 좋은 뜻으로 덥석. ㅎㅎ 춘님 너무 오래간만이어요!

Mephistopheles 2009-01-14 16:39   좋아요 0 | URL
일본말로 하면 네꼬짱은 오야지사마셨다는 말이군요..=3=3=3=3=3

2009-01-20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30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말을 꼭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내 말은, 희망이란 결코 달콤하지 않다는 것이다. 희망을 가진다고 삶이 풍선처럼 가벼워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희망은 때로 나를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희망은 결코 향기롭지 않다. 희망은 또 나 자신보다 질기다. 어떨 땐 지긋지긋하다. 희망은 때로 내 목을 잠기게 하고 내 눈을 뜨겁게 하지만 어떤 슬픔보다도 깊다. 희망은 내 발을 무겁게 하고 그래서 신중하게 하며 수없이 나를 채찍질하고 고달프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걷게 한다. 반드시 그렇다. 기어이 나를 걷게 한다. 그것이 희망이 일하는 방식이다. 이건 내가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알아낸 경험의 소산이니 내 말을 믿어도 좋다.   

 


 

오펄 드림 (OPAL DREAM) / 피터 카타네오 감독 2005 

황량한 광산 마을에서 살기에는 너무 여린 켈리엔. 이 깡마른 소녀에게는 한시도 떨어져 지낼 수 없는 두 친구 포비와 딩언이 있다.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들은 이 두 친구를 보지 못한다. 그러니 포비와 딩언이 깜깜한 광산 굴 속 어딘가에서 실종되었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다. 사실은 모두가 켈리엔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이 예민한 어린 딸을 도우려는 엄마 아빠에게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한밤 중에 남의 굴 속까지 들어가 '딸의 보이지 않는 친구'를 찾고 있었다는 설명은 도둑가족의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이들은 오펄을 찾아 황무지를 캐고 또 캐는 광산마을 사람들에게는 결코 정이 가지 않는 '굴러 들어온 돌'이었으니까. 끝이 코앞이다.

그러나 애슈몰은 동생이 일러준 대로 위험을 무릅쓰고 굴 속 깊이까지 내려가 기적과 같이 포비와 딩언의 흔적을 찾는다. 그리고 애슈몰이 두 친구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동안 아빠에 대한 재판도 진행된다. 진짜 기적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 

저 막막한 땅 어딘가에 우주를 담은 빛깔을 띤 오펄이 기다리고 있다. 온종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폭발음에 고막이 터질 위험에 노출되면서도 광부들은 오늘도 또 내일도 기꺼이 땅 속으로 들어간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포비와 딩언도 그렇게 땅 속에 묻혀 있었다. 당장 보이지 않는다 해도 '있다'는 것을 알고 믿어야 된다. 만날 수 있다고 믿고 끝까지 내려가야만 만나주는 것. 그것이 희망이 일하는 방식이다. 사실 믿지 않겠다고 발버둥쳐 봐야 소용이 없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희망은 당신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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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08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인들은 평일날 땡떙이를 쳐야 볼 수 있다는 그 영화...

마늘빵 2009-01-08 21:44   좋아요 0 | URL
땡땡이를 치시면 된다지요 :p =333

네꼬 2009-01-08 22:12   좋아요 0 | URL
메피님. 토요일에 보는 방법도 있다는 그 영화죠;;;

아프님. 이제 땡땡이 좀 칠 수 있어요? (아닐 텐데~)

도넛공주 2009-01-0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은 없습니다 이제.

네꼬 2009-01-08 22:12   좋아요 0 | URL
그래 봐야 소용 없다니까요. 순순히 항복하시는 게 좋을 텐데.

가시장미 2009-01-0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중 태아 태명이 희망이라서.. 달려왔는데, 참 좋네요. 희망은 당신보다 강하다.
음.. 그래도 전 늘 겨루기를 하나봐요. 그러다보면 이길 수는 없어도 조금 더 강해질 수는 있지 않을까해서요. :)

네꼬 2009-01-11 00:45   좋아요 0 | URL
가시장미님, 안녕하세요? 아기 태명이 희망이라니, 아주아주 튼튼한 아기가 나오겠군요! 가시장미님도 아기와 함께 씩씩한 한 해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제 생각엔 지금도 강하시고 앞으로는 천하무적이 되시겠는데요!

마노아 2009-01-0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은 당신보다 강하다! 뭉클하게 만드는 문장이에요.

네꼬 2009-01-11 00:44   좋아요 0 | URL
희망은 마노아님보다 강한데, 그런 희망도 마노아님 앞에서는 별로 힘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요. 마노아님은 희망을 의심 안 하시잖아요. :)

웽스북스 2009-01-0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꺼이 희망에게 항복하는 한해가 되어야겠어요.
네꼬님 우리 꼭 그래요. 고기먹고 힘내요. ^_^

네꼬 2009-01-11 00:46   좋아요 0 | URL
고기가 언제나 옳듯이 희망도 언제나 옳아요. 그러니 나랑 웬디님이 같이 고기를 먹으면 희망은 두 배? (응? 이상한가?) 아무튼 우리 다음에는 꼭 "지글지글" 소리가 나게 고기를 구워 먹기로 해요.

프레이야 2009-01-09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뻣대봐야 소용없는거에요? ^^
희망이에게 항복해야 할까요. 더 힘 빼지 말고.

네꼬 2009-01-11 00:47   좋아요 0 | URL
혜경님! (와아아아락)
자 우리 순순히 항복하고 시키는 대로 해요. 걸어야지 별 수 없어요. ㅎㅎ

다락방 2009-01-09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보이지 않는다 해도 '있다'는 것을 알고 믿어야 된다. 만날 수 있다고 믿고 끝까지 내려가야만 만나주는 것.

저도 믿는자에겐 그것이 실현된다고 생각해요. 기적을 믿는 자에게는 기적이 보이듯이. (뱀파이어를 믿는 자에겐 뱀파이어가 나타난다는....쿨럭.)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 보다 네꼬님의 글이 훨씬 좋은데요. 그리고 저는 포비와 딩언을 만나는 켈리엔 보다는 포비와 딩언을 만나는 켈리엔을 '믿어주고', '찾아주던' 애슈몰이 훨씬 훨씬 좋았어요. 애슈몰이 그마음 그대로, 쭉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리고 네꼬님도 쭉 이렇게 글을 썼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래요.

네꼬 2009-01-11 00:49   좋아요 0 | URL
다락님. 우리 다락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어서 고마워요. (저만 좋아했을지 몰라도, 저는 이 영화를 보게 해주신 다락님한테 그냥 신세를 지겠어요.)

뱀파이어가 나타날 거예요. 다락님을 칵 깨물고 놔주지 않을 창백하지만 힘 세고 잘 생겼고, '비릿'한 그런 뱀파이어가. 애슈몰이 댈 거겠어요?!

전주집 가자요. 응?

치니 2009-01-09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그럴듯한 해피엔딩으로, 그것도 아이들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혹 하게 하는 영화려니...라고 생각해버린 제가 지금 이 순간 어찌나 창피해지는 지, 네꼬님은 모르실 거에요.

네꼬 2009-01-11 00:52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이 사실은 그런 영화일지도 몰라요. 저는 원래 그냥 감동을 쉽게 받으니까 막 저랬을지 몰라요. 그런데 치니님, 전 한편 그 생각도 들어요. 그럴듯한 해피엔딩, (아이들을 이용하는 건 좀 그렇지만 '아이들이 나서서') 사람을 혹하게 하는 영화, 라도 때로 필요하지 않을까. 세상이 하도 팍팍하니까요. 이런 비굴한(ㅠㅠ) 생각을 하는 저도 어째 창피합니다. 근데 이 마음을 치니님은 아실 것 같아요.

E 2009-01-10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웬디언니 홈피에서 이 글의 발췌문을 읽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제가 그동안 읽었던 희망에 관한 어떤 글보다도 좋았습니다) 웬디언니에게 부탁해서 찾아왔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꼬 2009-01-11 00:57   좋아요 0 | URL
앗 E님 안녕하세요? (깜짝이야.) 저는 E님을 잘 모르지만, 웬디양님의 친구라면 틀림없이 예쁘고 날씬하고 똑똑하고 다정하시겠군요. 제 주소를 아셨으니 이제 웬디님 빼고 저랑 더 친하게 지내세요. (하하. 농담... 아닙니다.) 저는 칭찬에 야들야들해지는 쉬운 고양이에요. 가끔 놀러와주세요. 반갑습니다.
:)

2009-04-02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6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6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7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쩌다 우연히 듣는다 해도 모른 채 지나갈 수 있을 노래를, 그때 그때의 사소한 기분 같은 건 기억조차 나지 않을 노래를,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을 그런 노래를 나에게 주고 싶다고 한다. 그런 보편적인 노래를.  

 

 

 

 

  

나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 아무 사연이 없기를 항상 바란다. 즐겁거나 슬프거나 어떤 기억도 떠오르지 않고 오로지 그 노래만 좋아할 수 있기를. 그래야 어느날 불쑥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해도 별다른 동요 없이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노래란 참 이상해서 좋아하기 시작하면, 하다못해 그 노래를 한참 듣던 계절이 언제였는지라도 꼭 같이 생각이 나게 마련이다. 마치 그런 내 바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이들은 말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건 너무 슬프지만) 그때 그때의 사소한 기분 같은 건 기억조차 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를 나에게 주고 싶다고. 가만. 정말 좋은 예술은 자신만의 사사로운 가치에서 걸어나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이 젊은이들은 벌써 그 의미를 알아버린 걸까. 나는 이제야 겨우 깨치기 시작했는데.  

'브로콜리 너마저'의 첫번째 정규앨범 "보편적인 노래"를 듣는다. 친구가 불쑥 이 음반을 내게 내밀었을 때 나는 무척 당황했다. 나 역시 이 밴드의 소박한 멜로디와 일상의 감각이 묻어나는 가사를 좋아하지만, 차마 이 앨범을 사지는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토록 피하고 싶은, '사연'이 있는 곡이 이 앨범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주일이 넘도록 앨범을 듣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었다. 사연이 있는 노래란 건 정말 골치 아프다.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소심하고, 불필요한 기억은 이렇게 섬세한 것이냐. 그러다 주말에 집에 온 손님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이 앨범을 들었다. 예상대로 아름다웠고, 예상대로 마음 한 구석에 특별한 신호가 왔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노래 역시 '보편적인 노래'가 될 것이라고 믿고 바란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새벽이 시작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네꼬 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어떤 책은 무지 기대하고 읽었는데 더없이 지루했고, 별 생각 없이 보러 간 영화에서 머리가 어질어질한 감동을 받기도 했다. 모르고 산 세월이 억울한 음반을 듣기도 했고, 덕분에 친구의 청춘을 엿보기도 했다. 회사 일은 무척 바빴고, 동료와 다투기도 했다. 때로 과음을 했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여행을 다녔고, 엄마와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엄마에게 서운해 엉엉 울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촛불을 들었고, 내친 김에 정당에 가입했다. 새 잡지를 구독했다. 한동안 잊기 어려울 것 같은 남자를 만나기도 했고 덕분에 끝에서 두번째 남자는 깨끗하게 잊었다(끝에서 세번째는 누구였는지 생각도 안 난다). 너무 재미있어서 끝나가는 게 아쉬운 소설도 읽었고, 치과 의자에 누워서도 폭소를 참기 어려울 웃기는 책도 읽었고, 책장을 덮고도 눈물이 멎지 않아 고생할 만큼 슬픈 책도 읽었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먹고, 누군가의 집에서 고양이와 놀기도 했다. 가벼운 교통사고도 있었는가 하면, 땅끝마을까지 왕복으로 운전도 했다. 비행기도 탔고 기차도 탔다. 커피를 마셨고 고기를 구워 먹었고 이따금 일기를 썼다.  

지내는 동안은 유난히 즐겁거나 외로웠는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참 보편적인 한 해였다. 지나가고 나면 그게 2007년의 일인지 2008년의 일인지도 또 가물가물해질. 그렇게 특별할 것 없었던 한 해가 간다.     

내년에는 네꼬 씨가 좀더 보편적인 사람이 되기를. (어렵겠지만) 일희일비에 힘을 덜 쓰는 의연한 사람이 되기를. 뜨겁지 않은 대신 오래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평온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기를. 그것이 2008년을 보내는 나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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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8-12-31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의 마지막 새벽, 마지막 문단에 공감을 보내요. 꼭 그리 되길 바랍니다.^^

네꼬 2008-12-31 01:41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안 주무셨네요. 오래간만이에요. 악수 흔들흔들. 내년에 더 보편적인 고양이가 되어 깐따삐야님 서재에도 자주 들락거리겠습니다. 격려 고맙습니다. :)

2008-12-31 0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31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파피필름 2008-12-31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안녕하세요.. 마지막 문단.. 저도 그렇게 되고 싶네요. ^^

네꼬 2008-12-31 13:02   좋아요 0 | URL
스파피필름님, 안녕하세요. 내년에는 더 자주 만나요. 스파피필름님도 따뜻한 날들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

코코죠 2008-12-31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의 마지막 날에 네꼬님 글을 읽을 수 있어 기뻐요. 네꼬님 글을 읽으면, 뭔가 배가 부르는 느낌이랄까. 저도 막 글을 쓰고 싶어지고. 지난 한해는 네꼬님을 만나 행복했지요. 부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꼬 2008-12-31 13:03   좋아요 0 | URL
올해의 마지막 날에 오즈마님에게 이런 메모를 받으니 저야말로 기뻐요. 끝을 알 수 없는 오즈마님의 다정+씩씩 에너지를 내년에도 많이많이 보여주세요. 우리 더 즐겁게 지내요. 착한 고양이가 되겠습니다. :)

순오기 2008-12-31 0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올해의 마지막 날이 되었군요~~ 네꼬님, 해피 뉴이어~~
해마다 한 살 더 먹으면 달라질까 기대하며 살고 있는...^^

네꼬 2008-12-31 13:0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올해에는 순오기님과도 특별한(!) 인연을 맞이했었죠. 고맙습니다. 지금도 훌륭하시니 내년에 굳이 더 좋아지시려고 하지 마세요. 저희 기죽어요. ^^

L.SHIN 2008-12-31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팡, 당신은 이미 충분히 따뜻한 사람인걸요.
꽁꽁 언 차가운 발을 뜨거운 물에 담글 때, 나는 굉장히 행복하답니다.
네팡의 서재는, 글은 마치 그런 기분입니다.(웃음)

네꼬 2008-12-31 13:05   좋아요 0 | URL
쿠션님, 내년에는 서재에서 더 많이 만나요. 뜨거운 물은 아니더라도 그대의 언 발을 덮는 따뜻한 방석 정도는 되도록 애써볼게요. 한 해 동안 고마웠어요. 새해 따뜻하게 시작해요, 우리. ♣

마늘빵 2008-12-3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씨 연애했던거에요? ^^ 새해엔 좋은 사람 만나시고, 또 페이퍼질도 많이 해주세요. 시청에서 촛불 들며 만나기보다는, 따스하고 아늑한 카페에서 만나기를! 아니면 네꼬씨 좋아하는 술을!

네꼬 2008-12-31 13:06   좋아요 0 | URL
아니. 연애를 못 한 거죠. (-_-) 아프님의 응원에 힘 입어 좋은 사람도 만나고 페이퍼도 리뷰도 열심히 써볼게요. 술도 차도 좋지만 꼭 필요하다면 우리 내년에도 촛불 들고 만나요. (이런 신년인사라니..!)

무스탕 2008-12-3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그러니까 내년에 네꼬님께선 내 옆에 더 자주 계시길..
아니, 내가 네꼬님 옆에 더 자주 있을수 있길..

네꼬 2008-12-31 13:07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내년에는 저 초록 문 앞에서 더 많이 야옹거리겠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반겨주세요. 지성과 정성에게도 고양이의 안부를 전해주세요. :)

비로그인 2008-12-3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기를..
하하


네꼬 2009-01-07 17:55   좋아요 0 | URL
한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찾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호홋

치니 2008-12-3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의 글이 있어서 2008년에 제 행복지수가 쪼금 더 올랐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내년에도 잘 부탁 드립니다요.

네꼬 2009-01-07 17:56   좋아요 0 | URL
저는 하린 군의 노래가 있어서... (하핫. 농담이에요. 거기에 치니님까지 있어서 행복지수가 올라갔죠!) 올해에도 우리 아주 아주 사이 좋게 지내보아요. 늘 고맙습니다.

Mephistopheles 2008-12-3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그러고 말고요..우리 모두 내년엔 조금 보편적인 삶을 살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덜 화내고 덜 짜증나고 덜 아프고 덜 피곤한 삶...^^
(앨범 노래가사에 혹시 "고등어"가 들어가나요?)

네꼬 2009-01-07 17:57   좋아요 0 | URL
네 메피님. 아주 아닐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덜 화내고 널 짜증내고 덜 피곤해하면서 살 수 있기를 같이 바라 보아요. (고등어라니 고등어라니 파르르)

노이에자이트 2008-12-3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건강하고 멋진 네꼬 님이 되십시오.

네꼬 2009-01-07 17:57   좋아요 0 | URL
노자님, 올해에도 좋은 글 많이 부탁 드려요. 저도 건강하고 멋있어지겠습니다. (어떤 노력을 해야 멋있어질지는 좀더 고민을.)

paviana 2008-12-31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과 함께라면 촛불도 좋아요.^^
그래도 술(!)부터 시작했음 좋겠어요.
올 한해 감사했어요.정말로요..
네꼬님같이 이쁜 글을 쓰는 분이 제 방명록에 불쑥 놀러오시면 깜짝 놀라면서도 무지 행복하답니다.ㅎㅎ

네꼬 2009-01-07 17:58   좋아요 0 | URL
파비아아님 퍼스나콘은 불쑥 나타나서 저를 막 웃게 해요. 언제나 고맙습니다. 우리 올해에도 서로를 막 놀래키면서 지내보아요. 하하핫.

아영엄마 2008-12-3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수록 좀 더 의연해져야 하는데 이 나이가 되도록 여전히 일희일비하고 있으니 철은 언제 들라나 모르겠습니다. 의연해지는 길을 발견하시거든 네꼬님이 비법 전수를 해주소서~. 내년에도 계속 뵈어요~ 새해에는 소망하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시기를~ ^^

네꼬 2009-01-07 18:02   좋아요 0 | URL
앗 아영엄마님, 오래간만이어요. 올해에도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왕성한 독서력을 보여주실 거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말 의연해지는 좋은 방법을 알게 되면 꼭 동네방네 소문낼 테니(왜 아니겠습니까) 걱정 마세요. :)

마노아 2009-01-01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은 보편적인 단어를 특별하게 느끼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그 잔잔하게 서술하는 일상 속에서 스펙터클함을 느끼게 만들지요. 이 글은 2008년도의 마지막 날 쓰였지만, 2009년도의 새해 첫날 읽는 글로서 아주 행복한 힘을 갖고 있어요. 그 글을 오늘 읽어서 나는 무척 기뻐요. 나의 네꼬님!

네꼬 2009-01-07 18:04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지?' 하게 하시잖아요. 새해 격려로 해주시는 말씀인 줄 알면서도 그냥 저는 또 좋다고 웃습니다. (속이 없어 속이.) 마노아님, 새해에도 부빗부빗. 아시죠?

2009-01-01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7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4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07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에게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만나는 절친한 친구 A가 있다.'절친'하다기에는 적게 만나는 셈인데 심지어 만나지 않는 동안에 통화는커녕 메일도 문자도 주고받지 않는다. 블로그를 오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느닷없이 만나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마시러 간다. 술을 마시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친구이자 애인이며 가족이고 선배이자 후배이며 동지가 된다. 연락 좀 하고 살자거나 하는 의례적인 반성은 물론 하지 않는다. 어제 만났을 때도 그랬다. 따져보니 이번엔 8개월 만에 만났다. 우리는 조개탕과 쇠고기구이를 놓고 생(生) 백세주를 마셨다. 밀린 연애사와 가족 이야기, 회사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쏟아내느라 둘이서도 순서를 정해야 했다. 역시 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인간이면서 다정한 사람이었고 술을 잘 먹고 내 유머를 알아듣는 친구이자 외모와 목소리까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애인이었다. 우리는 만나면 다 좋다. 굳이 하나 문제가 있다면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술도 8개월치를 먹게 된다는 것 정도? 

그래서 어제도 자정을 가뿐히 넘겨 술잔을 (끝도 없이) 기울였다. 아침(이라기도 뭣한 시간)에 일어(났다기보다 깨어)나니 도무지 내가 사람인가 싶다. 눈은 떴으되 술이 가득 담긴 욕조에 머리까지 담그고 있는 기분이다.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앉아 생각했다. A하고는 다 좋은데 술을 너무 많이 먹게 되는 게 문제야. 다음에 만나면 12시 전까지만 마시자고 할까보다. 그럼 너무 야박하게 들리려나? 아냐 A도 그걸 바랄지 몰라. 아, 지금쯤 A가 나를 원망하며 다시 네꼬를 만나나 봐라 하고 다짐하고 있는 거 아닐까? 술이 문제야, 술이. 나는 왜 술꾼인 걸까? 왜 술꾼의 집안에서 태어나 이 운명을 짊어지고 사는 걸까? 하여간 이대로라면 A는 날 떠날지도 몰라. 술이 문제야, 술이.  

그러면서 방에서 기어나와(은유적인 표현이 아님) 싱크대를 짚고 일어나 찬장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운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어머니가 사다 두신 고등어가 있더라고, 김창완 아저씨가 노래했지. 이런 마음으로 그는 어머니께 노래를 바친 것일까? 그렇다면 나도 나의 동거녀에게 노래를 지어 올려야 될지 모르겠다. '황태라면'이라니. 나는 이런 라면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제 장을 본다던 동거녀가 사다 둔 모양이었다. 나는 당연히 이 라면을 끓였다. 냄새가 우선 나에게 다가오는 새 운명의 서막을 열었다. 나는 그렇게 사랑에 빠졌다.  

'얼큰한'이라는 겸손한 표현으로 묘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라면. 그 맛에 대해서는 섣부른 언급이 행여 해를 끼칠까 두려워 말하지 않으련다. 다만 나는 이 라면을 먹으며 지나간 술꾼의 아침을 보상 받는 기분이었다. 술을 마시고 몸이 힘든 것도 고된데 지난 밤의 나를 미워하고 반성하게 했던 그 수많은 아침들을 그분이 알고 계셨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그분이 말씀해주셨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위로받는다는 생각'. 냄비를 비우는 동안, 억눌렸던 마음이 서서히 풀어졌다. 그래, 술을 마시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당당해지자. 나에겐 그분이 있다.  

이렇게 해서 A는 앞으로도 나의 친구이자 애인, 가족이자 동료이자 동지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례적인 일이지만, 월요일에는 그에게 메일을 써서 황태라면에 대해 간증해줄 참이다.) 나는 일어나 청소를 하고 목욕을 하고 저녁에 집에 오기로 한 손님들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술을 마신 다음 날도 인간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의 비난보다 무섭다는 '자책'으로 수많은 아침을 허비하였을 전국의 술꾼들과 연말 술자리의 피로로 당황하고 있을 일반시민들께 전도하는 마음으로 이 라면의 일식(一食)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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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12-27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진작 좀 알려주시지 그러셨어요. 저도 어제 소주-와인-맥주로 이어지는 술독에 빠져 기절했다 일어났단 말예요. 그리고는 아주 조금 남아있는 김치찌개 냄비에 밥을 철푸덕 부어 슥슥 비벼먹었단 말예요. 왜,왜, 황태라면을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왜, 왜 황태라면을 우리집 부엌 선반에 올려두지 않으셨어요?

네꼬님 미워요, 네꼬님 미워요. 흑 ㅜㅡ

네꼬 2008-12-27 17:20   좋아요 0 | URL
다락님 나도 오늘 알았어요. 아까 우리 문자를 주고받던 그 때, 막 먹기 시작하던 때였어. (내 기상 시각이 짐작이 가죠? ㅋㅋ) 내가 꼭 사줄게, 황태라면. 다락님, 우리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어요!!

마노아 2008-12-2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술 안 마시는 처갓댁에서 늘 외롭게 소주잔을 기울이는 형부를 위해 황태라면을 구비해야겠어요. 네꼬님의 전도에 저는 푹 빠졌어요!

네꼬 2008-12-27 18:11   좋아요 0 | URL
(우선, 마노아님, 형부께 잘해 드리세요.--절절한 심정.) 형부가 용돈을 주실 지도 몰라요. 해장이 아니라 간식으로 드셔도 좋을 맛이니, 마노아님도 한번 드셔보세요. 술을 배우고 싶어질지도 몰라.

Mephistopheles 2008-12-2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그래도 술을 양껏 마신 다음날 라면으로 해장하는 건 위장이 말할 수 있다면 욕이 나올 일이에요..북어나 콩나물이 최고고요..이걸 끓여먹기 귀찮다 싶으면 http://100.naver.com/cocktail/list.php?kind=8&id=795862 이것도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나저나. 네꼬님 페이퍼에서 금기시되는 단어인 "고등어"를 직접 페이퍼에 써먹다니.!!

네꼬 2008-12-27 18:14   좋아요 0 | URL
하하 메피님, 이런 건 그래, 어디서 찾으셨어요? ㅋㅋ '충혈된 눈'이라니, 마치 오늘 아침의 저를 보기라도 하신 듯.

황태라면의 은혜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고등어 따위는 무섭지 않게 되었답니다. 물론 북어나 콩나물로 해장을 하면 좋겠지만, 어디 다음날 그럴 정신이 있나요. 황태라면에는 북어와 콩나물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하하핫.

조선인 2008-12-2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런 전도에 무지 약해요. 장 볼 목록에 적어두었습니다. 호호호

네꼬 2008-12-27 18:15   좋아요 0 | URL
'호호호'라니, 황태라면을 장 볼 목록에 적어두는 술꾼답지 않게 겸손한 웃음이세요. 하하. (여기 성도가 한 분 느셨네~)

Mephistopheles 2008-12-27 18:21   좋아요 0 | URL
요즘 연어가 아주 말깔난다고 하던데요 조선인님..=3=3=3=3=3

네꼬 2008-12-28 22:29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들으셨죠? ㅋㅋ

nada 2008-12-2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라면의 명가는 삼양인 건가요! 당장 오늘밤에 시식해 봐야징.
술을 마신 다음날도 인간으로 살 수 있다니. 심히 솔깃하군요.
사회적 숙취를 해결하는 법도 알려주어요. 네꼬댁~

네꼬 2008-12-28 22:34   좋아요 0 | URL
전 정말 삼양이 잘 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해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한 끼 대용으로 드시기보다는 정말 괴로운 날 아침에 도움을 받으면서 만나시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싶어요. 전 그 덕에 사람으로 돌아왔거든요. 사회적 숙취는 도무지 해결이 안 되어요. 하지만 제가 방법을 알아내면 배추님께 꼭 먼저 알려드리지. (그리고 이런 복음에 배추님이 솔깃할 줄 내 짐작했어, 짐작했어, 이 술꾼! ♡)

L.SHIN 2008-12-28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반갑군요.
나의 네팡이 내가 전에 썼던 벽지를 써서 말이죠.(웃음)
그나저나 해장페이퍼(?)도 어쩜 이렇게 이쁘게 쓰는지.
나는 쓰는게 고작해야 오타대마왕 음주페이퍼 써놓고 다음날 '끄아악' 하는게 다인데..
ㅋㅋ-_-

Mephistopheles 2008-12-28 13:14   좋아요 0 | URL
엘신님..자신의 고통은 곧 타인의 즐거움을 몸소 실천하시는 겁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네꼬 2008-12-28 22:35   좋아요 0 | URL
쿠션님, 아, 이 벽지 좋죠? (나도 웃음)
해장페이퍼가 이쁠 리가 있겠어요. 술 마신 다음 날 아무리 이뻐 봐야 술 냄새가.. (어우 나 이런 말 쓰니까 아저씨 같아.) 난 쿠션님의 음주 페이퍼 오타들 재미나고 좋던데! :)

메피님, 실은 저도 그래요. ㅋㅋ

L.SHIN 2008-12-29 04:59   좋아요 0 | URL
메피님,,이럴땐'유얼웰컴'행하는건가요? ㅡ.,ㅡ

Mephistopheles 2008-12-30 04:30   좋아요 0 | URL
노오~~~~~~프라블럼 하시면 됩니다 엘신님.

네꼬 2008-12-31 01:36   좋아요 0 | URL
영어로 대화 가능한 네꼬 씨의 서재. ㅋㅋ

도넛공주 2008-12-2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촛불집회때 각광받았다는 그 라면! 맛이 궁금하네요.삼촌댁에 가면 하나 훔쳐와야겠습니다(삼양라면 모든 종류가 다 있는 집)

네꼬 2008-12-28 22:36   좋아요 0 | URL
오! 그렇던가요! 심지어 이 라면이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치기까지 했다 이거죠! (아멘.) 일단 하나 훔쳐와 보세요. 맘에 든다 하시면 내가 또 사드릴게요!

치니 2008-12-28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옷, 이런 전도 앞으로도 좀 자주 자주 해주세요. 저도 완전 솔깃.
그나저나 네꼬님 댁 동거녀, 제가 같이 살면 안될까요, 어쩜 그리도 참한 처자가 다 있는지 등장할 때마다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네꼬 2008-12-28 22:37   좋아요 0 | URL
동거녀를 내 드릴 순 없으니, 음, 그럼 치니님이 우리 집에 오셔서 같이 살면... 아 참 그럼 하린군은.. 음, 그럼 우린 모두 네 식구... (퍽! 뭔 소리냐.)

노이에자이트 2008-12-2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황태라면이라...한번 사서 먹어봐야겠군요.

네꼬 2008-12-28 22:37   좋아요 0 | URL
듣자 하니까 어떤 동네에서는 구하기 어렵다고도 하더라고요. 노자님, 기필코 꼭 구하시길! 화이팅!! (완전 진심 응원)

순오기 2008-12-29 00:18   좋아요 0 | URL
아니 사기 어렵다는 동네가 내가 사는 동네인가요?
황태라면 나도 기필코 사와야지~ 불끈!
우리 아들 엄마가 좀 늦으면 '라면 먹어도 돼?' 그래서 우리집에선 최고의 식사가 먹고 싶은 라면 먹는거예요. 거의 안 먹거나 못 먹게 하는데 이건 예외로 봐줘야겠당~ 네꼬님 추천이니까!

네꼬 2008-12-31 01:3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아닌 게 아니라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궁중요리 전문가 댁에 시집을 가서 걱정인데 신랑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라면이라더군요. (엄마가 못 먹게 해서.) ㅋㅋ 라면을 꼭 먹어야 된다면 이 라면을 강추!

노이에자이트 2008-12-28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웬 화이팅 씩이나...기어코 찾아야겠는데요.

네꼬 2008-12-28 23:19   좋아요 0 | URL
어, 그러고 보니 화이팅은 좀 웃긴가 했어요. 꼭 짚으시네. (긁적긁적. 지금은 제가 노자님 퍼스나콘 포즈입니다.)

보석 2008-12-29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한 전도군요.^^ 네꼬님 글을 읽으니 오늘이라도 당장 슈퍼마켓에 가서 황태라면을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네요. 퇴근길에 꼭 그분을 모시겠습니다.

네꼬 2008-12-31 01:31   좋아요 0 | URL
보석님. 그분 모셨어요? (간혹 뵙기 어렵다는 지역도..) 혹시 못 구하시면 제가 보내드릴게요!

2008-12-29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31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12-29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이거 레어 아이템으로 굉장히 각광 받던 완소 라면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저는 못먹어봤습니다만 ^_^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네꼬 2008-12-31 01:33   좋아요 0 | URL
어어 그랬구나. 전 몰랐어요. 모르다 만나서.... 더 좋았어요. ㅠㅠ 웬디양님, 우리 담에 같이 먹어봐요. (그러려면 일단 밤새... 알죠?)

무해한모리군 2008-12-29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타 마트가면 저도 라면 코너는 자세히 보고 신제품을 즐겨먹는데 저건 처음 보는데요 ^^;; 함 찾아봐야겠습니다~~
꼭 네꼬님 댁에만 놀러오면 먹는얘기 하게 되는군요.

네꼬 2008-12-31 01:34   좋아요 0 | URL
그러게 제가 회사에서 동료들한테도 얘기해줬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평소 같았으면 저만 맛있는 거 먹는 걸 좋아했을 텐데 (제가 이런 인간이에요) 이 라면은 안 팔려서 안 나올까 봐 걱정되어 전파를... 음. 먹는 얘기... 왜 이럴까요, 저는? ㅠㅠ
 

알라딘에 서재를 만들면서 마음 먹기를, 책에 관해서는 좋은 얘기만 하자는 것이었다. 남이 열심히 쓰고 만든 책에 대해 나쁘게 말할 깜냥도 안 된다. 어떻게 만든 책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한 말로 작가와 편집자를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비판적으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분들은 많이 있으니까. 나는 적어도 책에 관한 한 즐거운 이야기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화가 나서 한마디 해야겠다. '어린이 자기계발서' 카테고리에서 이런 책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표지를 내 서재에 올려놓기도 싫다)

제목

서울대를 꿈꾸는 소년 소녀가 알아야 할- 초등학생 때 공부해야 하는 17가지 이유 & 과목별 공부 이유와 공부 방법

목차

제 1 장 초등학생 때 공부해야 하는 이유
1. 중.고등학교 공부쯤은 문제없게 돼
2. 외모보다 더 괜찮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
3. 아이스크림 고르듯 대학을 골라갈 수 있어
4.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만만할 수 있어.
5.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잡을 수 있어.
6. 아는 게 많으면 정말 먹고 싶은 것도 많아져
7. 많은 사람들이 너를 기억할 수 있게 돼
8.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어
9. 더 빨리 부자가 될 수 있어
10. 남보다 좋은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어
11. 좋은 성적표 말고도 얻을 수 있는 게 있어
12. 실패할 확률이 적어져
13.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아져
14.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
15. 가만히 앉아서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어
16. 쓰면 쓸수록 더 좋아지는 머리
17. 내가 나라의 힘을 키울 수 있어

제 2 장 과목별 공부 이유와 공부 방법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외모보다 괜찮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더 빨리 부자가 되기 위해서, 외국에 나갈 기회를 얻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다. 공부를 잘 하면 가족이 행복해진다는 거다. 공부를 못하면 당연히 그 반대겠지. 평가가 나빠지고 사람들에게 잊히고 가난해지고 외국에 못 나가고 가족이 불행해진다는 것이겠지. 공부를 잘하면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단다. 반대로 공부를 못하는 어린이는 당당할 수도, 자신만만할 수도 없다는 거 아냐. 이걸 말이라고 한다. 이걸 책이라고 냈다. 심지어 거의 똑같은 제목과 표지의 책이 2006년에도 나온바 있다. 잘하는 일이라고 새로 내기까지 한 것이다. 쓰고 만드는 노고와 별개의 문제로, 세상에는 만들어선 안 되는 책도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어린이책은.

 

표지를 보니, 이 책이 많이 팔릴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명의 어린이라도 이 책을 볼 것이 두렵다. 아니 단 한 명의 어른이라도 이 책을 볼 것이 두렵다. 아니 이 목록을 작성하고 앉아있었을 어른들이 무섭다. 이런 책이 나오고 있는 세상이 무섭다. 얄팍한 기획이라고 무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런 책이 나오는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읽지도 않은 (그럴 리도 없는) 이 책에 대해 굳이 이렇게 험한 말을 하는 것은, 제발 "어린이 자기계발서"라는 카테고리의 책을 고르는 어른들이, 정말이지 제발 한 번만 더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뜻에서다. 나는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어서 놀기만 하고 공부는 안하는 자녀를 둔 갑갑한 심정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혀가면서 공부를 시키고 싶은 부모도 있는 것일까? 샤방샤방한 만화 주인공을 표지에 그려놓고 가벼운 읽을거리로 꾸며서 이걸, 애들한테 주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어른들 사라고 이런 책을 내는 걸까? 이게 정말 '자기계발'일까? 늘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해던 말을 오늘은 해야겠다. 모든 '어린이 자기계발서'가 이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자기계발서'가 어린이에게 정말 필요할까? 어린이에게 유익하고도 유일한 자기계발은 이따위 책이 아니라 어른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르기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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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12-10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의 분노가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근데 말이죠..공급도 공급이지만 수요도 참 문제 많습니다.
저 책 사서 읽는다고 책대로 될까요..??

네꼬 2008-12-10 21:37   좋아요 0 | URL
네. 너무 화가 나서 저 목록을 복사해 오면서도 심장이 다 두근거렸어요. 팔린다고 판단되니까 저런 책을 쓰고 만들겠지요.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_-

조선인 2008-12-1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포님 말에 안타깝게 동조합니다. 수요가 많아요. 너무 많아요. 반갑게 인사나누던 이웃이어느날 보면 자식교육에 미친 사람이라는 걸 알 때마다 슬퍼져요. 아주 슬퍼져요.

네꼬 2008-12-10 21:38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오래간만에 뵈어요. (그런데 이런 글로. ㅠㅠ) 자식교육에 '미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저도 이 페이퍼를 쓰면서 자꾸만 슬퍼졌어요.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8-12-10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랍군요.. 정말 이런 책이 있단 말입니까 -.-

네꼬 2008-12-10 21:42   좋아요 0 | URL
정말 놀랍지요. 저는 이런 종류의 책을 들추어본 적이 없는데, 오늘 검색하다가 우연히 본 거예요.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확인하고 나니 오히려 더 믿어지지 않아요.

2008-12-10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0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12-1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천박한 정서가 두려움을 넘어서 슬퍼집니다. 미친 교육이에요.

네꼬 2008-12-10 21:47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제가 느낀 감정의 순서가 그랬어요. 화가 나다가 무섭다가 슬퍼지더라고요. 말 그대로 미친 교육이에요. 저 목차를 보고 있노라면 무서워요. 무섭고 슬퍼요.

마늘빵 2008-12-1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이거 저자 누굽니까. 아주 올해는 분노할 것들 천지여서 감정이 남아나질 않아요.

네꼬 2008-12-10 22:21   좋아요 0 | URL
'알라딘 상품 넣기'로 이미지를 넣었다가 차마 봐줄 수가 없어서 그냥 제목만 적었어요. 정말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 쓰고 만든 거라고 믿고 싶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올해에는 분노할 일이 너무 많아요. ㅠㅠ

웽스북스 2008-12-1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 만든 거라고...라니...
아, 네꼬님은 천사에요 정말.

저 책을 읽고 자란 아이가 키우는 나라의 힘은 어떨까요..
갑자기 소름이 돋아요

네꼬 2008-12-16 09:51   좋아요 0 | URL
만에 하나 정말 사정이 있어서 만든 책이라면 제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거잖아요. (소심하다 못해 이건 뭐...) 저는 이런 애들이 힘 세게 키운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무서워 죽겠어요.

순오기 2008-12-11 0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기말고사 시즌이거든요~ 초등1학년부터 올백 맞으면
닌텐도 사준다, 핸폰 해준다, 외식 한다...
애들이 와서 다 이런 얘기만 해요~ 정말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더라고요.
부모들이 나빠요, 거기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없는 게 더 한심하고요.ㅜㅜ
적어도 공부 잘하면 뭘 해주겠다~ 이러지는 않았지만...

네꼬 2008-12-16 09:53   좋아요 0 | URL
공부를 왜 하는지, 물론 저도 잘 모르면서 학교를 다녔지만 이건 정말 아니죠.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공부=물질" 이런 공식을 몸에 익힌 아이들이니, 어른이 되어서 지식을 악용하고 학력을 남을 무시하는 도구로 삼는 저열한 인간이 되겠지요. 아아 '부모'만이 아니라 사회가 나빠요. ㅠㅠ

mong 2008-12-11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파닥파닥 $%#@*&#

네꼬 2008-12-16 09:53   좋아요 0 | URL
으르렁 컹컹. 꽥꽥. 글썽글썽.

nada 2008-12-1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무서워요. 저런 사람들은 자기네들 나라 만들어서 명박이 대통령이랑 같이 살라 하고, 우리는 우리끼리 다른 나라에서 살면 안 될까요. 저 책 기획한 사람 얼굴 좀 보고 싶네. 사회가 괴물들을 길러내고 있어요.

네꼬 2008-12-16 09:55   좋아요 0 | URL
이 댓글에 추천 한 표요. ㅠㅠ 저도 그냥 헤어졌으면 좋겠어요. 대통령이하 저 분류의 인간들과 정말 헤어지고 싶어요. 아니 저 괴물들과 헤어지고 싶어. 엉엉.

BRINY 2008-12-1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어릴 때부터 저런 걸 알아야 편하게 사는 게 맞나?하는 생각까지 든다니까요. 요즘 직장인 처세술 보면, 치사한 거 투성이더라구요. 그게 현명하다는 식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저도 꽃양배추님처럼 저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잘 살라하고, 우리는 우리끼리 '돈, 돈'거리지 말고 따로 살았음 좋겠어요.

네꼬 2008-12-16 09: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치사한 게 곧 현명한 것인양 포장되고 있어요. 이러고 살아야 되나 싶어서 이따금은 그런 마음들이 짠하게 느껴지는데, 이젠 그 수준을 넘어선 것 같아요. 우리끼리 살아요, 우리끼리. ㅠㅠ

무스탕 2008-12-1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저자라는 작자는 자기 초딩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자기가 한 대로 너그들도 살아라 그러는건지 자기는 그렇게 살지 못했으니 너그들은 다르게 살아라 하는건지..
이런 종류의 책들을 만들때 겨냥층이 아이라고 생각하세요, 부모라고 생각하세요?
한 명의 정신나간 사람(한명인지 여러명인지 모르겠지만..)이 뭐가 씌워서 저런 웃지기도 않는 책나부랭이를 만들었어도 소비자 층에서 웃겨~ 증말!! 하고 외면해야 할텐데 기다렸다는듯이 낚아채는 부모들이 있어서 문제가 더 큰거에요.
파란 아이들이 시들어가고 있어요.. ㅠ_ㅠ

네꼬 2008-12-16 09:59   좋아요 0 | URL
책 표지를 보면 그 조악함에 경악하게 돼요. 학교 앞 문방구나 마트 가판대에서 볼 수 있는 얄팍한 종류의 책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래서 더 위험하죠. 아이들이 "재미있는 책"인 줄 알고 별 뜻없이 읽기 시작할 거고, 이런 모양새의 책은 아이들에게 저항이 적으니 쉽게 받아들여질 거고, 게다가 부모가 아이에게 주기도 딱 좋고. 이런 무시무시한 악순환을 생각하면 "웃겨 증말" 하고 넘어가려다가도 마음이 서늘해져요. 아아. 어떡하죠.

노이에자이트 2008-12-1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사독재보다 더 무서운 부모독재...밤늦게까지 학교에 붙잡아 두고 강제학습 시키는 것도 심각한 인권유린인데요...

네꼬 2008-12-16 10: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군사독재보다 무서운 부모독재. 저는 모 학습지 광고에서 "공부가 그렇게 좋으면 공부랑 살지 왜 우리랑 사니?" 하는 카피에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런 말을 하는 형은 골칫덩어리 푼수로 나오는데, 저는 그애의 의견에 한 표거든요. 애들이 놀아야지. 동생을 꼬드겨 놀자고 하는 형울 무시하고 문을 닫아버리는 엄마를, 웃어넘겨야 될까요?

몽당연필 2008-12-13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큰아이가 2학년인데요.
어떤 반 선생님은 아이 성적이 나쁘면 엄마한테 아이 학원 좀 보내라는 얘길 하신다더군요.
그 얘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학교가 뭐하는 곳인데!! ㅠㅠ

네꼬 2008-12-16 10:02   좋아요 0 | URL
이제 학교는 스스로 자기 역할을 포기하는 모양입니다. 학교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이란 말입니까. ㅠㅠ 이건 정말 "미친 교육"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요. (2학년인데 이미 이러면 어떡해요. 애들 불쌍해서 어떡해요. ㅠㅠ)

치니 2008-12-1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순간 저도 심장이 두근, 눈물이 왈칵 나려고 하네요. 네꼬님의 분노가 그대로 옮아옵니다.
그런데 14년간 애 키워 온 저는 '어린이 자기 계발서'라는 종목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렇다고 이런 책 사 볼 부모가 적다고 생각해도 되는지, 그건 의심스럽지만요.
저거 저거, 불매운동이라도 하면 안되나. 휴휴.

네꼬 2008-12-16 10:04   좋아요 0 | URL
저도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몰라요. 그런데 아예 맘 먹고 이 "어린이 자기계발서" 카테고리의 책들을 살펴보니 가관이더라고요. 사실 저는 "어휴, 무슨, 어린이들한테 가치관을 주입식으로 교육하냐?" 하는 우려를 갖고 있었는데, 맘 먹고 들여다보니 화가 나는 걸 넘어서서 슬퍼지기까지 했어요. (이런 책 사 보는 부모가 결코 적지 않다고 봐요, 전.)

2008-12-21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3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쟈니 2008-12-23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목차 첫줄부터 가슴을 막막하게 만드는군요. 한국에서 교육은 곧 돈과 출세의 과정이라고 거침없이 말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까지 저렇게 말하고 이런 책을 만드는 건 너무 창피합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지는 아침이네요..

네꼬 2008-12-27 17:22   좋아요 0 | URL
쟈니님, 안녕하세요. 창피하고 미안한 마음. 무섭고 슬픈 마음. 그런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을 잘 지켜내보아요.

2008-12-24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7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6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27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