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은 예선 1승 2패로 본선 32강 진출이 간당간당 하지요.현재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들은 홍명보 감독의 용병술과 전술전략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고 홍명보의 감독선임을 비판하던 많은 이들은 현재 대놓고 홍명보글 까는 실정입니다.


32강에 안착한 일본의 축구팬들은 대놓고 한국 축구를 조롱하고 있는 중인데 홍명보 한심한 전술을 보고 있노라면 일본인들의 조롱에 대꾸할 여력도 없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 축구를 사랑하느 어느 일본인이 트윗터에 글을 올렸더군요.

일본인들의 조롱보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일본인의 질타가 더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가네 홍명보와 정몽규를 싹 갈아치우고 축구협회을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정말 암울할 것 같아 무척 걱정이 되네요.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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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박람회에 갔다가 희안한 사은품 하나를 받아왔습니다.키캡이 있는 키링인데 키를 누르면 불이 들어오더군요.누루면 불이 들어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어서 몇 번 누러보고는 책상 어딘가에 방치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성해인의 인비인 구매시 키켑 키링 증정 이벤트를 하고 있네요.



키캡 키링이 무언가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기계식 키보드의 스위치와 키캡을 활용한 것으로 키캡  특유의 '딸깍'거리는 타건감 덕분에 스트레스 해소용 피젯 토이 겸 패션 아이템으로 요즘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그래서 알라딘에서 책 구매 사은품으로 선정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격을 보니 위 3구 키캡의 경우 대략 2천원선 9구 키캡의 경우는 4천원선이네요.(제가 받은 키캡 키링은 특이하게 L자형 4구네요^^)

뭐 직접 구매해도 가격 부담이 적으니 성해인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키켑 키링을 받고자 굳이 책을 구매하고 마일리지 차감하면서 구매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키캡 설명을 보고 찾아서 눌러보니 딸깍 딸깍 거리는 것이 청량감이 있는 것이 기분 좋게 만든다고 하는데 딸깍거리는 타건감이 좋아서 몇 십만원짜리 비싼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는 분들이 계신데 키캡 키링이 있으면 굳이 기계식 키보드를 살 필요가 없어 보이기 하네요.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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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을 지나가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바로 오세훈시장이 만든 동대문 DDP입니다.


DDP는 생경한 디자인으로 호오가 꽤 갈리는 건물인데 파리에 있는 에펠탑이나 미테랑 대통령 고집으로 만든 파리 퐁피두센터처럼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의 대명사 였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민주당 서울 시장 경선후보 였던 전현희 의원이 자신의 서울시장 선거 공양중의 하나로 동대문 DDP를 철거한다고 했을 때 아니 엄청난 서울시 예산을 들여 만든 건물을 정권이 바뀐다고 철거하고 또 다른 건물을 예산을 쏟아 부어 새로 짓는 것이 말이 되냐는 생각을 가졌지요.

1960년대 현재의 서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그렸던 서울 도시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이처럼 지방 자치제가 들어서면서 서울을 비롯한 지방 자체제의 민선 단체장들은 자신의 업적을 오로지 건축물등에서 찾을려고 하는지 매번 단체장이 바뀔떄마다 혈세를 퍼부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참 어리석은 짓이지요.


그럼 지방 자치제 이전에는 이런 낭비가 없었을까요?

현재처럼 지방 자치제하에서 혈세가 마구 낭비되는 경우는 상당이 적었지마 그래도 대규모 도시계획은 늘 있어 왔습니다.

서울의 경우도 60년대부터 대규모 도시 계획이 있었는데 혹 아시는 분들이 계시는지요?

서울 도시 계획 이름은 새서울 백지계획(白紙計劃)으로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이 발표한 초 대형 행정도시 건설 구상으들ㅇ로,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근대주의 도시계획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아 수립되었습니다.

이 계획은 특정 후보지를 정하지 않고 백지(지형적 조건이 없는 평지) 위에 무궁화 형태로 인구 100만~15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도시를 설계하는 것이 었다고 하네요.

<새서울 백지계획의 예상도>


새서울 백지계획은 과거의 좁고 무질서한 도심을 전면 철거하고, 철근 콘크리트 초고층 빌딩, 넓은 녹지 공간, 그리고 효율적인 도로망을 배치하는 근대적 기능주의 도시를 주창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주거, 행정, 위락, 교통이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4원칙에 따라 격자형·방사형 도로망과 거대한 녹지 축을 설계한  '무궁화 문양 도심 구성'이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화강암 기반의 산들이 많은 서울의 산악 지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성, 그리고 당시로서는 막대한 예산 문제와 비판적 여론에 부딪혀 실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백지화되었지만 이후 강남 개발(영동지구 계획), 여의도 개발의 격자형 도로망 및 아파트 단지 배치에 고스란히 이식되었고 서울에 백지 위에 이상적인 행정도시를 건설한다는 발상은 훗날 세종특별자치시 구상의 먼 뿌리가 되었다고 하네요.


실제 무궁화 모양의 서울이 탄생했다면 아마도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도시가 탄생했겠지만 60년 당시 한국의 기술력과 예산 부족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이 다소 안타깝게 여겨지네요.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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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전쟁기념과에서 항미원조라는 중국의 프로파간다 문구가 적힌 6.25관련 포스터에 대한 글을 올린바 있다.실제 중국에서 말하는 항미원조란 북한을 도와 미국 제국주의를 물리치고 승리했다는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이번 전쟁 기념관의 정신나간 포스터는 다른 시기에 했어도 국민적인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인데 하필이면 6.25 전쟁이 일어난 호국보훈의 달 6월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이따위 짓거리르 했으니 쌍욕을 처먹어도 할 말이 없다.

<문제의 전쟁기념관 포스터-현재 삭제됨>


민주당 정권의 집권하에서 정치권이나 공공기관에서 이런 친중적인 행태가 자주 일어나다 보니 기존 보수적 안보관을 가진 국민들은 민주당의 친중 성향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일부 극우들의 경우 민주당을 진중 죄빨이라고 선동하고 있다.

사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중국과 무작정 척을 질 수 없고 안미경중의 실용적인 정책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이런 일방적인 비난은 무척 부당하다고 느낄수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민주당의 친중 성향(이재명 대통령의 쿠팡 발언등)은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지만 그중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광주광역시에 있는 정율성 역사공원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광주 광역시는 광주 출신의 인민해방군인 정율성의 항일 운동을 기리기 위해서 2009~10년에 정율성 국제 음악제를 개최하고 2012년부터 정율성거리를 지정,2020년에 정율성의 생가가 있는 불로동에 약 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공원을 조성하였다.

<광주에 있는 정율성 거리>

<정율성거리 초입에 위치한 정율성 동상>

<정율성 기념관및 공원 전경>

광주 광역시는 정율성을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한·중 문화교류의 상징으로 평가하면서 한·중 우호 관계 및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사업으로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그럼 일반인들한테 매우 생소한 정율성이란 인물은 누구인가?

정율성은 광주 출신의 중국의 군인, 작곡가인 한국계 중국인으로 일제강점기 때 민족혁명당, 중국공산당 등에서 활동하다 해방 이후 북한으로 가 북조선인민위원회, 조선노동당, 조선인민군 등에서 활동했고 6.25 전쟁 중에 중국으로 귀화하여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해방군 등에서 작곡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정율성>


정율성은 주은래의 양녀인 정설송(주 네덜란드 주 덴마크 대사역임)과 결혼을 할 정도로 항일 독립운동보다는 중국 공산당에 충성한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한데 2018년 국가보훈처는 항일 활동의 객관적인 증거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정율성 정송월 부부>


1939년 정율성은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인민해방군진행곡)을 작곡했으며 이 시기에 중국 공산당의 엄격한 심사끝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해방이후 정율성은 김무정의 지휘하에 북한으로 들어와 1945년 12월말 해주시로 가서 조선로동당 황해도 도당위원회 선전선동부장으로 취임하여 활동하였고 47년 인민군 합주단 단장에 취임하며서 조선인민군 행진곡등을 작곡하였다.



정율성은 6.25전쟁당시 인민군으로 참전하여 서울에 입성했지만 중국인 아내를 두었다는 당시 북한 정치권의 비판으로 인해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황이 나빠지자 먼저 중국으로 간 정송설의 요청으로 주은래에 의해 중국으로 소환되고 이후 중국 공산당및 중국 국적을 회복하게 된다.이후 중공군이 참전하자 잠시 중공군 자격으로 잠시 서울에 복귀했다가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 사망하게 된다.

<인민음악가 정율성의 묘.묘역만 보더라도 중국 공산당내에서 상당한 업적 인정을 받고 있는것으로 추정됨>


이처럼 정율성의 경력을 보더라도 임정과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데 그가 당시 조선인으로써 항일 무장 투쟁의 한 방편으로 팔로군에 입대했다기 보다는 그간의 행적으로 보자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중국 공산당에 입당해 활약하고 그 와중에중국 공산당에서 활동과정중에서 일본군과 투쟁을 벌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그런데 실제 중국 공산당 자료에도 정율성이 무장 항일 투쟁을 벌였다는 내용은 별로 없음.인민해방군 작가로 활약했다는 내용이 다수임)
실제 해방전 중국에서 많은 항일 투쟁을 했던 공사당 계열의 독립 투사의 경우 한국 정부는 북한 공산 정권에서 활동하기 이전에 사망하거나 혹은 북한에서 활동하지않은 사람에 한해 독립 유공자로 인정하기에 정율성보다 훨씬 더 유명한 김원봉같은 분도 해방전 항일 투쟁과는 별개로 북한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했기에 현재까지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면에서 본다면 중국 공산당 시절의 행적은 별개로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작곡하고 6.25전쟁시 실제 전쟁에 참여한 정율성의 공원을 대한민국에서 조성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북조선 인민 공화국 김일성 위원장으로 받은 포상장으로 정율성이 뼈속까지 공산주의자임을 알수 있음>


백번 천번 양보하여 광주를 대표할 만한 항일 독립 유공자가 없어서 어쩔수 없이 정율성을 광주를 대표하는 독립 유공자로 선정했다고 치자.
그럼 조용히 일반 공원에 이름하나 붙이면 될 일을 민주당이 앞장서서 거리를 조성하나 동상을 세우나 공원을 만드네 하면 생 난리를 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전쟁 기념관 항미원조 포스터와 관련해서 어린이들의 역사과을 오도시킨다면서 온 국민의 지탄을 받은바 있는데 민주당의 지자체 장들은 동일한 실수를 이미 하고 있는데 특히 화순군의 행태는 가관이 아니다.

<화순군 능주초등학교 정율성 벽화>

<능주초등학교내 정율성 교실>

<화순군에서 복원한 정율성 생가>

<화순군 정율성 생가에 있는 안내판에 논란의 항미원조가 떢하니 박혀있음>


아니 화순군의 능주 초등학교에서는 6월 호국보훈의 달 시간에 6.25 남침 교육을 정율성을 보면서 학생들한테 어떻게 가르킬지 무척 궁금해 진다.아이들은 남침에 참여한 많은 인명 피해를 입힌 북한군 정율성이 지신들의 학교에 떡하니 벽화로 그려져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참 암담하다.


광주시민들도 중국 공산당출신에 6.25 당시 북한군으로 남침에 참여한 정율성을 광주를 대표하는 항일 독립 투사로 하는 것이 창피했는지 방명록에 저렇게 적을 정도다.

<정율성공원에 대한 시민 반응>


하지만 이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강기정 전 광주시장과 민주당은 "정율성에 대한 평가와 공과는 역사에 맡겨두어야 한다"라며 이념의 잣대로만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평가(이는 극우들이 전두환에 대한 평가와 공과 는 역사에 맡겨두어야 한다라는 궤변과 동일한 수준임)와 더불어 중국인 관광객 유치와 한중 우호 관계 강화를 위한다면 정율성을 물고 빨고 있는데 한국을 침략한 북한과 중공군의 인민군가를 지은 공산주의자  정율성을 어떻게 한국에서 기념하며 또 정율성을 통해 광주에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이 방문에서 돈을 뿌렸는지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 졌는지 궁금해 진다.


실제 광주에서도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율성보다 더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독립투사가 다수 있다.

광주광역시(당시 전남 광주군) 출신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획하고 이끈 장재성 선생, 광주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최한영 선생, 그리고 나주역 댕기머리 사건의 주역인 박준채 열사,여성 독립운동가 장매성등이 있으며 1919년 광주의 만세 운동을 주도한 최한영,정광호,이윤호등이 있다.

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광주에서 독립 운동은 한 분들이 다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분들은 도외시한 채 뜬금없이 웬 중국인 공산당원을 독립투사로 포장해서 광주를 대표하는 항일 독립 투사로 만든 것인지 당최 머릿속에 우동사리가 들어 있는지 뇌구조를 살펴보고 싶을 정도다.


자 이런 점만 보더라도 민주당이 친중 좌빨이라고 극우들에게 후두려 까여도 민주당에선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금도 일부 국민들에게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친중 으로 경도되어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는데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스스로 반성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과연 민주당의 자신의 과오를 깨달을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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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 집안에만 있기가 무료해서 혹시 집 인근에 무슨 행사가 있나 검색해 보다가 양재동 화훼단지 옆에 위치한 AT센터에서 국민팜 엑스포를 한다는 것을 알고 산책삼아 천천히 걸어서 다녀왔습니다.

<국민팜 엑스포 전경>


사실 작년에 팜 박람회는 아니고 한국 농수산 박람회를 다녀왔는데 당시에 여기저기 부스를 다니면서 먹거리와 쌀등을 받은 기억이 나서 가본 것인데 실제 인터넷에도 국민팜 엑스포에서 200g내외의 쌀도 받고 샤베트등도 먹었다는 내용을 읽어서 다녀온 것이지요.

<다른분이 올린 엑스포 부스 방문 사은품>


산책삼아 걷다가 도착해 보니 오후 2시 였는데 1층 전시장으로 들어가 보니 웬걸 참여 부스가 모두 철수 상태인 것입니다.AT센터에서 열린 국민팜 엑스포는 금~일요일까지인데 이런 종류의 박람회는 보통 오전10시에서 오후지 5시까지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 입니다.그리고 실제 다른 전시회 같은 경우 마지막 일요일도 보통 5시까지 운영하고 부스 철수를 하는 편이죠.

그런데 팜 박람회는 이런 일반적인 관례를 무시하고 오후 2시에 대부분 철수(이정도면 철수 상태면 아마 12시부터 부스철수를 한 것으로 추정됨)했는데 부스(명)의 대다수가 각종 지역단체임을 감안하다면 아마도 부스에 참여한 공무원들이 그냥 일요일에 근무하는 것이 거시기해서 일찍 문다고 퇴근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저 외에도 2시경에 온 관람객이 좀 있었는데 팜 박람회가 2시경에 대부분 철수한 것을 보고 모두들 어의 없어 하시고 일부는 AT센터 근무자들에게 항의를 하고 있더군요.

옆에서 얼핏 듯기에 AT센터 근무자들이 팜 박람회 관람객수가 없어 일찍 철수 한 것으로 안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하고 있더군요.

<국민팜 엑스포 금요일 내부 모습인데 평일이라고 해도 사람이 너무 없긴 한것 같음>

일요일 오전 12시경에 부스 철수할 거면 아에 토요일까지 행사한다고 고지하던가 아니면 현수막이나 인터넷에 일요일은 오전 12시까지로 명기를 해야지 참 무책임한 변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헛걸음 했다 싶어 화가 나는데 2층이 떠들썩해서 올라가보니 무슨 어린이 박람회를 하고 있더군요.어린이 관련 박람회인데 아이들(초등에서 중등까지)손을 잡은 부모님들이 바글바글 했습니다.심심해서 구경하다 몇가지 설문조사에 응하고 소소한 선물도 받아 나왔네요.

어린이 박람회도 일요일까지인데 역시 5시에 폐관을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원래 박람회같은 전시회는 5시 폐관이 일반적인데 무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일요일 오전 12시경부터 부스를 철수한 국민팜 엑스포 부스 참가자들과 이를 묵인한 AT센터측은 참 무책임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공무원이나 국영기업체 직원들은 일 쫌 똑바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 하루였네요.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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