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을 지나가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바로 오세훈시장이 만든 동대문 DDP입니다.


DDP는 생경한 디자인으로 호오가 꽤 갈리는 건물인데 파리에 있는 에펠탑이나 미테랑 대통령 고집으로 만든 파리 퐁피두센터처럼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의 대명사 였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민주당 서울 시장 경선후보 였던 전현희 의원이 자신의 서울시장 선거 공양중의 하나로 동대문 DDP를 철거한다고 했을 때 아니 엄청난 서울시 예산을 들여 만든 건물을 정권이 바뀐다고 철거하고 또 다른 건물을 예산을 쏟아 부어 새로 짓는 것이 말이 되냐는 생각을 가졌지요.

1960년대 현재의 서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그렸던 서울 도시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이처럼 지방 자치제가 들어서면서 서울을 비롯한 지방 자체제의 민선 단체장들은 자신의 업적을 오로지 건축물등에서 찾을려고 하는지 매번 단체장이 바뀔떄마다 혈세를 퍼부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참 어리석은 짓이지요.


그럼 지방 자치제 이전에는 이런 낭비가 없었을까요?

현재처럼 지방 자치제하에서 혈세가 마구 낭비되는 경우는 상당이 적었지마 그래도 대규모 도시계획은 늘 있어 왔습니다.

서울의 경우도 60년대부터 대규모 도시 계획이 있었는데 혹 아시는 분들이 계시는지요?

서울 도시 계획 이름은 새서울 백지계획(白紙計劃)으로 1966년 김현옥 서울시장이 발표한 초 대형 행정도시 건설 구상으들ㅇ로,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근대주의 도시계획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아 수립되었습니다.

이 계획은 특정 후보지를 정하지 않고 백지(지형적 조건이 없는 평지) 위에 무궁화 형태로 인구 100만~15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도시를 설계하는 것이 었다고 하네요.

<새서울 백지계획의 예상도>


새서울 백지계획은 과거의 좁고 무질서한 도심을 전면 철거하고, 철근 콘크리트 초고층 빌딩, 넓은 녹지 공간, 그리고 효율적인 도로망을 배치하는 근대적 기능주의 도시를 주창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주거, 행정, 위락, 교통이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4원칙에 따라 격자형·방사형 도로망과 거대한 녹지 축을 설계한  '무궁화 문양 도심 구성'이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화강암 기반의 산들이 많은 서울의 산악 지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성, 그리고 당시로서는 막대한 예산 문제와 비판적 여론에 부딪혀 실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백지화되었지만 이후 강남 개발(영동지구 계획), 여의도 개발의 격자형 도로망 및 아파트 단지 배치에 고스란히 이식되었고 서울에 백지 위에 이상적인 행정도시를 건설한다는 발상은 훗날 세종특별자치시 구상의 먼 뿌리가 되었다고 하네요.


실제 무궁화 모양의 서울이 탄생했다면 아마도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도시가 탄생했겠지만 60년 당시 한국의 기술력과 예산 부족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이 다소 안타깝게 여겨지네요.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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