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민주당은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하에 검찰을 난도질하고 있는데 서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검찰의 수사보완권마저 페지할려고 발악을 하고 있는데 장윤기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10만 경찰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평범한 일반 국민들이 볼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일부 정치인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검찰의 보완 수사권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최강욱및 김용민의 황당한 주장은 전 국민을 법 공부하게 만들고 있다.


나름 민주당내에서 젊은 피로 합리적인 진보라고 생각했던 김한규 의원마저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아니 경찰의 조직적 은페를 검찰의 보완수사로 진실을 밝혀냈음에도 국회의원이란 작자가 검찰의 보완 수사권이 있어도 장윤기 같은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고 버벅거리면서 말을 하고 있는데 이 같은 논리라면 CCTV가 있어도 범죄는 항시 일어날 수 있으니 CCTV설치가 불필요 하단 말과 다름이 없다.


이처럼 최강욱,김용민,김한규,박은정 의원들이 여러 매체에 나오서 나름 검찰 수사권의 보완이랍시고 뇌를 거치지 않는 말들을 토해내자 같은 진보의 나팔수들조차 어의가 없었던지 강력 비판하고 있는 중이다.

박은정 의원이 킥스에 입력만 하면 만사 해결이라고 하는데 현실은 경찰조차 제대로 킥스에 입력을 안하는데 조직적으로 은폐를 하려고 하는 경찰이 과연 킥스에 입력할지 현재 인터넷에서 박은정이 뚜까맞고 있는 실정이다.


진보 나팔수들조차 검찰 보완 수사권의 문제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민주당 국개의원들은 마이동풍중이다.



실제 민주당의 보완수사권 폐지론자들은 검찰의 보완 수사권을 폐지하는 대신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를 할 수 있게 개정하겠다고 한다.

검찰의 보완 수사권과 보완 수사 요청의 차이가 뭔가하면 간단한 예로 기자가 기사를 작성해서  데스크에 올렸는데 국장이 기자한테 이거 다시 작성해서 올려라고 지시했는데 기자가 아 몰랑 배째하고 그냥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에서 검찰의 보완 수사권이 폐지되도 검찰이 스스로 자신의 의무르 자각하고 언론에 흘리거나,킥스에 올리거나 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누구 말 마따나 현재 일에 치이고 있는 형사부 검사들이 보완 수사권이 있음에도 보완수사를 잘 안하는 마당에 보완 수사권이 폐지되면 왜 굳이 보완수사를 여기저기 요청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당최 이해가 안간다.사건 잘못되면 경찰이 욕먹고 국개의원들이 욕먹을 텐데 굳이 검사들이 앞장 설 필요가 있을까 여겨진다.오히려 검찰의 대부분인 형사부 검사들은 과거와 달리 오히려 기소만 챙기는 칼퇴하는 공무원이 될 것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검찰개혁이라고 검찰을 난도질하는 이유가 이후 정권이 바뀌거나 혹은 자신들이 범죄를 저질러 수사를 받을 적에 검찰보다 경찰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라는 이야기다 돌던데 사실 그 말은 헛소리로 치부했는데 검찰의 팔 다리를 모두 자른 지금에 그나만 국민들의 사법 피해를 막은 최후의 수단마저 완강히 없앨려고 발악하는 모습을 보니 그 헛소리가 맞이 않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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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코딩 열풍의 광란에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지난 수년간 문송합니다로 대표되는 문과 계열의 대학 졸업생 취업난과 맞물려서 정부의 디지털 인재 양성 정책이 맞물려 전국적인 코딩 열풍이 불었습니다.


당시에는  '몇 개월의 학원 수강이나 단기 교육만으로 억대 연봉의 IT 대기업 개발자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이 판을 쳤는데 이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문과생들이 코딩을 할 경우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고 해서 수 많은 문과생들이 코딩 교육에 열중했고 이는 초등학교에서도 코딩교육을 하는 부작용을 낳게 되었지요.

하지만 당시 코딩 교육은  단기간에 문법과 프레임워크 사용법만 주입식으로 가르쳤는데 이는 탄탄한 컴퓨터 공학(CS) 지식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숙련된 개발자를 원하는 기업의 니즈와 맞지 않았고 생성형 AI(Chat GPT, Cursor 등)등장으로 곧 사그러들게 됩니다.


현재 생성형 AI로 대표되는 인공 지능의 발전은 매우 무섭습니다.그러다보니 현재 AI로 대체될 직업군들은 과거 인기가 높았던 컴퓨터 관련 직종이 대부분입니다.

미래 직업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에 증가하거나 감소할 직업군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그간 우리가 선호했던 이른바 화이트 컬러 직업군들은 대체적으로 감소하고 그간 무시했던 이른바 블루 컬러 직업군만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는 결군 고소득 직업들은 감소하고 저소득 직업들만이 남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결국 미래에는 젠슨 황과 같은 소수의 초 엘리트만이 부를 누리고 사는 암울한 시대가 올 것 같아서 걱정되네요.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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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의 멍청한 전략 전술 탓으로 한국이 32강 본선에 들지 못하자 국내에서 월드컵 열기가 급속하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지요.그러다보니 32강에 누가 올랐는지 누가 16강,8강에 올랐는지 솔직히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4강이 결정 됬다고 해서 그나마 관심이 생겨 4강이 누군가 봤더니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 아르헨티나이며,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FIFA 랭킹 1위부터 4위가 모두 준결승에 올랐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위 4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르자 그간 월드컵 경기시마다 절대 꺠지지 않았던 징크스중의 하나가 이번 대회에서 최소 1개이상 깨질것이라고 하네요.

그럼 이번 결승에서 반드시 깨질 월드컵 징크스는 무엇이 있을까요??


흠 위 4개의 월드컵 징크스와 이번 북중미 월드컵 4강 국가를 보니 적어도 최소한 한개는 깨질것이 틀림 없을것 같네요^^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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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6-07-15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한민국 탈락 후에는 늘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보는 편인데요ㅎㅎ;;; 제가 응원하는 팀들은 추가로 또 다들 탈락했네요 ㅠㅠ 오늘 프랑스도 그만..ㅠㅠ 다가오는 아르헨vs잉글랜드 기다려봅니다@_@;;;

카스피 2026-07-16 15:55   좋아요 0 | URL
흠 저는 한국 탈락이후 월드컵 경기를 보지 않아요.뭐 남의 나라 잔치에 큰 흥미가 없더군요.그나저나 프랑스 탈락으로 발롱도로의 저주는 다음번 월드컵까지 계속 갈것 같습니다^^
 

박순동의 모멸의 시대는 1965년에 수기 당선으로 세상에 공표되었지만 박수동이 1697년에 사망하게 되면서 아마 곧 세상에서 묻혀졌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박순동의 모멸의 시대는 저자가 1944년 일본군 학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버마(현 미얀마)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이종실·박형무 등 동료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탈출해 영국군에 ㅌ항한 후 미국 전략정보처(OSS)의 비밀 작전인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에 한인 요원으로 선발되어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으나 프로젝트 폐기 후 미군으로부터 승전국 요원이 아닌 '패전국 포로' 취급을 받으며 격리되는 수모를 겪은 후 조국으로 돌아오는 드라마틱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학병을 거쳐 미군의 첩보요원이 되었다가 패전국 포로 취급을 받았던 역사의 삶을 살았던 박순동의 자전적 에세이 모멸의 시대는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두 작품에 큰 영향을 주고 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입니다. 

김성종은 모멸의 시대를 바탕으로 《여명의 눈동자》의 주인공 ‘장하림’을 창조하느데 드라마에서 묘사된 학병 투입, 버마 전선 탈출, OSS 훈련 등의 행보는 박순동 작가의 실화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은 바로 조정래의 태백 산맥입니다.


박순동의 실제 외조카인 조정래는 외삼촌의 모멸의 시대에서 본 외삼촌의 삶과 그가 느꼈던 시대의 아픔과 고뇌를 바탕으로 태백산맥의 양심적 지식인 김범우라는 인물을 창조해 냅니다.


이처럼 박수동의 모멸의 시대는 수기 자체는 이미 우리의 뇌리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지만 한국 분단·현대 소설의 거장과 상징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밑바탕이 되면서 한국 현대 문학의 거장들에게 영감을 주며 대작들의 실제 모티브가 된 역사적 기록물이라는 것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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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미국의  OSS 첩보원으로 일제 시대 조선 침투 작전인 냅코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지요.


유일한 박사는 첩보원 지원 당시 50대의 나이에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국 광복의 초석이 되기위해 앞장선 독립 운동가셨지요.

하지만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비밀 작전이었던 냅코 프로젝트는 폐기되고 유일한 박사 역시 살아 생전 자신의 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가족을 포함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아서 그의 사후 20년이 지난 90년대에 미국의 비밀 문서가 해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일생은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은 드라마틱한 일생이었는데 의외로 그의 일대기나 첩보 활동을 그린 드라마나 영화가 없는 것이 무척 의아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또다는 냅코 프로젝트의 첩보원이었던 박순동은 1965년에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수기를 공모해서 당선 되었습니다.박순동이 유일한 박사와 달리 비밀 작전이었던 냅코 프로젝트를 세상에 알린 것은 일본 학병을 탈출하여 미군 전략정보처(OSS)의 특수 요원이 되었으나 일제가 갑작스럽게 항복하자, 미국은 제네바 협약 위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들의 공로를 은폐하고 하와이 포로수용소로 격리하여 '패전국 포로'로 취급했습니다미군 전략정보처(OSS)의 특수 요원이 되었습니다.그러나 일제가 갑작스럽게 항복하자, 미국은 제네바 협약 위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들의 공로를 은폐하고 하와이 포로수용소로 격리하여 '패전국 포로'로 취급했고 국가가 없는 약소국의 청년이라는 이유로 미국과 연합군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진 분노와 수치심, 즉 ‘역사적 모멸감’을 세상에 고발하고자 수기를 공표했다고 합니다.


박순동의 일생 역시 매우 드라마틱 했습니다.1944년 일본 유학시절 학병을 차출되어 버마 전선에 투입(박순동은 모멸의 시대에서 버마 전선에 있던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기록을 거의 최초로 기술했다고 알려져 있음)되었는데 동료학병 3명과 일본군을 탈출하여 버마의 영국군에게 항복 이후 뉴델리로 이동하여 심문을 받은 뒤 미국 OSS의 눈에 띠어서 냅코 프로젝트 첩보 요원으로 차출 됩니다.

하지만 일본의 패망을 냅코 프로젝트가 폐기되자 박순동은 한인 전쟁포로(일본군출신임)들을 전쟁에 동원하지 말라는 제네바 협약 위반을 의식한 미군측에 의히 갑작스레 하와이 전쟁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고 맙니다.이런 갑작스런 포로 대우에 박순동은 분노하지만 동료 2명과 더불어 하와이 포로 수형소에 수감된 2,700명의 한일 포로들을 위해 수용소내에서 자유 한인보를 발간하면서 한인 포로 지위 향상을 위해 동분 서주 합니다.

이후 박순동은 한국으로 송환되어 53년까지 영어 교사를 역임하고 53년부터 64년까지 직장인(제지회사 근무)으로 일했으며 65~67년까지 다시 영어 교사로 근무하다 67년에 49세에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냅코 프로젝트 비밀이 해제된 이후인 1999년에박순동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2002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하게 됩니다.그의 사후 25년 뒤에 그의 독립 운동이 인정된 셈이니 만시 지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박순동의 일생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모멸의 시대를 쓴 이유는 강대국에게 당한 배신과 '모멸'의 폭로하고 잊힌 역사적 진실의 발굴과 증언(냅코 프레적트 한국인들이 조국 광복을 위해 주체적으로 참여/버마 전선에서 일본군에 자행된 조선인 위안부의 피해를 고발),그리고 학벼으로 강제 동원되었던 수 많은 조선인들 중에 살아왔다는 부채의식이 함께 맞물려서 ‘우리 민족이 왜 이런 비극을 겪어야 했는가’에 대한 답을 후세에 전해야 한다는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으로 저술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이런 생생한 후기가 후손들에게는 이미 잊혀져서 아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말로만 독립 투사들을 떠받들고 있는 후손들을 참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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