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전 신촌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등장하면서 일어나 신촌지역 헌책방 업계의 부침을 다른 기사입니다.


대로변 알라딘 중고서점에 휘청거리는 신촌 헌책방가

[매거진 esc] 

대로변에 알라딘중고서점 신촌점 문열면서 휘청거리는 신촌 헌책방가 탐방

임종업기자 수정 2012-08-08 18:29


신촌은 말 그대로 새마을. 초기 대학 하숙촌을 중심으로 형성된 젊은 거리였다. 문화·패션·유흥산업이 따라 들어오며 첨단유행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 중심이 홍대, 이태원, 강남 등으로 옮겨가면서 신촌은 잡탕거리로 변했다. 헌책방은 하숙집과 함께 대학촌의 디엔에이를 간직한 업종이다.


헌책방은 신촌로터리~동교동 대로변에 집중돼 있었다. 2005년 신촌의 헌책방 6곳 가운데 공씨책방, 신촌헌책방, 동국서적 등 세 곳이 그 부근에 위치했던 것은 그러한 옛 기억의 반영이다.


2012년 7월 현재 헌책방은 7년 전보다 1곳이 더 많아 7곳이다. 공씨책방, 정은서점, 숨어있는책, 북오프, 글벗서점, 유빈이네책방, 알라딘중고서점 신촌점. 공씨책방, 정은서점, 숨어있는책이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신촌헌책방, 동국서적, 뿌리와새싹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글벗서점이 홍대 부근에서 이곳으로 이름을 바꿔 옮겨왔으며, 북오프, 유빈이네책방, 알라딘이 새로 생기는 등 변화를 겪었다. 서연서점, 우리동네책방, 도토리북 등 잠시 동안 존재했다가 사라진 곳을 고려하면 신촌 헌책방의 지층은 제법 복잡하다. 신촌이 헌책방 입지로 매력 있는 곳인 동시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곳이라는 방증이다.


지난 2월 신촌 번화가에 입성한 알라딘중고서점 신촌점은 일종의 진앙. 헌책방이 감히 엄두를 못 내는 번화가에 둥지를 틀면서 헌책방 지층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알라딘은 지난해 9월 종로에 200여평의 오프라인 첫 점포를 내고 올해 들어 부산(1월), 신촌(2월), 분당(5월), 강남(7월)에 잇따라 진출했다. 신촌점은 온라인서점인 알라딘이 펼치는 헌책방계 공략의 대표적인 예.


복층구조 알라딘중고서점/새책방에 못지않아 대학생·회사원 북적


지난 2일 가보니, 복층구조의 지하 책방은 새책방과 다름없었다. ‘오늘 들어온 헌책’ 1154권은 새책 수준. 베스트셀러나 6개월 안 신간을 판매가의 50~55%로 쳐주기 때문인지 새책 같은 중고책을 팔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설·수필, 인문사회, 경제경영, 처세술 관련 책들이 강세이며 손님들 대부분은 대학생이거나 사무직 회사원이었다. 마케팅팀 조선아씨는 “워낙 목이 좋은 곳 위주로 하다 보니 매출 규모가 커도 순익으로 보면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정도”라며 “오프라인에 고객들과 만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해 알라딘서점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성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알라딘의 충격은 동심원을 그린다.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도토리북은 한달을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다음으로 타격을 받은 곳은 동교동 쪽 대로변 공씨책방과 글벗서점. 30~40년 단골이 있다지만 지나가다 들르는 책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공씨책방 장화민씨는 대뜸 “형부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형부는 공씨책방 창립자인 공진석씨로 광화문에 한국 최대의 헌책방을 열어 의욕적으로 운영하다가 1990년 타계한 헌책방계의 ‘전설’. 장씨에게 그는 ‘헌책방 싸부’.


“책의 가치로 가격을 매기고, 좋은 책이면 기다렸다가 ‘새 주인’ 찾아주기를 보람으로 알았는데, 요즘은 혼란스러워요. 알라딘은 빨리 회전하는 신간 위주로 운영하잖아요. 처음에는 우리 식대로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오래된 것만으로 운영이 잘 안되더라구요. 신간을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책방의 힘이 달려요. 그 바람에 느리게 돌아가는 양서들이 짐스러워진 거죠.” 그는 30년 넘게 지켜온 헌책방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글벗서점 주인 기광서씨는 당장은 40년 노하우로 버티지만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바닥이 뻔해 헌책은 결국 제로섬 게임입니다. 누가 흥하면 다른 누군가 지게 돼 있어요. 지는 게임인 줄 뻔히 알지만 해결방법이 없어 고민입니다.”



20년 터주 정은서점 썰렁월세·공과금 내면 빈손유빈이네·숨어있는책은특화전략으로 살길 찾아

연세대 앞 ‘20년 터주’ 정은서점은 책방을 내놨다. 땡볕이 기승을 부리는 3일 오후, 주인 정재은씨는 찜통 같은 책방 한켠에 앉아 일본어 회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손님이 없는데 에어컨은 틀어 뭐하냐면서. 그는 손님이 하루에 2~3명에 지나지 않는다며 장부를 보여줬다. 3월 이후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해 7월에는 한달 171만원에 불과했다. 2009년 316만원, 2010년 391만원, 2011년 298만원 등에 비하면 반으로 꺾였다. 월세 90만원에다 공과금을 내고 나면 빈손이라고 했다.


유빈이네책방, 북오프, 숨어있는책은 영향권 밖이다. 이들은 색깔이 뚜렷하고 충성도 높은 단골을 거느리고 있으며 독자적인 책 수급망을 갖춘 게 특징이다. 헌책방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지도 모른다.


염리동 웨딩숍 거리의 유빈이네책방은 2009년 전업주부인 김영애씨가 인터넷으로 시작해 오프로 확장한 점포. 재개발되는 아현동 일대에서 쏠쏠한 책을 건졌고, 지금은 강남의 아파트촌, 대학교수 연구실 등을 부지런히 누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자본 창업 사례로 등장하면서 널리 이름을 알리고, 구성작가들을 단골로 확보했다. 또 어린이 영어책을 특화해 매출의 30%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3년 전 문을 연 북오프는 일본의 대표적인 헌책방 체인으로, 일본에 거대한 책창고를 두고 있는 셈이어서 느긋하다.


숨어있는책은 일찌감치 특화전략을 폈다. 편집장 출신인 노동환씨가 수준 높은 문사철(문학·역사·철학) 분야를 갖추고, 합리적으로 값을 매겨 단골이 많다. “회전율이 높은 신간 위주의 알라딘이 오래된 책을 기반으로 하는 헌책방의 본질을 흔드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단골이 고령화하고 젊은층은 인터넷으로 쏠리는 추세라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다”는 그의 말에 불안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13년전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알라딘 중고서점 신촌점이 등장하면서 대학가가 밀집되어 있던 신촌지역에 있었던 약 10개 정도의 헌책방은 이전과 폐점을 통해 현재는 대략 2~3개점(숨어있는 책,공씨책방등)만이 남아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 알라딘 중고서점이 전국 각지에 생감으로써 일반 독자들은 보다 빠르고 쉽고 간편하게 헌책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헌책업계에서는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알라딘의 등장으로 구멍가게 라고 할 수 있는 동네 헌책방들은 다 없어지는 추세인것 같습니다.


동네 헌책방이 사라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기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많은 사람들의 추억의 공간이었을 헌책방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계속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by caspi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페크pek0501 2025-04-2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중고서점에 간 적이 있는데 책이 새것들이 많아서 헌책이란 느낌이 안 들었어요. 책을 읽고 바로 파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생각했죠. 헌 책방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죠. 저도 헌책방을 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네요.^^

카스피 2025-04-29 01:07   좋아요 0 | URL
사실 출판사에서 신간 서적이 안팔리는 이유중의 하나로 바로 알라딘 중고서적을 들고 있다고 합니다.살제 과거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신간의 경우(알라딘에서 구입한 책에 한정함) 중고서점에 되팔시 정가의 60%를 준적이 있었지요.
출판사들의 항의 탓인지 모르지만 요즘은 개인간 거래의 경우도 출간된지 6개월이 안된 책들은 중고거래 매매를 금지하고 있네요.
 

지난 4월 21일 전 세계 카톨릭 교인들의 수장이신 프란시스코 교황이 선종 하셨습니다.그리고 26일 장레미사가 치루어 진다고 하네요.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다음달 5일 이후 차기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열린다고 하는군요.전세계에 온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모여서 하루 2번씩 투표를 해서 전체 인원의 2/3의 찬성을 얻은 후보가 차기 교황이 되는 것을 콘클라베라고 합니다.

콘클라베는 여러번 영화화 되었지만 가자 유명한 것은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의 콘클라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정말 우연의 일치로 교황님이 돌아가신 이때에 교황 선거를 다른 영화 콘클라베가 상영되는 군요.


위 영화의 원작소설은 동명의 콘클라베 입니다.


이외에도 콘클라베를 소재로 한 동명의 소설은 2권이 더 있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절판중이네요.


그리고 교황이 서거할 경우 다음을 이을 교황은 어떻게 선출하는가에 관해 궁금증을 풀어줄 책도 있는데 가톨릭 주간지 「내셔널 가톨릭 리포트」 의 전문기자가 쓴 책이지만 아쉽게도 역시 절판 상태입니다.


혹 콘클라베가 궁금하시다면 이 책을 중고서점에서 찾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by casp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진스의 엄마라고 불리웠던 민희진이 갑작스레 기자회견을 하며 방시혁(하이브)와 개막장 싸움을 시작한 것이 벌써 1년전이다.

그런데 민희진한테 무슨 사주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아이돌 뉴진스 멤버와 그 부모들은 갑자기 민희진편을 들면서 하이브와 방시혁을 비난하면서 막장 개싸움에 끼어들어가더니 급기야 하이브와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독자행보를 하려다가 법원의 제지를 받기까지 한다.


사실 뉴진스를 키운 것은 민희진이라고 할 수 있으니 뉴진스 멤버들은 민희진이 어도어에서 축출되는 것에 불안을 느낀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민희진의 개막장 싸움에 굳이 총알받이로 앞장을 섰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특히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돌을 올바르게 이끌어갈 어른들 특히 부모들이 무슨 생각으로 앞장서서 어도어와의 계약 해지를 주장했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실제 그간 많은 법률가들이 유튜브에서 뉴진스에 대해 이런 저런 조언을 했는데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국감에 나오고 법원에 떼로 몰려가고 이도저도 안되니 한국 K팝에 먹칠하는 뻘 소리나 인터뷰 하는 등 이제는 그나마 편들었던 팬들마자도 등을 돌리는 형편이다.


그동안 뉴진스의 막나가는 행동을 보면서 우와 하이브와 어도우가 참 많이 참네 대체 무슨 이유일까하고 궁금해 했었다.

그런데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유튜브가 있어 올려본다.


흠 이 영상을 보니 하이브와 방시혁이 참 살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뉴진스는 지금이라고 냅다 수구리고 석고대죄를 하는 것이 피프티 사태에서 볼수 있듯이 그나마 자신들의 살길이 아닌가 싶다.

by casp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미 지나갔지만 지난 3월달에 국내 최고의 역사학자, 인류학자, 아랍어·아랍문화학자. 주 연구분야는 실크로드를 포함한 동서 문명 교류사로, 한국에 얼마 없는 중동 지역 역사, 문화학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ㅣㄴ 정수일님(일명 무함마드 깐수)가 향년 90세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체포당시 무함마드 깐수>


정수일 교수님은 필리핀-레바논 출신의 필리핀 국적자 무함마드 깐수로 84년 한국에 들어와 단국대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96년 안기부에서 간첩으로 체포되어 하계를 놀라게 한 분이죠.

단국대 교수당시 각종 TV방송에 출연했고 신문에 기고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고 대한민국의 문명 교류사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보니 91년도에는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도 실린 정도였지요.(하지만 간첩으로 판명되자 교육부는 일선 교사들에게 긴급공문을 보내 이 글을 철학자 박종홍교수의 글로 바꿔 가르치게 했다고 합니다)


정수일 교수는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이었지만 실제 1934년 만주국에서 태어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후 조선족중에서 최초로 베이징 대학에 입학한 엘리트로서 중국과 아랍과의 공식통역을 맡을 정도로 엘레트였으나 민족의식이 생겨나 중공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부주석인 주은래에게 직접 청해서 북한으로 귀화했다고 합니다.그리고 60년대 당시 중공출시 연안파 숙청에도 주은래의 간청으로 숙청을 면했을 정도로 중국에서도 인정받은 인재였다고 합니다.

실제 정수일 교수는 북경대 졸업후 이집트에 유학을 하면서 모르코 알제리 레바논등 중동 여러나라를 돌면서 공부했던 천재로 북한에 가서도 김일성의 이란어 통역을 맡은 정도로 인정받고 평양외국어 대학 교수를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능력탓에 정수일은 간첩으로 남한에 파견되었으나 북한이 원하는 정보가 아닌 자신이 연구했던 자료를 넘겨쥐서 북한 당국도 황당해 했다고 하네요.

체포후 전향한 점과 그간의 연구 업적 그리고 미미한 간첩활동등으로 얼마안가 석방되고 이후 한국문명교류연구소의 소장을 맡으면서 왕성한 연구를 해오면서 여러 책을 저술하다 올해 3월에 사망하셨습니다.


북한사람인 정수일은 왜 필리핀-레바논계로 착각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데 실제로 정교수를 만나본 사람에 의하면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과거 아랍계 혈통이 섞인 중국의 회족같은 느낌을 받은데다 동 나이(34년생)의 한국인에 비해서 키도 몸도 커서 당연히 아랍계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정교수는 대학교수 시절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또 학점도 잘 주어서 항상 그의 수업을 학생들의 수강신청으로 만원사례를 이를 젇도로 인기많은 교수였다고 하네요.그는 사형선고 당시에도 담담했으나 자신때문에 자신을 믿도 따라온 대학원 제자들의 폐강에 따른 불이익에 매우 죄책감을 느끼며 울었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였다고 합니다.


정수일 교수는 언어의 천재로 모국어인 한국어외에도 일본어(일제시대에 태어남),중국어(조선족 출신),러시아어,영어,아랍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이란어,마인어,따갈로그어(필리핀어)등 11개국어를 구사했다고 합니다.

사실 34년 일제치하에서 태어난 한국인중 저 정도의 언어를 구사하고 전세계 여러나라를 다닌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 하는 점에서 정수일 교수는 어찌보면 시대의 풍운아란 생각이 듭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정교수가 간첩으로 체포된뒤 단국대에서는 그의 학위를 취소했고 그가 석방되고 복권 된 뒤에도 하귀 복권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이상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된것이죠.

아마 정교수가 대학에서 학생들은 더 가르쳤다면 아마도 한국의 이슬람 관련 동아시아사는 더욱 발전했을 거란 점입니다.

아무튼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by casp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불법 건축물을 알고 계신가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여러나라에서 수 많은 불법 건축물이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가장 유명한 불법 건축물은 바로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시에 위치한 가톨릭 대성당인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은 천재 건축가로 알려진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이자 그가 심혈을 기울인 야심작으로, 고딕 성당의 전통을 잘 계승하면서도 가우디의 독창적인 형태와 구조를 갖춘 건물로 1882년부터 착공에 들어간 이래 143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가 끝나지 않고 있으며 일단 공식적으로는 가우디 사망 100주기인 2026년에 완공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그런데 문제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이 불법 건축물이란 사실인데 1885년 가우디는 건축 허가를 신청했으나 딩시 시청에서 무슨 사유인지 어영부영 허가를 하지 않고 넘어갔고 이후 관할권이 바르셀로나 시로 넘어가면서도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른체 2016년이 되서야 이 성당이 건축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건축물이란 사실이 발견된 것이죠.

결국 워낙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당이다 보니 불법 건축물이라고 철거될 염려는 없으나 130여 년 동안 누적된 벌금을 계산, 합의한 결과 성당 건축위원회는 3600만 유로(약 4천만 달러 또는 466억 원)를 차후 10년간에 걸쳐 시청에 지급하기로 했다고 하는군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1년 입장료 및 헌금 수입은 내야 할 벌금보다 훨씬 많은 650억 원 수준이라 예산에 큰 지장은 없다고 하며 현재는 다행스럽게 합법적인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by casp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