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SF 작가들에 관한 역사적 고찰
Historical Survey Of Women Writers Of Science Fiction
글쓴이: Tonya Browning (1993년)
우리말 옮긴이: 고장원
번역 완료일: 98년 11월 17일
((((옮긴이의 말))))) 다음 글은 인터넷의 페미니즘 SF 관련 사이트에서 다운받아 번역한 것입니다.우리나라에는 아직 과학소설 자체가 낯설지만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페미니즘을 비롯한 다양한 조류와 하위 장르로 과학소설이 분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음 글은 미국 SF의 그와 같은 활발한 문학적 부침과 변화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됩니다.
************ 역사 속으로의 개입 A Foray Into History
대신 나는 그 배를 타고 건넜다.
나는 사공에게 아버지의 금을 배삯으로 치렀다.
그는 웃더니만 내게 금을 돌려주었다.
다른 한편에서 보니 이 나라에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다.
/ 어슐러 르 귄
과학소설의 정의는 그 역사도 길거니와 종류도 다양하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과학소설은 "당연한 것으로 가정된 과학적 발견들이나 장관을 이루는 환경을 기초로 한 상상력이 풍부한 소설 Imaginative Fiction Based On Postulated Scientific Discoveries Or Spectacular Environment"로 정의된다. 이 용어는 일찌기 1851년부터 쓰였지만 1929년 미국 SF의 아버지 휴고 건즈백 Hugo Gernsback이 창간한 SF잡지 [신기한 과학 이야기들 Science Wonder Stories]은 "과학소설이 내가 보기엔 무어라 정의할 수 있는가"를 가장 잘 서술한 독자편지들을 매달 선정하여 50달러의 상금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 놀라울 것도 없이, 1920년대 말 건즈백의 독자들과 작가들은 주로 남성들이었다. 이 장르의 역사적인 기원이 종종 메리 쉘리라는 한 여성에게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는 하지만 말이다.
1818년 출간된 메리 쉘리 Mary Shelley의 <프랑켄시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 Theus>가 과학소설 텍스트의 효시라는 주장은 (그 향유층과 창작자들이 주로 남성이라는 이후의 현실을 고려할 때) 다분히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브라이언 올디스, 25쪽) 설상가상으로, 메리 쉘리 이후 150년이 지난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여류 과학소설 작가들은 과학소설의 주류에서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오늘날 산재해 있는 과학소설계의 지도에서 그녀들은 어디에 있으며 그녀들의 부재(不在)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여성 작가들의 배출 현황을 제대로 파피狗존?먼저 그 전후 맥락부터 따져보아야 한다.
과학소설의 역사는 이 장르 안에서 일어난 사조 내지 운동들을 연대순으로 열거해서 요약해볼 수 있다. 이처럼 간소한 연구방법을 반드시 최고라 할 수는 없겠지만, 필자의 역사적인 재해석은 페미니즘 과학소설을 현재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사이버펑크와 함께, 탐구 중인 본 주제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브라이언 올디스를 비롯한 이들이 파악한 이러한 '운동'의 시발은 메리 쉘리의 <프랑켄시타인>이다. 올디스의 평론서 <3조년 간의 향연>에서, 그는 쉘리가 고딕 풍의 뿌리를 거쳐 과학소설 전통 안으로 들어왔다고 강조한다. 이 평론서 전체에 걸쳐 그가 언급하고 있는 여성 작가라고는 유일하게 그녀 뿐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문학적인 개연성 없이 메리 쉘리의 원본을 걸러내는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올디스는 쉘리와 브램 스토커 Bram Stoker를 "새로운 원형적 인물 New Archetypal Figures을 창조"해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톨스토이 Tolstoy나 스코트 Scott 또는 멜빌 Melville처럼 위대한 소설가의 반열에 올리기는 어렵다. "고 덧붙인다.(올디스, 14쪽) 이것은 올디스에게 편리한 탈출구처럼 보이며, 역사도 이에 맞장구쳐서 메리 쉘리를 단지 그녀의 남편과 연결지을 때만 흥미를 보임으로서 올디스의 평가를 뒤따랐다.(메리의 남편은 영국의 유명한 서정시인 퍼시 비쉬 쉘리 Percy Bysshe Shelly다; 역자주) 그러나 엘렌 모어스 Ellen Moers는 '아내' Wife와는 다른 측면에서 메리 쉘리의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논의한다. 즉 그녀는 메리를 기존의 평가 대신 명백히 어머니/작가 Mo Ther/Writer로 설정한다. 모어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프랑켄시타인>은 공포 문학에 새로운 세련미를 주었는데, 여주인공이나 비중 있는 여성 희생자를 등장시키지 않고도 그렇게 해냈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여성 작가가 지은 다른 어떤 고딕풍 작품도 (아마 여성이 지은 어떤 종류의 문학작품도) 메리 쉘리의 <프랑켄시타인> 만큼 여성인 작가 자신의 성적(性的) 정체성을 이토록 잘 드러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어스, 115쪽)
로즈매리 잭슨 Rosemary Jackson은 심지어 한발 더 나아가서 메리 쉘리의 작품들은 여성적 고딕 Female Gothic이란 대안적 전통 Alternative 'Tradition'을 열었다고 덧붙인다. 그녀의 저작들은 기존 질서의 상징들에 대한 거칠은 공격을 환상 문학 속에다 담아냈는데, 고딕풍 전통을 따른 대다수의 작가들이 여성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샬롯과 에밀리 브론테 자매 Charlotte And Emily Bronte, 엘리자베쓰 개스켈 Elizabeth Gaskell, 크리스티나 로제티 Christina Rosetti, 아이색 다인슨 Isak Dinesen, 카슨 맥컬러스 Carson Mccullers, 실비아 플래쓰 Sylvia Plath, 앤젤라 카터 Angela Carter 등의 여성 작가들은 모두 가부장 사회, 다시 말해서 현대문화의 상징적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환상적인 이야기 형태를 빌려왔다. (118쪽)
선구적인 과학소설은 황금시대 The Golden Age 이전의 작가들 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앞선 시대의) 수많은 고딕풍 이야기꾼들에 의해서도 씌어졌다. 과학소설이 별개의 문학장르로 구별되기 전에도, 이미 웰즈 H. G. Wells, 샬롯 퍼킨스 킬먼 Charlotte Perkins Gilman,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 나싸니엘 호도온 Nathaniel Hawthorne 그리고 줄 베르느 Jules Verne 같은 작가들은 그 성격상 사변적 Speculative이라 볼 수 있는 소설을 창작했다.
그러나 언제나 여성 작가들은 자신들이 창조한 세계의 실질적인 일부가 되지 못하고 있으며 설사 그 세계를 공유하도록 허용된 작가라도 금세기의 현실과 다르지 않은 사회학적 전망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길먼 Gilman이 <그녀의 영토 Herland>에서 제시한 유토피아적 전망은 제한적이나마 그러한 경향에 맞선 운동의 사례다. 다른 과학소설 작가들이 여전히 20세기가 되어서도 스테레오 타입과 남녀 불평등을 묵인해오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웰즈의 장편 <현대의 유토피아 A Modern Utopia>에서는 자녀를 몇 명 낳느냐 그리고 그 자녀들의 지적 수행능력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여성에게 돈을 지불하는 국가가 등장한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그는 여성의 경제적 역할에 자유를 주려 시도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엿한 직업을 주는 것은 아니다. (랩킨 Rabkin, 14쪽).
미국의 문학 평론가 에릭 랩킨은 줄 베르느 같은 작가가 反여성적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베르느는 작가 자신이 여성들을 깔봐서가 아니라 그의 작품에서는 단지 여성들을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므로 Defontenay'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베르느의 작품 내용과 그것의 주독자층을 고려할 때 여성 등장인물은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는 얘기다.(21쪽) 이러한 정당화는 적절하지 않다.
같은 이유로, 1970년대의 공공연한 페미니즘 과학소설을 하나의 '운동'으로 부르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엘레인 쇼월터 Elaine Showalter는 이러한 여성의 '부재'현상은 문학 속의 여성들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12쪽) 분열은 문학사에서 간극을 남긴 채, 일생 동안 추구되는 여성들의 문학적 하위문화를 만들어냈지만 역사적으로 폐기되어버렸다. 그래서 과학소설의 황금시대에 무어 C. L. Moores가 내놓은 작품들은 동시대의 아이작 아시모프 Isaac Asimovs가 쓴 작품들 만큼 기억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들은 여성들과 유색인종들이 포함되는 역사적인 문건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 초기 시대 Early Years
그 마을은 존재하지 않네,
뜨거운 하늘에 익사해버린 여인처럼
검은 머리결의 나무 한그루가 사라진 곳을 제외하고는.
그 마을은 고요하네. 그곳의 밤은 열한개의 별로 끓어오르지.
아, 별이 총총한 밤이여! 이것이 바로
내가 죽고 싶어하는 방식이라네.
--------- 앤 섹스튼Anne Sexton
1916년 휴고 건즈백 Hugo Gernsback은 "사이언티픽션 Scientifiction"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고 잡지 [놀라운 이야기들 Amazing Stories]을 창간했는데, 단편들로 구성된 이 잡지는 자신이 정의한 유형의 소설들을 싣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건즈백은 스탠리 와임바움 Stanley Weinbaum의 <화성 오디세이 A Martian Odyssey>와 건즈백이 직접 쓴 <랄프 Ralph 124C41+>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문학에 가미된 과학적인 정확성이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체에 과학을 동등하게 가미하고자 한 건즈백의 시도는 이 분야에 그가 미친 영향 가운데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앤드류 로스 Andrew Ross가 설명하듯이, 하나의 장르로서의 과학소설은 그것의 가부장적인 틀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문학적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펄프 SF에서 대중화된 과학과 이성이란 보편적인 용어는 다소 편협하고 백인 남성 위주로 되어있긴 하지만, 그러한 용어는 전통적으로 서구의 교양있는 문화를 지배해온 '문학적인' 스피치Speech와 형이상학적인 디스코오스Discourse(담화, 이야기;역자주)란 엘리트주의적 문학 매체들을 대중적으로 거부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실 과학소설을 기술 공포증에 빠진 인본주의자들의 문학 장르로 보는 뒤늦은 인식은 인간의 디스코오스 전통에 대해 의식적으로 도전한 결과였다." (111쪽)
과학의 성격에 대한 건즈백의 사상은 실제로 산문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윌리엄 베인브리지 William Bainbridge가 명쾌하게 입증했듯이, 건즈백의 주관심사는 과학적인 권위(신빙성)과 기술적 진보를 다룬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건즈백의 제1 관심사는 과학적인 계몽이었고 자연과학은 테크놀로지와 함께 특별 대우를 받았으며, 과학을 진지하게 다루는 자세를 그의 잡지에서 가장 우선시 했다. [놀라운 이야기들]이 창간된지 35년 후에, 건즈백은 그가 알고 있는 과학소설 작가들 모두를 이리저리 따져본 뒤 그 중에서 "진정한 과학소설 작가"라 할만한 일곱 사람을 호명했는데, 그들의 이름은 아시모프, 클라크, 클레멘트, 하인라인, 시맥 Simak, 스터전 그리고 반 보그트이다. 씨어도어 스터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 하드 SF작가들이고, 더구나 그들 전부가 백인 남성들이다.
과학소설의 "황금시대 The Golden Age"는 일반적으로 잡지 [놀라운 이야기들]의 편집자 존 캠벨 John W. Campbell의 권한이 막강했던 특징이 있다. 1938년부터1950년에 이르는 이 시기에, 캠벨은 아시모프, 델 레이 Del Rey, 하인라인, 스터전 등의 견실한 남성작가들을 발굴해냈다. 이 시대의 기술 관료적이고 가부장적인 영향은 델 레이의 <Helen O'Loy>와 하인라인의 < The Roads Must Roll> 같은 단편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시기에 두 명의 여성이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으니 그들이 바로 무어 C. L. Moore와 라잇 브랙킷 Leigh Brackett이다. 브랙킷의 글이 [놀라운 이야기들]에 처음 실린 1940년 이전에, "무어는 사실상 혼자 힘으로 일어섰다." (카터, 180쪽) 그러나 무어와 브랙킷의 작품은 이 문단의 중요 인사들에게 검열을 받았으며 그들로부터 걸핏하면 클레임이 걸렸다. 레스터 델 레이 Lester Del Rey 는 [아날로그 Analog]에서 다음과 같이 논박했다. "<노스웨스트 스미스>시리즈 The Northwest Smith Stories가 아주 여성적인 여성의 손에 씌여졌다면 실제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시리즈의 강인한 남성다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마치 그것이 원래부터 여성 중심적인 성격이었던 것처럼."(81쪽) 브랙킷은 언젠가 이렇게 답변한 적이 있다. "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남성)들은 대개 상당히 건장한 청년들이며 멋진 여성에게 40초짜리 험프리 보가트식 키스를 던지기도 한다."(브랙킷, 24쪽) 카터 Carter는 무어의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 <밝은 환영 The Bright Illusion>이 성적인 쇼비니즘의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평가한다. 카터가 또 하나의 예를 들기 위해서는 그로부터 무려 35년이란 공백을 메우고 나타난 어슐러 르 귄을 기다려야 했다.(183쪽)
********************* 50 ~ 60년대 The Fifties And Sixties
그러나 미래는 밖에서 보면 어둡게만 보인다.
그 안으로 뛰어들어라. 그럼 그것은 빛을 내며 폭발할 것이다.
-------------- 미나 로이 Mina Loy
오십년대 들어서는 이 분야에서 캠벨이란 편집자 위주의 지배 시스템이 종말을 고했다. 캠벨이 다이어내틱스Dianetics라는 일종의 심리요법에 편집증적인 열광을 보이는 사이, 많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팔기 위해 여기저기로 나섰다. (델 레이, 164쪽) 이 때만 되어도 과학소설 잡지의 토양이 비옥해져서, 델 레이의 계산에 따르면 1953년 한 해만 해도 36가지의 SF관련 잡지가 미국에서 간행되었고 그 잡지들의 출간 횟수만도 174호에 달했다. (177쪽) 작가들만 해도 레이 브래드버리, 아서 C. 클라크 같은 이들이 배출된 시기이다. 비평가들은 위의 작가들이 쓴 과학소설의 특징은 때때로 비전vision에 대한 유연하고 미묘한 조작이라고 보았다. 브래드버리는 <화성 연대기 The Martian Chronicles>와 <화씨451도 Fahrenheit 451>에서 제시된 미래의 비전을 통해 자신의 세대가 지닌 정신적 상처--- 지적인 자유의 상실 또는 거부 ---를 심층적인 감정으로 표현했다. (델 레이, 57쪽). 다른 작가들은 오십년대에 발견된 몰개성화Depersonalization 문제, 다시 말해서 올디스 Aldiss가 "별들의 얼굴을 한 비인간화 The Dehumanization In The Face Of Stars"라고 부른 주제를 다룬 글을 썼다. (252쪽). 그러나 비평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2차대전 이후 십년 간의 이 시기를 과학소설 장르의 과도기이자 원자 시대의 선구자로 본다. 이처럼 정밀과학을 적용한 원자 시대 소설의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여성 작가 쥬디쓰 메릴Judith Merril의 장편 <난롯가의 그림자 Shadow On The Hearth; 1950년>가 있다.
그러나 육십년대 들어 과학소설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십년 동안 테크놀로지상의 수많은 비전들이 현실화되자 과학소설은 문학적인 문체에 관해 훨씬 더 관심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대접을 받게 되었다. (올디스, 287년) 이러한 문체의 특징은 선택의 과잉과 탐구였다. 1961년 하인라인의 <낯선 곳의 이방인stranger In A Strange Land>은 그 양 측면을 모두 만족시킨 예이다. 잡지 [뉴 월즈 New Worlds]를 통한, 미국 과학소설계에 대한 영국 작가들의 침공은 육십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되었으며, 새롭게 등장한 미국 작가들은 과학소설이 포괄하고 있는 문학 영역을 탐구하고 있었다. 그중 아마 가장 유명한 이들이 사무엘 딜레이니 Samuel Delany와 로저 젤러즈니 Roger Zelazny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기호학과 신화를 적용했다. 이외에 할란 엘리슨을 꼽을 수 있다. 이 세 작가의 전반적인 성공은 이 분야에서 성과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 볼 때, 여성 작가들은 여전히 올디스의 글에서 균형있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뉴 월즈 The New Worlds]는 과학소설계에 '나도 한마디 하겠다'며 끼어들었지만, 과학적 낙관주의에 맞선 뉴 웨이브 경향에 적대감을 느낀 기존 하드sf작가들의 반발을 샀다. 레스터 델 레이의 말을 들어보자.
"뉴 웨이브 작품 배후에 있는 철학은 과학과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불신이었다. 과학과 테크놀로지는 대체로 장기적인 면에서 볼 때 상황을 더욱 악화시켜줄 뿐인 '악'으로 취급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본질적으로 하찮은 존재거나 적어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시종일관 '실패'란 주제가 근간을 이룬다. 우주에 비하면 인류의 의미는 잘해보았자 벌레의 눈꼽에도 미치지 못한다."(델 레이, 253쪽).
이러한 철학을 표명한 것이 [뉴 월즈]라는 이름의 새로 창간된 소설 연재 잡지로, 런던의 래드브로크 그로브ladbroke Grove에서 출간되었다. 과학소설계에 귀를 기울인, [뉴월즈]는 1946년 영국의 팬들에 의해 창간되었으며, 아서 클라크 Arthur C. Clarke, 존 브러너 John Brunner, 브라이언 올디스 Brian Aldiss 그리고 제임스 발라드 J. G. Ballard 같은 영국 작가들이 쓴 과학소설의 초기 작품들을 많이 게재했었다. 그러나 1964년 마이클 무어콕michael Moorcock이 편집장을 맡으면서 이 잡지의 방향은 중대한 선회를 하게 된다. [뉴 월즈]의 문학적인 우상은 윌리엄 버로즈 William Burroughs였으며, 그의 작품의 영향은 [뉴 월즈]에 실린 단편들이 담고 있는 문학 실험과 금기taboos의 거부에서 보이듯 매 쪽마다 명명백백하다. (올디스, 299쪽) 늘 논쟁의 한 가운데에 서서 무어콕은 경계없는 예술을 북돋웠으며 남성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을 쾌히 실어주었다. 1967년 무어콕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했는데, 그 중에는 파멜라 졸라인 Pamela Zoline의 <우주의 열사(熱死) The Heat Death Of The Universe>도 들어 있었다. 올디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변덕스러운 문체를 구사하기만 하면 어떤 작가든 --- 쥬디쓰 메릴 Judith Merril이 홍보했듯이 --- 뉴 웨이브의 영예로운 멤버로 취급되었지만, 문체가 전부고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는 우를 범했다. [뉴 월즈]가 추구한 뉴 웨이브의 심장부에는 --- 주변부의 거품은 신경쓰지 말라. --- 견고하고 받아들이기 까다로운 메시지, 삶에 대한 태도, 현재 사회나 미래 사회의 혜택에 대한 회의주의 등이 놓여 있었다."(307쪽 - 338쪽)
그러나 무어콕이 [뉴 월즈]에서 보여준 성 개방 정책에 대한 올디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무어콕이 편집해 1983년 출간한 [뉴 월즈] 선집을 보면 거기에 수록된 29명의 작가들 중에 여성이 단 두 명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F&SF], Lefanu, 1997년).
이 시기에 여성 작가가 쓴 것으로 널리 격찬 받은 유일한 작품은 애너 카반 Anna Kavan의 장편소설 <얼음Ice; 1967년>이었다. 이 소설은 심리학적으로 뒷받침되어 있고 카프카식 영혼을 눈부시게 표현해냈다는 이유로 올디스의 찬사를 자아냈다.(337쪽) 다시, 70년대에 관한 그의 장(章)은 메리 쉘리Mary Shelley에 대한 감사로 끝난다. 이는 그가 <얼음>을 자신이 내린 평가가 갖는 진정한 의미나 성차별주의를 자각하지 못한 채 쉘리의 후손이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다른 작가들은 이 당시에 활동한 앙드레 노튼Andre Norton 같은 작가들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안 빈지 Joan Vinge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여성 작가들의 활동이 폭을 넓혀가기 전인 육십년대 중반 초기에, 이미 나는 앙드레 노튼의 <다른 어딘가에서의 시련 Ordeal In O Therwhere>을 읽었는데, 그 작품은 내가 여지껏 읽어본 것들 가운데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최초의 소설이었다. 이것은 비단 당시로서는 이례적이게도 여자가 주인공을 맡았다는 점 뿐만 아니라, 그 캐릭터가 성적으로 평등한 규범을 지닌 세계에서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육십년대 말엽 내가 페미니즘 Feminism에 관한 글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뭔가가 내게 깊이 와닿는 기분을 느꼈던 것을 결코 잊을 수 없다." (115-116쪽)
******************** 70년대의 페미니즘 SF소설
"아무 것도 태어나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고통없이는."
그러자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 메리 스웬더 Mary Swander
70년대는 작가들이 추구할만한 새로운 주제들과 탐구영역들이 많이 생겨났다. 즉 새로운 테크놀로지, 생태학, 정신분석 그리고 페미니즘이 이 장르의 척도에 추가되었다.(올디스, 340쪽) 엘레노어 아네이슨Eleanor Arnason은 이 시기를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성들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뒤에, 내 소설은 훨씬 더 훌륭해졌고 나는 더욱 기름지게 되었다. 나는 70년대 초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기에, 생물학적으로 뒤떨어지는 세대 Biodegradable Generation에 속한다. 즉 69년에서 74년 사이에 등장한 작가군에 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 구분은 임의적인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개인적인 이유들 때문이다. <어둠의 왼손 Left Hand Of Darkness>이 나온 때가 1969년이다. <빼앗긴 자들 The Dispossessed>은 1974년에 빛을 보았다. 이 시기의 내 작품들 대다수는 어슐러 르 귄의 그늘 아래 놓여 있었다. " (104-105쪽)
어슐러 크뢰버 르 귄 Ursula Kroeber Le Guin은 알프레드 크뢰버 박사 Dr. Alfred Kroeber와 씨어도러 크뢰버 Theodora Kroeber 부부의 딸이다. 부친은 유명한 인류학자였고 모친은 <두 세계들에서의 이쉬Ishi In Two Worlds>로 명성을 얻은 작가였다. 르 귄은 네개의 휴고상과 세개의 네뷸러 상을 받았으며, 그녀가 전매특허로 다루는 관심사들에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자웅동체 그리고 생태학적인 논쟁들이 포함된다. 그녀의 작품들 대부분은 '헤인 우주'Hainish Universe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것은 헤인hain이란 母행성에서 퍼져나가 여러 행성들에 살고 있는 인류 종족의 세계다. 그녀의 초기 장편 <로캐논의 세계 Rocannon's World; 1966년>, <유배지 행성 Planet Of Exile; 1966년> 그리고 <환영의 도시 City Of Illusion; 1967>는 모두 헤인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다. 위 세 작품들은 초기작들이긴 하지만, 르 귄의 소설에 반드시 따르기 마련인 이미지들과 상징들이 많이 담겨 있다. 완벽성을 주문한 '균형 사상' The Idea Of Balance과 순환 역사cyclical History는 그녀의 산문 구석구석에서 끊임없이 확인된다.
이러한 개념들은 그녀의 휴고상과 네뷸러상 수상작인 <어둠의 왼손 The Left Hand Of Darkness; 1969년>에서 결실을 맺는다. 그녀가 검증하는 이원성은 남성/여성, 빛/어둠, 전쟁/평화 그리고 외계인/인간을 포괄한다. 르 귄 자신이 자웅동체인 등장인물들을 여전히 남성 인칭 대명사로 표기한 문제에 대해 그 불완전성을 시인하기는 했지만, <어둠의 왼손>은 인간과 외계인의 접촉을 다룬 강렬한 이야기다. 겐리 아이 Genly Ai는 흑인으로 에쿠멘 Ekumen 연방에서 온 외교사절이다. 그는 게쎈 Ge Then 행성의 토착민 쎄렘 하쓰 렘 이르 에스트라벤 Therem Harth Rem Ir Estraven과 친목을 도모한다. 르 귄이 채용한 이원적 이미지는 사시사철 겨울인 행성 게쎈의 배경에 잘 어울린다. 비록 우리와 동떨어진 성적(性的) 생활패턴에 대한 그녀의 기술이 다소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무엘 딜레이니 Samuel Delany는 이 작품에 나오는 동성애적 요소의 진부함에 아쉬움을 표명하는 한편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시인했다.
"그러나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감각에만 만족할 뿐 아니라 사고할 줄 아는 젊은 독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 책을 접하는 젊은 게이 독자들은 이 세상에서 대체 어디에 가면 바로 자신들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을 끄집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어졌다." ("Across The Wounded", [Galaxies], 77쪽)
르 귄의 이원성에 대한 관심은 여성과 부드러운 과학소설 Soft Science Fiction(하드sf에 빗댄 표현; 역자주)이란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다. 게쎈의 세계에서는 중공업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엄격한 과학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그 성적 정체성이 암시하고 있듯이) 자웅동체인 탓인가? 아니면 환경이 척박한 탓인가? 소설에서, 게쎈에 대한 연구자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한번 생각해보라. 인류를 강자와 약자로 이등분할 수 없다면... 보호자와 피보호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주인과 노예 그리고 활동적인 자와 수동적인 자로 나눌 수 없다면... 사실 인간들이 누구나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원성에 대한 총체적인 경향은 여기 겨울 행성에서는 약화되거나 다른 쪽으로 변한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94쪽)
르 귄의 다음 작품 <세상을 위한 단어는 숲이다 The Word For World Is Forest ; 1972년>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은밀한 비유다. 하지만 그녀의 두번째로 꼽을만한 주요 작품은 휴고상과 네불러상 그리고 주피터상을 탄 <빼앗긴 자들 The Dispossessed; 1974년>이다. 정치적인 디스토피아에 대한 연구인, 이 작품은 그녀의 여러 단편들을 모아 집대성한 것으로, 그 단편들에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 1973년>과 <혁명 전 날 The Day Before The Revolution; 1974년>이 포함되어 있다. 올디스는 그녀의 힘을 다음과 같은 말로 잘 요약했다.
"<빼앗긴 자들>은 현대 과학소설의 높은 기준선으로 이 장르에 광채를 더해준다. 이것은 미묘하면서도 강렬한 장편소설이며, 가히 과학소설의 정수라 할 만하다. 즉 이것은 불가능한 장치의 개발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은 자신의 힘을 주체와 객체의 결합, 다시 말해서 추상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의 결합을 통해 하나의 장편으로 이끌어낸다." (350-351쪽)
통합 사상, 즉 두개의 떨어져 있는 행성을 상호 협력하는 하나의 연방으로 한데 묶는 것은 르 귄에게 중요한 개념이다. <어둠의 왼손>은 이러한 사상의 또다른 예이다. 왜냐하면 에쿠멘은 게쎈을 지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게쎈 사람들이 자신들의 연방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고 싶어할 뿐이기 때문이다. 르 귄의 주안점은 뒤에 가서 팻 캐디건 Pat Cadigan이 채용한 적대자들에 대한 전략의 전조가 된다. 이는 르 귄이 다음과 같이 지적했듯이, 통합과 재결합의 사상을 두 작가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리는 벌은 소외, 즉 음에서 양을 분리해내는 것이다.(그리고 양은 선이고 음은 악이라고 도덕적으로 규정된다.) 균형과 통합을 모색하는 대신, 지배를 위한 투쟁이 이 세상에 만연해 있다. 우리를 파괴하는 가치의 이원성, 즉 우월함/열등함, 지배자/피지배자, 주인/ 노예와 같은 이원성은 이제부터 내가 보기에 훨씬 더 건전해보이고 적절하며, 통합과 완전무결함을 약속하는 것에 자리를 내놓을 것이다.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춤추며 Dancing At The Edge Of The World>, 16쪽)
르 귄은 또한 소설에서 보여준 그녀의 페미니스트적 견해로 유명하며 페미니즘을 주요 화제로 삼은 자신의 에세이집을 두 권을 내놓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자신의 능수능란한 이미지 묘사와 비유로 감동을 주는 작품들을 통해 많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만, 그녀는 논란의 여지 없이 (하드sf에 대비해서) 부드러운 과학소설 Soft Science Fiction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그녀의 힘이 공상적인 유토피아를 그렸다 해서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테크놀로지의 결핍은 사회적 성(性)의 전형성Gender Stereotypes을 뛰어넘는데 장애가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같은 남성 작가는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디스토피아적인 전망을 작품에 담았다해서 비판받기는 커녕 종종 르 귄이나 러스J. Russ에게 가해지는 비난처럼 문학에서 여성적인 결점을 지닌 예로조차 거론되지 않는다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페미니스트 작가 세대 가운데서, 주목을 받고 찬사와 수상의 영예를 누린 작가들로는 조안나 러스 Joanna Russ, 앤 맥캐프리 Anne Mccaffrey, 체리 C. J. Cherryh, 케이트 윌헬름 Kate Wilhelm, 마리온 짐머 브래들리Marion Zimmer Bradley, 수지 매키 카나스 Suzy Mckee Charnas, 본다 매킨타이어 Vonda Mcintyre, 그리고 조안 빈지 Joan Vinge 등이 있다. 러스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장편 <여성인간 The Female Man; 1975년>은 그녀가 지닌 페미니스트적 분별력의 상당 부분을 주류 과학소설에 도입했고 일찌기 이 장르에서 여성들이 열세를 보이는 현상에 대해 그녀가 주장했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녀의 단편 <그것이 변했을 때When It Changed; 1972년>는 그녀의 비판적인 접근을 소설 형식에 잘 접목시킨 우수한 예이다. 그러나 올디스는 러스를 '분노에 차있다'고 한마디로 깍아내리면서, 거의 아무 생각없이 "<여성인간>에 이렇다 할 하이테크적 광채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는 1969년에 인류가 달 표면을 돌아다닌 역사적 쾌거가 러스에게는 그녀가 관찰하고 있는 다른 사회적 변화들에 비하면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사소한 사건에 불과해보였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올디스, 364쪽). 이러한 논평은 과학소설 작가로서의 러스의 능력에 대한 공정한 평가로 보기 힘들며, 하드 SF 시각의 편견이 비평적 관점에까지 스며든 결과로 보인다.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또한 사회적 성(性) Gender이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대안적인 사회적 성(性)역할이 존재하는 세상과 미래를 제안해보려 했다. 니콜라 닉슨 Nicola Nixon은 반대편에 서서 양자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대비해본다.
환타지와 SF 장르를 특색있게 하나로 묶거나, 그 양 장르 사이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작품을 쓰면서, 70년대의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적 성(性)Gender이야말로 주류 대중소설이 빠뜨린 중요한 정치적 공백임을 보여주었고 기존의 사회적 성 관념을 바꿔야 할 절박성을 강조했다. 만일 러스가 <여성인간>에서 이성 간의 전쟁을 남성 영토와 여성 영토 간에 벙커와 내리꽂힌 포탄들이 즐비한 사실상의 이성(異性)축출 전쟁으로 그린다면, 이것은 한편으로 그녀가 이 전쟁을 부드러운 여성 환타지 형식에 담아냄으로서 '하드한' 남성 SF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219쪽)
이 시기의 가장 흥미로운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James Tiptree, Jr. 가 있다. 이 이름은 앨리스 쉘던 박사 Dr. Alice Sheldon의 필명으로, 그녀는 과학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2차대전 이후 미 중앙정보부의 공동 설립자이자 여행을 자주 다녔고 실험심리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몇 년 간 과학소설계에 자신이 실제로는 여자임을 숨기는 장난끼를 발휘했다. 1977년에야 비로소 네뷸러 상과 휴고상 등을 몇 번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탄 덕분에 제퍼리 D. 스미쓰Jeffery D. Smith란 팬의 조사로 그녀의 참모습이 밝혀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팁트리의 정체성 문제가 야기한 논쟁이다. 왜냐하면 로벗 실버벅Robert Silverberg이 팁트리의 선집 <따스한 세계들과 그렇지 않은 곳들 Warm Worlds And OTherwise>에 머리말을 써주었는데, 이 때 그가 팁트리를 남성형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이것은 사회적 역할의 성(性)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제공해준다. 이와 같은 역할들은 과학과 자연의 양극화에 구애받지 않지만, 또한 인간의 능력과 욕망에 대한 전형성(典型性)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실버벅은 그 머리말에서 이렇게 썼다.
팁트리가 여성이란 일각의 추측은 나로서는 터무니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팁트리의 글은 남성 작가가 쓴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제인 오스틴 Jane Austen의 장편소설들이 남성에 의해 씌여질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들이 여성의 손으로 집필될 수 없다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제임스 팁트리란 작가는 그 작품들로 보건대 남성이라고 믿는다... 그의 작품에는 용기의 문제, 절대적 가치, 극단적인 물리적 실험에 따른, 즉 고통과 고생 그리고 상실에 따른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와 열정이 진하게 배어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모로 살펴봐도 팁트리는 남성임이 분명하다.(Xii, Xv)
실버벅의 위와 같은 진술은 전적으로 오류였다. 팁트리는 앨리스 쉘던의 필명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버벅은 보고 느낀 대로 말했을 뿐이다. 75년만 해도 작가의 성(性)은 소재거리와 작품을 결정한다고 여전히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버벅은 남성적인 성향이 강한 작가만이 용기의 문제, 절대적인 가치 그리고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와 열정에 몰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메리 쉘리Mary Shelley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은 듯 보인다.) 나아가 실버벅의 태도는 여성이 과학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해 이질감과 거부감을 드러낸다. 여성들은 늘 이런 식으로 묵살되고 있기에, 팁트리와 같은 사례들이 그러한 전형성을 논박하는데 아주 중요한 반증이 된다. 앨리스 쉘던은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오랫 동안 작가로서의 역량을 검증받았지만, 필자의 목적을 위하여 여기에 한 예로서 80년대 사이버펑크 운동Cyberpunk Movement의 선구적 위치를 차지한 그녀의 단편 <플러그가 꽂혀진 여인 The Girl Who Was Plugged In>을 살펴보자.
쉘던은 휴고상을 받은 이 작품에서 기술 남용의 결과를 검토하기 위해 곤경에 빠진 한 여인을 하드 과학적 요소들과 접목시킨다. 여주인공 버크P. Burke는 기업들이 지배하고 광고가 설치는 사회에서 자신의 정신 메커니즘을 컴퓨터 왈도 유니트 Waldo Unit에 접속시켜 그 컴퓨터를 조작한다.(이러한 설정은 80년대 후반에 와서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마크로스 플러스>에서 시각적으로 재현된다.;역자주) 그 기업들은 자신들을 광고해주는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고 자신들의 물건 판매에 이바지하는 스타들의 완벽한 여성 신체를 제어하도록 괴상망칙한 곱추 여성인 버크를 고용한 것이다. 그 와중에 왈도 유니트 델피 Delphi 가 어떤 기업체 이사의 아들 폴paul과 사랑에 빠지게 되자, 그는 마침내 그녀(사이버 존재 델피)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고 그 바람에 뜻하지 않게 버크가 살해당하고 만다.
<플러그가 꽂혀진 여인>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음울한 청사진일 뿐만 아니라, 여성은 그다지 비중있게 부각되지 않으며 매트릭스Matrices(원래는 수학적 행렬을 의미하지만, SF에서는 사이버세계나 공간을 일컫기도 한다;역자주)의 미래에서 책임의 문제를 거론한다. 그래서 버크는 천재이자 괴물이다. 그녀는 (플러그를 체내에 꼽는 방식으로) 델피와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전자장치를 지닌 능력 덕분에 천재나 다름없지만, 동시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데다 생김새가 추해서 괴물 취급을 받는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사이버펑크의 세계이며, 여기서 여성들은 전반적으로 버크 외에는 이렇다 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게다가 콘솔 카우보이들 Console-Cowboy(사이버 공간을 자유자재로 누비고 다니면서 중요한 기밀 정보를 해킹하는 스파이를 지칭하는 사이버펑크 용어;역자주)은 통상적인 규칙들을 흩뜨려 놓으려 든다. 바로 쉘던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인 폴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외로운 늑대는 버크라는 여성으로, 그녀는 가난하고 추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으며, 궁극적으로 그녀의 '신체'에 가해지는 실질적인 통제를 감당할 수 없게 되는 바람에 죽는다. 흑막에 싸인 이 사건은 급기야 다나 해러웨이 Donna Haraway의 조사를 받게 되는데, 하드 과학 Hard Science이 주는 궁극적인 공포는 원래 의도한 그것의 유용성을 넘어서서 뜻하지 않은 미지의 능력이 발휘될 우려 때문이다. P. 버크는 그러한 공포가 현실화된 구체적인 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진짜 육체가 죽은 뒤에도 왈도 시스템이 외부 기계 장치의 도움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다시 한번 미지의 존재로서 버크라는 여성은 과학, 그리고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과 중대한 결합을 이루게 된다. (이 정도 듣고 보면, 이 작품은 딱히 확인할 수야 없지만 일본 만화가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 만화 <공각기동대>에도 영감을 준 것 같다.; 역자주)
*********************** 사이버펑크Cyberpunk : 페미니즘 이후의 반응
현대 SF에서 페미니스트적 수사학(修辭學)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보니 <섬들 Islands>에는 페미니즘에 관한 주석이 많이 나온다. 페미니즘은 그 경계선을 쉽사리 알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섬들>을 쓰기 전에 페미니즘 작품들을 많이 읽었고 이 책에서는 페미니즘을 기술적인 가공물, 즉 피임기술의 개발에 기초한 후기 산업주의의 산물로 취급했다.
---- 브루스 스털링 Bruce Sterling
이렇게 해서 마침내 우리는 사이버펑크에 도달하게 된다. 어떤 이는 과학소설이 마침내 포스트 사이버펑크 단계 Postcyberpunk Phase에 돌입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세계의 대부분이 아직 사이버펑크 세대에 속해있음이 분명하다.(이 글이 93년도에 발표되었음을 상기하라. 98년 현재 일본의 인터넷 SF사이트를 살펴보다 보면 포스트 사이버펑크 논쟁에 관한 글이 눈에 띄기도 한다.;역자주)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사이버펑크는 전자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세계를 미리 예고하고 그러한 변화에 대한 인류의 대응을 급진적으로 SF양식에 외삽해본 소설 장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이버펑크에 대한 브루스 스털링 Bruce Sterling식 해석이 인류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가? 니콜라 닉슨 Nicola Nixon은 그녀의 논문 <사이버펑크: 혁명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인가? 아니면 애들 입맛이나 맞춰주려는 것인가?Cyberpunk: Preparing The Ground For Revolution Or Keeping The Boys Satisfied?>에서 사이버펑크에 대한 스털링식 칼라에 대해 계몽적인 비판을 제공한다. 그녀는 사이버펑크가 그것의 선조들인 70년대의 페미니스트 작가들을 무시한 채, <챈들러> 시리즈류 Chandleresque의 탐정소설에 나오는 외로운 주인공 같은 남성화된 세계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수정주의적 집필 경향은 작가들에게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이런 식의 선택적인 기억은 어쩔 수 없이 성차별을 불러오기 쉽기 때문이다. 스털링 스스로가 나서서 호평한 사이버펑크 선집들 가운데 여성작가라고는 팻 캐디건 Pat Cadigan 뿐인데, 그녀는 얼핏 보아 남녀 구분이 잘 안되는 이름First Name을 지녔다. 그러나 다른 사이버펑크 작가들과는 달리, 캐디건은 강력한 힘을 지닌 외로운 인물들을 등장시키지만 그녀가 창조한 인물들은 남성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여성적이다.
비가 나를 깨웠다. 나는 생각했다. 제길, 여기있는 내 꼴이라니, 얼굴에 비 맞고 있는 여인네잖아, 늙은 얼굴에 대고 곧장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으니. 앉은 채 보니 나는 아직도 뉴버리 가(街)Newbury Street에 있었다. 아름다운 보스턴 시내 좀 봐. 근데 뉴버리가가 시내던가? 한 밤중에 그게 무슨 상관이람? 아무렴 어때.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군. 흔히 사람들이 말하듯이, 지나에게 술을 잔뜩 퍼먹여서 그녀가 나가떨어지면 우리 모두 버몬트로 가자구. 내가 뉴 잉글랜드를 사랑하던가? 살기엔 대단히 좋은 곳이지만, 자네는 여기를 들리고 싶어하지 않을 걸.
눈가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나는 지금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이 없는지 궁금해졌다. 하긴, 사십먹은 락큰롤 죄인을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24쪽)
Rain woke me. I thought, shit, here I am, lady rain-in- the-face, because that's where it was hitting, right in the old face. Sat up and saw I was still on newbury street. See beautiful downtown boston. Was newbury street downtown? In the middle of the night, did it matter? No, it did not. And not a soul in sight. Like everybody said, let's get gina drunk and while she's passed out, we'll all move to vermont. Do I love New England? A great place to live, but you wouldn't want to visit here.
I smeared my hair out of my eyes and wondered if anyone was looking for me now. Hey, anybody shy a forty-year old rock'n'roll sinner? [24]
사이버펑크라는 SF의 하위 장르에서 활동하는 몇 안되는 여성 작가들 중 한 사람인 팻 캐디건이 내세우는 등장인물들은 대개 여성들이지만, 다른 남성 작가들도 마찬가지로 여성 주인공들을 등장시킨다. 차이가 있다면 남성 작가들이 창작해낸 여성들의 역할은 작품의 맥락 안에서 그다지 현실성을 띠지 못한 피상적인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은 사이버펑크가 테크놀로지 지향적이기 때문이고 (어느 수준까지는 정밀 과학 Hard Science 지향적이기 때문이고)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여성들이 동등하게 취급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앤드류 로스Andrew Ross와 조안 고든joan Gordon이 사이버펑크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해석한 바에 따라, 다너 해러웨이 Donna Haraway의 <사이보그를 위한 선언 A Manifesto For Cyborgs>에서 제기된 쟁점들 때문에, 이러한 대중 소설에서 사회적 성(性)과 페미니즘의 문제는 앞으로 더 검증해볼 가치가 있다.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과 브루스 스털링이 지은 (여성들을 등장시킨) 텍스트들을 비판적으로 검증해보는 것은, 뒤에 가서 캐디건과 비교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사이버 Cyber라는 용어는 조종사나 조타수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Kubernetes에서 온 말로, 특정한 논제에 맞게 여러가지 의미로 쓰인다. 이것은 다른 용어로는 포스트모던적이고 파괴주의적이며 페미니스트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펑크 Punk란 용어와 함께 접목되어 쓰일 때는 이 용어는 혼탁한 세상에 대한 진보적이면서도 반동적인 대응을 담고 있으며 침체된 국면을 다룬 소설을 뜻한다. "(펑크에서 사이버펑크에 이르는) 이 모든 예술가들을 한데 묶어주는 것은 하나의 공유된 '태도(또는 입장)일 것이다. 즉 이러한 태도는 문화적 미학적 규범들에 대한 반항의 표시며 이성적인 언어와 합법적이고 정치적인 소비자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온갖 여타 형식들에 대한 불신이다." (맥캐퍼리 Mccaffery, 288쪽) 사이버펑크는 대중문화의 산물인가 아니면 김빠진(매너리즘에 빠진) 과학소설에 대한 반발인가? 이 '운동'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강조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컴퓨터 혁명과 가상 현실 기술에 상당부분 빚을 지고 있지만, 이것이 사이버펑크의 선구자이자 사이버 문화에서 여성들에 대한 차별철폐의 잠재력 Cyborg Integration Of Women을 지닌 페미니스트 과학소설 운동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상적으로 볼 때, 페미니스트 이론은 다른 관점들을 제공해서 하나의 효과적인 구조틀을 통해 그것들을 걸러낸다. 왜냐하면 사이버펑크는 잠재력과 (기존의 사고의 틀을 뒤집는) 부정(不定)적인 시각을 담은 문학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세심하게 검증해보면 反페미니즘적인 경향을 지녔음이 입증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대의 콘솔 카우보이들은 시적인 감성과 경박함을 겸비하고 있다. MTV의 경쾌하고 젊은 세대의 감성에 맞춘 구조 뿐만 아니라 그 방송의 여성들에 대한 얄팍한 평가절하가 그들의 사이버펑크적 창조물들에서 암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말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사이버펑크 신화들을 만들어내는 남성 작가들을 검토해보아야만 한다. 이 운동의 가장 선두에 서있는 대변인이자 사이버펑크 선집 <미러쉐이즈 Mirrorshades>의 편집자인 브루스 스털링 Bruce Sterling은 다음과 같이 열정적으로 주장한다.
사이버펑크 작품의 특색은 시각적인 강도에 있다. 사이버펑크 작가들은 기괴하고 초현실적이며, 전에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것을 존중한다. 그들은 기꺼이 (심지어는 열렬히) 어떤 아이디어를 채택해서는 단호하게 그 아이디어를 한계 너머까지 밀어붙인다. 대다수 사이버펑크 작가들에게 우상화되어 있는 역할 모델인 발라드 J. G. Ballard처럼, 그들은 종종 (묘사하고자 하는 사물로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 거의 사무적일 만치의 객관성을 보인다. 그것은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인 분석이자 과학에서 빌어온 기법으로서, 고전적인 펑크 스타일의 충격적 가치관을 전달할 의도로 문학에 이용된다. 사이버펑크는 과학소설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으로, 그 요소들은 때때로 묻혀있지만 늘 수면 위로 끓어오를 잠재성을 갖고 있다. 사이버펑크는 과학소설 장르 안에서 태동한 것이다. 그것은 외부 (장르)로부터의 침입이 아니라 (장르 내부에서의) 현대적 개혁이다. 이 때문에, 이 장르 안에서 그것의 효과는 급속하고 강력한 것이다.(Xv)
편집자이자 작가로서 스털링 하면 SF문학이 남성지향적으로 흐른데 대한 아무런 고민없이 아마 소위 일종의 혁명을 한답시고 (남녀의 잣대에 대한) 객관성을 희생시켜버린 사이버펑크 운동과 긴밀하게 연계되는 인물이다. 지나친 단순화를 방지하기 위해, 사이버펑크가 다양한 관심분야들을 망라하고 있음을 지적해두어야겠다. 예를 들어, 윌리엄 깁슨 William Gibson은 테크놀로지를 통해 빚어지는 장관(壯觀)에 몰두한 본보기다.(로스 Ross, 156쪽). 그러나 깁슨의 텍스트들에서 보이는 이러한 몰두 역시 남성지향적인데, 왜냐하면 그가 그려내는 전자 매트릭스의 세계는 주로 남성들을 배반하기 위해서만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리고 특히 이 작가 집단에서 리더 격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는 깁슨은, 자신들이 영화감독인 하워드 혹스 Howard Hawks 뿐만 아니라 탐정 소설가인 대쉬얼 해밋 Dashiell Hammett과 레이먼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인한다. 깁슨의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보자.
나는 마치 하워드 혹스가 내가 출간한 첫 두권의 대부분을 기획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특히 이 내러티브에서 남자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남자들과도 이렇다할 관계를 맺지 않는 강한 여성 캐릭터를 고려해보면 그렇다. 남자 주인공은 그녀 만큼 강할 것 같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음이 밝혀진다.
래리 맥캐퍼리 Larry Mccaffery와 리차드 캐드레이 Richard Kadrey가 편찬한 도서 목록에는, 해밋의 <붉은 추수 Red Harvest>가 들어있는데 이는 자신의 개인적인 윤리관으로 부패해버린 방대한 체제와 맞붙는 고독한 터프가이와 생생하게 묘사된 삼류 범죄자들이 우글거리는 암흑가의 모티프 때문이다. 또한 이 목록에는 챈들러의 <깊은 잠 The Big Sleep>도 들어있는데, 이는 매끄럽고 다채로운 산문체와 협객(俠客) 유형의 탐정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맥캐퍼리Mccaffery, 17쪽)
켄 워폴 Ken Worpole은 자신의 저서 <부두 노동자들과 탐정들 Dockers And Detectives>에서, 사이버펑크의 내러티브를 전달해주는 것에 관해 논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탐정 소설은 본질적으로 남성들이 여성들에 비해 일하는 문화와 사회관계들에서 상대적으로 보다 많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중략) ...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여성들을 비롯해서 많은 여성들이 대중적인 자기나라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그 작품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현상은 전혀 놀라울 게 못된다. 그러한 작품에서는 그녀들 눈에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배제된 세상 밖에는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로스 Ross는 이러한 스타일이야말로 간결한 문체와 냉소적인 언어 선택과 더불어 이 장르의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몰락해가는 남성다움의 방어적 표출이라고 보는데, 왜냐하면 사이버펑크는 80년대 백인 남성의 세계인 까닭이다. 사이버펑크는 페미니즘 시각에 입각한 70년대의 유토피아 과학소설에서 제시된 바 있는, 비판적인 사회적 전망에 적응할 수 없었던 펄프 내러티브pulp Narrative다.(로스Ross, 153쪽) 깁슨의 장편 <불타는 크롬 Burning Chrome>에서, 위에서 언급한 작가들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이 뚜렷해지는데, 특히 여기 나오는 한 등장인물의 생각을 담은 다음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그녀가 그리웠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블루 라잇 하우스 House Of Blue Lights에서 보낸 하룻밤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그리운 나머지 거기에 갔었던 탓이었다. 초장부터 잔뜩 취해갖고 나는 바소프레신vasopressin 흡입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당신을 내팽개치고 싶다면 술과 바소프레신이야말로 남성다움을 만들어내는 약물학의 궁극적 대안이다. 술은 당신을 감상적으로 만들고 바소프레신은 과거를 돌아보게 해준다. 정말로 기억을 되살린다는 의미다. 임상(臨床)에서 그들은 이 소재를 심한 기억상실증을 치료하는데 사용하고 있지만, 거리는 또 그 나름대로의 용도를 찾아낸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은 나쁜 사건을 낱낱이 재현해냈다. 문제는 나쁜 기억에는 좋은 것도 섞여있다는 점이다. 동물적인 황홀경에 빠져들려면 가서 총질해대라, 그러면 당신이 또한 말했고 그녀가 말했던 것을 당신이 얻게 되리라. 걸어가던 그녀가 어떻게 사라졌으며 어떻게 그녀가 결코 뒤도 돌아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195쪽)
이것은 주로 상류층 백인 남성 작가들이 쓰는 수사학인데, 그들이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은 지속적이고 충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모진 개인주의자들로서의 본색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로스가 보기에, "상대편 여성들과는 달리, 사악한 백인 남성들은 그들에 맞서는 폭도들에 게 관대한 인내의 긴 역사를 보여준다. 반면 폭도들, 다시 말해서 유색인종 남녀들은 병적인 범죄 계급으로 낙인찍혀 있다. 백인 남성이면서도 무뢰한인 경우는 대개 (변칙적인 인물 설정을 통해) 상업적인 이목을 끌거나 자유주의적인 개인주의를 찬양하기 위해 간혹 쓰이는 극적 장치일 뿐이다." (162쪽)
그러나 이러한 소설에서 여성들은 어떠한가? 내러티브 스타일이 이미 이처럼 편향되어 있다면, 어떤 여성 작가나 여성 캐릭터가 이러한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겠는가? 과학소설에서 여성들과 그들의 분리된 역할에 관한 글인 <사이보그 성명서A Manifesto For Cyborgs>에서, 다나 해러웨이 Donna Haraway는 지엽적이나마 여성하면 유기체를 떠올리고 남성하면 과학이나 테크놀로지를 연상하게 되는 문제를 논의한다. 이러한 경향은 여성들이 지금 현재도 테크놀로지 엘리트의 일원이 되지 못한데다 오로지 가정을 지키는 것만이 여성들의 본분이라고 여겨온 그 동안의 편견이 강한 사회에서 반영된다.
해러웨이는 기계와 자아 간의 비교를 통해 여성들의 역할을 언급하면서, 여성들을 사이보그에 비유하는데, 이는 사이보그 역시 테크놀로지의 변형 때문에 소외되는 전형(典型)이기 때문이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주의를 전통적으로 테크놀로지에서 격리된 채 사회인으로 교육받아온데다, 대개는 노동 현장과 가정 그리고 병원에서 테크놀로지의 주요 희생자들이었던 여성들을 위한 상상력이 풍부한 원천 내지 신화라고 제안한다." (로스, 161쪽) 해러웨이는 아울러 과학소설이 그녀의 정치적 논쟁에 관한 많은 사례들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녀가 골라낸 사례들이 그녀가 의도한 바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36쪽] 그녀가 사이버펑크는 거론조차 않으면서도(그녀의 글은 깁슨이 두 권의 책을 낸 지 2년 뒤라는 점에서 이것은 약점으로 지적된다.), 필립 K. 딕 Philip K. Dick의 장편소설 <안드로이드들은 전기양이 나오는 꿈을 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를 원작으로 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를 언급한 까닭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여성 사이보그들이 나온다. 그녀는 단지 복제인간 레이첼을 사이보그 문화의 공포, 사랑 그리고 혼란의 이미지라고 열거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다른 여성 사이보그들이나 심지어는 인간 추적자와 정서적인 유대를 맺는 레이첼Rachel에 관해 잘 따져보지도 않고서 말이다. 하지만 해러웨이는 사이보그에 관한 자신의 관심사에 입각해서 여성 과학소설을 논하고자 애쓴다. 그녀가 인용하는 예들 가운데에는 앤 맥캐프리Anne Mccaffrey의 <노래한 배 The Ship Who Sang>가 들어 있지만, 과학소설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해러웨이의 해석은 음양 역할로 명쾌하게 그려지며 그래서 사이버펑크는 단지 그와 같은 본질적인 입장들을 강화해주며 매듭지어져버린다. 해러웨이는 사이보그를 거부한다. 이는 그녀가 조안나 러스, 맥케프리 그리고 본다 매킨타이어 Vonda Mcintyre 같은 작가들을 찾아낸 때문이다. 이 여성 작가들은 자신들의 글에서 여성이란 개념과 테크놀로지를 억지로 꿰어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사이버그로서 여성은 그들과 싸운다. 사이버그로서의 여성이 역기능적이지 않다면 말이다.[37쪽] 이처럼 기계화된 이미지는 사이버펑크 소설들에서도 문제다. 비록 조앤 고든 Joan Gordon이 그녀의 글 <음과 양이 피해가기 Yin And Yang Duke It Out>에서 사이버펑크는 적어도 여성이 끼어들 여지는 만들어준다고 주장하지만 말이다. 로스의 말을 들어보자.
그러나 말할 필요도 없이, 여성들이 저항하고 법규를 어기며 멋대로 전용(轉用)해야 한다는 해러웨이의 기술문화적인 주장은 "테크놀로지가 그대를 이용하기 전에 테크놀로지를 먼저 이용하라"는 사이버펑크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육체와 테크놀로지의 관계의 차이에 관한 페미니즘적인 주장은 백인 남성우월주의자들이 사이버그를 포용하는 곳에서는 어디든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사이버펑크의 분별력의 핵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반문화적인 것이다.(161쪽)
고든은 그녀의 글 서두에서 페미니스트 과학소설 작가들에는 공공연하게 노골적인 부류와 암시적인 부류 두가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196쪽). 그녀의 해석에 따르면 노골적인 부류는 작가 자신이 여성과 동일시되며, 적어도 여성 정체성의 페미니스트적 정의를 지지하는 가치관을 가진 세계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에 비해 암시적인 부류는 전자의 정의를 무시하고서, 도덕적으로 좀더 적용되기 쉬운 유형인 성적으로 평등한 세계를 보여준다. 고든은 수동적인 '음陰'의 개념은 반드시 유기체를 연상시키며 어슐러 르 귄 Ursula Le Guin 같은 과학소설 작가들의 여성스러움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양陽'은 정반대편 입장을 구현하는, 사이버펑크 작가들이 그리는 공격적인 지향성이다. <마인드 플레이어즈 Mindplayers>의 데드팬 앨리Deadpan Allie와 <뉴로맨서 Neuromancer>의 몰리Molly 같은 여성 캐릭터들을 예로 들면서, 고든은 사이버펑크는 암묵적인 페미니즘 과학소설임을 시사한다. 사이버펑크 류 소설에서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극의 내용을 이끌어나가기 때문이다. (196쪽). 그녀는 사이버펑크가 소년 취향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페미니즘을 위한 SF 분야의 구세주로도 본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시각은 심하게 말하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고 좋게 말해도 아무런 영양가가 없는 견해다. 나아가 고든은 하드 SF와 소프트 SF 사이의 갈등을 묘사한다. 왜냐하면 소프트 SF는 종종 인본주의를 고무시키는데, 이러한 사상은 사이버펑크가 신봉하는 가치관과 정반대에 서 있기 때문이다. (197쪽) 페미니즘과의 관계 속에서 사이버펑크의 기원에 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파악한다.
사이버펑크는 (대체로 이 세상에서 페미니즘의 황금기라고 보기는 어려운 시대인) 1980년대에 출발했기 때문에, 현재 이러한 조류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이 거의 없다고 해서 의아해할 까닭이 없다. 사이버펑크는 테크놀로지를 포용하는 한편으로 불완전한 세계의 복잡성을 즐기며, 언더그라운드 세계로의 여행에 몰두한다. 페미니스트 과학소설은 이러한 모든 활동들---우리의 미래에서 도망치기 보다는 그것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미래를 건설하고 주도해나가도록 해주는 ---에서 사이버펑크보다 뒤처져 있다. (199쪽)
고든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페미니즘 과학소설을 일반적으로 편협하고 자멸적이라고 보는 해러웨이의 주장과 일치한다. 고든은 사이버펑크의 맥락 안에서 사이보그주의cyborgism가 대치하길 바라지만, 그러한 통합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늦었다. 앞서 논의했듯이, 사이버펑크의 내러티브와 형식은 이러한 기대에 역행하고 있다. 사이버펑크가 그 자신의 용어로 여성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여성들이 레이먼드 챈들러 Raymond Chandler 스타일에 맞춰서 냉동 통조림으로 가공되고 말까?(R. 챈들러는 미국의 유명한 통속 추리소설 작가다.;옮긴이주)
앤드류 로스 Andrew Ross는 그의 책 <이상한 기후 Strange Weather>에서 후자의 입장을 주장한다. 그는 루이스 셔너 Lewis Shiner의 <마음의 황폐한 도시들 Deserted Cities Of The Heart>과 깁슨의 <뉴로맨서>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 두 명을 검토한다. 이 두 작품에서, 여성들은 외부 요인들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으며, 개인적인 신체개조(사이보그 우먼;역자주)를 통해 외부 요인들과 직관적이고 여성적인 평화 Intuitive-Feminine Peace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여성들은 사이버펑크의 또 다른 원형적 캐릭터인 전투형 사이보그 몰리 밀리온즈 Molly Millions Razorgirl와 직접적인 대비를 이룬다. [38쪽] 첨단 기술로 신체를 강화한 몰리는 해결사로서 숙달된 기량을 갖추고 있어서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이 분야의 다른 경쟁자들을 능히 물리쳐버릴 수 있다. (158쪽) 계속해서 로스는 캐시 액커Kathy Acker의 여성 캐릭터들을 권력의 속성상 "못난 사이보그 여성들" Bad Cyborg Girls이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떠한 잇점도 갖고 있지 않으며, 권력관계에서 여성들에 대한 가부장적 고정관념에 굴복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이 과학소설의 유기적 페미니스트 개념의 제한적 속성에 동의한다. 로스와 해러웨이는 이러한 이상(理想)을 비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러한 페미니스트 텍스트들 안에 들어있는 문맥상의 사회적 성(性)Gender의 관계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학소설에서의 여성들의 역할을 위해 테크놀로지와 자연을 함께 결합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39쪽] 그런데 여성을 테크놀로지에 바탕을 둔 주인공으로 재창조하자는 고든의 주장은 명확치가 않으며[40쪽], 사이버펑크 작품의 배경이 대개 냉혹한 미래인 것 The Grim Future Of Most Cyberpunk을 감안하면 작가들보고 그렇게 하라고 한다해서 유달리 흥이날 리 만무하다. 남아있는 것은 이러한 비판적인 접근의 맥락에서 몇몇 사이버펑크 캐릭터들을 재검토하는 일이다. 反페미니스트적인 원형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가 이러한 (주로 여성인) 캐릭터들을 스털링Sterling과 캐디건cadigan의 실제 텍스트들과 한 자리서 맞비교해본다면, 사이버펑크에서 보편적인 원형들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여기서 스털링과 캐디건을 거론한 것은 스털링이야말로 깁슨 식의 세계에 영향을 받고 있는 전형적인 사이버펑크 작가이고 캐디건은 이 장르에서 유일하게 손꼽을 수 있는 여성작가이기 때문이다.) 캐디건은 이렇게 평가되는데, 캐디건의 작품들은 필자가 후에 다시 자세히 검토할 것이다.
브루스 스털링 Bruce Sterling의 <시스매트릭스 Schismatrix>는 과학의 상이한 영역들의 극단적인 특성을 소개해준다. 그는 쉐이퍼 Shapers와 매카니스트 Mechanists라는 두 인종을 함께 늘어 놓아서 내러티브를 노골적으로 조작한다. 쉐이퍼와 메카니스트가 서로 반목하는 세계를 창조하면서, <시스매트릭스>는 린제이 Lindsay라는 남성 쉐이퍼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그는 '태양의 개Sundog' 노릇을 한다. 여기서 '태양의 개'란 일종의 용병을 의미하는 관용어다. 쉐이퍼들은 돌발적인 인공 진화로 현재 종(種)의 인류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숙적 메카니스트들은 진보된 보철기술을 통해 육체를 메카닉으로 대치한 사람들이다.(90쪽) 이 장편소설은 달 궤도를 선회하는 인공거주구 안에 있는 린제이의 귀족적인 감옥에서부터 다양한 다른 미니 세계들에 이르기까지 린제이를 좇아다니면서 양 파벌의 지배권 쟁탈을 추적한다. 린제이는 강인한 인물로 그려지며, 여성 캐릭터들이 늘 그의 인생 이력에 끼어든다. 그러나 그녀들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인데, 이는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이라고는 처음 만난 여성 뿐이기 때문이다. 베라 Vera는 린제이 때문에 애를 태우는데, 이 여성 쉐이퍼는 이 책의 첫번째 장의 출발점이 된다. 전직 매춘부이자 현재는 게이샤 은행(여기서 화대는 매춘부와 함께 보낸 시간으로 산정된다.)을 경영하고 있는 킷선 Kitsune이란 캐릭터에 대한 스털링의 묘사는 촉각적이고 객관화되어 있다.
그는 이내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장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는데, 이는 그녀의 표정이 지나치게 가식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게 외과수술을 해주었지요." 그녀가 말했다. "그들은 내 자궁을 들어내고 뇌 신경조직을 집어넣었어요. 쾌락 중추신경을 이식한 거예요, 달링. 나는 엉덩이는 물론이고 등뼈와 목구멍에 이르기까지 쾌감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하느님이 되는 것보다 낫더군요. 내가 달아오를 때는 나는 땀 대신 향수를 배출하죠. 나는 살균한 바늘보다도 더 청결하답니다. 당신이 내 몸을 맛보기만 하면 곧 내가 와인이나 캔디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게다가 그들은 저를 밝은 성격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남자의 어떤 성적 요구에도) 기꺼이 순종하도록 말입니다. 당신도 성적인 순종Submission이 뭔지 잘 알죠, 달링?" (<Schismatrix>, 43쪽)
린제이가 킷선을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더 나아가서 인간도 아니요, 쉐이퍼도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그 방은 육욕(肉慾)으로 충만해 있었다. 관능적인 검은 머리결을 꼬아 만든 융단들에 맞춰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비단결 같이 매끈매끈한 갈색 피부, 그리고 점액질 막의 연한 자줏빛 광채" " (187쪽)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얼굴을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경찰국장으로 취임해 뎀보스카 카르텔 Dembowska Cartel을 인수하며 책략을 써서 권력을 획득한다. 왜냐? "지배란 것은 겉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달링"(188쪽)이라고 킷선은 말한다. 그러나 린제이는 킷선의 일부분인 "육감적인 팔걸이 의자의 관능적인 따스함에 전율"할 따름이다.(187쪽)
이 텍스트에 등장하는 또 다른 관능적인 여성 캐릭터로 "선(禪) 세로토닌 Zen Serotonin (혈관수축물질)"의 옹호자가 있다. 이것은 영원한 알파 상태 Alpha State에 빠진 신자들의 지지를 받는 비운동(非運動)의 철학 Philosophy Of Nonmovement이다. (41쪽) 거칠고 능력있는 인물인 그녀는 전형적인 사이버펑크 여성 캐릭터를 반영하고 있는데, 바로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에서 창조된 몰리 Molly다. 몰리가 케이스 Case에게 면도날 걸 Razor-Girl 또는 암살자로 소개될 때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다트건 Dartgun을 풀어 놓으면 한결 마음이 놓이겠지, 케이스? 섣불리 기회를 엿보려는 얼굴이군, 그래."
"어이, 난 마음을 푹 놨다구. 원래 난 잘 넘어가는 성격이라니까. 아무 문제없어."
"그럼 좋아." 플래처 The Fletcher가 검은 재킷 안으로 사라졌다. "네가 나랑 같이 싸돌아 다닌다면, 네 인생에서 가장 설익은 기회들 가운데 하나쯤은 네가 꿰찰 수 있을 걸."
그녀는 양손을 내밀어 손바닥을 위로 향했고, 그 하얀 살결의 손가락들이 살짝 벌어지자 거의 들릴락말락하게 '찰칵' 소리가 나면서, 부르고뉴 풍으로 장식한 손톱 아래서 이중날이 선 14센티미터짜리 외과용 메스들이 튀어나왔다.
그녀가 씨익 웃었다. 그 날들은 서서히 움추러 들었다. (25쪽)
이러한 식의 여성 스테레오타입과는 대조적으로, 린제이의 또다른 아내 노라 Nora는 처음에는 그의 적이었다가 마침내 그의 아내가 되는 여성 쉐이퍼다. 그러나 오랜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렸음에도 그는 다시 한번 '태양개Sundog'가 되기 위해 그녀의 꿈을 깨뜨린다. (적어도 그녀는 그를 따라나서려 하지 않는다.) 린제이의 원래 첫번째 아내였던 알렉산드리나 Alexandrina는 나이가 그보다 오십 살이나 더 위였지만 그와 다시 결혼한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그녀의 기품있는 분위기와 테플론 Teflon 수지로 교체한 무릎 때문에 유명할 뿐이다.
스털링은 여성들에게 오로지 유기체적인 관점만 투영하고 있는 것일까? 수퍼브라이츠 The Superbrights(킷선 같은 개량인간;역자주)와 쉐이퍼들의 영역 안에서, 유기체는 긍정적이지만 제약되어 있다. 메카니스트들도 기계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변화의 동인이라기 보다는 운명의 희생자들이다. 스털링이 여성들의 힘을 추켜올려주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실제 사건들을 이끌어가는 여성들의 몫을 제약한다.
그러나 데드팬 앨리 Deadpan Allie는 스털링의 여성들을 위한 반쪽짜리 대안들에는 관심이 없다. 팻 캐디건 Pat Cadigan의 <마인드플레이어즈 Mindplayers>의 주인공인 그녀는 페이소스 탐구자 Pathosfinder로서 인생을 통틀어 투쟁하는 독립적인 여성이다. 여기서 페이소스 탐구자란 문자 그대로 마음을 치료해주는 일종의 정신과의사다. 불법 심리치료를 했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힌, 그녀는 직업적으로 심리치료mindplaying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서 성공한다. 그러나 남성들과 그녀의 관계는 문제가 있다. 특히 툭하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며 다가오는 제리 와이어래머 Jerry Wirerammer 같은 수수께끼의 캐릭터들과의 사이에서는 말이다. 그녀는 존재의 정신적인 수준에서 마음을 먹혀버린(자신의 인성, 기억 그리고 영혼을 도둑맞은) 맥플로이 Mcfloy라는 사내와 만나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그는 그녀가 육체적인 수준에서 그를 만나게 되기 전에 어떤 알 수 없는 정신적 상처(기억 상실증 환자들에게 간혹 일어나는)로 죽어버리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녀의 작업을 위한 초점으로 이바지한다. 그리고 실제로 경비 뱀들의 결말Alerted Snakes Of Consequence을 설명해주는 이가 바로 맥플로이다.(42쪽) 맥플로이는 그녀와 꿈을 서로 교류하면서 그녀에게 자신의 인공 눈(고양이 눈을 닮은 생체보석)을 주며 그녀는 그것을 자기 자신이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 가져온다.
내가 두려워하는게 당연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꿈 속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맥플로이)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그가 내 길에 방해가 된다면 그냥 그를 옆으로 밀어내 버리고 계속 꿈을 꾸면된다. 그는 홀로그램을 보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꿈이 끝나갈 무렵 그는 가끔 어떤 말을 꺼내곤 했는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내가 그의 주위에서 일하고 있는 사이에도 그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대신 그가 어떤 것도 변화시키지 못하게 하고 내가 하는 일에 끼지 못하도록 하면서. 이것은 나의 길이며 다른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91쪽)
앨리의 이외의 주요한 인간관계는 그녀의 꿈 상담가로서 그녀의 남편이 되는 자스챠다. 그들은 이혼하지만 여전히 긴밀한 유대관계를 지속하며 이 장편소설은 그들 사이가 예전처럼 돌아가게 되면서 끝난다. 그러나 자스챠는 주요한 역할이 아니며 만사를 해결해나가는 이는 어디까지나 앨리 자신이다. 이러한 그녀에게 도움을 주는 이는 그녀의 보스인 넬슨 넬슨으로 그는 앨리가 페이소스 탐구자로서 발전하도록 자극하는, 부하에 대한 주문이 많은 인물이다. 그녀는 넬슨을 위해 다양한 증상의 사람들을 위한 일련의 심리치료를 하게 되는데, 그중에는 마음이 비워진 배우, 죽은 시인, 마음이 청소된 것처럼 말끔히 없어진 작곡가같은 사람들이 있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녀는 돌파할 수 있는 능력과 자아발견 감각을 갖고 있다. 이처럼 임무가 어렵고 자기 의문에 빠지기는 하지만, 앨리는 그녀가 찾고 있던 '빛'을 찾아낸다. 거기서는 가끔 사람들이 서로 공명하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난다.(<Mindplayers>, 276쪽). 고든 Gordon은 이 장편소설은 그녀(앨리)의 계획대로 진행되며, 그 안에서 몰리 같은 앨리의 강인함은 여성의 원칙이 아니라 기계만능주의에 대항하는 한 인간을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몰리보다 덜 폭력적이기 하지만, 여자 옷을 입은 남자에게 그녀가 당할 위험은 적다. 그러나 몰리처럼, 그녀는 전투준비 중인 인간 군대에 입대해서 똑같이 구보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은밀하게 페미니스트적인 행동을 한다. (Gordon, 199쪽).
캐디건의 데드팬 앨리는 기술적인 장비를 준비해 사용하지만,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 경로를 결정할 정신력 뿐이다. 캐디건의 기본 발판은 사이버펑크의 공허하고 광포한 세계지만, 그녀는 그 내러티브의 골격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캐릭터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만든다. 이러한 혁신은 가히 혁명적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골라내는 언어와 시나리오가 사이버펑크의 전형성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앨리는 기술로 바뀌어진 부지런한 사람도 아니요, 가부장제가 부여하는 개인적인 계몽을 추구하는 이도 아니다. 유일한 문제는 그녀가 남성들로 에워싸인 사이버펑크 환경에서 하나의 캐릭터이자 능력있는 여성으로서 외로운 존재라는 점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사이버펑크를 변화시켰는가? 단정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징후는 뚜렷하지 않지만, 변화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기존의 답습해오던 유형을 뒤집어 엎고 여성들을 힘있고 평등한 캐릭터들로 다시 주장할 때가 왔다. 스타일의 제약도 없고 흔히 과학소설에서 주 동인으로 작용하는 가부장제 없이 말이다. 그 때까지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이 시스템 안으로 은밀하게 스며들어야 한다. 과학소설이 대중적인 가부장 문화의 바로미터로 봉사하는 한, 여성들의 역할은 앞으로도 남성 매트릭스의 전자 회로에서 난도질 당할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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