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고장원'님 글입니다.
http://www.pyroshot.pe.kr/sf/arc/990704a.htm
하이퍼링크가 안되시면 불편하시더라도 복사하신후 인터넷 주소창에 붙인후 엔터치시면
본문으로 들어갑니다.ㅠ.ㅠ
혹 글이 안보이시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 접힌 부분 펼치기 >>
과학소설의 질적 도약
Bat Durston's Blasting Jets
글쓴이: Robert Silverberg
옮긴이: 고장원
자료원: Reflections & Refraction by Robert Silverberg, Underwood Books, Grass Valley, California, 1997, pp 5~7
원문이 처음 게재된 곳: [Amazing Stories] 1984년 11월호
우리말로 옮긴 날: 99년 4월 19일 ~ 20일
- 다음 글은 97년 미국에서 출간된 로벗 실버벅의 칼럼 모음집 <Reflections & Refraction> 의 한 컬럼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이 책에는 과학소설, 과학 교양 일반, 알고 지내는 동료 작가들 그리고 사회에 대한 실버벅의 견해가 범주별로 나눠 담겨 있습니다. 현재 이 책은 올해(1999년) 휴고상인가 네뷸러 상의 논픽션 부분에 후보로 올라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옮긴이의 편의상, 제목은 새로 붙였습니다. 그쪽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에 더 쉽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 한 가지 양해를 구할 것은, 옮긴이의 문화적/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보니 생경한 고유 명사들이 많이 나와 제대로 된 주(註)를 달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직접 영문으로 그대로 표기한 단어들은 이미 해외에서 고전이 된 문학작품이거나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으로 추측됩니다만,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 아래의 주(註)는 모두 옮긴이의 것입니다.
본문
약 35년 전(역자주; 이 글이 씌어진 시점이 1984년임을 감안할 것. 따라서 [은하수]가 실제로 창간된 시점은 1950년이다. ), 당시 새로 창간된 개성있는 과학소설 잡지 [은하수Galaxy]의 창간호 뒷표지에다 뛰어난 편집자였던 골드H. L. Gold는 동 잡지가 앞으로 아예 실을 계획이 없는 부류에 속하는 두 단편의 도입부를 나란히 소개했다.
<단편A>
로켓 엔진의 굉음을 내면서, 뱃 더스튼Bat Duston은 태양계로부터 수천만광년 떨어진 한 작은 행성 Bblizznaj의 대기권으로 마찰음을 내며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는 착륙하려고 초광속 엔진의 파워를 줄였다. 바로 그때... 키가 훤칠하고 마른 체구의 우주인spaceman 한 사람이 후미에서 걸어나와 우주선(宇宙線)에 그을린 손으로 광자총을 내밀었다.
"조종실에서 물러나, 뱃 더스튼." 키 큰 이방인이 띄엄띄엄 말했다. "너는 예상도 못했겠지만, 이번이 너의 마지막 우주 여행이 될 거야!"
<단편B>
말 발굽 소리를 내면서, 뱃 더스튼은 톰스토운Tombstone에서 북쪽으로 불과 400마일 떨어진 한 작은 탄광촌 Eagle Gluch로 난 좁은 길을 질주하며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는 길을 막고 튀어나와 있는 돌 때문에 말을 세웠다. 바로 그때... 키가 훤칠하고 마른 체구의 목동 한 사람이 그 바위 뒤에서 걸어나와 햇볕에 그을린 손으로 6연발 총을 내밀었다.
"뒤로 물러나서 총을 풀어, 뱃 더스튼." 키 큰 이방인이 띄엄띄엄 말했다.
"너는 예상도 못했겠지만, 이번이 너의 마지막 승마여행이 될거야!"
이 통찰력있는 (그리고 곧바로 유명해진) 짧은 산문에 나와 있듯이 골드가 꼬집은 표적은 1940년대 펄프 과학소설 잡지에서 상투화되다시피한 스토리 공식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변형된 서부극 소설이나 다름없었는데, 여기서는 고색창연한 스토리텔링 공식이 애리조너Arizona(미국 서부극의 대표적인 무대;역자주)가 화성으로, 말이 그즈플록gzplocks(역자주; 이것은 말을 대신해서 타고 다니는 외계 생물을 의미하는 듯함, 일례로 영화 <제국의 역습>에서 루크 스카이워커가 타고 다니는 동물을 참고할 것)으로, 붉은 머리의 인디언이 녹색 머리의 외계인으로 대치됨으로서 화려하게 다시 태어난다. [매력적인 서부극 Enthralling Western]처럼 서부극을 연재하는 잡지에 글을 팔아 먹고 살던 작가들에게는 [황홀한 과학 이야기Stupefying Science Tales]에다 자신들의 상품을 약간 각색해서 팔아먹음으로서 시장확대를 꾀하는 기교는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은 열살 이상된 과학소설 독자들이 과학소설 잡지에서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단호한데다 타협을 모르는 인습타파주의자인 골드는 그의 잡지는 뱃 더스튼 류의 서사적 소설은 일체 싣지 않겠다고 즉각 천명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장차 이 잡지에 글을 싣고 싶어하는 작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은 보내봤자 우표 값만 낭비하는 셈이라고 경고했다.
- 등장인물들이 결국에 가서 아담과 이브로 판명되는 이야기
- 외계의 포식 생물이 안데스 산맥에 숨어사는 이야기
- 등장인물들이 무시무시한 외계 세계로 여행하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바로 우리 지구였다는 이야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은하수]가 1950년 창간될 무렵에는 진부함의 대명사나 진배없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다시피, '클리쉐'cliches(진부한 문구)라는 것은 예전에는 진정한 가치를 지녔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19세기 인쇄용어에서, 클리쉐는 인쇄공이 활자판에 쉽게 끼워넣을 수 있도록 미리 만들어놓은 조판을 가리켰다. 그러나 1892년 경에 들어서면, 이미 이 단어는 어떤 문학작품에 별 생각없이 집어넣던 진부한 문구 내지는 더 나아가서 지나치게 케케묵은 개념을 비유하는 의미로까지 확대 사용되고 있었다. 원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의미가 바뀌면서 애초의 좋은 의미는 오간데 없게 된 셈이다. (정보는 참신하고 새로워야 한다는 것을 잊지말라.) 실제로 지적인 인물이었던 골드는 대부분의 과학소설 편집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참신함을 작가들에게 요구했지만, 그조차도 클리케이를 쓰지 않을 수는 없었다. 변형된 서부극이 판치는 곳에서 그는 결국 우리에게 전자보다 세련되긴 했지만 또다른 변형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를 제공해주었다. 이를 두고 제임스 블리쉬 James Blish는 토끼를 Smeerp이라고 부르는 격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칵테일 파티가 마을 파티로 바뀌었을 뿐 그 이야기의 나머지는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이나 [붉은 책Red Book]에 실렸을 작품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진행되는 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내용은 서부극보다는 세련되었지만 진정한 과학소설 팬들에게 만족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 지금은 어떤한가? 그 뒤로 수많은 문학상의 혁명이 일어났고 낡은 클리쉐는 도태되었으며, 상당량의 새로운 시도들이 과학소설에서 이뤄지고 있다. 다음은 그중 일부이다.
여성의 악역 The female villain
예전의 작품들을 보면, 웬지 찜찜한 느낌을 주는 토성의 마약상이나 소행성대의 광산을 소유한 성질이 못된 암흑가 거물 또는 총뽑는 솜씨 하나는 둘째가면 서러워할 현상금을 노린 청부업자들 그리고 턱수염을 휘날리는 악당들이 즐비하게 나온다. 물론 그들은 모두 남성들이었다. 아니 과학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남성들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과학자의 딸이나 저돌적인 여성 신문기자 정도였을까.
이제 우리는 자유로운 사고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들로 이뤄진 마약상, 암흑가 거물, 현상금 사냥꾼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 여성 캐릭터들은 심지어는 악당 또는 그 이상의 역할까지도 맡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대부분은 여성작가들에 의해 씌여진다. 그들 역시 통속적인 남성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기계적인 공식들에 의존한다. 그러나 삼류는 어디까지나 삼류다. 작가가 여성으로 바뀌었다거나 여성 등장인물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일부 남성 작가들도 자신들의 작품에 여성의 비중을 높여 다룬다. 자신들의 의식이 남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삼류의 통속성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삼부작 The Trilogy
루이스C.S. Lewis와 톨킨J. R.R. Tolkien은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에 자신들이 쓰고 싶은 환상소설의 주제가 너무 방대한 나머지 각기 세권으로 나눠 써야만 했던 적이 있다. 아이잭 애시모프Isaac Asimov 또한 오래 전에 도저히 한 권에 담기에는 벅찬 서사적인 과학소설을 쓴 적이 있다. 그들이 삼부작을 썼던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중편에다 군더더기를 잔뜩 덧대어서라도 세권으로 나뉠만한 시리즈 분량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출판계에 만연해있다. 이는 일부 출판업자들이 루이스와 톨킨 그리고 애시모프가 삼부작을 쓴 덕분에 훨씬 더 많은 독자들을 확보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럴 수가... 새로 나온 삼부작들 중 상당수가 잘 팔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장편소설 한 권에 담을만한 내용도 안되는 작품을 세 권으로 늘리는 짓을 정당화시켜줄 수는 없다.
켈트적 지식 Celtic Lore
아서 왕의 전설, Mabinogion 그리고 Cuchulain cycle 등에는 사랑스러운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엽의 재능있는 환상소설 작가들은 위의 원전들을 세련되게 응용했고 이러한 일종의 약탈(?) 행위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은 또한 잘 팔리는 편인 것 같다. 나 자신은 과학소설 집필에 치중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환상소설은 언제나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미 오래 전에 Cuchulain과 Mordred, Taliesin 등에서 더 이상 능가할 수 없는 최고의 만족감을 느낀 바 있다. 대신 앞으로 한 동안은 환상소설 작가들이 '베다'나 '에다'(역자주; 에더Edda는 고대 북유럽의 신화 및 시가 모음집을 일컫는 말로, 흔히 신(新) 시가집the Young Edda과 구(舊)시가집the Elder Edda을 합쳐서 에더즈Eddas라고 한다.)에서 뭐 써먹을만한 게 없을까 하고 뒤지지 않을까.
억지로 멋진 이름 만들기 false honorifics
큰 문제는 아니지만, 요즘 출간되는 과학소설들을 펼쳐보면 너나 할 것 없이 Vasker piBrell, Lompoc syMethicon 그리고 Dilvibong vorVorkish 같은 낯선 사이비 유럽식 이름들이 빈번하게 나온다. 더구나 성(性)씨 가운데 들어있는 대문자들은 내가 이렇게 팔을 걷어부치고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내 생각에 이러한 문제는 현대 과학소설이 지닌 Graustark/Ruritania (역자주; Ruritania는 유럽 동남부에 있는 가공의 왕국으로, Ahthony Hope의 모험소설 <젠더의 포로Prisoner of Zenda;1894년>에 등장) 증후군의 한 측면에 다름 아니다. 즉 이러한 경향은 19세기 중부유럽의 로맨틱 소설들에 나오는 진부하고 쓰잘데 없는 장치들을 끌어들여 멋을 낸데 불과하다. 후자에 관해서는 해당 작품보다는 그 시대에 관해 분석하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책들이 나폴레옹 이후 시대에 나온 가짜 제목들로 고귀한 티를 내려 광분하고 있다.
미국인 독자들의 눈에 웬지 낯설어 보이게 함으로서 폼을 있는 대로 잡으면서 말이다. 내 생각에는 등장인물 이름은 뱃 더스튼 쪽이 훨씬 더 나은 것 같다.
|
<< 펼친 부분 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