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고장원'님 글입니다.
http://www.pyroshot.pe.kr/sf/arc/990704b.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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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젤러즈니: 영원한 앰버
Roger Zelazny: Forever Amber
글쓴이: 미상
인터넷 주소: http://zelazny.corrupt.net/
전자 메일로 문의할 곳 주소: norrist@mindless.com
옮긴이: 고장원
옮긴날짜: 99년 4월 15일
다음 인터뷰는 로저 젤러즈니가 <앰버>시리즈의 마지막 권을 출간하고 난지 얼마 뒤에 씌여진 것입니다. 젤러즈니에 관한 각종 글들을 인터넷에서 읽다 보면 각기 다양한 시기에 씌여졌기 때문에 어떤 것은 앰버 시리즈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전제로 시작하는가 하면 이번 글처럼 앰버 시리즈는 출간이 완료되었지만 젤러즈니가 아직 살아있을 때 씌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젤러즈니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는 이 작가에 대한 정확한 조망을 얻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대개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작가 역시 거장 소리를 들으려면 죽고난 뒤 일정 시간이 흘러야 하는 법인데 일부 운좋은 작가들은 살아 생전부터 이런 소리를 듣는 축복을 누리기도 합니다. 과학소설계에서는 젤러즈니도 그러한 편에 속합니다. 물론 황금시대의 거장들도 그랬지만, 젤러즈니는 1995년 여름 그들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영예를 누리고 있습니다.(아시모프와 하인라인은 먼저 갔지만 클라크는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있지 않습니까.) 인터넷을 뒤져보면 많은 독자들과 비평가들이 그를 거장의 반열에 기꺼이 올려놓고 있지요. 언제고 젤러즈니에 관한 정보가 충분히 누적되면 그를 총체적으로 점검해보는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인터뷰의 특징은 제3자가 평가한 리뷰가 아니라 간략한 소개에 이어 젤러즈니 자신이 직접 자신의 작품세계를 말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앰버>시리즈나 <빛의 왕>, <내 이름은 콘라드> 등 국내에 번역되어 있는 작품들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앰버 시리즈 최신작 <혼돈의 왕자 Prince of Chaos>는 이 시리즈의 열번째 작품이다. 그는 자신도 그렇게까지 많은 시리즈 연작을 내리라고 처음부터 생각했었을까? 나는 처음에는 9권까지만 나올 걸로 생각했다. 나의 첫 추측은 똑같은 이야기를 아홉 왕자의 서로 다른 시점에서 다루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앰버 시리즈 역시 로렌스 더렐 Lawrence Durrell의 <알렉산드리아 4부작Alexandria Quartet> 정도의 규모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일찌감치 두 손 들고 말았다. 나는 코윈(앰버 시리즈 전반부의 주인공;옮긴이주)에게 홀딱 반해 버렸다. 초기 아이디어 가운데 남아있는 유일한 것은 매 권마다 다시 기술되고 있는 코윈의 자동차 사고 건인데, 이 사건은 신간이 거듭될 때마다 조금씩 베일이 벗겨져 나가며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에 대해서도 해석이 바뀌어 간다. 이것은 애초의 아이디어에 대한 작은 경의의 표시라고 해야할 것이다.
<앰버> 시리즈는 실제 현실과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또는 지각)의 차이를 표현하고자 한다. 나는 앰버 시리즈 첫권을 읽기 시작했을 때 로렌스 더렐의 <알렉산드리아 4부작>을 떠올렸던 이유는, 똑같은 이야기를 두고 서로 다른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관점에서 거듭 다시 설명되는 방식이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더렐의 시리즈는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사실에 대한 좀 더 일반 적인 주석인 셈이었다. 더렐 역시 쉽사리 다섯번째 권이나 여섯번째 권을 쓸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계속 변화를 주며 나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젤러즈니의 시리즈는 아주 약간씩 밖에 다르지 않지만 자신이 끼어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는 다양한 평행세계들인 소위 '그림자 세계들 Shadow Worlds'로까지 확대된다. 이것이 바로 그 배경이었다.
"저는 다섯 권째를 쓰고 난 뒤에는 이 시리즈를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머리 속에 있는 재료들을 다 써버렸거든요. 그래서 제가 다시 이 시리즈를 계속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저는 설정을 미래로 해서 다른 관점을 가진 등장인물을 끌어들이기로 했죠. 물론 두번째 시리즈를 다시 시작할 때만 해도 또다시 다섯 권으로 마무리지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원래는 한 세 권쯤이 될 거라고 예상했었죠. 앰버 구시리즈와 신시리즈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구시리즈만 해도 일단 한 권이 끝나면 이런 저런 앰버 시리즈와는 전혀 상관없는 작품들 (장편과 단편들)을 쓰다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달려들어 그 시리즈의 연작을 쓰곤 했던데 비해, 신 시리즈는 다섯 권이 마무리될 때까지 거의 이 시리즈에만 집중적으로 매달렸다는 점입니다. 제가 그 시리즈를 쓰느라 즐거웠던 것 못지 않게, 이제는 또다른 작품들을 쓸 수 있게 홀가분해졌다는 점에서 기쁩니다. 이제야말로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군요."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한 동안 저는 일부러 숨막힐 듯 가슴 조이게 만드는 요소들을 끌어들여서 이 작품을 정신없이 전개되는 개그로 만들려 했습니다. 열번째 권 끝에 가서야 비로소 비밀에 가까이 가게 되는 식으로 말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제가 보기에 만족할만한 지점, 다시 말해서 '좋아, 이쯤에서 한 동안 멈춰도 되겠어.' 하는 곳으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끌고 갈 수도 있었습니다. 말하고 싶었던 게 몇가지 더 남아있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앰버>시리즈와 저의 또다른 장편 <Roadmarks>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후자는 공간보다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죠. 자동차 운전 중에 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뉴 멕시코의 근사한 고속도로에서였죠.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서 차를 세웠어요. 그 앞에는 전에는 결코 가본 적이 없는 갈림길이 있었구요. 웬지 모르게 그 길을 따라가게 되었는데, 비포장도로가 나오더군요. 계속 가다보니까 흙먼지가 폴폴나는 길이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그랬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지도에서 본 적조차 없는 장소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곳은 소규모의 정착지였습니다. 오두막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마차를 끄는 말들이 보이는게 마치 19세기로 차를 몰고 온 기분이더라구요. 저는 고속도로에서 거기에까지 당도하는 동안 길이 어떤 식으로 바뀌었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야, 이거 근사한 생각이겠는 걸. 시간을 갖가지 갈림길이 달린 고속도로로 본다면 말이야." 집에 돌아온 저는 그날 오후부터 <Roadmarks>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예기치 못한 선회란 개념 notion of the unexpected turn은 당신이 그렇게 선회하기 전만 해도 유일하게 실재했던 현실세계의 또다른 버전으로 당신을 데려다 놓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회는 제가 <앰버>시리즈에서 써먹었던 '그림자 걷기' shadow walks나 '그림자 질주' shadow rides와 비슷한 종류인 셈이죠. <앰버> 시리즈의 원래 아이디어는 제가 낯선 마을에 들어서게 되었을 때 떠올랐습니다. 거기서 끊임없는 주위 환경의 변화는 내가 현실세계의 변화 내지 이동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공간에 대해서만 생각했었죠.유사한 개념을 조금 다르게 배열한 셈입니다. 반면 고속도로에서 우연히 겪은 일이 계기가 된 <Roadmarks>는 자동차를 운전하듯이 시간의 앞 뒤, 즉 과거와 미래로 옮겨다닐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둘은 서로 닮아 있습니다. 스토리의 디테일은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죠."
앰버와의 마지막 연장전을 마친 다음, 젤러즈니는 로벗 셰클리Robert Sheckley와의 공동 창작 작업에 착수했다.
"우리는 둘다 똑같은 출판 대리인을 쓰고 있죠. 커비 맥컬리 Kirby McCauley 말입니다. 커비는 우리가 함께 뭔가를 써보면 재미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더군요."
"저는 몇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셰클리와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장차 책으로 펴낼만한 작품인 <차밍 왕자의 머리를 가져와 Bring Me the Head of Prince Charming>를 골라냈죠. 우리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 건 그 때 뿐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는 그것을 전반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었습니다. 그것은 중세를 무대로 한 환상소설인데, 다소 유머러스한 면이 있죠. 천국과 지옥이 천년이 지날 때마다 경쟁을 벌입니다. 이기는 쪽은 다음 천년 간 인간의 운명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하게 된답니다. 그 시합을 위해 지옥 측 참가자들이 한데 모이게 되죠. 차밍 왕자의 이야기는 다소 이례적인 방식으로 끝납니다. 그 선을 넘어섰다가는 플롯을 망쳐버릴 것 같아서 말이죠."
그는 조만간 셰클리와 또다른 공동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 작품의 가제는 <파우스트의 그림자 The Shadow of Faust>다.
"지금 써나가고 있는 진도를 보건대, 저는 아직 한 두가지 아이디어들 주변을 뱅뱅 돌고 있습니다. 셰클리와의 다음번 작품을 써나가면서 동시에 저는 저 혼자서도 또다른 작품을 하나 쓸 생각입니다. 그게 뭐가 될 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젤러즈니는 지금까지 20년 이상을 다른 작가들과 공동 창작 작업을 해왔는데, 그 첫번째는 필립 K. 딕과 한 것이었다.
"딕은 삼년 동안 엄청난 양의 작품들을 써냈고 이어서 <Deus Irae>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전체적인 개요를 갖고 있었고 첫 50 페이지 분량을 쓰다가 막히고 말았답니다. 그렇게 지지부진 하다보니 결국 더블데이 Doubleday 출판사가 그 작품을 다른 작가가 완성해도 괜찮겠는지 그에게 묻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죠. 출판사측은 테드 화이트 Ted White에게 초고를 보여주었고 화이트는 몇달 간 끙끙대더니 자기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필사본 초고를 돌려주지 않았고 덕분에 저는 그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다가 그 필사본을 볼 기회가 있었죠. 제가 보기에 꽤 괜찮았습니다. 결국 그는 딕과 더블데이 측에 전화를 걸었답니다. 어쨋거나 당시에는 제가 더블데이사를 위해 일하고 있었거든요."
"그 때가 1968년이었습니다. 몇달 후 저는 처음으로 딕을 만났죠. 우리는 딕이 집필을 중단한 바로 그 다음 부분부터 저라도 작품을 계속 써나가야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그 작품을 위해 저는 제 스타일을 바꾸었습니다. 저는 작품의 톤이 들쑥날쑥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므로 딱 그대로는 아니지만 딕의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했습니다. 저는 일단 상당량을 써서 딕에게 보냈봤는데, 그도 마음에 들어하면서 내가 끝낸 부분 다음부터는 자기 혼자의 힘으로도 계속 써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그가 다음 장을 썼습니다. 이후 우리는 그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이런 식으로 서로 원고를 주고 받으면서 자신의 글을 보탰습니다. 덕분에 몇년이 걸렸지요. 원고 데드라인도 없이 느긋하게 창작할 수 있었으니까요. 뒤늦게나마 더블데이사가 자신들이 옛날에 계약해두었던 그 작품이 걸작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딕에게 언제 완성본을 넘겨줄 거냐고 닥달하게 되기전까지는 말입니다. 마침 딕은 돈이 필요했고 마침내 우리는 아주 친밀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삼일만에 그 작품을 완전히 마무리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몇가지를 바꾸고 싶어했어요. 마지막 네 페이지는 그가 손본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 작품을 더블데이사에 보냈습니다. 최종본은 완전히 통째로 새로 씌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처음 썼던 글을 다시 고쳐쓰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머리 속에서 무수한 배합을 해볼 뿐이죠. 중요한 국면에서 제가 그렇게 하면 처음보다 문장이 훨씬 더 아름다워지거든요. 저는 <Doorways In the Sand>와 <Jack of Shadows>를 단번에 써버렸습니다. 다시 쓰는 일 따위는 없었죠."
그는 또한 프레드 새버해근Fred Saberhagen과도 공동창작을 했다.
"우리가 함께 창작한 첫 작품은 <Coils>로, 제 아이디어가 기본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의 기본 개요를 썼고 새버해근이 제 개요를 갖고 더 정교하게 덧붙여서 각 장별로 나눠지는 장편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개요들을 만들어냅니다. 60내지 70페이지짜리 개요도 써내죠. 저라면 그렇게 못할 겁니다. 저는 작품에 대한 개요의 대부분을 머리 속에 넣어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꼭 적어둘 것만 몇가지 노트하는 정도죠. 저에 비해 새버해근은 훨씬 더 꼼꼼합니다. 그러나 저로서도 가시화된 개요가 눈 앞에 놓여 있는 편이 낫죠. 비교적 최근에 같이 쓴 작품인 <Black Throne>의 기본 아이디어는 그의 것입니다. 그는 에드거 앨런 포우의 열렬한 팬입니다. 매년 포우의 생일에 파티를 열 정도니까요. <Black Throne>를 쓰기 위해 그는 제가 포우의 전 작품들과 그의 전기 등을 다 읽게 했기 때문에 저는 그 작품에 쉽게 녹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공동창작은 재미있습니다. 그걸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되죠.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새버해근과 함께 첫 작품을 쓰면서 저는 그의 집필방식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그가 개요를 만드는 방식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종이에 아무 것도 써놓지 않아도 그가 준비해논 것들을 이용해 머리를 굴릴 수 있었거든요. 필립 K. 딕과 함께 일할 적에는, 자기가 아닌 다른 작가의 스타일을 소화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다른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그것은 공부가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셰클리로부터도 또한 배운 점들이 있습니다. 가끔가다 한번씩 멈춰서서 자신이 쓴 내용과 스타일을 돌아보고 혹여 나쁜 버릇에 길들여져 있지 않은가 또는 더 개선할 점이 없는가를 점검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의 작품을 재점검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다른 사람과 함께 창작해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귀중한 경험이 됩니다. 저는 틀에 박힌 퇴물이 되고 싶지는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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