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t Changed (1)
예전에 제가 < Even the Queen >을 번역해서 올렸을 때 달군님이 < When It Changed > 를 번역해 달라고 하셨는데, 그 단편을 번역해볼까 마음먹고 나니까 소설도 소설이지만, 그것보다 그 배경에 대해 먼저 소개하는 게 좋겠더군요. 그 배경 이야기가 SF 역사에서 '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에 관심있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먼저 그 이야기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한편으로 보자면, 예전에 소개했던 '베트남전을 둘러싼 SF 작가들의 좌우 격돌기'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You're on the firing line in the big revolution.
(당신은 거대한 혁명의 사선에 서 있다. - 할란 엘리슨, <위험한 상상력>의 머릿말에서)
조안나 러스(Joanna Russ)의 < When It Changed >는 작가가 여성이고, 주제가 너무 논쟁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여러 출판사에서 작품을 거절해서 발표하지 못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남성 편향성이 진한 SF계에서 여성 해방을 외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갈 곳 못 찾고 헤매던 문제의 단편 소설은 할란 엘리슨(Harlan Ellison)의 유명한 단편집 <위험한 상상력 (Dangerous Visions)>(1967년)의 후편인 <다시, 위험한 상상력(Again, Dangerous Visions)>(1972년)에 처음 실렸습니다. 이 두 단편집은 60년대말과 70년대초에 각각 발간되었지만, 현재까지도 SF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단편집이자, 가장 논쟁적인 단편집으로 남아있습니다.
본래 초기에는 <위험한 상상력> 한권만 기획되었는데, 그 책이 당시까지 출판되었던 SF의 판매 기록을 깨고 초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독자들과 출판사, 그리고 다른 SF 작가들이 강력하게 원해서 두번째 책인 <다시, 위험한 상상력>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위험한 상상력>을 만들면서 욕심이 커진 할란 엘리슨이 이것을 3부작으로 만들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최후의 위험한 상상력(The Last Dangerous Visions)>이 6개월 후에 나올 것이라고 머릿말에 남겼지만, 30여년을 끌다가 결국 현재까지도 발간되지 않아서 위의 두 편으로 멈추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두 단편집과 발간되지 않은 마지막 편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최후의 위험한 상상력>이 발간되지 못 한 사연과 그 논쟁의 역사를 다룬 책까지 나와 있을 정도입니다.< The book on the Edge of Forever > (http://www.islets.net/oddities/bookedge.html)
이 단편집이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우선 이 책들은 '사색 소설(Speculative Fiction)'이라는 개념을 실험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색 소설이라는 용어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가장 먼저 사용했지만, 그것을 장르 개념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이 책의 편집자인 할란 엘리슨입니다. 할란은 이 책의 머리말에 '사색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할란은 SF는 Scientific Fiction(과학 소설)이 아니고 Speculative Fiction(사색 소설)이라고 주장했는데, 흔히 영어권에서 '과학소설'을 가리키는 'Sci-fi'라는 용어를 굉장히 싫어했었습니다. '사색 소설'이라는 개념은 과학 소설이 추구하는 과학적 엄밀성 보다는, 새로운 상상력과 자극을 통해 현재의 인간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데 방점을 찍은 것으로, SF, 판타지, 대체역사소설, 추리소설, 공포소설 등 모든 장르를 포함하거나, 이를 섞는 것이 보통입니다. '어슐러 르 귄' 같은 작가가 미국 SF 작가중에서는 대표적인 사색소설 작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 단편집들은 당시 막 시작되고 있던 영국 좌파 SF 작가들의 '뉴 웨이브' 운동을 미국으로 확산시켰고, SF가 좌회전하게 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쳤던 책입니다. 이 책은 당시 SF 좌파 작가들의 운동에 엔진 기능을 했습니다. 할란 엘리슨은 당시까지 SF계에 형성되어 있던 터부( 정치, 섹스, 폭력, 마약 등)를 모두 깨버리고 가장 논쟁적인 작품들만 모아서 단편집을 발간했는데, 그 책에 실린 일부 원고는 '너무 논쟁적 '이라는 사실 때문에 다른 출판사들이 거절했던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아니었다면 데뷰하기 힘들었을 '문제적' 작가들이 이 책 덕분에 등단한 후 아직도 주요 작가로 활동중인 경우가 많습니다.
잠깐 이해를 위해 그 전까지의 SF의 흐름을 되돌아보자면, 20세기 들어 현대 SF 라는 장르를 처음 개척한 사람은 '휴고 건즈벡((Hugo Gernsback, 휴고상은 그의 이름을 딴 것임)'이지만, 보통 작가들이나 평론가들은 휴고 건즈벡 보다는 '존 W 켐벨'을 더 중요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존 W 켐벨(John W Campbell)이 바로 SF를 현재와 같은 완성도 높은 장르로 발전시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켐벨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것들이 SF를 대표하면서, 정말로 아이들이나 즐겨보는 3류를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30년대 말에 'Astounding Science Fiction'이라는 잡지의 편집장을 맡은 켐벨은 '우주 괴물, 미친 과학자' 같은 이야기로 가득하던 허접한 SF 장르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엄밀성'과 '문학적인 완성도'였습니다. 당시는 이런 SF잡지가 바로 작품을 발표하는 무대이자, 등단하는 기회였기 때문에, SF 소설을 쓰려면 켐벨의 이러한 기준을 따라야 했고, 그 기준은 SF를 모조리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작가들과 3류 소설들은 사라지고, 그때부터 진짜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켐벨은 이러한 기준 하에 곧 '로버트 하인라인'이라는 '신인' 작가를 배출했고,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 폴 앤더슨, 할 클레멘트 같은 사람들도 발굴해 냅니다. 그 외에도 SF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한두번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작가들은 거의 다 켐벨이 길러낸 사람들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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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W 켐벨의 잡지인 < Astounding Science Fiction >의 표지사진
그 뒤 켐벨을 중심으로 한 작가군들은 소위 '켐벨리언'이라고 불리면서 80년대까지도 SF계를 좌지우지 했습니다. SF 역사의 초창기부터 50여년을 주물럭거린 거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이작 아시모프 등 몇몇을 제외한 대개의 캠벨리안들은 정치적으로 보수 우익 성향이었습니다. 68년 베트남전에 대한 찬성과 반대서명 당시 켐벨은 '지지'측에 서명을 했고, 대다수의 켐벨리언들(하인라인, 폴 앤드슨... 등등) 역시 '지지'하는 측에 서명을 했습니다. SF 작가 중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서명에 참가한 작가들은 당시로 보면 대체로 신인작가들이거나 켐벨을 통해 발탁되지 않은 소수의 작가들이었는데, 이들은 이후 SF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 캠벨리언의 지배에 맞선 좌파 SF작가들의 반란이 여러차례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1960년대의 '뉴 웨이브(The New Wave)' 운동이었습니다. 이는 초기에 영국의 맑시스트, 사회주의 작가들이 앞장섰는데, 마이클 무어콕 (Michael Moorcock), J.G. 발라드(J.G. Ballard, 영화 '태양의 제국'의 원작자), 브라이언 앨디스(Brian Aldiss, 영화 < A.I >의 원작자), 할란 엘리슨, 어슐러 K 르귄, 필립 K 딕, 그리고 < When It Changed >의 조안나 러스 등이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SF에서 켐벨리안의 보수주의에 맞서서 미국의 문화 지배, 개인주의, 해피 엔딩, 과학적 엄밀성 등을 반대하며, 우주 바깥이 아닌 인간의 내면, 사회의 현실을 비추는 소설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문제작들을 선보이며 스스로를 '뉴 웨이브'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상황에 나타난 할란 엘리슨의 <위험한 상상력>과 <다시, 위험한 상상력>은 미국 작가들의 '뉴 웨이브'운동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위험한 상상력>에 서문을 두 개(하나는 책에 대해, 하나는 할란 엘리슨에 대해)나 썼던 아이작 아시모포는 머릿말에서 존 W 켐벨이 일으켰던 변화를 1차 혁명이라 부르고, <위험한 시선> 을 SF의 2차 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연히 이 책은 많은 논쟁을 낳았고, 이 논쟁을 통해 형성된 팬과 작가층은 '뉴 웨이브' 운동에 커다란 동력을 제공했지만, 뉴 웨이브 운동 자체는 초기의 폭발성과 달리 난해한 작품들로 인해 팬들에게 외면받으면서 사그러들고 맙니다. 하지만, 좌파 SF 작가들의 결집은 다음해 68년 베트남전 반대 서명으로 이어지고, 그 후에도 70년대 페미니즘 SF, 8-90년대 사이버 펑크 문학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할란 엘리슨이 주창했던 '사색 소설'이라는 용어도 당시 잠시 반짝한 후 사라졌다가, 현재 다시 서서히 불이 붙으면서, 작가나 평론가들이 애용하는 용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편 SF의 물줄기를 바꾸는데 전환점으로 작용했던 이 단편집들을 발간한 할란 엘리슨도 그 단편집들만큼이나 논쟁적인 인물입니다. 인간 자체가 논쟁 덩어리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SF 역사상 다음번에 소개할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James Tiptree Jr.)와 더불어 SF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낳은 인물일 것입니다. SF계의 '싸움꾼'으로 소문난 그는 '위키피디아'에서 검색을 해봐도 그런 기질이 한눈에 보입니다. 다른 작가들은 보통 생애와 작품이 소개되는 수준인데, 할란에 대한 소개에는 '논쟁'이라는 항목이 따로 있습니다. 위키 피디아에 소개된 첫 부분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면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할란은 사람들의 부아를 돋우고, 무례한 존재로 유명한데(그의 어떤 책의 표지에서는 그를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논쟁하기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는 법률 소송을 지독하게 좋아하기도 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할란은 그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 주제넘게 나서는 팬들, 완고한 편집자, 냉담한 출판업자, 무례한 타인들-을 향해 타고난 재능으로 다채롭고, 다양한 독설들을 사용했다"고 그를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할란은 키가 아주 작은 단신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작가들이 그걸로 많이 놀리기도 했습니다. <위험한 상상력>에 아시모프가 '나폴레옹 보다도 작다'고 머릿말을 남기자, 그 머릿말에 꼬리를 달아서 '나폴레옹보다 3인치 크다' 고 반박을 했더군요. 그 작은 키로도 가라데, 레슬링 등 온갖 운동을 해서 땡땡하고 다부진 체격으로 말로 하는 논쟁 뿐만 아니라, 마음에 안 들면 실제로 '패대기'를 쳐버리도 했답니다. 오죽하면 SF 작가들이 할란 엘리슨의 행패에 맞서서 '할란의 피해자들(Victims of Harlan)' 이라는 유명한 '언더' 그룹을 만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 60년대 당시 마피아의 '명예 두목'으로 유명했던 프랑크 시나트라와 그의 보디가드에 둘러쌓여 있는 가운데 한 술집에서 대판 싸움이 붙을 뻔했던 에피소드도 유명합니다. (당시는 할란 엘리슨이 프랑크 시나트라를 한 대 팼다더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었답니다)
할란 엘리슨은 워낙 에피소드가 많은 양반이라 다 소개하자면 끝도 없고, 그 중 몇개만 소개하자면, 1965년에는 마틴 루터 킹이 이끄는 집회 행진에 참여하기도 했고, 78년에는 국제 SF 컨퍼런스(Worldcon)에 '주빈(the guest of honor)'으로 참가해서는 "미국 정부가 '여성 평등 조항'을 헌법에 삽입하기 전에는 한푼도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영화 '터미네이터' 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며 소송을 걸어서 돈을 받아내기도 했고, <최후의 위험한 상상력>을 발간 발간되지 않은 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논쟁에 시달리는 중입니다.
하지만 할란 엘리슨이 논쟁만 일으켰던 건 아닙니다. 앞서 소개했던 '댄 시몬스'(그 작가도 '사색 소설'을 주장하는 작가임)처럼 할란도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면서 뛰어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각 분야에서 받은 수상기록을 보면 그가 뛰어다닌 각 장르에서 모두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SF 분야에서는 휴고상을 10번, 네뷸러상을 4번 수상했으며, 공포 소설로는 브램 스토커상을 5번 받았고, 추리물로는 에드가상을 두 번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국제 작가협회엔 PEN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하고, TV작가 협회에서 주는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올해 2006년에는 미국의 SF 작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인 미국 SF 작가협회의 '그랜드 마스터'로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것은 단편소설 두어편 말고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 품절이 됐구요. 그래서 원서로 읽어야 하는데, 그의 작품들은 영어가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못 읽어보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 "Repent, Harlequin!" Said the Ticktockman > 같은 경우 의도적인 문법 파괴에 평생 몇 번 볼까말까하는 영어단어들로 도배를 해놔서 두어번 도전했다가 '에휴.. 나중에 읽자'고 미뤄놓은 상태입니다. 그는 일반 에세이도 종종 난해한 단어들을 쓰는 때가 많더군요. 얼마전에 제가 영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한탄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캐나다인에게 한번 보여줬더니, '그런 단어는 캐나다인들도 잘 모르는 단어들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해서 안심을 좀 했더랬습니다. 영어 실력이 좀 따라주면 읽고 싶은 책이 무지 많은데, 읽는 속도가 달팽이 뒷짐 짓고 양반걸음 하는 속도인지라.. 그것도 가끔 돌맹이 걸리면 돌아가야 하는.. 쩝쩝..
여튼간에, 그가 죽기 전에 부디 <최후의 위험한 상상력>은 꼭 발간해야 할텐데...
* 참고 자료
- < Dangerous Visions > 67년판.
- < Again, Dangerous Visions > 83년판
- Wikipedia 검색 : Harlan Ellison, The New Wave, Dangerous Vision, John W Campbel
- 할란 엘리슨 공식 홈페이지 : http://harlanellison.com/hom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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