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노동자의 힘> 기관지에서 '세상야사'에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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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1> SF로 사회과학을 공부하자!!| SF 2004년 07월 28일 01:59
[<노동자의 힘> 기관지에서 '세상야사'에 2002년 12월 연재했던 글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보통 ‘공상과학’이라고 부르는 ‘SF(Science Fiction, 과학소설, 과학적 허구)’는 멀리 이 땅까지 와서 객지에서 제 이름 못 찾고 구천을 떠도는 대표적인 피해자 중에 하나입니다. ‘공상’이라는 엉뚱한 머리를 붙여버리는 바람에 과학적 허구라는 원래의 뜻이 바뀌어 거꾸로 비현실적이고, 공상적이어서 유치한 것이라는 막연한 오해에 둘러 싸여버린 불쌍한 놈이지요. 그리고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같이 마술사, 요정, 괴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유럽의 전설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는 SF와 전혀 다른 장르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둘을 같은 장르로 분류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이는 마치 물리학과 귀신 부르는 방법을 같은 종류로 취급하는 것과 같은 경우라 SF팬들은 아주 치욕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를 낳는 것 중에는 ‘공상과학’이라는 잘못된 이름 때문만이 아니라 ‘스타워즈’류의 영화들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이는데, 스타워즈류의 영화나 소설을 SF계에서는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 우주 활극)’라고 부르며, 이것을 ‘호스 오페라(Horse Opera)’라고 불리던 서부영화들의 연장선으로 생각할 뿐 SF의 장르로 잘 취급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SF는 과학적 사실들을 언급하거나 소재로 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과학적 이론의 토대 하에 상상의 나래를 펴고 세상을 해석하려는 문학 장르를 말합니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SF 작가들의 경우 대체로 문학 전공자가 아니라 물리학, 생물학, 의학 등 과학도 출신이라는 점이 그 장르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SF 중에서도 과학적인 이론과 사실에 엄격해서 그 기초적인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힘들고 어려워서 거의 논문 수준인 소설들을 가리켜 ‘하드 SF'라고 부르는데, <중력의 임무>나 <타우 제로> 같은 소설들은 중력장과 상대성 이론에 대한 기초지식 없이는 줄거리조차 파악하기 힘든 소설입니다. 말 그대로 ‘물리학적 상상력’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 물리학도들이 쌍수를 들고 찬양하는 소설들이지요. 그리고 일반인이 과학적 지식 없이도 읽을 수 있는 쉬운 SF를 ‘소프트 SF’라고 하는데, 우주활극을 굳이 SF 장르로 분류하자면 소프트 SF의 한 분야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좁은 의미의 SF는 ‘하드SF'를 의미하고, 넓은 의미에서 '소프트 SF“를 포함시키지만, 많은 하드SF의 팬들이 소프트SF를 SF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소프트 SF는 ‘과학’적 허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SF가 ‘과학적’ 허구라고 해서 물리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이 독점한 장르는 아닙니다. 사회과학을 포함한 인문과학도 과학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겠지요. 사회과학적 허구도 SF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잡고 있는데, 정치학 혹은 경제학을 소설 형식으로 표현한 것들도 있고,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문제를 극단적으로 확대하여 경고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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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정치학의 출발을 알렸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바로 SF 문학의 최초 작품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아주 드뭅니다. <유토피아>는 본래 <사회의 가장 좋은 정치체제에 관하여, 그리고 유토피아, 새로운 섬에 관한 즐거움 못지 않게 유익한 황금의 저서>라는 긴 제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소설 형식으로 쓰여져 있음에도 문학장르가 아니라 주로 사회과학 서적으로 분류되는 이 책은 플라톤의 대표적 저작인 <국가>의 16세기 유럽판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반골기질로 끝내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던 토마스 모어는 이 책을 통해 16세기 당시 유럽의 계급제도, 소유제도와 정치체제를 비판하면서 맹아적인 형태의 공산주의 사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계급을 철폐하고, 사적 소유를 폐지한다면 모든 사람이 하루 6시간씩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교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사회가 펼쳐질 것이라고 아주 설득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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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웰즈는 <해저2만리>를 썼던 쥘 베르느와 더불어 19세기말 SF를 본격적인 장르로 발전시켰던 대표적인 SF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타임머신>, <투명인간>, <우주전쟁> 등 많은 소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 <타임머신>은 지금까지도 많은 아류 소설과 영화를 낳고 있는 그의 대표작입니다. 이 소설은 흔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시간여행을 서술한 것으로 오해되고 있으나 실은 상대성 이론이 나오기 10년 전인 1895년에 쓰여진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서 ‘시간여행’은 어떠한 과학적인 설명도 제시되고 있지 않으며, ‘시간여행’ 자체보다는 시간여행을 통해 주인공이 바라보는 사회상을 묘사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평소 공공연하게 스스로 사회주의자임을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H.G.웰즈는 이 책을 통해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계속 된다면 극단적인 계급 착취로 지옥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라는 경고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극단에 달한 80만년 후 미래에 도착한 주인공은 자본주의 착취제도로 인해 이제는 서로 다른 종으로 진화해버린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을 보게됩니다. 자본계급의 후예들은 지상에서 부를 누리며 살지만, 노동계급들은 지하로 내려가 지하 생활에 적합한 종으로 진화하여 생존을 위한 죽음같은 노역을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시간여행’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자본주의 비판’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이 소설을 굳이 SF 특정 분야로 분류한다면 자연과학 소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 비판’을 담은 사회과학 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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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강철군화>라는 소설을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시려나 모르겠네요.
80년대말에 국내에 소개되어서 ‘소설 자본론’이라는 별명까지 들었던 <강철군화>는 사회과학 SF의 최고봉으로 SF계에서도 인정받는 소설입니다. 1908년 잭 런던이 썼던 이 소설은 공산주의 사회가 건설된 2700년대의 한 고고학자가 1930년대 계급 투쟁이 정점에 달한 시점의 한 무명의 혁명가가 남긴 원고를 발견한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즉, 20세기 초에 잭 런던은 20세기 중반에 있을 치열한 계급투쟁을 예언적으로 서술했던 것인데, 몇가지 점에서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계급투쟁 시기 자본가들의 반동은 상상보다 훨씬 치열할 것이며, 그 반동 세력은 생존을 걸고 미친 듯이 노동계급을 몰아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파시즘’, ‘자본에 포섭된 어용노조와 노동귀족’, ‘자본의 비밀경찰’ 등 새로운 개념들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이 1937년 소련에 소개되자, 트로츠키는 ‘그 당시의 단 한명의 맑시스트 혁명가도 자본과 노동귀족사이의 불길한 야합의 가능성을 그처럼 완벽하게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라고 극찬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파시즘’의 등장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이 책의 서두가 27세기 공산주의 사회의 과학자가 7백년 전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했듯이 잭 런던은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노동계급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 참고 자료
<멋진 신세계> 박상준 역음, 현대정보문화사
+ 위에 언급한 모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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