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지 않고 버텼던 것은, 정말 넘 힘들까봐 였다. 결국 첫 장을 펼쳤고,  오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지게 된 느낌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책도, 어렵고 힘들고 비참한 여성이 쓴 게 아니라, 더없이 용감한 한 여성이 쓴 글이었다. 나는 레이첼 모랜, 자기 실명을 들고 이 고통스러웠을 책을 쓴 이 여성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읽는 내내, 이게 현실일까 싶은 내용 속에서도 그녀의 성찰은 빛났고 그래서 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을 용기를.

 

불타는 건물을 비유로 들 수 있는데, 불 타는 건물을 빠져 나올 만큼 운이 좋았다면 그 집에 불이 났다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옳다. 그래야 그 안에 여전히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희망이 생긴다 (p424)

 

이 책을 쓴 이유가 이것이라고 밝힌 이 대목에서, 난 눈물이 났다. 불 타는 건물 속에서도 너무나 괴로왔을 것이고 나와서도 여전히 그 고통이 남아 있을 한 여성이 갇혀 있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이 어려운 글을 썼다. 정신병이 있었던 부모를 두고 열네살에 집을 나와, 가난을 벗어나고자 아니 다른 선택지를 생각해볼 수도 없는 처지에서 7년간을 성매매된 여성으로 지내야 했던 저자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어쩌면 나도 가지고 있었을 지 모르는 성매매된 여성에 대한 편견 혹은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치부했었을 생각 등을 무너지게 한다.

 

성매매에 유입되어 있던 10대에는 세상과의 단절감이 너무도 크게 작용한 나머지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더라도 내가 가위를 들고 있는 그 여성이 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바에 가서 술을 주문할 수는 있어도 내가 바에서 서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도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자리들에는 생득적으로 적절함과 정상성, 품위가 있었고 슬프게도 나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그런 품성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p30)

 

이제 겨우 십대 초반인 아이가 세상에서 분리된 듯한 느낌을 가지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소외되고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은 내가 사회에 편입해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봉쇄하고 성매매에 유입되고 나서는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는 고백들은, 이 사회의 어느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잔인한 일들, 직접 때리고 직접 내치지 않아도 잔인해질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너무나 태연히 일어나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구별된 삶이 있다. 사회적으로 용납이 가능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으로 나뉘는데 후자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는 그 두 삶 사이의 간극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이 두 가지 세계는 엄청나게 다르다. (p108)

 

살아보지 않은 삶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특히나 용납되지 않는 (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어설프게 나서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하지만, 레이첼 모랜의 이 책을 읽으면서,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성매매된 여성의 삶이 이 세상의 여성의 삶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확장된 폭력이고 법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두어서는 안되는 범죄이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고, 피해자는 '절대' 이걸 원해서 들어가게 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그 세상에 들어갈 구멍을 한껏 열어놓고 그 선택지밖에 없도록 몰아놓고서, 즐긴다느니 있어야 하는 필요악이라느니 이 따위 말을 일삼는 것은, 그것 자체도 범죄다.

 

레이첼 모랜은 자기 경험에 비추어, 그리고 함꼐 있었던 여성들의 경험에 비추어 성매매된 여성들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진다. 왜 그게 아닌지, 왜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되는 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남성이 가하는 성적,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학대를 페미니스트의 권리로서의 '자유'로 추구하며 실천하는 여성들은 여성 평등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주창하는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를 이해하지 않는(혹은 이해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결정에 있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선 환경으로 인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진정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리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 성매매 경험 내에 존재하지 않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 필수 조건들은 성매매를 무심히 보는 시각에도, 살아낸 경험 안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p306)

 

 

하지만 레이첼 모랜이라는 여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 모든 경험과 이 모든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탈성매매를 성공적으로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자신이 운이 좋았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성매매의 과정에서 괴로왔음을, 그 동안의 시간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음을 고백하면서 성매매된 여성들을 위해 연대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음을, 그 대상이 남성이든 여성이든간에 함꼐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고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그런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얘기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글쓰기로 표면화되기 까지 마음 속에서, 머리 속에서 억겁과 같은 시간들을 보냈겠지만, 그 결과로 나온 글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치유되는 만큼이나 계몽적이었다.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여성들, 나와 같은 과거를 지닌 여성들을 포함한 모든 여성들은 남자들을 결코 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상기됐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 사는 모두 같은 인간이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다. (p426)

 

 

몇 년 전에 읽었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읽은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p268)"

 

이 책에서 읽었던 수많은 인터뷰 내용들을 읽으면서 몸서리쳤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전쟁 속에서 여성이 당해야 했고 목격해야 했던 일들을 읽으면서 너무나 괴로왔었다. 하지만 알렉시예비치 또한 그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아마도 우리는 더 나아지기 위해 이런 글들을 쓰고 읽는 것인지 모르겠다. 절망하고 포기하려면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할 필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레이첼 모랜의 책에 나온 스웨덴의 예처럼, 그리고 이를 따라하고 있는 노르웨이 등의 나라들 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성매매되는 여성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노력들이 있기를 희망한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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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2-16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만큼 전염성이 강하다는!! 페이드포 앓이.. 저도 읽고싶어용 ㅎㅎ

비연 2020-02-16 18:33   좋아요 0 | URL
읽기 시작하면 놓지 못하는 책입니다, 쟝쟝님^^
우리가 몰랐고 마치 남의 일인 양 했던 세상이 사실은 내가 사는 세상에서 멀지 않음을 알게 하는...

다락방 2020-02-17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비연님. 정말 잘 읽고 잘 써주셨네요. 비연님의 글을 읽다보니 저도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졌어요. 이 책을 읽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비연 2020-02-17 08:0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책, 제겐 2020년 시작과 동시에 올해의 책이 되었어요. 보기 드문, 가슴아픈, 하지만 놀라운 책이에요. 단발머리님이나 다락방님 아니었으면 이 소중한 책을 그냥 놓칠 뻔 했지 뭐에요 ㅜㅜㅜㅜ

단발머리 2020-02-22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글 읽다가 인용해주신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말이 정말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침 제가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도 떠오르고요. 전 <체르노빌의 목소리>만 읽었는데, 그 때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리뷰를 남길 수도 없더라구요. 충격을 받아서요ㅠㅠ
더는 미루지 말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비연님!

비연 2020-02-23 19:31   좋아요 0 | URL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처음 선택할 때는, 이게 도대체 문학이 될 수 있을까, 글이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그녀들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읽는 내내 느꼈었어요. 힘들었지만... 의미있는 독서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일들을 하는 작가는 또 얼마나 힘들까. 그들의 경험을 듣고, 그들의 말을 옮기고, 그렇게 그 속에서 맥락을 찾고... 존경스러운 분들이 너무 많아요~!
 

 

 

 

 

 

 

 

 

 

 

 

 

 

 

 

 

영화를 봤던가 안 봤던가. 아마 보긴 봤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보진 않았던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 이 이야기를 책으로 보고 싶다, 이 생각을 언제 했었지? 아뭏든 어느 순간부터 내 책장에 딱 꽂혀 있었다. 

 

남들 눈치 보느라, 남들 인생 일정에 맞추느라 급급하게 지내다가 어느 덧 중년이 되어버린 애벌린은,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는, 그저 먹는 것만 입에 달고 사는 그런 지루한 삶을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를 모신 로즈 테라스 요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유쾌한 80대 스래드굿 부인에게서 오륙십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애벌린을 변화시키고 거듭나게 한다. 그 시절,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그러나 용감하게 다른 사람의 편견에 저항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지와 루스. 그리고 십시와 빅조지와 온젤과 니니와 스텀프.. 등등의 사람들이 휘슬스톱 카페에 머물며 살아간 이야기.

 

엄마는 이지가 병이라도 날까 봐 걱정하셨지만, 아빠는 그냥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라고 하셨어요. 말할 것도 없이, 그 사건 이후로 이지는 예전과 전혀 딴판이 되었죠. 루스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그러다가 루스를 만나고부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답니다. 하지만 나는 이지가 버디 문제를 진정으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요. 우리 모두가 그랬으니까요.

그렇지만 나는 슬픔에 잠겨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옳은 일이 아닐 테니까요. 이지가 루스를 만난 것처럼, 하나님이 한쪽 문을 닫으실 때는 반드시 다른쪽 문을 열어 두신답니다. 나는 그분이 그해 여름 우리에게 루스를 보내 머물게 하신 데에는 필시 어떤 까닭이 있다고 믿거든요... '주께서 우리를 바라보심을, 나 또한 지켜보심을 안다네.' - p56~57

 

신은 정말 그러실까. 한쪽 문은 열어 두실까. 닫힌 문 저편의 아픔이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래도 세상 살아갈 힘을 주는 다른 쪽 문을 예비하고 계실까. 그냥 그렇든 안 그렇든, 이 대목이 많이 위안이 된다. 내게도 예비된 문이 있겠지. 내내 슬퍼할 수만은 없을테니까. 그래서 달라질 수 있겠지. 이런 마음이 든다는.. 이지와 루스는 다른 사람의 편견어린 시선 따위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감정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것이 주변을 행복하게 했고. 아마 신은, 그런 것을 예비하신 것일게다.

 

 

애벌린은, 왜 욕설은 늘 성적일까 하고 생각했다. 남자들이 다른 남자에게 모멸감을 주고 싶을 때 보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해 왔던가? 씹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흑인을 가리키는 욕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이 듣는 데서는. 이탈리아인들은 더이상 이태리 놈이나 더러운 이태리 놈이 아니었고, 반듯한 대화에서는 유태인 놈, 왜놈, 중국 놈, 남미 쓰레기 같은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모두들 자신들을 변호하거나 대항할 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자들은 여자를 욕의 소재로 쓴다. 왜? 우리를 변호할 단체는 어디 있지? 이건 공정하지 않잖아. - p314

 

여기서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 아닌 느낌이 들었다. 남자는 여자를 여성이라는 굴레에 다 몰아넣고 경멸의 대상으로 줄곧 삼고 자신의 수컷성에 대해서는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우쭐함을 가진다. 그러나 여자에겐 뿌리박고 대항할 준거집단이 없다. 저항 한번 못해보고 불공정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

 

 

여자들은 타자와 대결해서 싸울 수 있도록 자신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현실적 수단이 없었다. 여자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과거나 역사와 종교를 갖고 있지 않고, 프롤레타리아처럼 노동과 이해의 연대성도 갖고 있지 않다. 여자들 상호간에는, 미국의 흑인이나 게토의 유대인이나 생드니의 르노 자동차 공장 노동자가 공유하는 어떤 장소의 집단성도 없다. 여자들은 주거, 노동,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매이고 아버지나 남편 같은 남자들의 사회적 신분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여자들보다 남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들 사이에서 분산되어 살고 있다. (p22)

 

일찌기 시몬 드 보부아르도 이렇게 말했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어째서 가장 해결되지 않는 불평등 중 하나가 성적 불평등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조금 해소되는 기분이었었다. 연대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 그것은 호소할 목소리를 낼 주체가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각지에서 개별적으로 산발적으로 '분산'되어 노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공정하지 않아.'

 

 

 

사실이 그랬다. 그 조그만 불알 두 쪽은 모든 문을 여는 열쇄였다. 보다 앞서 가야 할 때,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어야 할 때, 가볍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야 할 때 필요한 신용카드였다. 에드가 아들을 원했던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다 또 다른 진실이 떠올랐다. 슬프고도 바꿀 수 없는 진실. 그것은 그녀에게는 불알이 없으며, 가질 방법도 없다는 것이었다. - p362

 

애벌린의 이런 자각 아닌 자각에 왠지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는 건, 여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이 책의 저자인 패니 플래그는 스스로가 레즈비언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남녀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 책 곳곳에도 그녀의 생각이 박혀 있다.

 

"그렇지. 게다가 네가 늘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게 또 있다. 이 땅에는 굉장히 멋진 것들이 있단다. 그것들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돌아다니지. 그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내 말 알겠니?"

스텀프는 진지하게 이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잊지 않을게요." - p178~179

 

수많은 불합리 속에서도 주위 사람들을 포용하고 따뜻하게 하는 이지의 능력은 아마도 이런 마음 때문인 것 같다. 나쁜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여성을 때리는 사람, 흑인을 업수이 여기는 사람 등등 사람의 탈을 쓰고 온갖 부조리한 일들을 행하는 자들도 사람이지만, 하지만, 굉장히 멋진 것들도 또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다닌다는 것. 세상을 선의로 바라보는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이 아닐까 하여 뭉클했다. 스텀프는, 비록 팔 하나가 없는 아이였지만, 이지와 루스의 이런 철학과 지지를 받으며 참 잘 자라나고 있었다.

 

내일 영화도 한번 다시 볼까 생각 중이다. 책을 읽는 동안, 위안을 받았다고나 할까. 어쩌면 나이들수록 비겁한 마음으로 쪼그라져 살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지와 루스의 삶, 그리고 그 주변의 사람들의 삶은 문득문득 용기를 준다. 비록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지만, 애벌린이 옛이야기 속의 사람들을 통해 자아를 찾고 변화해나갔듯이, 나도 마치 실존인물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에 따스함이 번지는 며칠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영화를 보면 또 느낌이 다르겠지. 내일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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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책을 겨우 읽어내고 약간은 망연자실한 기분으로 이틀 정도를 보냈다. 어려운 책을 끝냈다는 기쁨도 잠시. 아 다음에는 뭘 읽지 생각하게 되었다. 2월의 책은... 주문하고 바빠서 돈을 안 낸 걸 잊었었고 퍼득 정신차려 입금을 하고 났더니 한 권 들어가 있는 일어 만화책 때문에 아직까지도 안 오고 있다. 아마 이번 주 토요일에나 온다지. 그렇다면 2월의 책이 오기 전에 며칠이 남아 있는데 뭘 읽으면 좋을까 하다가... 그래, 이걸 읽을 때가 된 것이다, 라고 집어든 책.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사놓고 애써 외면해왔던 책이지만, 이제 읽어야 할 것 같다. 손에 잡기 좋게 만든 판형이 좋아서 들고 다니며 읽어도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 성매매를 인생의 일부로 가졌던 여성이 직접 쓴 글이라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가진 자로서 읽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마음아플 각오를 단단히 하고 책장을 펼친다.

 

정희진 선생의 추천사 부터가 가슴에 꽂힌다.

 

이 책이 한국사회의 성매매 인식 변화에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성매매에 대한 무지와 오해 자체가 폭력이다. 성매매는 상업화이어서, 비윤리적이어서 문제가 아니다. 몸과 섹슈얼리티를 연구한다는 이들조차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상업화되고 비윤리적인' 문제는, 성매매 말고도 널려 있다. 성매매의 핵심은 성별성이지 상업성이 아니다. (추천사 中, p11)

 

1월의 책과도 연결되는 내용이 추천사에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 나는 성매매를 성폭력으로 환원시키는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폭력을 행하는 것도 당하는 것도 노동이다. 성산업에서 여성이 하는 일은 중노동이고 위험한 노동이다. 여성이 사망해도, 공권력도 가족도 나서지 않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성노동' 담론이 여성 혐오에 근거한 무지의 산물임에도 한국 사회에서 그럴 듯하게 통용되는 이유는, '노동의 신성화'라는 서구 근대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식민주의 인식 때문이다. (추천사 中, p11)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이 등장한다.(이 대목 있었나? 갸우뚱한 건 안 비밀 ;;;)

 

궁전의 건전함을 위해서는 하수 설비가 필요하다고 교회 신부들은 말했다. 일부 여성을 희생하고 다수의 여성을 지켜 더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나지 않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해왔다 (...) '창피한 줄 모르는 여성' 계층이 있기 때문에 '정숙한 여성'들을 더욱 신사적으로 배려하며 대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은 희생양이다. 남성은 극악무도한 행위를 성매매 여성에게 쏟어내면서도 그녀를 경멸한다. 성매매가 경찰의 관리 감독 아래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든 은밀하게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든 성매매 여성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로 취급된다.

 

 

알고보면, 다 연결되는 것들임을, 이렇게 이 책은 시작하면서부터 날 일깨운다.

자. 이제, 레이첼 모랜, 이 용감한 여성의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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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2-04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작하는 비연님에게 화이팅을 열 개 포장해 보내드립니다. 덮고 싶은 순간이 여러번 있었지만, 다 읽고나서 정말 읽기를 잘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쉽게 한탄하거나 다른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을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더라구요. 레이첼 모랜은 진짜 멋진 사람이에요!

비연 2020-02-05 10:39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의 화이팅 열개 곱게 받아서 소중히 간직하렵니다. 첫 몇 장 봐도 이 분, 멋지더라구요!

다락방 2020-02-05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기운내시라고 말씀드려요. 읽고나면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읽기 전과 확실히 달라져요. 쉽지 않겠지만 자, 전진!

비연 2020-02-05 10:40   좋아요 0 | URL
전진! 으샤으샤~

han22598 2020-02-05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 두었는데, 얼른 비연님 따라서 읽어야겠네요 ㅎㅎ

비연 2020-02-05 12:33   좋아요 1 | URL
han님, 함께 해요 울라울라~^^
 

 

어제는 여행을 다녀온 피곤한 몸과 마음에도, 하지만 스트레스가 한결 풀려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1월의 책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1장까지 읽고 (뿌듯) 아 나머지는 내일부터 또 읽자 하는 마음으로 덮었다. 처음엔 좀 어려운듯? 했지만 저자가 워낙 친절하게 반복해서 중간중간 요약정리를 해주는 데다가 베버니 마르크스니 예전엔 참 친밀하게(?) 느꼈던 사람들의 이름이 계속 나와, 뭐랄까, 좀 반갑다고나 할까. 점점 속도는 빨라지고 있지만.. 1월이 5일 남았다지? 철푸덕.

 

자려고 누웠는데, 흠. 머리도 식힐겸 쟝르소설이나 하나 빼서 읽어야겠다 하고는 서재로 낼름 갔다. 요즘엔 참으로 뜸하게 나오는 쟝르소설을 끊임없이 조달하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절감하고, 내가 그동안 대부분 읽어치웠구나 (그렇다, 그냥 읽었다라고 하기에는 빈약한 느낌인 것이다) 한숨 폭 쉬면서 겨우 고른 게 존 코널리의 <찰리 파커 시리즈>였다.

 

 

 

 

 

 

 

 

 

 

 

 

 

 

 

그 유명한 <찰리 파커 시리즈>를 읽지 않았다니. 우훗. 하고는 먼저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다크 할로우>를 들고 침대 위에 누워서 앞장을 차악 넘기는데, 흠? 이게 1권이 아니네? 그러니까 시리즈물인데 1권이 없다... 이럴 리가. 하고 다시 알라딘 북플에 들어가 뒤져보니, 맙소사. 1권이 아주 옛날에 나와 있었던 거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어쨌거나 나와 있는 1권을 보니, 2권부터 읽는다는 것은 시리즈물에 대한 배반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찰리 파커라는 전직형사가 사립탐정으로 분하여 활약하게 된 계기는 모두 다 1권에 있는 것이니. 잠시 망설이다가 1권을 사서 읽은 다음에 읽자, 하고 아쉬운 마음 한껏 담아 옆에 얌전히 놓아두고.. 잘까.. 하다가 아니야 쟝르소설 읽기로 했으니 하나는 뒤적이고 자자, 라는 비장한 마음이 생겨서 다시 서재로. (나 혼자 바빴다) 눈 뒤집고 찾는데도 안 읽은 게 안 보이다가 이 책을 찾았다!

 

 

 

 

 

 

 

 

 

 

 

 

 

 

 

 

북유럽 스릴러. 잔인한 내용임은 각오하고 봐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저넘의 표지. 밤에 보는데 아 무서워서 정말. 쟨 왜 날 쳐다보고 있는 거지? 제발 표지 좀 저렇게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매우 상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한 장 철컥 펼쳤고.. 곧 잠에 빠진. ㅎㅎㅎ  그러니까 어제는 책을 읽었다 라기보다는 책을 찾아 다녔다 가 적절한 저녁을 보냈다 뭐이런.

 

지금은 휴일이나 회사. 일해야 하는데 책이 읽고 싶어서 알라딘 들어와 이것저것 보다가 결국 글 한자락 남긴다. 저녁 먹기 전에는 집에 가고 싶으니 이제는 좀 열심히 해 보기로. (이눔의 회사)

 

여러분. 새해 연휴 마지막날 편하게 보내세요. (더덕단은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와 함께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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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27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1월의 도서를 읽으려고 펼쳤다가 두 장도 채 못읽고 결국 낮잠을 자버렸어요. 내일이 출근인데 오늘 밤잠은 다 잔것 같고... 저는 이제 어떡합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러면 오늘은 1월 도서를 완독하는 걸로 해보겠습니다. ㅋㄷㅋㄷ

비연 2020-01-28 12:14   좋아요 0 | URL
그러나 그러나.. 그러고 다 읽어버린 다락방님! 멋쟁이! (저도 얼렁 속도를... 으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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