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지 않고 버텼던 것은, 정말 넘 힘들까봐 였다. 결국 첫 장을 펼쳤고,  오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지게 된 느낌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책도, 어렵고 힘들고 비참한 여성이 쓴 게 아니라, 더없이 용감한 한 여성이 쓴 글이었다. 나는 레이첼 모랜, 자기 실명을 들고 이 고통스러웠을 책을 쓴 이 여성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읽는 내내, 이게 현실일까 싶은 내용 속에서도 그녀의 성찰은 빛났고 그래서 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을 용기를.

 

불타는 건물을 비유로 들 수 있는데, 불 타는 건물을 빠져 나올 만큼 운이 좋았다면 그 집에 불이 났다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옳다. 그래야 그 안에 여전히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희망이 생긴다 (p424)

 

이 책을 쓴 이유가 이것이라고 밝힌 이 대목에서, 난 눈물이 났다. 불 타는 건물 속에서도 너무나 괴로왔을 것이고 나와서도 여전히 그 고통이 남아 있을 한 여성이 갇혀 있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이 어려운 글을 썼다. 정신병이 있었던 부모를 두고 열네살에 집을 나와, 가난을 벗어나고자 아니 다른 선택지를 생각해볼 수도 없는 처지에서 7년간을 성매매된 여성으로 지내야 했던 저자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어쩌면 나도 가지고 있었을 지 모르는 성매매된 여성에 대한 편견 혹은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치부했었을 생각 등을 무너지게 한다.

 

성매매에 유입되어 있던 10대에는 세상과의 단절감이 너무도 크게 작용한 나머지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더라도 내가 가위를 들고 있는 그 여성이 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바에 가서 술을 주문할 수는 있어도 내가 바에서 서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도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자리들에는 생득적으로 적절함과 정상성, 품위가 있었고 슬프게도 나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그런 품성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p30)

 

이제 겨우 십대 초반인 아이가 세상에서 분리된 듯한 느낌을 가지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소외되고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은 내가 사회에 편입해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 자체를 봉쇄하고 성매매에 유입되고 나서는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는 고백들은, 이 사회의 어느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잔인한 일들, 직접 때리고 직접 내치지 않아도 잔인해질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너무나 태연히 일어나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구별된 삶이 있다. 사회적으로 용납이 가능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으로 나뉘는데 후자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는 그 두 삶 사이의 간극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이 두 가지 세계는 엄청나게 다르다. (p108)

 

살아보지 않은 삶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특히나 용납되지 않는 (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어설프게 나서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하지만, 레이첼 모랜의 이 책을 읽으면서,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성매매된 여성의 삶이 이 세상의 여성의 삶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확장된 폭력이고 법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두어서는 안되는 범죄이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기 때문이고, 피해자는 '절대' 이걸 원해서 들어가게 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그 세상에 들어갈 구멍을 한껏 열어놓고 그 선택지밖에 없도록 몰아놓고서, 즐긴다느니 있어야 하는 필요악이라느니 이 따위 말을 일삼는 것은, 그것 자체도 범죄다.

 

레이첼 모랜은 자기 경험에 비추어, 그리고 함꼐 있었던 여성들의 경험에 비추어 성매매된 여성들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진다. 왜 그게 아닌지, 왜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되는 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남성이 가하는 성적,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학대를 페미니스트의 권리로서의 '자유'로 추구하며 실천하는 여성들은 여성 평등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주창하는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를 이해하지 않는(혹은 이해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결정에 있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선 환경으로 인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진정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리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 성매매 경험 내에 존재하지 않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 필수 조건들은 성매매를 무심히 보는 시각에도, 살아낸 경험 안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p306)

 

 

하지만 레이첼 모랜이라는 여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 모든 경험과 이 모든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탈성매매를 성공적으로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자신이 운이 좋았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성매매의 과정에서 괴로왔음을, 그 동안의 시간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음을 고백하면서 성매매된 여성들을 위해 연대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음을, 그 대상이 남성이든 여성이든간에 함꼐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고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그런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얘기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글쓰기로 표면화되기 까지 마음 속에서, 머리 속에서 억겁과 같은 시간들을 보냈겠지만, 그 결과로 나온 글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치유되는 만큼이나 계몽적이었다.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여성들, 나와 같은 과거를 지닌 여성들을 포함한 모든 여성들은 남자들을 결코 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상기됐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 사는 모두 같은 인간이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다. (p426)

 

 

몇 년 전에 읽었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 소설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읽은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p268)"

 

이 책에서 읽었던 수많은 인터뷰 내용들을 읽으면서 몸서리쳤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전쟁 속에서 여성이 당해야 했고 목격해야 했던 일들을 읽으면서 너무나 괴로왔었다. 하지만 알렉시예비치 또한 그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아마도 우리는 더 나아지기 위해 이런 글들을 쓰고 읽는 것인지 모르겠다. 절망하고 포기하려면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할 필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레이첼 모랜의 책에 나온 스웨덴의 예처럼, 그리고 이를 따라하고 있는 노르웨이 등의 나라들 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성매매되는 여성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노력들이 있기를 희망한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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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2-16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만큼 전염성이 강하다는!! 페이드포 앓이.. 저도 읽고싶어용 ㅎㅎ

비연 2020-02-16 18:33   좋아요 0 | URL
읽기 시작하면 놓지 못하는 책입니다, 쟝쟝님^^
우리가 몰랐고 마치 남의 일인 양 했던 세상이 사실은 내가 사는 세상에서 멀지 않음을 알게 하는...

다락방 2020-02-17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습니다, 비연님. 정말 잘 읽고 잘 써주셨네요. 비연님의 글을 읽다보니 저도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졌어요. 이 책을 읽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비연 2020-02-17 08:0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책, 제겐 2020년 시작과 동시에 올해의 책이 되었어요. 보기 드문, 가슴아픈, 하지만 놀라운 책이에요. 단발머리님이나 다락방님 아니었으면 이 소중한 책을 그냥 놓칠 뻔 했지 뭐에요 ㅜㅜㅜㅜ

단발머리 2020-02-22 1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글 읽다가 인용해주신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말이 정말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침 제가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도 떠오르고요. 전 <체르노빌의 목소리>만 읽었는데, 그 때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리뷰를 남길 수도 없더라구요. 충격을 받아서요ㅠㅠ
더는 미루지 말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비연님!

비연 2020-02-23 19:31   좋아요 0 | URL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처음 선택할 때는, 이게 도대체 문학이 될 수 있을까, 글이 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그녀들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읽는 내내 느꼈었어요. 힘들었지만... 의미있는 독서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일들을 하는 작가는 또 얼마나 힘들까. 그들의 경험을 듣고, 그들의 말을 옮기고, 그렇게 그 속에서 맥락을 찾고... 존경스러운 분들이 너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