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책을 겨우 읽어내고 약간은 망연자실한 기분으로 이틀 정도를 보냈다. 어려운 책을 끝냈다는 기쁨도 잠시. 아 다음에는 뭘 읽지 생각하게 되었다. 2월의 책은... 주문하고 바빠서 돈을 안 낸 걸 잊었었고 퍼득 정신차려 입금을 하고 났더니 한 권 들어가 있는 일어 만화책 때문에 아직까지도 안 오고 있다. 아마 이번 주 토요일에나 온다지. 그렇다면 2월의 책이 오기 전에 며칠이 남아 있는데 뭘 읽으면 좋을까 하다가... 그래, 이걸 읽을 때가 된 것이다, 라고 집어든 책.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사놓고 애써 외면해왔던 책이지만, 이제 읽어야 할 것 같다. 손에 잡기 좋게 만든 판형이 좋아서 들고 다니며 읽어도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 성매매를 인생의 일부로 가졌던 여성이 직접 쓴 글이라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가진 자로서 읽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마음아플 각오를 단단히 하고 책장을 펼친다.

 

정희진 선생의 추천사 부터가 가슴에 꽂힌다.

 

이 책이 한국사회의 성매매 인식 변화에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성매매에 대한 무지와 오해 자체가 폭력이다. 성매매는 상업화이어서, 비윤리적이어서 문제가 아니다. 몸과 섹슈얼리티를 연구한다는 이들조차 이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상업화되고 비윤리적인' 문제는, 성매매 말고도 널려 있다. 성매매의 핵심은 성별성이지 상업성이 아니다. (추천사 中, p11)

 

1월의 책과도 연결되는 내용이 추천사에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 나는 성매매를 성폭력으로 환원시키는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폭력을 행하는 것도 당하는 것도 노동이다. 성산업에서 여성이 하는 일은 중노동이고 위험한 노동이다. 여성이 사망해도, 공권력도 가족도 나서지 않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성노동' 담론이 여성 혐오에 근거한 무지의 산물임에도 한국 사회에서 그럴 듯하게 통용되는 이유는, '노동의 신성화'라는 서구 근대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식민주의 인식 때문이다. (추천사 中, p11)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이 등장한다.(이 대목 있었나? 갸우뚱한 건 안 비밀 ;;;)

 

궁전의 건전함을 위해서는 하수 설비가 필요하다고 교회 신부들은 말했다. 일부 여성을 희생하고 다수의 여성을 지켜 더 심각한 문제들이 생겨나지 않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해왔다 (...) '창피한 줄 모르는 여성' 계층이 있기 때문에 '정숙한 여성'들을 더욱 신사적으로 배려하며 대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은 희생양이다. 남성은 극악무도한 행위를 성매매 여성에게 쏟어내면서도 그녀를 경멸한다. 성매매가 경찰의 관리 감독 아래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든 은밀하게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든 성매매 여성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로 취급된다.

 

 

알고보면, 다 연결되는 것들임을, 이렇게 이 책은 시작하면서부터 날 일깨운다.

자. 이제, 레이첼 모랜, 이 용감한 여성의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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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2-04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작하는 비연님에게 화이팅을 열 개 포장해 보내드립니다. 덮고 싶은 순간이 여러번 있었지만, 다 읽고나서 정말 읽기를 잘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쉽게 한탄하거나 다른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을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더라구요. 레이첼 모랜은 진짜 멋진 사람이에요!

비연 2020-02-05 10:39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의 화이팅 열개 곱게 받아서 소중히 간직하렵니다. 첫 몇 장 봐도 이 분, 멋지더라구요!

다락방 2020-02-05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기운내시라고 말씀드려요. 읽고나면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읽기 전과 확실히 달라져요. 쉽지 않겠지만 자, 전진!

비연 2020-02-05 10:40   좋아요 0 | URL
전진! 으샤으샤~

han22598 2020-02-05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 두었는데, 얼른 비연님 따라서 읽어야겠네요 ㅎㅎ

비연 2020-02-05 12:33   좋아요 1 | URL
han님, 함께 해요 울라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