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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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읽기 전에, 이 속엔 책의 내용이 담겨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사실 책의 내용을 다 안다고 해도 감동이나 가슴 먹먹함이 덜해지리라 여겨지진 않지만.


어제. 일요일이 끝나가는 게 아쉬워서 맥주 한캔을 땄다. 집에서 맥주는 매번 금물이었는데, 어느새 조금 완화되어서 말이다. 하이네켄과 아사히와 크롬바커를 사들고 왔고, 어제는 크롬바커의 날이었다. 크롬바커는 좀 비싸긴 한데 맛은 좋다. 땅콩과 아몬드를 한웅큼 집어들고 집에 같이 넣으면서 일드를 볼까 책을 볼까 망설이다가 책으로 낙찰. 일드는 이상하게 한 몫에 다 보게 되어서 일단 시작하면 좀 피곤하다. 책은 뭘 볼까. 기웃기웃하다가 오래전부터 사두고 보지 않고 있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집었다.

나이가 덜 들었을 때는 그랬다. 좀더 비극적이고 좀더 처연하게 끝나는 영화나 책이 좋았다. 웃기고 해피엔딩이고 그런 영화나 책을 좋아하는 애들이 유치해보였다. 니네가 인생을 뭘 알아~ 뭐 이런 치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나이를 그 때보다 조금 더 들고 보니, 그냥 웃기고 단순한게 좋다. 현실에도 널려있는 가슴아프고 우울한 이야기들을 영화나 책에서 확인하는 게 괴롭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씩 취향이 바뀌어갔다고나 할까. 그런데 영화는 피해갈 수 있어도 가끔 책은 피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일단 좋은 책은 사고 보는 거니까. 그렇게, 이 책을 샀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는 그 내용이 너무 느껴져서 보지 않아도 슬퍼서 '감히' 집어들 엄두를 못 내었던 것 같다.

울 수 밖에 없었다. 아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눈물이 났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라는 첫 문장부터 가슴이 섬찟했다. 엄마를 잃어버리다니. 처음엔 큰 딸의 시각으로 그 다음에는 큰 아들의, 그리고 남편의, 그리고 잃어버려진 엄마의, 마지막으로 다시 큰 딸의 눈으로 그려진 구성을 하고 있다. 어느새 정신이 혼미해진 엄마는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네에 올라왔다가 서울역 전철에서 평생을 무심했던, 그래서 혼자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곤 했던 남편의 손을 놓친다. 그렇게 엄마는 자식들과 남편의 곁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가난했던 그 시절에, 못 배워 글도 못 읽는 무학의 '박소녀' 엄마는 자식 넷을 키우느라 뼈빠지게 일했다. 못 배운 한을 풀려고 어떻게든 아이들 손에 책을 쥐어주고, 없는 살림에 배 안 곯릴려고 한시도 쉬지 않았다. 그 동안 남편은 바람을 피웠고 여기저기 유랑을 했고 시어머니같던 고모의 시집살이가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나 위해주던 시동생 '균'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고 그게 두고두고 한이 되어 봉사하러 다니던 곳의 아기에게 '균'이라는 이름도 지어주며 애지중지했으며, 어느날 만난 '그'에게 심정적으로 의지했었으나 닿지 않는 곳에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런 엄마의 인생을 한 여자의 인생으로, 나와 같이 누군가를 엄마로 두고 어린시절을 거쳐 꿈많던 소녀시절을 지나 누군가와 결혼하고 그렇게 살아나간 '여자'로 봐준 사람은 없었다. 그냥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고, 엄마는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나를 위해 무한의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 엄마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p254) 이야기할 때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었다. 아마도 엄마라는 존재는 물리적으로 잃어버리기 전에 마음에서 이미 잃어버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한번도 인간이며 여자로 이해되기 힘든 존재인 엄마, 어머니.

신경숙의 문체는 여전히 짜임새있고 담담하지만, 예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져있고 더 정겨워져있었다. 마지막, 피에타상을 보며 엄마의 모습을 투영하는 장면에서, 작가나 혹은 이 땅의 많은 딸들의 이해와 해방을 보았다면 비약인 걸까. 누군가의 삶을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를 낳아주고 내게 헌신을 다하는 존재의 인생을 한번쯤 헤아리고 그 속의 욕망과 감정을 생각해보는 건 정말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그나마라도 하는 것이 내게 평생 '마음의 고향'이며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는 존재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다시한번 펑펑 울게 된다.

이 땅의 모든 존재는 엄마를 가진다. 그 그리움으로 이 책을 함께 한다면 좋을 것 같다. 늘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가지고 있던 나의 엄마를, 글 속의 '박소녀' 엄마의 모습 속에서 구체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슴벅찬...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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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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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왜 지금 읽었지? 제목만으로도 나같이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오자마자 후딱 사서 읽었어야 하는데 말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은 소설을 많이 읽어야지 하면서 책들을 사 모으고 있는데 이러다가 정말 모으기만 하겠다 싶어서 여행가는 김에 한 권 들고 가야겠다 싶었다. 너무 슬픈 내용 싫고 (여행 가서 밤중에 질질 울기는 싫었다) 너무 무서운 내용 싫고 (안 그래도 낯선 곳에서 귀신 나올까 밤잠 못 이루기 싫었다) 너무 어려운 내용 싫고 (쉬러 가서 머리 쥐어짜며 고민하기 싫었다)... 그렇게나 싫은 것 투성이인 내 맘을 다독이며 고른 책이 이거다. 일단, 이번에 박민규라는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탔고 외모로 봐서는 정말 그 상이랑은 거리가 먼 듯 한데 탄 게 신기해서 데뷔작이라니 어떤가 싶어 골랐다는 게 첫번째 이유이고, 야구 이제 시작인데 마음으로 우선 워밍업 해두자 라는 마음으로 집었다는 게 두번째 이유 쯤 되겠다.

처음부터 키득거리며 시작했다. 이 작가, 글빨이 보통 아니군. 독특한 문체로, 마치 내 옆에서 말하는 것 같기도 하는 횡설수설체인데다가 은근히 비아냥거리는 솜씨도 상급에 속하는 작가군..그런 생각하면서 정말이지 확 빠져서 읽어버렸다. 전혀 슬프지도 않았고 전혀 무섭지도 않았고 전혀 어렵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나니 마음 한 구석, 바람이 샌다. 나는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억지로 나 힘드네 나 어렵네 나 우네 하면서 내내 나를 불편하게 하기 보다는 읽을 때는 유쾌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설정 같기도 하지만, 마지막 책장 덮을 즈음에는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라는 자괴감 플러스 사람 사는 거 별 거 아닌 거지 라는 체념 비슷한 것이 짬뽕되어 밀어닥치는 그런 소설 말이다.

프로야구가 시작된 것은 1982년. 프로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었을 것이라 짐작되는 그 시절에 프로야구에 대한 기대치는 거의 하늘을 찔렀던 것 같다. 어린이회원 되기 위해서 긴 줄도 마다않고 서서 선수들 하나하나 추첨하는 것에 목을 맸던 많은 그 당시의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저 인천이 연고지라는 이유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회원이 된 주인공과 그 친구 조성훈. 말단 샐러리맨인 아버지를 둔 '나'는 중학교로 진학을 하면서 공부를 잘 해야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을 곱씹어 듣게 되고 그 와중에 삼미는 딱 한 해 잘 나가고 나머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팀 성적으로 최하위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맴도는, 죽자고 해봐야 중간치밖에 안되는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서 코피 터지게 공부한 '나'는 일류대 경영학과에 가게 되고 조성훈은 철학과에 들어간다. 시대는 암울한 5공 말기에서 6공 초기.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 지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지도 뚜렷이 모른 채 그저 달달 외우기에 능숙했던 '나'는 졸업하기 위해 대학을 다니고 마음은 갈팡질팡 부유하는 생활을 한다. 조성훈은 집안에 돈문제가 생겨 결국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되고 일본으로 홀연히 떠나고 말이다.

그렇게 그렇게 군대 다녀오고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간 '나'. 1998년, IMF 위기 속에 실직을 하게 된다. 일만 했는데 아무 것도 생각 안 하고 일만 했는데 회사에서는 짤리고 부인에게는 이혼을 당하는 일류대 허울쓴 '삼류인생'으로 전락한 '나'는 10년여 만에 조성훈을 다시 만나게 되고 삼미슈퍼스타즈의 철학에 대해서 공유하게 된다.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p251)

쉬지 않고 앞만 보며 살아가라고 내지르는 세상. 쉬지 말아야 하고 쉬어서도 안되고 쉴 줄도 모르는 사람들을 키우는 세상.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신의 시간을 갖는 그런 인생을 가질 권리가 충분히 있음에도 그렇게 하면 마치 인생의 낙오자처럼 취급받는 세상. 그런 세상을 '나'는 깨닫게 되고,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결국 <삼미슈퍼스타즈>는 야구팀이고 최하위이고 말도 안되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다른 팀들 승률이나 높여주는 구단이었지만, 속도 빠르고 일등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프로야구의 세상에서 진정한 아마추어이자 떳떳한 주변인으로 남기를 자처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이미지가 된다. 따라서 야구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소설은 인생이야기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그리고 그 중에서도 1980년대와 1990년대라는 드라마틱하고 처절하고 모순덩어리인 시절에 청춘을 지낸 사람들에게 있어 세상의 권력이란, 세상의 돈이란 정말 크게 느껴질 수 있는 대상이다. 가볍게 살면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 숙이고 다녀야 했던 시대에 자신의 인생을 지켜나가기 위해 주위 시선에 몸을 맡긴 채 내달렸던 세대들을 말하면서, 박민규는 인생을 얘기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어떠한가. 눈코 뜰새없이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가끔은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는 소시민인 나는 어떠한가. 답하기 힘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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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3-0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야구 좋아하시는 비연님이 왜 이제서야 이 소설을 만났을까요??

비연 2010-03-04 09:41   좋아요 0 | URL
제 말이요!ㅋㅋㅋ 박민규 소설 좀더 읽어보려구요. 맛깔나는 글솜씨인지라^^
 
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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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선언하듯이 평가할 수 있는 책이 아주 많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추상적이고 난해한 문체를 구사하지 않고도 사람의 마음결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느끼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다. 아마도 그것은, 작가 스스로 평생을 생각하고 느끼고 가슴아파하고 고민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었던 감정의 맥락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질적인 사회에서, 그것도 우월한 입장이라기보다는 소수자 혹은 타자의 입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식을 성공시키기 위해 혹은 자기 본인이 공부하기 위해 어렵게 어렵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 살아가는 인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같지 않은 구석이 있다.

누가 봐도 인도인라고 알아볼만한 외모를 가진 채, 부모는 벵골어를 사용하고 가르치고 인도의 음식을 고집하고 전통의상을 걸쳐입고 같은 민족끼리 오글오글 모여 지내는 반면, 자식은 이미 미국 사회에 동화가 되어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고, 벵골어를 어려워하고, 청바지와 티셔츠를 편하게 생각하고 미국 사람을 사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미국 음식을 먹는 게 더 편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부모나 자식이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늘 본인이 아는 전혀 다른 문화가 수시로 충돌하는 뻐걱거림과 이를 억지로 외면해야 한다는 슬픔을 공유하는 동지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예전에 프랑스에서 가족과 함께 10년 넘게 살다가 귀국하셨던 어느 박사님이 그러셨었다. 2~3년은 적응하느라 한국보다 여러가지로 합리적이고 편해서 여행 온 기분으로 즐겁게 지냈지만, 그 이후부터는 그건 그냥 생활이었다고.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과 지내는 동안에 내내 뭔가 알 수 없는 얇은 벽이 느껴져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그래서 시끌벅적하고 서로 소리높이기 일쑤인 이곳이 더 좋다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도 미국이나 유럽이나 곳곳에 여러가지 이유로 정착해 살면서 이들과 비슷한 느낌과 갈등 속에 살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더랬다. 이국에 정착하기 위해, 가족의 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기만하고 감정을 포장하며 지내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게 되고 상처받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이질적인 문화 위에 가족간의 몰이해가 겹쳐 반목하게 되는 것. 때로 가족만한 상처가 있던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모셔야 한다는 중압감은 있으나 내키지 않아 고민하는 루마에게 같이 살지 않겠다고 나의 인생을 살겠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고, 그것은 긴긴 세월 이국에서 뿌리를 내리고자 애쓰며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일종의 반기였다 (길들이지 않은 땅) . 낯선 곳에서 만난 동족과 가족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고 어머니의 마음에서 사랑이 싹트기도 하지만, 결국 미국여자와 결혼하고 미국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동족과 만나는 것을 멀리하게 된 프라납 삼촌 또한 행복한 인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옥-천국) . 동생만큼은 미국인으로 키워보겠다며 미국적인 것만을 제공하고 미성년임에도 술을 알게 한 누나 수드하는 어느 새 똑똑했던 동생이 알콜중독 환자가 되고 점점 변해가는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며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좋은 사람) .

헤마와 코쉭의 시점에서 이야기 되는 3편의 연작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냥 동족이라는 것 때문에 우정을 가장하여 친하게 지내던 두 인도가정은 너무나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결국 한 가정의 부인이 암으로 죽어가는 와중에 사실을 모른 채 미움을 키워나가게 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이국 땅에서 공부를 하던 코쉭은 사진기자가 되어 험한 곳들을 전전하며 정착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되고 그 여정은 어느새 어머니의 죽음과 연결된 지점으로 향하게 된다.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는 교수로 성장한 헤마는 전형적인 미국여성으로 자랐으면서도 부모의 뜻에 따라 혹은 자신의 모순을 이기지 못해 순응하는 결혼생활을 선택하게 되고. 모두가 뿌리박지 못한 인생의 결과이다.

어쩌면 이런 감정들은 꼭 이국땅에 뿌리박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게다. 늘 마음 한 켠에서 두 세가지의 상반된 감정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인간이고 보면 그 모순과 갈등이 대부분의 보통사람을 파괴하지는 못 할지라도 쭈욱 뭔가 해결되지 않은 느낌을 지닌 채 살아가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나의 전 세대인 부모와는 늘 부딪히고, 가족간에 생길 수 있는 불화나 반목은 또한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애써 무시하려 하나 늘 상처받게 되고, 내 인생이 제대로 된 인생인지 내가 나의 인생을 사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지속적인 회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담담하고 세밀한 어조로 그 감정을 똑바로 보기를 설득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작품들은 비단, 이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말꼬리) 난 원제인 <unaccustomed earth>가 제목으로 훨씬 맘에 든다. <그저 좋은 사람>도 좋았지만, 그래도 가장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 말이다. 번역하면 너무 상투적인 말이 될까봐 피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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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0-02-10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연님 글에 동감해요.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면서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라히리의 이민세대 이야기가 공감하는바가 컸던 것은 내가 처한 상황하고 비슷해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비연 2010-02-10 12:09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반갑습니다^^ 저는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직인 영원히가 될 가망성이 크다는..ㅜㅜ) 나이먹을수록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평생을 마주하고 사는 사람들간의 애증이랄까 복잡미묘한 감정이랄까...그래서 이 책이 여러가지로 의미하는 바가 컸죠^^
 
야구장 습격사건 - 엽기발랄 오쿠다 히데오 포복절도 야구장 견문록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동아일보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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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제목 '야구장 습격사건'에 낚이지 않는 사람 별로 없을 것 같다. 특히나 '공중그네'와 같이 재미있는 소설을 쓴 오쿠다 히데오가 쓴 소설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이 사람, 주니치 드래곤즈의 열렬한 팬이며 따라서 야구에 대한 에세이도 많이 쓰고 있다니까 읽을 만하지 않겠어? 라고 적어도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어제 오늘 다 읽고 난 소감. 우선 하하하. 무지하게 깊이 있는 글을 원한다면 절대 권하고 싶지 않으나 그냥 잡지책에 실린, 스윽 한번 읽고 말 이야기를 원한다면 강추이다. 사실 요즘 날씨도 우울하고 여러가지 일로 심란했는데, 읽으면서 무지하게 유쾌했다. 이 사람, 현실에 존재하는 이라부의사 아니야? 뭐 그런 느낌. 큭. 또 하나는 맥주가 너무나 먹고 싶어졌다는 거다. 어딜 가나 오리온 맥주를 먹어대는 이 아저씨의 맛깔스런 글을 보다보면 안 좋아하는 맥주라도 한번 먹어봐? 할 판에 나처럼 좋아라 하는 사람은 그냥 바로 가서 맥주 몇 캔을 안고 올 수 밖에 없다는. 물론 난 아사히로.

이 글은  어느 해 1년동안 오키나와, 시코쿠, 타이완, 도호쿠, 히로시마, 규슈를 다니면서 야구장을 찾아다닌 지은이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읽어보면 이건 야구 관람기라기 보다는,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다니면서 먹고 마시고 마사지 받고 자고 가끔 야구장 찾아다닌 이야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일본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그 곳의 맛난 음식과 좋은 경치를 소개하는 여행 에세이로서도 자리매김할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은 야구, 맞다. 야구를 사랑하고 그 야구를 하는 선수들을 사랑하고 그 야구를 하는 선수들을 바라보는 관객들과의 호흡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글들.

곳곳에 지은이의 유쾌한 문장들이 엿보이는 것이 이 책의 진가라면 진가다. 1959년생이니까 아마도 그 당시엔 40대 후반이었을테고 독신이며 프리랜서인 아저씨가 툭툭 내뱉는 말이 기발하면서도 촌철살인인지라 읽으면서 푸푸풋 하고 웃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텔레비젼 뉴스에서 고등학교 졸업 예정자의 취업률이 최악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특히 오키나와는 30퍼센트로 전국 최저라고 한다. 아나운서가 불경기를 탄식한다. 참고로 전국 최고는 내 고향인 기후, 80퍼센트이다. 그럼 물어보자. 기후는 경기가 좋고 오키나와는 경기가 나쁜가? 그렇지 않다. 기후는 백수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고, 오키나와는 백수를 받아들이는 사회일 따름이다. 좋잖아, 그거. 오키나와 만세! (p46)


크. 백수들에게 이렇게 희망어린 말을 이렇게 유쾌하게 주는 글은 또 뭐란 말인가.  


그런데 나는? 자리에 앉아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갑자기 똥이 마렵다. 그것도 노도와 같은 기세로. 우웃, 빨리 가줘, 제발. 순간, 버스에서 내려 풀숲에서 실례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말도 안 돼. 무슨 기념할 일이 있다고 오노미치 변두리까지 와서 풀숲에다 똥을 싸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여기서 싸버리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게 평생 심리적 외상으로 남아 나를 괴롭힐 것이다. 아아, 왜 여행같은 걸 하는 거야. (p2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가는 곳마다 그곳의 정에 취해 그곳의 음식에 취해 그곳의 경치에 취해 그곳에 살고 싶다고 한다. 도쿄라는 삭막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곳을 떠나 여기 정착하고 싶구나 라며 여행의 흥취를 더하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야구를 잊지 않는다.


중견수 다카하시의 옛 동료 스즈키 이치로는 메이저 리그에서 MVP가 되었다. 투수 가토 히로토의 후배 이시이 가즈히사는 LA 다저스의 주전 투수다. 인생은 각양각색이다. 그 분기점은 어디든 있다. 그렇지만 모두가 야구 선수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프로야구 선수다. (p172)

 
야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스타 플레이어라서 좋아하고 1등 하는 팀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야구에는 인생이 배여 있고 메이저든 마이너든 함께 뛰는 선수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게 하는 힘이 있어서 좋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모두가 소중하다는 느낌, 그래서 플레이 하나하나에 갈채를 보낼 수 있는 거다. 오쿠다 히데오가 느끼는 것이 바로 내가 느끼는 것.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에가와의 강속구에 경탄하고, 엔도의 포크볼에 입을 쩍 벌리고, 하라가 터뜨리는 홈런에 탄성을 내지른다. 나는 아름다운 것과 그것이 빛나는 순간이 좋다. 기록과 권위에는 관심이 없다. 자이언츠 따위를 어찌 응원하리. 결과 따위, 존중하지 마. 통산 91승의 이마나카가 지금도 팬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내게 큰 격려가 된다. (p273)


동감입니다, 오쿠다씨.

아. 야구가 보고 싶다. 땀흘리며 필드를 넘나드는 그들의 플레이에 환성을 보내고 싶고, 갈고 닦은 역량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것의 결과가 어떻든, 이기든 지든 열심으로 치고 달리고 던지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힘을 얻고 싶다. 그게 인생이니까. 누구나 존중받을 수 있는 그 공간. 그래서 나도 야구를 좋아한다. 문득, 오쿠다 히데오처럼 야구장 순례를 다니면서 우리나라 산천을 한번 누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만큼 재미있는 글들은 안 나와도, 내 맘 속에 따뜻한 바람이 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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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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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이 심란해서인지, 여간해선 책도 손에 잘 안 잡히고 밤에 잠이 안와 뒤척이기 일쑤인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며칠 전에도 자려고 눈을 질끈 감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기만 하는 바람에 문득 벌떡 일어나 책장에 다가갔었다. 뭘 읽을까. 이 야밤에 추리소설을 읽자니 좀 무섭기도 하고 가뜩이나 무거운 심정에 벽돌 하나 세게 내리치는 격이 될 것 같았고 어려운 책을 읽자니 머리가 잘 회전되어 줄 것 같지도 않았고...남들 다 자는 밤에 일어나 난데없는 고민을 하다가 불현듯 눈에 띈 책이 이 책이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올해 장영희교수가 돌아가시고 나서 바로 사두었다가 쭈욱 잊고 있었던 책이었다.

장영희선생은, 돌도 되기 전에 소아마비를 앓았고 나중에 암환자로 일생을 마무리해야 했던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천형같은 삶' 이라 일컬어지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던 분. 오히려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라 (Count your blessings)' 는 말을 되뇌이며 자신의 축복들을 수도 없이 얘기하는, 그래서 '천혜 (天惠)'의 삶을 살았노라 당당히 말하던  장애인이었다.

6년이나 고생하면서 만든 논문을 도둑질당했을 때에도 절망과 희망이 늘 가까이에 있으며 그러나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며 안도하는 학생이었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제자에게 명품 바이올린은 무릎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따라서 더욱 아름다운 선율을 내기 위해 연습을 하는 거라고 힘내라고 위로하던 선생님이었다.  

먼 훗날, 이 땅에서 사라진 어느 가을날, 내 제자나 이 책의 독자 중 한 명이 나보다 조금 빨리 가슴에 휑한 바람 한줄기를 느끼면서 "내가 살아보니까 그때 장영희 말이 맞더라"라고 말하면 그거야말로 덤으로 이 땅에 다녀간 작은 보람이 되겠노라 말하던 수필가였고 다섯살짜리 조카의 예쁜 말들에 감동을 받는 평범한 이모였다.

묶여진 작은 글들 속에서 발견된 장영희선생의 모습은 이렇게 다양했다.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많은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조금 다른, 어쩌면 조금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르는, 그러나 그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된 한 사람이 우리에게 남긴 소박하고 정감어린 글들은, 이미 이 글들을 쓴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감상까지 더하여 나를 참 아릿하게 했다. 수필이라는 건, 누구나 쓰기 쉽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가장 어려운 글이 아닐까 싶다. 살아가는 일들을 예민하게 그러나 담담하고 소탈하게 바라볼 줄 아는 관점도 관점이지만, 느낀 바를 너무 어렵지 않은 문체로 사람들에게 쉽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토막토막 글을 쓰기란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제 그 분의 이런 글들을 다시는 못 보리라는 생각은 허망함을 안긴다.

읽고 나니, 나의 같쟎은 허무함이나 허탈함이 조금은 가라앉았더랬다. 세상을 살면서 잊고 있었던 느낌들, 추억들, 사람들이 여전히 내게 남아 있음을 그래서 난 결코 외롭지 않다는 걸 확인받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들이 일깨워지는 기분에 마음이 포근해졌더랬다. 날씨가 스산해지고 연말이 다가와 이런 저런 마음에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삶이 재미없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겐 효과좋은 약과 같은 책이다. 나에게 내려진 좋은 처방처럼,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도 같은 느낌을 가지리라 믿는다. 그 밤, 이 책이 내 눈에 뜨인 건 내게 큰 축복이었고 작은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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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2-12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저도 미루고 미루다가 어제 받아봤는데요. <문학의 숲을 거닐다> 에서 못한, 좀 더 솔직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정채봉님의 글과 함께 맘을 편히,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싶을때 찾던 글이었는데 이젠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그 글들을 읽고 날때즘이면 다시 힘을 내서 발걸음을 뗄 수 있었는데 말이죠..

비연 2009-12-12 23:19   좋아요 0 | URL
네..저도 이 책을 보면서 보다 솔직한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정채봉님도 그렇고..주옥같은 글들을 쓰던 분들이 일찍 가시는 게 참 아쉬워지는, 스산한 겨울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