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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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이 있다. 그냥 읽으려고 냉큼 펴들었다가 그 말들이 너무 주옥같아 한번에 읽기가 미안해지는 책. 그래서 하루에 한 장씩 보물을 대하듯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 읽게 되는 책. 그리고 읽고 나면 마음 속 깊이 충만감을 느끼게 하는 책. 그래서 몇 주를 내 머리맡에 두고도 전혀 지루한 느낌이 안 들게 하는 책. 이 책은 내게 두 달간 그런 느낌들을 안겨주었던 책임을 고백한다.

120개 문장과 해석이 두 페이지에 딱 떨어지게 정리가 되어 있길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심심풀이로 읽으면 되겠다 했었다. 첫 날 하드커버의 버거움을 감수하고 핸드백에 억지로 넣어 들고 가서 버스 안에 어렵사리 앉아 투덜대며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아..이 책은 이렇게 혼잡한 속에서 대충 읽기에는 너무 값진 책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늘 잠자기 전에 조금씩 읽어나가며 내 마음을 가다듬고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있는 책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전이라. 게다가 우리가 흔히 보는 논어니 중용이니 어쩌구저쩌구 하는 중국의 사상가들의 글이 아니라 우리나라 옛 선비들의 글 중에서 작가가 마음에 담아두었던 글들을 1년 열두달의 의미를 따 열두장으로 나누어 정리한 책이다. '회심', '경책', '관물', '교유', '지신', '독서', '분별', '언어', '경계', '통찰', '군자', '통변'의 각 장에는 제목에 들어맞음직한 옛 사람들의 글들이 주옥같이 담겨져있다. 무엇보다 옛 글 하면 그저 중국의 오랜 학자들을 떠올리는 '사대적인' 사상을 통감하며 내가 이제까지 얼마나 우리나라 고전에 대해 내 조상들의 생각에 무심했는가를 깊게 반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살아가는 방법이나 원칙들은 하나 변한 게 없어서 물질적인 풍요가 아무리 번창을 하고 세상 살기가 편해졌다고 해도 인간 본연의 자세에 대해 말하는 글들은 그 어떤 것들보다도 내 머리끝을 서늘하게 하는 힘이 있다. 때론 경고를 하고 때론 힐책을 하고 때론 마음을 잘 다독거리는 글들 속에서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백년도 못살 인생에서 나를 잃고 나의 빛을 저버리고 그저 그렇게 지냈을 수도 있는 세월들을 돌아보며 날이 시퍼렇게 선 사람의 생에 대해 고민했었다.

우리는 흔히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외국의 사상, 외국의 인물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뭔가 유식한 것 같고 고상해보인다는 착각도 간혹 하고 꼬부랑 영어를 아는 것은 우쭐해대지만 한글 이전에 조상들이 사용했었던 한자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서양이나 중국의 철학자들 이름은 줄줄이 꿰면서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는 늘 헷갈려하곤 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토양에서 역사를 함께 하며 살았던 선조들의 사상과 정신은 내가 모르는 새에 나의 DNA에 새겨져 나를 형성하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을 것임을 새삼 느낀다. 나라는 현재의 존재가 과거의 존재들 없이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면 개인은 나의 집안 어른들의 역사를 통해 규정되고 더 크게 보아 한 민족의 역사를 체화하여 이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말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우리 조상의 사상이 얼마나 깊고 올곧고 이 시대에도 충분히 귀감이 될 만한 것들인가를 느낄 수 있고 글 하나하나에서 전해지는 감동도 클 뿐 아니라 나의 역사의식과 옛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을 확인할 수 있어서이다. 아울러 옛 글 옆에 주석처럼 단 정민 교수의 글들 또한 못지않게 정갈하고 마음을 울리는 글임을 말하고 싶다. 글을 올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 글들 자체만으로도 삶에 대한 바람직한 애정이 담뿍 느껴져 가슴이 뻐근했었다.

맨 마지막 장에 조희룡의 글에 덧붙여 쓰여진 저자의 글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아마도 이 글이 이제까지의 나의 중언부언을 요약하고 저자가 이런 책을 펴내게 된 마음가짐을 잘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로워보이는 것만 있을 뿐이다. 물건이야 전에 없던 것들이 날마다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세상 사는 이치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정말 새로워보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옛것을 적당히 바꿔 새롭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고전을 공부하는 까닭이다. 어떤 새롭고 유용한 것도 옛것 속에 이미 다 들어있다. 파천황의 새것은 어디에도 없다. 고치고 다듬는 가운데 조금씩 변화해가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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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4-23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갈한 리뷰입니다.^^

달팽이 2005-04-2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군요...책 사서 봐야겠습니다.ㅊㅊ

비연 2005-04-23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좋은 책입니다..한번 꼭들 보세요~

강한벌레 2005-04-25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 때 읽었던 정민 교수님의 책.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그 분의 <미쳐야 미친다>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비연 2005-04-25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한벌레님..반갑습니다^^ 제 서재에는 처음이신 듯.
정민 교수님의 책 '미쳐야 미친다'도 읽고 싶군요~

2005-04-28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05-04-2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정말 넘 기쁘네요^^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권할 수 있다는 건, 가슴깊은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같아요.
꼬옥 읽으시고 리뷰도 올려주세요~^^
 
일렉트릭 유니버스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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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다른 분들 리뷰에도 조금씩 언급이 되긴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당혹스러운 표현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고 저자의 알듯 모를듯 드러나는 '엘리트' 의식에 약간의 반감마저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모순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잘 쓰여진 책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전기'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역사를 관통하는 흐름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써내려간 저자의 문장력에는 감탄해 마지 않는 바이다. 머릿속에 지식이 있고 읽은 책이 많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흥미를 적절히 유발하며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모두 탁월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일상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전기'라는 소재를 통해 과학이 어디 먼 별나라에 우주선을 띄우는 거창한 프로젝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흔히 주위에서 발견될 수 있는, 그리고 거기에서 충분히 문제의식을 도출할 수 있는 것임을 알려주자는 면에서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는 생각일 들었다. 아마도 자라나는 아이들, 혹은 그냥 일반인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좀더 자연과학이라는 분야에 매력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중간중간 이론을 설명하면서 전문용어도 나오고 복잡한 이론을 단순화하다보니 더 얽히는 부분도 있는 듯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아주 훌륭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 공기라든가 물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잊고 사는 건 인간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오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저자의 서문에서 말했듯이 하루라도, 아니 단 몇 분이라도 없으면 우리의 인생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대상을 우리는 마치 '항상' 있을 것이라 착각한 채 살아간다. '전기'라는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최초에 '전기'라는 힘을 몰랐을 때 우리의 선조들은 지금같으면 몇 시간이면 할 일을 몇 주 몇 달에 걸쳐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최초의 발견'은 근사한 이론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과학자의 '실행'에서 비롯된다. "현상 아래 숨어있는 원인에 대해 고민하는 게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저 착실히 이것저것 만지작거려보는 게 한걸음 더 나아가는 최선책일 때도 있는 법이다." 조지프 헨리는 현상에 대해 고민하고 필요에 의해 전보라는 것을 발명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기'에 대한 흥미는 수많은 과학자들을 거쳐 급진적인 발전과 맞물렸고 이제 현대에 이르러 전기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형성되게 되었다.

과학자들도 인간인지라 알고보면 사악한 사람도 있고 동성애자도 있고 성격파탄자도 있고 그러리라 상상은 하지만 야사 비슷하게 저자가 엮어내는 이야기 꾸러미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 우습다 싶기도 했다. 발견과 발명을 둘러싼 암투, 정치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에디슨처럼 우리에겐 천재소년으로만 인식되던 사람도 그저 "양심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빈" 사람으로 나타나지고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억압들이 비일비재했음을 보여주는 등 일련의 이야기들은 '전기'라는 어쩌면 좀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를 우리 인간사의 한 토막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가 결국은 '전기'에 의해 이루어진 생명체임을 막바지에 다다라 알게 될 때는 경외감마저 생겼더랬다. 흩어져야 할 세포들이 한데 모이고 그들에게 역할이 부여되며 그 속에서 가장 결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전자의 움직임, 즉 전기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말이다. 결론적으로 '전기'는 세상 모두를 지배하는 하나의 힘이리라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생명체와 그 생명체가 존속하기 위한 배경을 support 하는 유일무이한 힘. 요즘 자연과학에 대해 떠올리면 대부분 돈 안되고 어렵기만 하다고 인식하는 많은 사람들이 꼭 읽고 세상에 대해 이해하는 도구로서의 과학임을 깨달았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해졌다.

또한 잘된 번역과 편집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과학을 전공한 번역자의 매끄러운 번역과 친절한 안내글들이 읽으면서 버거울 수도 있을 법한 많은 사람들을 구해주었으리라 생각한다. 편집과 디자인 또한 매우 훌륭해서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둔 채 쳐다만 봐도 흐뭇함을 유발한다.  과학이라면 넌덜머리를 낸다거나 어려운 용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읽고 싶어도 고개를 돌리기 힘든 사람들, 혹은 잘 알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수이 읽혀지는 책일 것이다. 모르면 알게 되어서 알더라도 그 하나의 맥락을 짚어나가게 되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 짐작한다. 우주의 생성원리와 생명의 신비가 한 주제로 통일하여 설명될 수도 있다는 것에서 저자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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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4-2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글에 왜 아무도 댓글도 추천도 없을까요? 의아해 하며 댓글답니다요^^
과학과는 멀리 산 사람이라 아직도 낯설긴 하지만 그래도 가까이 가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지요. 님의 글을 읽으니 역시 읽고 싶게 쓰셨군요. 님의 독서는 참 방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 읽었어요.

비연 2005-04-2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홋! 미네르바님...그저 감사하는 말씀 밖엔.
다들 넘 리뷰를 잘 써주셔서 부끄럽다 했는데요...
님의 리뷰도 늘 잘 읽고 있습니다...저야말로 님의 독서량에 늘 감탄하는걸요~

설박사 2005-05-19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기에 이루어진 생명체라... 저자가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했네요.. ^^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비연 2005-05-19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설박사님...제 서재에 왕림을!^^ 넘 반갑습니다..
 
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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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 신입생 때였다. 비교적 늦게(?) '모모'라는 책을 접한 건 이 나이에 무슨 동화야 라는 알량한 허위의식이 내게 있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고...아뭏든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많이 알려져 있음에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그 해 생일에 교회의 동급생 친구가 불현듯 그 책을 선물로 건네주면서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나이에 맞지 않는 친구의 조숙함과 진중함에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데다가, 책이란 모름지기 자기가 읽어보고 선물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게 주기 전 그 책을 자기가 먼저 보았다며 괜챦은 책이라 말하던 그 친구의 성의에 감동하여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모모'라는 책이 그저 그런 동화가 아니라는 느낌으로 가슴이 벅찼었다. 덕분에 미하엘 엔데라는 작가는 다른 작가와는 조금 틀린 이미지로 내 머릿 속에 자리잡히게 된 듯 하다.

이 책이 나왔을 때 한번 더 망설였다. 혹시 그 '모모'라는 책에서 받았던 느낌이 다는 아닐까 환타지 동화라는 쟝르가 과연 더 이상의 인생에 대한 얘기를 담보할 수 있을까 라는 잡다한 걱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신뢰를 담아 이 책을 골랐고 지금 다 읽고 나니 예전 그 당시의 가슴 벅참이 다시 밀려오는 듯 하다.

역자 후기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거창한 말로 문명을 비판하지 않아도, 난해한 용어로 철학적 사항을 설파하지 않아도 그 이상의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얻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엔데의 작품들이 지닌 힘이다." 이 문장이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정말 잘 정리한 것이 아닐까 한다. 나의 상상력을 너무나 뛰어넘는 작가의 환타지에 약간의 기괴함까지도 느껴지지만 그 상상력의 저변에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철학,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 문명에 대한 냉소섞인 서늘한 분석 등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구술하지 않아도 내 정신에 이미지로 각인되게 하는 힘이, 그의 소설에는 있다.

이 책은 표제인 '자유의 감옥' 이외에도 7가지의 중단편을 담고 있다. '긴 여행의 목표', '보르메오 콜미의 통로', '교외의 집', '조금 작지만 괜챦아', '미스라임의 동굴',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 '길잡이의 전설' 이라는 제목을 가진 각각의 글들은 일면 말도 안되는 얘기들의 나열로 보일 수 있지만 기실은 지금의 나, 혹은 그 언젠가의 나와 세상에 단단히 발을 붙인 채 서술되어지고 있다. 작가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독창적으로 풀어가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 속의 자신과 그 너머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혹은, 문명 세계라는 정글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생각도 이끌어내며 사람이 인생을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를 되짚어보게 한다, 아주 강력하게.

'내 앞엔 나의 길이 놓여 있다. 나, 막스 무토는 이미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막스 무토의 비망록 中).' 수많은 상념들이 교차되며 때아닌 철학적 화두에 복잡한 심경이 되었을 지라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누구도 부럽지 않은 나였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미하엘 엔데가 말하고자 했던 꿈(이걸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면 말이다)이 나의 혹은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하나의 빛으로 늘 존재할 것임도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냥 이야기라기 보다는 사람의 본질 속에서 꿈틀거리는 가치의 문제들을 쉼없이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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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4-11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벤트하는데, 사려고 보관함에 넣어 놓았어요. 단편모음집이였군요. 좋아라!

비연 2005-04-1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잘하셨어요! 넘 좋은 책입니다~~^^

비로그인 2005-04-1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읽었지요..;; 곧 리뷰쓰려하는데.. 편견(?)이 생길까봐 클릭한 후에 내용은 읽지도 않고, 얼른 댓글로 내려왔습니다...(--!!)

비연 2005-04-1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멋진 리뷰 올려주세요~~ 꼬옥 읽을께요^^

미네르바 2005-04-28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리뷰 쓰고 나서, 님의 리뷰 읽어 보았어요. 님의 리뷰도 참 좋았어요. 정말 좋은 책이지요? 아무래도 사야 되겠어요.

비연 2005-04-2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소장해두시면 더욱 좋은 책이죠~ 이 작가, 참 대단하다 싶어요~
 
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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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랬으리라 생각되긴 하지만, 내가 이 소설을 고른 건 표지 때문이었다. 내게는 매우 낯선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이고 '북구의 모나리자'라고까지 불리어진다는 유명한 이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번쯤은 눈길을 머물게 하는 마력이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 단언한 것처럼, 이 작품 속의 소녀의 분위기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트라는 열여섯살 짜리 소녀가 타일공이었던 아버지의 사고로 집안이 기울자 베르메르댁의 하녀로 들어가게 되면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사려가 깊고 늘 많은 생각이 있는 그리트는 곧 다른 하녀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게 되고 베르메르의 그림 그리는 일을 돕게 된다. 물감을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약재나 돌을 곱게 가는 일은 그리트의 마음을 떨리게 하고 처음부터 아련하게 가지고 있던 '그' 즉 베르메르에 대한 동경심을 더욱 크게 만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급기야는 많은 사연 끝에 베르메르의 그림을 위한 모델이 되는데...

어리고 가난한 소녀가 화려한 예술가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면서 조금씩 달라져가는 모습을 이 소설은 매우 섬세한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소박한 개신교도의 집에서 늘상 보아오던 환경에서 떠나 성모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이 여기저기 걸려있고 노란 공단 망토와 진주 목걸이를 한 여주인이 있는 집에 머무는 것은 소녀에게 두 집 어디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는 공허함을 안겨주게 된다. 그리고 말없이 그림만 그리는 주인의 모습에서 이 상황들을 잊게 할 피난처를 발견하고 그의 그림들 속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게 되는 흐름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또한 하녀와 주인이라는 관계. 권력을 가진 자와 그 아래에 있는 자, 그리고 그것이 묘하게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규정된, 혹은 화가와 모델의 역할로 규정된 상황에서 느껴질 수 있는 사소하면서도 강한 끌림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그려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실존인물이었던 반 레이원후크라는 인물이 소설에서 말하듯("너 자신으로 남아있도록 해라."....."그런 말이 아니야. 그의 그림 속에 있는 여자들....그 여자들을 그는 자기의 세계에 가둬놓고 있어. 너 역시 거기에서 길을 잃을 수 있어.") 어쩌면 그리트와 '그'의 관계는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는, 그 속에는 가난도 없고 빚도 없고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고 복잡한 인간관계도 없는 그저 순수하고 투명한 세상 속에 갇혀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관계가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는 건 그 감정의 결이 너무 고와서, 그리고 끝내는 서로의 떨리는 손길과 뜨겁게 부딪히던 눈길만이 뒤에 남겨져서일 게다.

주변 인물들의 설정도 하나하나 살아있다. 철저하게 그 당시 그림들을 분석하여 만들어낸 도시의 모습과 한 명 한 명의 성격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여자로서 육감적으로 그리트를 멀리하는 카타리나와 코넬리아의 미묘한 질투심, 같은 하녀이고 더 오래 그 집에 머물렀지만 여전히 늘 그런 상태인 타네커의 냉정함, 여자이지만 좀더 큰 구도 속에서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큰 마님, 마리아 틴스의 중량감, 돈으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믿는 전형적인 캐릭터인 반 라이번의 탐욕스러움, 가난 속에서 딸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그리트 부모님의 의혹과 떨림 등이 정말 실존했던 인물인 양 아귀가 딱 들어맞아 소설 읽는 재미를 한층 더했다.

그리트를 사랑하는 푸줏간집 아들 피터가 "넌 네가 속하지 않는 세계에 점점 마음을 빼앗기고 있어, 그리트. 그 사람들의 세계는 너의 것이 아니야." 라고 말했듯, 그리트는 영원히 빠져버릴 듯했던 그 세계에서 과감히 나와 '핏물이 든 손톱과 앞치마'라는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유를 얻는다.

작가는 그림 한 점에서  느껴지는 감상들을 바탕으로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 살아있는 세계 이상의 그 무엇을 구현하는 재주를 보여주었다. 그저 그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질 수 있는 그 시대의 사회구조와 생활상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마음 저변의 짙은 감정들을 세세하게 들어내어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어느새 그들의 세상에 흠뻑 빠지게 한다.

읽는 내내 마치 아름다운 시 한 편 읽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신비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소설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는데 이 감정의 미묘한 線들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궁금해서라도 한번 꼭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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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4-03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님의 찬찬한 리뷰를 보니 정말 이제는 더 못버티겠다 싶어요. 저두 조만간 읽어야겠어요 ^^ 추천합니다!

비연 2005-04-03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감사해요^^ 저도 방금 님의 서재에 들어갔었는데..ㅋㅋ

미네르바 2005-04-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의 섬세하고, 정결한 리뷰에 감탄합니다. 이 책 보관함에 담겨진 지 오래였는데, 더 이상 못참겠네요. 다행히 저희 학교 도서관에 이 책이 있네요. 어서 빌려 읽어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추천!!

비연 2005-04-0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과찬의 말씀을...넘 감사합니다..^^
 
팝콘심리학 - 개정판, 톡톡 튀는 9가지 맛 영화 속 심리이야기
장근영 글.그림 / 제이앤북(JNBOOK)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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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님 이벤트(?)에 당첨되어 선물받은 책이다. 겉보기에도 재미있을 것 같고 영화를 많이 좋아하는 편이라 읽던 책 덮자말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도 읽고 버스에서도 읽고...결론은 무조건 재밌다는 거다.

영화라는 대중매체는 종합문화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매우, 아니 어쩌면 가장 친근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소위 영화평론가들이라는 사람들이 올리는 평론들을 보면 사실 좀 버거울 때가 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 영화에 감독의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는지를 알아내야 하는 시험이 아니다...라고 이 책의 서문에서 말했다시피 이 영화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기에 관련된 영화관련 전문용어들을 쏟아부으며 설명하는 그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보았던 영화 한편이 매우 무겁게 다가옴은 물론이요 그런 것도 하나 간파하지 못한 나의 무지함과 얄팍함을 어느새 자학(?)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 좀 씁쓸해질 때가 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추천할 만하다. 영화평론가가 아닌 심리학도로서 그저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의 입장을 실어 아주 편하게 술술 풀어놓은 글들을 읽노라면 아하~ 하고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어려울 수도 있는 심리학적 용어들을 군데군데 풀어놓고 있으나 그 인용들이 마치 수다 떨다가 불쑥 얘기하는 것처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말하자면 옆에 심리학을 좀 아는 친구 하나 앉혀 놓고 함께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아작아작 씹으며 설명을 듣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할 말은 다 한다는 게 또 장점이다. 그저 그렇게 주절주절 얘기만 한다고 재미있어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적어도 내용이 담보되어야 그런 편안함도 다가오는 법으로, 적절한 비유와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들이 잘 버무려져 한 편의 영화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즐거운 관점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받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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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3-2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누가 추천했을까요???^^

비연 2005-03-26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