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공주
카렌 두베 지음, 안성찬 옮김 / 들녘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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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용은 간단하다. 옛날 옛적 눈으로 덮여 있는 외딴 나라에 지참금은 보잘것없지만 눈부신 미모를 지닌 리스바나 공주가 살고 있었고 어느날 따뜻하고 부유한 왕국 바스카리와의 디에고 왕자가 그녀에게 반하여 구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를 사모하는 또 다른 기사 브레두르에 의해 해프닝이 연출되고 그로 말미암아 거절당한 디에고 왕자가 급한 김에 공주를 납치하여 자신의 나라로 데려가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 이야기에도 다른 환타지 소설마냥 마법사니 용, 기사, 난쟁이들이 등장하기는 하나, 기실 이 작품은 현대의 우리가 환타지에 잘 녹아난 설정이라고 생각된다. 상처입은 주인공들, 까닭없는 명예욕에 사로잡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 않은 리스바나 공주나 자신을 미워하고 불신하는 아버지를 둔 브레두르 기사나, 정원을 돌보느라 아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어머니를 둔 덕분에 철저한 채식주의자가 된(동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식물을 모조리 먹어치우려는 의도로) 디에고 왕자나 밖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으나 안에서는 곪아가고 있는 그 무엇들 때문에 자신을 속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1년여동안 서로 수없이 엇갈렸다가 만났다를 반복하면서 경험하는 숱한 일들은 비단 경륜만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좀더 귀를 기울이는 성숙한 사람들로 진전되게 한다. 무작정 독점하려 하고 알고 있는 것에만 복종하려 하던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모습을 벗어나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각자의 속에서 울려퍼지는 실제의 마음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커가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말하자면, 이 소설은 환타지의 양식을 빈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때론 좀 지루하기도 했었다. 사건 면면은 놀랍기도 하고 박진감이 넘치기도 했고 안타까움에 가슴 조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절제된 문체여서 그랬던 듯 하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마치 내가 이들과 긴긴 인생역정을 함께 한 것 같은, 어쩌면 우정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조차도 한층 컸다는 느낌까지 가지게 했다.

무엇이 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세 주인공이 마음이 원하는 선택을 하고 각자의 길을 당당히 나아가는 마무리는 좋았다. 친구같은 그들이 그 마음으로 주욱 담대하게 살았으면 하는 홧팅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도 한번 더 기운내라고 얘기한다. 내 속의 기운에 응답하는 사람이 될 것을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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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헤리엇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개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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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리나라 책 제목이 원서의 제목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찾아보니 원저의 제목은 "James Harriot's Dog Stories"라는 매우 평범한 것인데 반해 우리나라 책 제목은 "수의사 해리엇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개 이야기"라니. 내용과 너무나 딱 들어맞는 제목에 고마움마저 느낀다.

사실, 신문에서 많이 선전하는 걸 보았었지만 그다지 흥미가 끌리지 않아 그저 지나치기만 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마태우스님의 리뷰를 읽고 충동적으로 구매를 했더랬다. 왠지 이 쌀쌀한 겨울날에 마음에 난로 하나 지펴줄 책인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리고 참 잘한 선택이었노라고 읽는 내내 흐뭇했음을 고백한다.

제임스 해리엇이라는 수의사가 영국의 요크셔라는 곳에서 한평생을 보내면서 만나게 된 동물들과 그 동물들을 가족처럼 여기는 순박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쓴 이 책은, 사랑이라는 게 뭔가 인연이라는 게 뭔가 라는 아주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더없이 편안한 답을 들려주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그 개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해서, 거칠고 투박하기도 하고 멋지고 으리으리하기도 하고 외롭고 적적하기도 하고 바글바글한 가족 틈새에서 정신없이 지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르지 않은 점이 있다면 마음에 품고 있는 동물에 대한 속깊은 애정과 더불어 삶에 대한 따스함에 있다.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들이 돌이켜보면 큰 사건이라기보다는 정말 소소한 일상 중의 작은 파문과도 같은 일들이지만 수의사 해리엇은 그 속에서 정을 발견하고 사람들의 잘 드러나지 않은 깊은 속을 느끼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곤 한다. 따뜻한 시선이라는 것이 이런 거로구나 느껴질 정도로 그의 글 마디마디마다 배여있는 애정과 진실은, 읽는 사람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져 한번도 보지 않은 그 먼먼 나라의 작은 시골 사람들을 곁에 사는 사람인 양 가까이 느끼게 하고 그들과 수의사 해리엇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작은 행복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삶이란, 결국 그렇게 모나지도 또 그렇게 뭉툭하지도 않은 긴긴 길이라는 생각을 한다. 충격적이고 뭔가 번쩍이는 그 무엇이 삶의 곳곳에 도사리기 보다는 평범한 일상들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리만치 반복되면서 한 세상 살아가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결국 나를 풍요롭게 하고 따스하게 하는 것은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 친지, 이웃들과 함께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멀게 느껴지지 않고 마치 나의 이웃인 듯 친근하고 정감있어서 좋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개'와 삶을 같이 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 이야기라는 면에서도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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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11-2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비연님. 따뜻한 책 한 권 들고 오셨군요 ^^
추천합니다.

비연 2005-11-2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모~ 플레져님..감사합니다^^ 잘 지내시죠? ~.~

panda78 2005-11-29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을 전하는 개 이야기도 보셨어요? 저는 첨 나왔을 때 한권 사면 한권 끼워주는 행사해서 그 때 장만했거든요. 넘넘 좋아해서 마땅히 끌리는 책 없을 때면 집어드는 책이에요. ^^ 저도 추천하고 가요. ^ㅂ^

비연 2005-11-29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보셨군요?^^ 정말...곁에 두고 간간히 들춰보고 싶은 따뜻한 책이에요...
 
모래 폭풍이 지날 때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4
캐런 헤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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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리뷰다. 사실 이 책은 리뷰를 쓰겠다고 신청해서 받은 책이고 분량이 많지 않아 금세 읽어놓고서도 리뷰 기한을 지키지 못한 채 걱정만 하다가 그 때의 감흥이 살아나지 않아 급기야는 다시 읽고 나서야 이렇게 리뷰를 쓰게 된, 그 책이다. 또한 두 번을 읽어도 마음에 슬픔이 번져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여 선듯 손이 가질 않는, 그런 책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열네살 소녀 빌리 조다. 미국의 경제공황기에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는 척박한 땅에서 밀농사를 짓는 아빠와 엄마를 둔, 그리고 피아노 치는 것을 사랑하는 평범한 소녀다. 어느날, 엉겁결에 집에서 일어난 화재 중에 실수로 던진 불덩이가 엄마에게 옮겨 붙어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뱃속에 있던 동생도 죽게 되는 사고가 난다. 피아노를 치기에 잘 어울렸던 손은 망가졌고 가족은 아빠와 단 둘만이 남게 되면서 소녀는 힘들어진다. 세상은 비가 오면 환해지다가도 모래 폭풍 한번에 버걱거리는 모래를 치우며 불행을 곱씹게 하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아빠와의 서먹함으로 사는 게 재미 없어지고 피아노를 칠 수 없어 절망스러운 시간들이 흘러간다.

빌리 조의 가난한 가족은 착했다. 엄마는 먹을 것이 없어 뼈만 남았어도 찾아온 자선 단체 사람들에게 '사과 소스 세 단지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 그리고 또/태어날 아기를 위해 손수 짠 잠옷을 기부하는' 분이었고 아빠는 보잘것 없는 식탁에서도 '오늘 저녁 감자 요리는 정말 풍성하고 저녁 식사에 초콜릿 우유라니 우린 정말 호화롭게 살쟎아!'라는 말로 위로할 줄 아는 분이었는데, 그 가족에게 닥친 불행은 작은 소녀 뿐 아니라 읽고 있는 나까지도 막막해질 만큼 절망스러웠음에 원망하는 마음이 인다.

서로가 이 불행의 원인자인 양 책망하는 마음을 품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느닷없이 찾아오는 모래 폭풍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절망감이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지. 이 책은 짧은 글들로도 충분히 묘사하고 있다. '나는 아빠가 무서워./그리고 짜증이 나./나는 혼자 있고 싶지만,/혼자 있게 될까 봐 겁이 나기도 해.'라는 빌리 조의 말은 어린 소녀의 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실이 암담하여 도피하고자 기차를 탄 소녀는 문득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지에 대해서 알게 된다. '아빠의 슬픔과 내 슬픔이/두 배로 내리눌러도/아빠는 가정을 지켰어./내가 그것을 깨버렸어./' 집으로 다시 돌아서는 길에서 아빠와 딸은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어./등유 한 양동이를 부엌에 갖다 놓은 것조차도./.../내 자신을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내가 저지른 모든 일들도.'

모래 폭풍으로 묘사되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 열네 살 밖에 안된 어린 소녀가 자신을 성찰하고 주위와 자신을 용서하는 모습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무리없이 잘 그려진 소설이다. 간혹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여겨질 만큼 갑갑하고 어렵다 느껴질 때가 있겠지만, 그래서 어느 순간 이 길을 그냥 벗어만 나면 좋겠다는 생각에 몸부림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같은 자리에서 길을 내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한다. 소녀는 현실에서 해결점을 찾은 것은 아니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용기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대신 품음으로써 현실에 맞설 수 있는 실마리를 잡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나고 있다.

책을 덮으면서 아직도 한참 어린 이 소녀가 더 커가면서 처하게 될 많은 곤경들 속에서 지금의 이 마음으로 잘 살아나가길, 마치 내 옆에 있는 누이에게 바라는 마음인 양 진심으로 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자신의 것으로 하기를 함께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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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9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05-11-09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다 고쳤습니다...급하게 쓰다보니..그만...감솨감솨^^

미네르바 2005-11-09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들이 리뷰 쓴 것도 몇 편 읽어보았어요. 책으로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 막막한 현실에 그냥 가슴이 답답해져 오네요. 한번 읽고 싶어졌어요.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데...

비연 2005-11-0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짧고 단순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책이랍니다. 꼬옥 읽어보세요...^^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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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싶어지는 책이 있다. 이런 책을 왜 이제야 만났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저자가 이제 책을 자주 내지 못하는 혹은 아예 낼 수 없는 상황인 경우 더 이상 책을 통해 만날 수 없는 그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그리워져서 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은 이 두 가지 이유 모두에 해당하여 내 가슴팍을 치게 만든다. 오주석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 책을 접했다는 것이 안타까움을 넘어서 슬픔으로 다가온다.

비단 우리나라 전통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았다고 해서는 아니다. 필시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열심으로 풀어 쓴 책은 많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도외시하고 있는 분야에 목매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꽤 된다고 본다. 그런 책들이 주는 감동도 진한 감동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어쩌면 나의 DNA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조상의 정신을 일깨워 주는 저자의 따뜻하고 애정어린, 그러나 예리한 시선이었다. 마치 내 속에 잠재되어 있었고 알고는 있었으나 그 실체를 정확히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무엇을 한꺼번에 일으켜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감동은 감동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지난 교육에서 항상 그랬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저 당쟁과 전쟁으로 얼룩지고 초기에만 반짝 잘 지내다가 중기 이후에는 지리멸렬하게 겨우 목숨이나 연명하는 부끄러운 역사였다. 고려나 고구려의 당찬 기상과 그 자유로움은 온데간데 없고 성리학이라는 학문에 얽매여 개인을 옥죄고 사상을 강제하고 그래서 결국은 나라까지 일본에게 팔아먹은 나라이니 그렇게 여길 만도 하다 싶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 500년을 지켰던 나라에 대해 그 문화에 대해 그저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아왔고 어쩌면 지금도 그런 지 모른다.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오주석 선생님은 그게 아니라고 단호히 말한다. "조선은 519년동안 계속된 나라이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큰 전쟁이 지난 다음에도 280년이나 더 지속되었습니다. 중국에선 280년 된 왕조조차 드뭅니다. 일제의 정체성 이론이라니, 원 세상에 시들시들한 채로 오백년이나 지속되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조선이라는 나라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성리학이 지도 이념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검소하고 도덕적인 그러면서도 문화적인 삶을 영위했습니다." 이 말이 국수주의적으로 들리지 않는 건 책 전반에 펼쳐진 조선이라는 나라와 그 시대를 살았던 선조들의 문화적 깊이를 충분히 느껴서이리라.

김홍도의 그림을 대부분 예로 들고 있지만, 그 속에 묻힌 깊은 뜻 수백번의 붓질을 통한 정성 어디에나 배어있는 해학 등은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우리가 흔하게 그냥 옛 그림이겠거니 하며 지나치던 그림들이 오주석 선생님의 해설 속에서 하나 하나 살아나고 그 뜻이 새롭게 떠오를 때마다 이게 역사라는 거구나 이게 전통이라는 거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서양 문화에 매달려 마치 그걸 모르면 교양 없는 사람인 양 취급받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나, 그리고 우리의 옛모습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것을 부끄럽게도 생각하지 않는 건 어떻게 설명이 되어야 하나. 귓불까지 빨개질 일이다.

이 책은 이런 역사의식을 꼭 느끼지 않아도 값어치 있는 것이, 각 그림마다 붙이는 해석이 너무나 섬세하고 애틋한 데다 주변 정황 설명 또한 일품이라 그림을 잘 감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바로 알게 한다. 왜 김홍도의 그림에 고양이와 나비가 나오고 게와 갈대꽃이 나오는지, 왜 사람이 서있는 모습과 바라보는 풍경의 각도가 틀린 건지, 그림 옆에 명필로 쓰여진 글들이 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등등 이루 헤어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이 그림 한 폭에 담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부터 경이로움의 시작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분의 육성으로 강연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싶어 눈물이 날 정도였다. 오랜 시간 공부하면서 자신이 느꼈던 우리나라 옛 문화의 아름다움, 선인들의 정신, 그 깊이를 누구에게나 공유하고 싶어하는 선생님의 심정이 절절한데 그것을 다 안고 피안의 세계로 미리 가버리신게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직접 듣고 그 마음을 직접 느낄 수 있다면...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미련은 이리도 깊다.

친구가 다음 달에 외국에 여행을 오랫동안 가게 된다는 연락이 왔다. 그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망설였는데 이 책을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나라 문화가 너무나 훌륭하고 이를 연구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고 나가서 외국 사람들 한 사람에게라도 알려주는 것이 우리가 배낭 매고 외국 나가는 의의 중의 하나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하나하나의 행위가 이 책을 엮어 내면서 오주석 선생님이 가지셨던 작은 소망들을 우리가 현실화하는 작은 발걸음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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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5-05-22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은 성리학이 지도이념이었는데 중국은 명나라때 이미 실사구시 중심의 양명학으로 넘어갔죠. 임진왜란때도 중국 장수들이 고리타분한 조선 사람들에게 양명학을 몇번 권했습니다만 여전히 선조를 비롯한 지도층은 고집불통이었습니다. 청에게 패한 병조호란 이후에는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았죠. 자신만이 옳다고 고집하면서. 결과는 세계 조류에 크게 떨어진 나라로 남게 되었고 신분해방 요구하며 천주교도가 된 사람들을 수만명이나 처형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도 바로 성리학이 있었죠. 한국의 미나 오주석 선생님의 글이 나쁘다는 건 아닌데 색깔로 강조된 내용에는 동조하기 어려워서 글을 썼습니다. ^^

비연 2005-05-23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좋은 지적입니다^^ 저도 사실 그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니지만, 오주석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성리학이 후반기에 가서는 그렇게 되었지만 전중기까지는 조선의 건국이념으로서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문화적인 깊이를 더하는 데 일조를 했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미네르바 2005-06-03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읽어봐야지 하고 오랫동안 보관함에 담아 놓았는데, 님 리뷰를 읽고 나니 어서 이 책부터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읽을 책은 늘 쌓여가는데, 시간은 좀체 나지 않으니...(알라딘에서 있는 시간 좀 줄이면 될까요? ㅎㅎ) 잘 읽었어요. 추천!

비연 2005-06-0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미네르바님^^ 방가방가~ 제 미흡한 글에 추천을 주시니 넘 감사하구요.
저도 쌓여가는 책들을 보면 한숨만 푸욱 나네요. 읽고 싶은데 시간은 없구..ㅠ.ㅠ
우리 힘내서 짬짬이 계속 읽어나가요! 아자아자!!

Phantomlady 2005-06-26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비연님의 리뷰와 사마천님의 댓글을 보니 궁금합니다.
늦었지만 보관함에 담아요. ^^

비연 2005-07-1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nowdrop님...늦게 님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흠냐.
한번 읽어보셨으면 해요. 누구의 논점이든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 순수함이
글에 빛을 더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요즘처럼 말만 번드르르한
세상에 마음을 다해 무언가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의 소리는...가슴을 울리죠.

별처럼 2005-09-01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의 지적은 날카로운 것 같습니다.

justcool 2005-11-2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적 날카롭죠. 그치만 지금 우리역사 나아가 현재의 대한민국까지, 우리에겐 '우리것'에 관한 애정보단 너무 지적과 비판이(나아가 비난에서 자조까지) 앞서지 않나 싶습니다. 지적과 비판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성격을 담을 경우 좋지만 그것이 애정을 지나치게(특히 양적으로) 넘어설 경우 '자괴감' 내지는 심한경우 (잠재적) '자기 파괴성' 감정을 건드리는 경우가 왕왕 나온다는게 문제라 봅니다. 일상에서도 자주 '한국은 이래서...' '우리나라가 그렇지 뭐' '조선놈들은 패야 말을 들어'따위의 쓰레기 말들이 사용되는 마당에 이 책의 가치는 약간의 자국 우호 편향적일지라도 그 반대의 경우보단 빛난다고 보는데요. 여러분의 생각은?

비연 2005-12-05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stcool님) 저도 그런 생각에서...이 책을 높이 평가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관점은 틀릴 수 있고...또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모든 사안을 국수적으로 몰아가는 경향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아 냉철한 자세를 견지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justcool 2005-12-08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제 글과 국수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겁니다. 한국인 개개인의 의식에는 조선으로 표현되는 자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자긍심보다는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이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봅니다. 님의 말처럼 국수적이다 국가우선적이다 라는 것은 아무래도 현재 미디어나 공공의 입장에서 왕왕 드러나 그렇게 보여지지만(일례로 음식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짜게 먹는다는 뉴스에 이어지는 말은 항상 '국가 이익 좀먹는다'이런 거죠. 사회나 개인의 문제 대부분을 국가차원으로 연결시켜 대중의 행동을 제약하지 않습니까?) 그건 이 역사 문제와는 거리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국사 교과서의 편향적 기술이라든지 이런건 인정합니다만은 사실상 우리가 전통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건 님께서도 잘 아시는 문제일 테죠(마치 결여된 그 문제에 대한 심리적 보상을 지금에서야 하려는 듯 보일정도로).

거기다 당시의 국가를 찬양 일색으로 그린 책도 아니라 예술적인 면에서, 정신-사상적인 면에서 이 책의 가치는 아주 색다르고 높다 이런 생각입니다. 님도 아실테지만 국가를 앞세운다 이런 차원은 아니란 거죠. 저 역시 그런데는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고 ㅎ

비연 2005-12-19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ustcool님) 흠...제가 국수적이라고 단어를 사용한 게 좀 잘못된 거 같네요...저도 이 책을 그런 관점에서보다는 우리 문화의 가치를 보다 정갈하고 애정어린 문장으로 묘사함으로써 예술적으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 추세는 우리 것을 얘기할 때 지나치게 국가와 연결하여 득실을 따지려고 드는 게 문제라고 보구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 오래된미래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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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가 두번째 잠언 시집을 내었다. 알라딘에 냉큼 주문하고 받아든 책은 표지의 도안이나 감촉부터가 마음에 꼬옥 들었다. 무엇보다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의 '초대'로 시작하여 같은 이의 시 '춤'으로 끝나는 이 시집은 읽는 이에게 알 듯 모를 듯한 행복감을 안겨주는 좋은 책이었다.

많은 시들이 실려 있지만 하나하나가 다 인생과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냥 시시덥하게 누구를 사랑했네 누구를 그리워했네 라는 얘기가 아니라 산다는 건 생존 이상의 그 무엇이며 육체의 몸을 빌어 이 땅에 존재하는 영혼들은 그래서 삶을 잘 살아나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잘 살아가는 건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에 대해 애정을 가지며 세상에 대한 열렬함을 마음에 지니는 것이라고도 한다. 어찌 보면 도덕경같은 이야기들이 운율을 따라 노래처럼 내게 다가와 심장을 에워싸고 머리에 향긋함을 더한다. 

내게 있어 시는 학교에서 시험치기 위해 배우는 것에 불과했다. 시인들이 말하는 건 너무나 천편일률적이고(조국을 노래하거나 연인을 흠모하거나 하는 것들 돌려 말하는 것에 불과한) 그걸 해석하는 것도 너무 진부해서 그다지 호감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 실린 시들을 눈에 담아가면서 내가 시와 제대로 된 만남을 거의 못했었음을 깨닫는다. 아주 먼 옛날의 선조로부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방대한 스펙트럼 속에 살았던, 많이 알려졌거나 혹은 아예 몰랐거나 하는 사람들의 글들을 한데 모아 보니 그들이 느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것이구나 생각된다. 시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반을 이루는 마음들을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형식이로구나 하는 생각까지.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하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수십년 전의 삶을 살아가는 듯한 막막함으로 위축되고 늘 비슷비슷한 일상 속에 지루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귀기울여볼 여유조차 없다며 불평하는 동안 시인들은 삶에 대한 애정과 나에 대한 소망,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 하자고 속삭인다. 나는 어느새 그들의 소리에 마음을 실어 그들을 닮아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소리는 맑고 영롱했다. 오염되고 타락한 음성이 아니라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수많은 사람들의 진심어리고 순수한 권고요 초대였다.

시를 외워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 책을 외우는 데에는 그다지 재주가 없는 나여서 얼마나 많은 시들을 외울런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 높여 읽어가며 마음결 내가 원하는 것에 맞추어지는 공명소리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마디로, 팍팍한 삶에 나날이 지쳐가는 우리에게 한줄기 샘과 같은 글들이다. 그리고 시의 리듬에 맞추어 내 마음의 소리를 일깨우는 묘한 힘이 있는 책이고.

우리 모두를 존재 속으로 내쉬는 위대한 들숨과
그 영원한 정지 속에서
나와 함께 춤을 추라.
그 공허감을 바깥의 어떤 것으로도 채우지 말고
다만 내 손을 잡고, 나와 함께 춤을 추라.

<춤> 中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살아가야 한다면 그 삶을 지탱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임을 잊지 말자. 다른 무엇으로 자꾸만 나를 가리지 말고 내 안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그 장단에 맞추어 잠시 빌린 이 육체를 춤추게 하자. 그것이 행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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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2005-05-02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외워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것... 그거 쉽지 않은 일인데, 그것을 느꼈다면 님께 꽤나 감명을 준 책인가 봐요. 학교에서 그것도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시를 일대일로 만나는 것은 쉬운 것 같지는 않아요. 전 그래도 운이 좋아 시는 못 써도 중학교 때부터 마음에 드는 시는 무조건 외워서 지금도 수십편 정도는 그냥 술술 외우게 되네요. 저도 읽고 싶어졌어요. 언젠가 꼭 읽어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로드무비 2005-05-0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눌렀어요.^^

비연 2005-05-0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수십편을 술술술? 홋! 역쉬 님은...배울 점이 넘 많습니다.
저도 이번 기회에 한번 외워봐야겠어요...^^
로드무비님...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