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10 - 미국 : 미국인 편 먼나라 이웃나라 10
이원복 글 그림 / 김영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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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이웃 나라....교양만화의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이 만화시리즈를 제대로 잡고 읽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예전에 친구 집에 놀러가면 아이들을 위해 사둔 책들을 훑어본 적은 있어도 내 돈 주고 직접 사서 시간을 들여 보기는 첨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건축학을 전공하고 유럽에서 장기간 살면서 디자인을 공부한 교수가 자신의 경험과 방대한 문헌자료를 통해 만들어내고 있는 이 책은 사실 만화의 형태만 띄어서 그렇지 성인에게도 참 유익한 내용이 아닐 수 없겠다. 이번 '미국' 편을 산 건, 다른 유럽 나라와는 달리 오묘하고도 가끔 해석이 힘들어지는 그 나라에 대해 뭐라 썼나 궁금해서였다. 매우 잘 아는 것 같지만 기실은 잘 알지 못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말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잘 읽었다. 한번 잡으니 잘 놓아지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만화라고는 해도 워낙 여러가지 얘기들을 실어놓아서 꼼꼼히 읽어야겠기에 시간이 적쟎이 걸렸던 것 같다. 무엇보다 군데군데 섞여 있는 유머러스한 삽입그림들이 이 만화의 재미를 더한다. 정식으로 공식적으로 뭐라뭐라 말하는 대신 누군가가 툭 튀어나와서 한마디 던지는 것에 많은 의미들이 담겨져 있었다. 책 한권 읽었다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다 알게 된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 도움이 된 듯 하다.

왜 정치가 그렇게 짜여졌는지 왜 부시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그들의 지방자치제는 과연 어떤 역사를 지닌 것인지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핵심적인 사람들로 자리잡고 있는 지 등등등...궁금해했었던 내용들을 속시원히 풀어주는 면이 많았다.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의 경우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안들이 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이고 그래서 그 사이의 마찰과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철저히 법과 원칙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도록 만들어두고 어느 한쪽이 큰 권력을 잡을 수 없도록 하는 예비 장치들을 곳곳에 만들어 둔 것이 이해가 되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면에는 불평등과 불합리와 소수의 권력집중이 일어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저자의 관점이라는 것이 배제될 수는 없어서, 보수적인 색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저자의 정치적 성향이란 것들에 대해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겠으나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50~60대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일종의 '향수'같은 것들이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애쓴 점들도 역력하여 어느 정도 한계는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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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2-19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에 6권까지만 나와있었을때 읽었었는데,그 뒤에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더군요.. 저도 언젠간 마음잡고 다시 읽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연 2005-04-17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요즘에 색깔이나 뭐 그런 것들을 새롭게 해서 더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조만간 읽으시고 감상을 제게도 알려주세요~^^**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은 아름다웠다 - 톨텍 인디언이 들려주는 지혜의 목소리
돈 미구엘 루이스 지음, 이진 옮김 / 더북컴퍼니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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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라딘에서 어느 분의 리뷰를 보고 샀던 것 같다, 이 책은. 우선 리뷰도 좋았지만 책의 제목이 맘에 들어서 덜컥 내용도 제대로 모르고 살 수 있었다.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톨텍 인디언이라는 잘 알지 못했던 마치 미지의 세계에 사는 듯한 사람이 지은 책이라는 점도 흥미로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애시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음에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그냥 깨달음 정도의 글일 것이라 예상하고 펼쳐들었는데 이건 명상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류의 얘기와 비슷했다. 우리 회사에 이런 분야에 관심많은 사람이 있는데 내게 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던 얘기가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에 적이 놀랐다. 그리고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어나갈 수록 어쩐지 읽혀지는 맛이 있었다. 미사여구를 썼다거나 재미있는 예를 들어 술술 읽히기 보다는 그저 도덕책같은 글들, 자신의 느낌들을 나열한 글들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데도 문득 책을 손으로 끌어당겨 눈 앞에 두고 읽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 사실 다 이해했다고는 못하겠다. 어쩐지 굉장히 낯선 이야기들도 있었고 과연 이럴까 하는 말들도 많았던 것 같다. 아직까지 내가 그 세계에 대해 깊은 이해도를 못 가져서여서도 있고 원래 모든 사상들을 조금은  회의적인 시선으로 뜨악하게 바라보는 나의 기본적인 태도를 못 벗어나서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이 책은 처음의 무료함을 넘어서는 어떤 '신비함'이 있다.

지은이는 톨텍 인디언의 정신을 물려받은 사람으로 부와 명예를 좇아 의사의 길을 택했다가 우연한 사고와 깨달음의 기회를 접하여 주술사(지혜를 잇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면 더 좋아보인다)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책의 제일 첫 장을 펼쳐들면 이런 말이 쓰여져 있다. 우리는 진리 속에 태어났지만 거짓을 믿으며 자랐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거짓은 우리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 우리가 지식을 흡수하기 전까지 우리는 완전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태어나 불과 몇 년만에 배우게 되는 많은 것들로 인해 우리는 지혜로부터 차단당하고 지식의 거짓말에 현혹되어 늘 불행하고 진리를 접하지 못한 채 일생을 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이며 다 자신의 삶 속에서 주연을 맡은 존재들이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관점을 가진 이야기꾼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우리가 믿는 것을 옹호할 필요가 없다. 대신 우리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임을 기억해야 한다...따라서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야기에서 주연이고 우리는 다만 조연일 뿐이기에 그들을 바꾸려할 필요도 부딪힐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사랑으로 육체와 더불어 사는 이 삶을 즐기라고 말한다. 그 사랑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은 무언가.

그것은 감정이 느끼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만족할 만한 상태를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생각하고 알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려 할 때 오히려 왜곡된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 그냥 마음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거기에 순종하면 다 잘 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행복이 있음을 지은이는 계속해서 강조한다. 이것은 어느 종교에서나 어느 선지자들의 말씀에서나 다 같은 내용으로 담겨져 있는 것이고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 인간의 생명은 불멸이며 육체는 땅에 묻혀도 그 생명의 힘은 영원하다. 그만큼 우리는 강력하고 힘있는 존재인 것이다. 알지 못하던 것을 알 때 충격은 있겠지만 빛을 모르다가 빛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리라 예상되는 그런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나면 편안해진다. 그리고 그곳이 천국이다...천국은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시간을 즐기고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읽었다. 물론 이해 못하는 부분은 그냥 그런 채로 두었다. 책의 내용대로 어쩌면 내가 열려있는 상태여야 내용이 완벽하게 이해될런지도 모르겠다. 사실 요즘 명상과 관련한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런 책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히고 있다는 자체가 어쩌면 인간이 이제는 이런 거짓에서 벗어나서 진리의 순간에 한발짝 다가가야 할 시기가 왔는 것일 수도 있다. 책 내용을 다 믿지 않는다 해도 어쨌거나 지은이의 결론은 다른 선각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나를 나대로 즐기고 믿고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사랑하고 그래서 얻어지는 마음의 평화 속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책 한권으로 모든 것을 얻었다 할 수는 없으나 나의 생각의 흐름과 구조,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나의 편견과 어지러운 생각들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주 쉬운 책 같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해야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이 책을, 명상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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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2-02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 인디언의 영혼 >을 읽고 있는데 비슷한 부분이 많을것 같네요.

비연 2004-12-0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잉크냄새님이 올려주신 '밑줄긋기'를 보면서 저도 같은 생각을 했답니다..^^ 이 책도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저도 '인디언의 영혼' 한번 보려구요~^^
 
용서
텐진 갸초(달라이 라마).빅터 챈 지음, 류시화 옮김 / 오래된미래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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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에 대한 글은 처음이다. 사실 이런 류의 글들을 많이 접했지만 달라이 라마처럼 너무나 유명한 사람의 책에는 오히려 선듯 손이 가지 않았다. 이 책에도 잠시 나오지만 승려라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가나 외교관과 비슷한 그 분의 이미지로 인해 글의 내용에 신뢰가 갈까 하는 노파심이 앞서서였다. 이 책을 읽게된 것도 참으로 우연챦은 기회였고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갔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아니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감탄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불교, 그리고 티베트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에게 어느날 주권을 빼앗기고 많은 괴로움을 당한 나라라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나라와 비슷할 수도 있는 배경을 가진 이 나라의 국민들과 지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강조한다. 말은 쉽다, 용서.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증오와 분노, 복수감을 마음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가를 돌이켜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거창하게 어느 나라를 미워하고 어느 민족을 증오하기보다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개개인들에게 섭섭함과 미움을 불쑥불쑥 느끼며 살아가는 작은 사람으로서의 나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상호의존이라는 것에 대해서. 모두가 각각 개별적인 존재인 것 같으나 다 연결되어 있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들임을. 그래서 당신의 이웃을 미워하고 파괴하는 것은 결국 나를 파괴하는 것과 같은 것임을 역설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위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며 이것이 지혜로운 삶의 자세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도 얘기한다. 용서라는 것을 마음 속 깊숙이 인지하고 자연스럽게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동안 마음의 수행을 해야 하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것이 어떤 선지자들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일반인들도 스스로를 갈고 닦을 때 충분히 이루어낼 수 있는 상태임을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삶의 목적인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 용서와 자비. 이것을 가질 때 가장 커다란 행복이 온다고.

읽는 내내 그 사상에 공감하면서도 어렵다 어렵다 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입고 살게 마련이다. 그것이 개인에게서 받는 것일 수도 있고 집단에게 당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상처를 속에 품는 대신 발산되는 것은 미움과 복수의 감정일 것이다.  그것을 인내하고 참으며 상대를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고 있다. 그런데도 달라이 라마는 할 수 있다고 한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용서해야 하고 우리 모든 인간이 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애쓰는 존재들이며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체임을 인지해야 하는 것 같다. 달라이 라마는 그것을 '공'이라는 단어로 요약한다. 책의 말미에 그 분은 이런 말들을 적어 두고 있다.

다른 인간 존재에 대해 분노와 미움,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해도, 삶에서 그는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죽은 사람을 상대로 싸움과 살인을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는 모두 일시적이며, 결국 죽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죽는가, 병으로 사망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어쨌든 우리가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결국 사라질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것과 마친가지다. 진정한 승리자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이겨낸 사람이다.

어렵겠지만, 불가능해보이지만 스산해지는 계절에 이 말을 담아두고 노력해보려 한다. 무엇보다 어차피 스러질 인간들에 대해 미움이라는 감정을 가지는 자체가 참으로 허망하다는 생각에, 그리고 결국 나의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염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한번 해보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솔직히 도덕경 같은 글에 별로 내켜하지 않는 나였지만, 달라이 라마의 이 글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철학이라 마음에 와닿을 수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 글을 엮은 사람이 티베트를 무력으로 진압한 중국의 국민이며 그럼에도 달라이 라마의 가장 절친한 친구 중의 하나라는 사실만으로도 믿고 따를 수 있겠다.

이런 책들이 요즘 참으로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번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아울러 달라이 라마 뿐 아니라 티베트 사람들을 직접 보고 그들의 선한 의지를 확인하고프다는, 강렬한 열망을 마음 속에 불러일으키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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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4-11-2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게바라, 마더테레사 그리고 달라이라마 같이 유명한 분들에 관한 책이 서점에 가면 널려 있어서 우리는 읽지는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생각을 하며 살기 쉽지요.

하기는 상술로도 짜집기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으면 정작 좋은 책들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지만요.그러나 비연님의 리뷰로 본 달라이라마의 책 '용서'가 새로운 울림을 주는군요.

비연 2004-12-0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그런 것 같아요. 오히려 너무 유명한 사람의 책에는 선듯 손이 안 가는 이유가...흔하게 보이니까 그 소리가 그 소리일 것 같고 이 사람 저 사람 안다고 쓴 책이 별로 감흥이 없을 수도 있고...(쩝) 하지만 그 중에서 이 책은 달라이 라마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듯 하여 좋았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조은 지음, 최민식 사진 / 샘터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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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주는 질감은 그림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그림이나 사진이나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나...사진은 보다 사실적이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지나칠 수 없게 만들곤 한다. 가끔씩 보이는 최민식 작가님의 사진들도 그러했다. 흑백이라는 색조 속에 묻어나는 삶의 질곡, 인생의 회한, 고단함, 하지만 잃지 않으려 하는 따스함, 부드러움, 그래도 인생은 살아갈 만 하다고 말하는 작가의 생각....스쳐가지만 보고 나면 한동안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강렬함까지.

가난한 아이와 장애를 가진 남자와 몸 속에 깊은 골이 파고든 노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 좋다..이 느낌은 가지기 힘들다. 최민식이라는 작가. 인생이 뭔지 아는 분이시구나. 그의 그 따뜻한 시선이 나에게까지 전달되어 가슴 속에 훈훈함을 더하는구나..싶다가도 무엇인가 마음 한 켠 짓눌러지는 것이 느껴져 막막해진다. 뭘까, 그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 제목이 있지만, 사진들은 내게 결코 존재한다는 것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때론 버거우리만치 무겁고 때론 모르고 지냈으면 싶으리만치 아리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사진집을 보는 내내 사실 괴로왔다. 그건 그들의 인생이 힘들여보여서가 아니라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회한과 허망함이 뼛속까지 파고 들어와서였다...

그럼에도 이 사진집을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면....그건 사람이 살면서 감정 저변에 깔아두고 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무겁고 아무리 막막하고 아무리 서러워도 인간이라면 삶에 대해서 느껴봐야 할 깊은 속내를, 이 사진집은 큰 소리 내지 않고 알려주어서 더 뼛속까지 스미니까. 그래서...말해주고 싶다. 한번 진지하게 보라고.

시인의 덧글이 간혹 어색하게 느껴지곤 한다. 어쩌면 나의 느낌과 간혹 어긋나 지는 게 받아들이기 어려워서일 수도 있다. 또...제목 하나에 여러 사진을 나열하고 그것으로 스토리를 엮으려고 하는 작위성이 가미되어서인지도 모른다. 여백의 미가 좀 더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 모든 사진에 다 글을 받치지 않아도 빈 자리만으로 우리에게 글과 글 사이를 채울 수 있는 여유를 줬더라면...하지만 시인이 사진에 대해 가지는 깊은 감수성까지 외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글은, 자신의 생각이고 느낌이며 거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서 느끼는 것은...글이라는 게 사람의 사고를 많이도 한정짓는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사진을 보는 중에, 말로 표현할 수도 글로 나타낼 수도 없으나 나의 마음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그 숱한 느낌의 파편들을 떠올려보면... 입밖으로 내지도 손끝으로 쓰지도 못하는 어떤 무한함이 느껴진다.

그래서...사진이 좋다. 무엇보다 약한 사람들에게(스러져가는 육체를 가진 인간은 모두 약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대하는 노작가의 사진이 더욱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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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1-1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을 읽으신 분들 대다수가 전반적으로 만족하시면서도 사진을 가두어버린 글에 대하여는 실망하신 모양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삶은 가끔 여백만으로도 충분한 여운을 가진다는 사실을 시인이 좀더 알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잘 쓰셨네요.

비연 2005-04-26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다들 비슷한 느낌이었나봐요..
시인을 폄하하기 보다는..어쩔 수 없는 언어의 한계이겠지요...
 
왜 사는가 1 - 무량 스님 수행기
무량 지음, 서원 사진 / 열림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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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

누구나 살면서 이런 의문 한번 안 가져본 사람이 있겠는가.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라도, 위세 부리며 사는 고관대작이라도 어른이나 노인이나 혹은 아이나...어쩌면 머릿 속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는 속깊은 질문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교에 심취하는 사람도 있고 뭔가에 몰두해서 바빠서 잊고 지내려는 사람도 있고...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화두는 늘 우리 맘 속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불쑥불쑥 솟아오르곤 한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인이고 좋은 집안과 학벌을 뒤로 한 채 승려의 길을 걷고 있는 무량스님이라는 분이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의 죽음을 겪었고 살면서도 항상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충실히 답변하고자 애썼다. 끊임없이 찾고 헤매던 중 숭산스님이란 스승을 알게 되고 그의 가르침을 좇아 스님이 되었으며 지금은 미국의 서부 사막 어디에서 절을 10년째 지으며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정신적인 궤적과 경험들을 차분한 어투로 풀어나가고 있다.

읽고 있으면 무량스님이 느꼈던 고민들을 함께 하게 되고 깨달음을 얻어 구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또한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많은 생각들을 같이 하게 된다. 그건 이 책이 자신의 어렸을 때부터의 생과 그 속에서 조금씩 커가던 물음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던 시절들을 시간순으로 잘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일 거다. 어떤 어려운 철학적인 문답이 있다거나 고상한 말들이 난무하여 알듯 말듯 한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보다는 단순하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상황들 속에서 무량스님이 취한 선택들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왜 사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한번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종교에 관계없이 인간 본연의 질문에 대해 자신에게 재삼 물어보게 하는, 그리고 이 책의 가르침처럼 'Only Do'의 생활에 대해서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게끔하는 좋은 책이다. 요즘 가을의 스산함 속에서 이런 종류의 책들을 많이 접하고 있는데, 읽을수록 안정감있는 정서를 획득하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은 어떠한 답을 홀연히 알아내어서가 아니라,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서 외롭지 않음을 느끼고 진리에 한 발자욱이라도 다가가고 있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참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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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1-08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은 왜 사시나요?

비연 2004-11-0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계속 고민하고는 있습니다..

니르바나 2004-11-1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도 보셨군요.

비연 2005-03-2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님이 요즘(?) 읽고 계시는 책들이 저의 그것들과 많이 일치하여
참 좋습니다...넘 반갑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