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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의 신화 -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베티 프리단 지음, 김현우 옮김, 정희진 / 갈라파고스 / 2018년 7월
평점 :
베티 프리단이 이 책을 처음 쓸 당시는 지금부터 50년도 더 전이었다. 그 때는 세계대전이 두 차례나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시기였고 그래서 일자리가 부족했고 가난했고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래서 미국의 여성들은, 서부 개척시대에 남성과 동등하게 그 땅을 일구어나갔던 그 미국 여성들의 위상은 오히려 그 시절에 더 퇴보한 상태였다. 여자란, 여자의 의무란, 원래 여자의 역할이란, 이런 이야기들을 어릴 때부터 주입했고 그렇게 큰 여성들은 마음 속에 채워지지 못한 뭔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정한 규범, 타인의 눈초리에 따라 살 수 밖에 없는 시기였다. 베티 프리단은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일들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표현 자체가 매우 과격해서 불편하기까지 했었지만, 결국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여성성에 갇혀 자신을 펴나가지 못하는 여성들을 교육을 통해 자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여성이 여성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을 옥조여 사는 삶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성은 중요한 여성적 특징을 상실하는 큰 비용을 치러야만 지성을 얻을 수 있다... 여성을 관찰한 의견들은 모두 여성이 자신의 따뜻하고 직관적인 지식이 냉철하고 비생산적인 사고에 의해 희생됨으로써 지적인 여성이 남성화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p320)
늘 재미나게 생각하는 것은, 언론이 지도자격의 여성을 대하는 태도이다. 어릴 때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에 대한 기사가 났었는데 그 대표적인 사진 중의 하나가, 대처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장면이었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는 그 사람이 난데없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어색한 모습이라니. 그러니까 기사의 논조는 그거였다. 아무리 철의 여인이라도 집에서는 요리를 하는 '자애로운 아내이자 엄마' 라는 것이었다. 내가 아직까지 그 사진을 기억하는 건,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대처의 모습이 너무 어색했던 탓이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아니 이 사람이 요리를 하는 것과 수상이라는 직위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거지?.. 이런 관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현존하는 가장 일 잘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메르켈 총리에 대한 기사에도 가끔, 그녀가 장을 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옷이 한벌이야, 맨날 같은 것만 입어 이런 패션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그러니까 여성이 한 나라의 지도자를 하는데, 그 성별에 따른 역할을 '그래도'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고나 할까. 이 사람은 이래도 남자는 아니야. 그럴리가 없쟎아. 이런 관점. 남성들이 지도자를 할 때는 이런 모습을 찍지 않는다. 서점에 가는 모습,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 반려견과 신나게 노니는 모습, 피곤해서 소파에 누워 쉬는 모습... 지적인 여성은 남성적이라는 의도를 깔고 이야기하는 이런 관점들은 지금도 너무나 만연하다.
하지만 여성들 자신은 왜 빗발치는 비난에 가만히 있었을까? 문화가 여성을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하는 것을 막고, 법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교육적으로 여성이 성숙되는 것을 차단했다면, 이런 장벽들이 무너진 후에도 여성이 집이라는 피난처를 찾기가 여전히 더 쉬웠다. 여자가 독자적으로 세상에서 살아가기보다 남편과 자식을 통해서 사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도 남자아이와 마찬가지로 여자아이도 성숙하게 하지 못하는 똑같은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그 어머니의 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는 무서운 것이다. 마침내 어른이 되어 수동적인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자가 성숙하지 않으면 더 잘 될 것이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강요하는 문화 속에서 애써 주부나 엄마 이상의 존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p368-369)
이게 미국만의 문제일까. 지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딸이 시집을 잘 가면 만사 오케이라는 사고방식은 여전하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도 시집을 잘 가기 위한 방편이 되기도 한다. 요즘 남자들은 약아서 직장 없는 여자 싫어해.. 이게 만연한 말이다. 여자들은 좋겠어, 안되면 취집하면 되쟎아. 이런 말을 농담처럼 한다. 일부의 여성들은 그런 말에 기댄다. 쉬우니까. 어쩌면 그런 노력들은 사회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버티며 일하는 것보다는 쉬운 길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좋은 화장품을 쓰고 좋은 옷을 걸치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외모로 성형을 하고 피부를 가꾸기도 한다. 시집을 잘 가는 것이 무엇인지, 남자에 기대어 살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게 어떤 상태인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집이란 걸 잘 간 사람에 대한 부러움은 부모님에게나 동년배의 여성들에게나 다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리 사회적으로 전문직을 가지고 성공을 해도 결혼에 실패하거나 그다지 조건이 좋지 않은 남자와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뒤에서 그런다. 역시 넘 배우면 안돼. 여자는 적당히 배워야 해. .. 베티 프리단의 글을 읽으면서, 이게 50년 전의 이야기인데 말이다, 어째서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느껴지지. 라는 생각에 좀 씁쓸했더랬다.
그래서 소비를 조장하고 집안일에 더 신경을 쓰게 만들고 성적인 부분에 에너지를 쏟게 하고 아이에게 자신이 못다 이룬 인생을 걸게 한다. 사회가 이런 식으로 여성을 가정에 묶어 두고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조금 불편했던 부분도 있었다.
몇십 년 전, 정신적으로 저능한 사람을 연구한 보고서는 집안 일이 정신박약 소녀들의 능력에나 적합하다고 기록했다. 많은 도시에서 가사 노동자로서 정신박약 환자들을 많이 요구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집안일이 훨씬 어려웠다.
자녀 교육, 실내 장식, 식단 짜기, 가계 예산, 오락에 관한 기본적 결정을 내리려면 물론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성성의 신화가 갖는 부조리함을 목격한 몇 안 되는 가족 및 가정 전문가들 중 한 사람에 따르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집안일은 대부분 "여덟살 난 아이라도 할 수 있다." (p449)
여성이 필요한 교육을 못 받게 되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출산을 하게 됨으로써 가정에 얽매이게 된 결과 집안일을 하게 되는 과정에는 반대한다. 더 많은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고 사실은 가증스러운 사회의 일면이다. 하지만, 집안일 자체에 대한 이런 폄하는 개인적으로 조금 받아들이기 힘든 과격한 표현이었다. 저자는 동성애에 대해서도 같은 실수(?)를 범하는데, '아이가 동성애자인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남성과 경쟁하는 해방된 여성이 아니라 여성성의 신화의 모범이다 (p481)" 이라고 하면서 아동 병리 증세나 난잡한 성교까지도 엄마의 여성성에서 기인한다고 한 부분에는 백프로 동의하기 힘들었다. 굉장히 다층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 하나의 원인을 너무 부각시킨 것은 아닌가 싶었고 동성애에 대해서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이렇게까지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능력이 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집에 가두지 말라, 는 것이다. 여성들이 못 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에 휘말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그렇게 되다보니 속에 많은 것들이 쌓이는 것이지,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할 수 있는 바를 제시하면 충분히 날아오를 수 있다, 그 얘기이다.
그 함정의 열쇠는 물론 교육이다. 여성성의 신화는 여성에게 고등교육을 허락하는 것이 회의적이고 불필요하며 위험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교육이야말로 미국 여성들을 여성성의 신화라는 끔찍한 위험에서 구했으며, 앞으로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610)
교육이 '여성의 역할'이라는 낡은 이미지와 타협하고 영합하는 것을 그만두는 순간, 소녀들은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 불꽃과 새로운 상을 키울 수 있다. 교육은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도 인간 진화의 모형이며, 원형이어야 한다. (p627)
내가 이 책을 읽고나서 사실 가장 감명을 받았던 부분은 <나오는 말>에서였다. 수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펴냈던 베티 프리단은 그냥 그렇게 안주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을 벌였고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게 함으로써 평등과 인간의 존엄성을 찾도록 노력했으며, 임신중절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이 선진적인 저자는 책만 쓴 게 아니라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상황을 더 낫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점에서 나는 이 책 전체에서 조금씩 불편했던 부분들을 다 잊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노력으로 지금 미국의 여성 인권, 나아가 세계의 여성 인권이 더 나아질 수 있었으리라는 예측, 그리고 그것이 베티 프리단을 살아있게 만든 원동력이었으리라는 예상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아마 앞으로의 50년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려면, 역시 실천하는 여성주의자들이 늘어나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것이 정치일 수도 있고 사회일 수도 있고 혹은 일상생활에서의 활동일 수도 있을 게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동등함을 추구하기 위한 남성들의 합류가 수반되어야 완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두꺼워서 읽는 내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역시나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