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 - 전설의 책방지기
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남해의봄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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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게도, 이 책을 읽기 전에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하기에 아 서점업계의 '神的 存在' 라는 의미에서 이 사람을 '신(神)' 이라고 부르는 구나 했었다. 아이고. 근데 이름이었다. '신(信)'. 속으로 혼자 망신스러워하면서 읽기 시작했긴 한데 다 읽고 나니 그게 그거다 싶은.

 

도쿄 진보초의 고서점 거리에 있는 이와나미 북센터의 경영자, 시바타 신. 일본에서 나이 좀 먹었다는 사람들에게는 스승으로 받들어지는 서점 주인이다. 이제 80대 중반의 고령임에도 일주일에 네 번은 꼬박꼬박 서점에 나가서 근무를 하고 근처 사람들 다 만나고 다니는, 한마디로 정력 넘치는 할아버지다. 이 분과의 인터뷰를 통해 구술된 내용을 잘 옮겨낸 책이었다.

 

사람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건 '좋은 환경'이라든가 '좋은 타이밍'이라는 이야기를 곧잘 하잖나. 하지만 달리 말해 그건 '좋은 사람'과 만났다는 말이기도 하지. (p44)

 

시바타 신은 누구하고나 격의없이 지내고, 누구도 소홀히 대하는 법이 없는 분이다. 사람이 재산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관계가 책을 파는 일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어디 서점에 한정된 이야기겠는가. 요즘처럼 사람에 치이는 나로서는 이 대목이 참 가슴에 팟, 와닿았더랬다.

 

분명한 건 책을 손님에게 건네는 순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 그러기 위해 어떤 토대를 만들고 있느냐가 중요해. (p51)

 

이쯤 되면 철학의 수준이다. 서점에서 책을 파는 그 순간만을 바라본다면 길게 갈 수가 없다. 책이 서점에게서 손님으로 가는 그 지점까지 이르기 위해 거쳤던 수많은 순간들을 기억해야 한다. 이건 여러 사람이 공들여서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의 순간'이다 라고 해석된다.

 

"나는 내가 그렇다는 데에 자신 있어. 대중 속에 섞여 있고, 눈에 띄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고, 머리도 그다지 좋지 않지.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더더욱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이 세상에는 분명히 있거든. 세상에는 극소수의 성공담만이 흘러넘치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매일 아침 일어나면 그날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오늘은 오전에 아무개와 만나고 3시부터는 인터뷰다,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 오늘도 즐겁겠다, 이런 것들. 오늘 하루를 우울하게 생각하는 날은 거의 없어. 일본의 앞날을 한탄하거나 출판계의 미래를 근심하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생각하는 척은 하지. 하지만 곧바로 저녁밥을 생각하니까." (p56)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이다. 보통으로서의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말. 매일매일을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지낸다는 말. 너무 앞의 일을 내다보고 한탄과 근심으로 일관하기 보다는 매일매일 바로 앞의 일에 충실하고자 한다는 말. 새겨두고 또 새겨둬야 할 말이다 싶다. 그래서 진보초 북 페스티벌을 계속 운영하면서도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저 즐겁게 하자는 모토 아래 진행할 수 있는 것 같다. 뭐다뭐다 갖다붙이기 보다는 매년 조금씩 나아져가는, 그리고 책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기억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페스티벌.

 

해부학자 요로 다케시가 쓰길, '죽음'은 1인칭이 아니라더군. 그 순간, 그 사람은 이승의 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죽었다' 라는 말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3인칭의 누군가가 '죽었다'고 말하기 때문에 비로소 죽은 것이지. 사람은 그때까지 그저 살아갈 뿐이라는 얘기야. '죽음'이 자신 안에 없다는 것이 깊게 와 닿더라고. 죽기 전에 적어도 바닥이라도 다져놔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들고. (p95)

 

이런 얘기를 한 요로 다케시라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마저 드는 대목이었다. 이것은, 수십년 죽음과 직면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통찰이 아닐까. 의사의 선고가 있어야 비로소 죽은 것이다. 나는 내가 죽은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니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

 

요즘 우리나라에도 작은 서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다양한 서점들. 다루는 책들의 종류가 다르고 손님을 맞는 인테리어가 다르고 컨셉이 다르다. 하지만, 이런 경향성이 참으로 반갑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이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이, 그 속에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 흡족해한다. 그리고 그런 서점들이 각각의 동네에서 길게 갈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된다. 그냥 그렇게 실험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네의 터줏대감으로 오래도록, 동네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그래서 대형 서점이 줄 수 없는, 인생의 맛을 더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런 점에서 시바타 신의 이야기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 <남해의 봄날>은 이렇듯 좋은 책들을 내주어서 참 고맙다. 가끔 스스로 좋은 글을 쓰기도 하고 말이다. 서점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 서점의 운영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 서점주인으로서의 자세 등을 늘 머릿 속에 담아두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책들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많이 나아진 모양이다. 이런 얘기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만 보아도. 동네 서점에 관심을 가지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만 보아도....

 

좋은 책이다. 책이나 서점운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꼭 일독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가끔씩 동네 서점들을 찾아나서 봐야겠다. 그런 공간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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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키튼 리마스터
우라사와 나오키, 나가사키 타카시 지음, 강동욱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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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 아끼고 아끼다가, 토요일 저녁, 느긋한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쳤다. 20년이 지난 마스터 키튼. 어떤 모습일 지.. 둑은 둑은. 그러니까 그 당시, 스무살에 결혼해 유리코를 낳았고 유리코가 중학생까지 큰 상태였으니 30대 중반이었을 것 같고, 이제 20년이 지난 지금은... 50대 중반인가. 헉.

 

 

 

 

여전한 얼굴인데. 이런. 책을 보려면 안경을 끼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우리의 키튼. ㅠㅠ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이 웃음. 천진하고, 사람을 참으로 편하게 해주는 이 웃음. 예전에 발굴했던 사업은 성과가 있었으나 여전히 학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이단아로, 박사논문조차 내지 못해 조금은 초조한 상태이지만... 여전한 웃음. 여전한 넉넉함. 그래서 키튼이 좋다.

 

 

 

 

다니엘. ㅋㅋㅋㅋ 흰머리가 늘어난 아저씨가 되어 버린 저 모습. 엉뚱하게 조사를 의뢰하는 저 모습. 예전과 똑같지 뭔가. 키튼은 이제 그만 두었는데, 보험조사원이자 탐정, 그만 두었는데, 능청맞은 다니엘에게 말려서 (ㅎㅎ) 다시 일을 조금씩 하게 된다. 나야 반갑지 뭐..^^

 

 

 

 

아버님. ㅎㅎㅎㅎㅎ 요양원에 계시지만 여전하신 모습. 보는 순간 어찌나 반갑던지. 아마 지금쯤 80대. 그런데도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고 유머러스하고 아들한테 은근슬쩍 일을 의뢰하는 것도 똑같고 말이다. 건강하셔서 다행입니다, 아버님^^

 

 

 

 

이번엔... 아버님의 젊은 시절 모습이 문득 나왔다. 젊었을 때는 키튼의 모습과도 조금 닮은? 키튼이 어렸을 때 잠시 돌봐주었던 나오미 아주머니. "공통점은 포기하지 않는 것." 이 이야기를 들은 키튼은 초조해하던 자신을 추스릴 수 있었다. 이 만화의 강점이라고나 할까. 따스하다. 주변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얻는 모습들에 나까지도 으쌰. 힘을 얻게 된다.

 

 

 

 

 

똑부러지는 성격이면서도 여린 마음을 가지고, 아빠를 존경하며 따르던 유리코는 아빠의 뒤를 이어 고고학자가 되었다. 아이고. 참 잘 컸구나...^^

 

 

 

 

예쁘게 차려 입으니 더욱 이쁘다. 아빠의 이론을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함께 속상해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신념을 가지고 열심으로 일하고, 아빠와 할아버지를 잘 돌보는, 멋진 숙녀로 자라났다. 괜히 내가 흐뭇해진다.

 

 

 

 

키튼과 유리코의 저 바라보는 웃음.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서로를 힐난하지 않으면서 잘 해낼 것을 믿어주는 부녀의 모습은 정말 멋지지 않을 수 없다. 나이 든 키튼은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잘 나가고 자리를 확 잡고 부인과도 결합하고 그런 것들은 전혀 아니었지만, 여전히 따뜻한 마음과 자신의 신념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잃지 않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이 만화가 읽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랄까, 안심이랄까 이런 것들을 가지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근데 마스터 키튼 리마스터가.. 이거 한 권으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오 제발. 이제 다시 시작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와다오 나와다오. 돌아온 마스터 키튼의 이야기가 계속 궁금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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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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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가슴아픈 책, 영화.. 를 보지 않게 된다. 사는 것도 힘든데, 보는 것까지 그래가지고야 어디 살겠는가 싶은 마음이 들어서 가급적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때문에 내가 가벼워지고 단순해지는 걸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한다. 내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은 하지 말자 라는 욕구가, 진중하고 깊이있고 복잡하고자 하는 나의 바램을 이겨내는 횟수가 늘어나는 거다.

 

그래서 이 책은, 안 보고 싶었다. 노벨문학상이라는 상이 주는 스포트라이트에 혹해서 고른 건 아니었다. 제목이... 전쟁과 여자를 연결한 그 관점이, 아울러 소설도 르뽀도 아닌 '목소리소설'이라는 장르가 궁금해서 집어들었다. 장장 55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후회했다. 읽지 말걸. 시작하지 말걸. 연휴이고, 바깥은 햇빛이 찬란히 빛나고 있는데, 나는 이 우울하고 참담하고 잔혹한 책에 묶여 어두움을 헤매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후회가 막급이었다... 하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니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뭐랄까... 지금 그만두면 내가 이들을 배신한다는 느낌, 그들의 고통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런 것들이 남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글이 주는 흡인력도 컸다. 200여명의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여성들의 나레이션을 옮긴 것인데, 계속 그런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묘하게 나를 잡는 힘이 있었다.

 

나는 예전에, 고통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고, 고통을 견뎌낸 사람이야말로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의 기억이 자신을 보호한다고. 그런데 이제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앎, 평범한 보통의 삶에는 있기 힘든 이런 특별한 앎은 손댈 수 없도록 따로 보관해놓은 비축물이나 겹겹이 층을 이룬 광석 등의 희미한 금가루처럼 별도의 공간에 존재한다. 한참을 속이 빈 암석을 공들여 벗겨내고, 함께 사소한 기억의 퇴적물을 헤집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반짝반짝 모습을 드러낸다! 선물처럼 찾아온다! - p170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고통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고. 겪어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인생의 참 맛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고통은 그대로 속에 남아 침잠하고 헤집어 찾아 드러내지 않으면 그대로 남게 될 뿐이다. 책 속에 담긴 고통의 기록들은 하나하나 너무나 놀랍고 힘겨워서 다 옮기기 힘들다. 전쟁이란 막연한, 사실 지금도 도처에서 누군가에게는 현실이나 나에게는 개념으로밖에 다가오지 않는 전쟁이란 것을 몸으로 겪어낸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남은 상흔들은, 그 기록들은, 내 속에 비수처럼 하나하나 꽂혀 들어고야 만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였어. 그 자리에 형제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있었어. 다들 입을 굳게 다물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어. 세상에 어떤 어머니가 그 순간 울부짖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어떤 심장을 가져야 몸부림치지 않을 수 있을까. 형제의 어머니는 알고 있었어. 만약 울음을 터뜨리면 온 마을이 불길에 휩싸이고 말리라는 사실을. 자기 혼자만 죽는 게 아니라 온 마을이 떼죽음을 당하리란 사실을. 독일군 병사 하나가 살해됐다고 온 마을을 태워 죽이는 놈들이었으니까. 어머니는 알고 있었어... 공적을 세우면 훈장을 주는 게 당연하지만 어떤 훈장도 심지어 최고의 영예인 '영웅별' 훈장도 그 어머니에겐 부족해... 어머니의 그 침묵에는... - p444

소름이 끼쳤다. 전쟁이 무엇인데,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울음까지도 겉으로 내뱉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 모두가 죽을 걸 알기에, 자식을 잃어 속이 갈갈이 찢어지는 그 심정을, 칼로 속을 도려내는 듯한 그 심정을, 꾸욱 안으로 밀어넣고 참을 수 있었던 그 어머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침묵이 너무나 마음아파서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사람들은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아. 믿질 않지. 하지만 머리카락 밑에 샛노란 색이 나타나고 얼굴을 따라 움직이던 그림자가 나중에 옷 밑으로 뚝 떨어지는 걸 보게 돼... 사람은 이미 죽었는데 표정은 마치 산 사람 같지. 깜짝 놀란 얼굴로 '내가 어떻게 죽을 수 있지? 정말 내가 죽은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 - p242

죽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흘러가고 그 속에 있는 찬란함과 처연함을 일생 느끼며 나이를 다해 죽는 것도 때로 억울하게 느껴지는 게 인간인데, 전쟁터에서 젊은 나이에 제대로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뭣 때문에 죽는 지도 모르면서 죽는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이러한 죽음을 옆에서 계속 지켜보아야 했던 그 전쟁터의 '여자'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얘기한다. 힘들었다고. 가여웠다고. 그러나 전쟁이 끝날 때 살아있는 자신에게 너무 기뻤다고.

 

크고 위대한 것이 작고 평범해지는 그 순간을. 하늘이나 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내게는 현미경 렌즈 아래 놓인 모래 한 알이, 바닷물 한 방울의 세계가 더 소중하다. 그곳에서 내가 빗장을 열고 보게 될 위대하고도 놀라운 한 사람의 삶이. 만약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똑같이 무한하다면, 어떻게 작은 것을 작다고 하고 큰 것을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둘을 구별짓지 않는다. 한 사람만으로도 벅차다. 한 사람 안에 모든 것이 있으므로. 그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맬 만큼. - p272

한 사람 안에 우주가 깃들어 있다... 전쟁을 이야기하면 큰 것만을 말하는 세상. 영웅을 이야기하고 정치를 논하고 역사를 말하는 세상. 그래서 그 속에 점점으로 박혀 사력을 다해 노력했던 개개인의 삶은 금새 놓아버리는 세상. 그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남은 개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들 속에서 진정한 전쟁과 '인간'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느꼈다. 전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큰 무엇인가 라기 보다 어쩌면 하나하나 소중한 생명들에게서 대의를 가장하여 가장 중요한 것들 빼앗고 작은 것마저 돌려주지 않는 미친 짓이 아닐까.

 

열예닐곱의 나이에 조국이라는 이름에 경도되어 자진해 전쟁에 참여한 많은 이 책 속의 '여성'들이 그 속에서 청춘을 잃고 '여성성'을 박탈당하고 존재의 허무함과 비참함으로 웃음을 빼앗기고.. 그리고 심지어 전쟁이 끝나고나서도 일생 그것에게 지배를 받아야 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전쟁이라는 것이 주는 가당치 않은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된다.

 

매우 훌륭한 작품이고, 그 의미는 두말할 것도 없다. 사실, 이 봄날에 읽기에 어둡고 비참하다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또하나의 시선을 내가 가지게 되었음에 기뻐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장을 덮었다. 강력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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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간 격무에 시달리느라 (정말 격무였다. 이게 뭔 필요가 있는 가 매일 고민하면서 일했다) 책을 책대로 보지도 못하고 쓰러져 자기 일쑤이다가, 아니 혹은 자지도 못하고 나가기도 했다가, 오늘 드디어 약간의 여유라는 게 생겼다. 그래서 읽다 만 책을 들고 드러누워 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이 책은, 계속 보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줄리언 반스가 아내를 잃고 쓴 사부곡(思婦曲)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내 마음의 슬픔과 맞닿아 너무 그 슬픔이 커질까봐 계속 미뤄두었었던 책이다. 이제 이 책을 읽을 정도이니 마음의 짐이 많이 덜해진 걸까....

 

줄리언 반스의 글을 읽으면서, 아... 내가 느끼는 것과 어떻게 이렇게 같을 수가 있지. 아내를 잃든 친구를 잃든 부모를 잃든, 그 감정의 결은 조금 차이가 있을 지라도 매우 친밀한 사이의 사람을 떠나보내는 사람들의 심정은 매일반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짐은 덜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젊은 시절, 세상은 노골적이게도 섹스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나중에는 사랑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 후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로 - 적어도 우리가 운이 좋다면 (혹은 운이 나쁘다 해도) - 세상은 슬픔을 견뎌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런 분류는 절대적인 것이다. 이는 우리가 가로지르는 회귀선이다.  (p110~111)

 

알고 있다. 슬픈 경험을 해본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누군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낸 사람과 그래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 나뉠 수도 있는 것임을. 최근에야 알았다.

 

'중요한 건, 자연은 너무나 정확해서 정확히 그럴 가치가 있을 만큼의 고통을 안겨준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 고통을 즐기기도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그런 점이 지금까지 문제가 안 되었다면, 앞으로도 그럴 거에요.'...(중략).. 사별의 슬픔은 인간으로서의 상태이지 의학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며, 그 고통과 더불어 다른 모든 것을 잊는 데 도움이 되는 약은 있어도 치유해주는 약은 없다. (p116)

 

나 또한 줄리언 반스처럼, 저 말에 괜한 위안을 받았다. 잘 모르겠다. 그게 무엇인지. 자연이 정말 그런 고통을 그런 방식으로 안겨 주는 것인지. 그러나 그 즐긴다는 어감이 쾌락의 의미는 아님을 알게 되었다. 뭐랄까... 그냥 부재를 부재로 받아들이지 않고 누린다고나 할까... 표현이 잘 되지 않는다.

 

당신은 그녀와 공유하던 어휘, 어법, 말장난, 둘 사이에만 통하는 언어의 지름길, 둘 사이에서만 통했던 농담, 유치함, 장난 섞인 핀잔, 야한 첨언들을, 풍부한 기억들이 담겨 있지만 남에게 설명하면 아무 쓸모도 없는 이 모든 모호한 참고자료들을 잃었음을 가슴 아리게 느낀다. (p146)

 

... 너무나 공감하여 할 말을 잃는다. 내가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냈을 때 가장 슬펐던 것은, 긴긴 세월동안 우리가 함께 쌓았던 기억들을, 추억들을, 그 세세한 순간들을 웃음으로 슬픔으로 진심 공감하며 이야기할 상대를 잃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이고 상대는 자신이 포함되지 않았던 그 상황에 대해서 지루하게 듣고만 있을 뿐이겠지. 아무도 그 순간의 기억들에 함께 해주지 못하겠지. 진실로 그렇다. 그래서 더 진한 외로움이 다가온다.

 

우리는 꿈속으로 내려가고, 또 기억 속으로 내려간다. 그렇다. 예전의 기억은 과연 돌아온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는 두려움을 배우고, 다시 찾은 기억이 원래 그대로인 지 확신할 수 없다.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는가. 당시 거기 있었던 사람이 더 이상 확증을 해줄 수 없게 되었는데. 우리가 한 것, 우리가 간 곳, 우리가 만난 사람들, 우리가 느낀 감정을. 우리가 함께하게 된 사연을, 그 모든 것을. '우리'는 씻겨가고 이제 '나'만 남았다. (p181)

 

우리는 씻겨가고... 나만 남았다... 가슴에 절렬하게 다가오는 문장이다.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의 그런 내밀한 구석까지가 같진 않더라도, 십수 년간 함께 추억을 쌓아오고 정신적 교감을 이어오던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흡사 팔다리를 잘린 것 같은 상실감을 가지게 한다. 잘린 팔다리의 끝자락에서 아직도 팔다리가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줄리언 반스의 이 책은.... 상실감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때 더욱 빛이 날 책이다. 나에게도 물론. 작가란, 그래도 이렇게 쌓여있는 감정을, 피를 통하는 심정으로 글로 매김질 할 수 있는 좋은 재주를 가진 사람들인 게다. 부럽고, 서럽다.

 

 

 

우리는 30년을 함께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서른두살이었고, 그녀가 죽었을 때는 쉰여섯 살이었다. 그녀는 내 삶의 심장이었다. 내 심장의 생명이었다.

사별의 고통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진부하며 유일무이하다. 그런 의미에서 진부한 비교 하나를 들어보자. 차를 다른 브랜드로 바꾸고 나면, 갑자기 길 위에서 같은 브랜드의 차들이 수도 없이 눈에 들어온다. 전에 없던 방식으로 그 차들이 의식에 각인된다. 아내를 잃게 되면, 갑자기 남편을 잃고 아내를 잃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전까지 그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다른 운전자들, 배우자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좀 지난 일이긴 한데,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아니, 그 보다는 그 논제가 갑자기 들이닥쳤다고 해야겠는데, 그것은 내가 자살을 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어떤 식으로 살아 있는 한, 그녀는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물론 아내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생생히 살아 있다. 그러나 나는 아내를 기억하는 가장 주된 사람이다. 만약 그녀가 어디엔가 존재한다면, 그녀는 내 안에 내면화되어 존재한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자살을 할 수 없는 이유 또한 그러했고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자살하면 나 자신만이 아니라 아내까지 죽이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존슨은, 오직 노동과 시간만이 비탄을 완화한다고 본다. `슬픔`은 영혼에 녹이 슨 것과 같으며, 그것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온갖 새로운 발상이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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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누군가가 써놓았을 때, 그 때는 정말, 가슴 벅 차지요. 좋은 책 소개해줘서 감사합니다. *^

비연 2016-02-21 00:53   좋아요 0 | URL
좋은 책입니다... 일독해보실 것을 권고~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 비정상의 시각으로 본 정상의 다른 얼굴
조던 스몰러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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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연 추천할 만한 책이다. 과학의 대중서로서 손색이 없으면서도 그 관점과 통찰력이 남다르다. 게다가 쉽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정신 질환을 유용하게 정의 내리는 작업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단일하고 '진실한' 경계를 찾고 확인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이 같은 경계선이 사실 어느 수준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더라도, 항상 유용하고 '현실적인' 구별을 만들어내기 위해 경계선으로 구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 p71

 

우리가 얘기하는 정상이란 무엇인가. 고혈압이라고 정의되는 140/90을 기준으로 볼 때 정상 범주인 139/90과 비정상 범주인 141/90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러니까 '정상'을 규정하는 이유는 관리를 위해서가 아닌가. 어느 시점에서 뭔가를 하기 위한 기준 같은 것 말이다.

 

정상과 비정상은 낮과 밤의 관계와 비슷하다. 즉 양쪽 모두, 누구나 서로 다르다고 인지하는 두 가지 상태를 의미심장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상태 사이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 정확히 낮은 언제 밤이 되는가? 물론 일몰 때로 하자고 결정할 수도 있다. 일몰은 낮과 밤을 구조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시간대이며,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순간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 어느 정도 임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낮과 밤을 뚜렷이 구분하는 게 의미 있고 현실적이라고 동의한다. - p72

 

그래서, 임의로 나누어 놓기는 했지만 그 경계선의 모호함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그걸 어떻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판단자의 마음일 수도 있다. 아울러 정상과 비정상에는 나름의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 그래서 애매한 부분은 그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말하자면, 우리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편견들, 왜곡들, 불편한 시선들은 어쩌면 이러한 모호한 경계와 스펙트럼을 무시한, 매우 무지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 두꺼운 책을 통해서 그런 걸 설명하고자 한다. 생물학과 뇌과학과 심리학 등의 무서운 발전은,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이제 불확실한 것이 확실해진 사실들이 많아졌고 그래서 어쩌면 그런 것들을 토대로 치료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인간이 인간을 제대로 알아봄으로써 좀더 따뜻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토대가 될 수도 있다.

 

수많은 지식과 사례들이 이 책에서 제시되고 있고 다들, 주옥같다. 하나하나 아 이런 발견들이 이루어지고 있구나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가능한 한 가장 사려깊고 윤리적이며, 개념상으로 일관성 있는 방식으로 카테고리의 타당성을 향상시키려는 게 이 같은 도전의 목적이다. 이는 우리가 긋는 경계선이란 잠정적이며, 향후 새로운 증거를 축적하고 실질적인 우선 사항이 진화하면 얼마든지 경계선을 변경할 수 있다는 열린 자세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힌다. - p519

 

그러므로 지금의 비정상이 내일의 정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비정상이라 말하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뇌과학적으로 치유될 가능성이 크게 열리고 있음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야 하고.

 

정상의 생물학을 이해하기 쉽도록 조망하는 작업은, 우리가 지닌 한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닌 재능도 이해하는 시각, 아울러 우리가 지닌 취약성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유한 회복 탄력성도 이해하는 시각의 확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마음과 뇌가 삶에 어떻게 적응하는 지에 대해 광범위한 내용을 파악한다면, 우리는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연민과 경이를 품고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p525

 

내가 이 책을 좋은 책이다, 라고 추천하는 이유가 이 결론에 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연민으로 바라볼 수 있기 위한 과학의 재발견..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기준에 얽매여서 비정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혹은 비정상으로 보여지는 것들에 대해 혐오감까지도 가진다. 타인의 고통과 무력함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다 라는 흑백논리에 의해 타인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이렇게 세상이 발전해나가는 이 마당에 상당히 바보같은 자세가 아닐까. 치료를 위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된 기준으로 사람을 어느 틀에 꽉 매여놓는다는 자체가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저자인 조던 스몰러의 말처럼, 과학의 발전과 새로운 발견들은 그저 치료와 조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간 마음의 너그러운 확장까지도 유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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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원 2018-01-1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제가 사회복지사2급 시험 과제물 제출을 위하여 자료를 수집 하고 있습니다. 책 내용을 염치 불구 하고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비연 2018-01-12 21:28   좋아요 0 | URL
아.. 과제물에 어떤 형식으로 쓰실 건지 궁금한데요.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그냥 책 내용에 근거하여 참조로 쓰시겠다면 괜챦습니다.

환인 2018-01-12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만을 사용 하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출처도 사용 좀 하겠습니다. ^^

비연 2018-01-12 22:37   좋아요 0 | URL
아. 위의 분과 같은 분이신가요? 출처까지 넣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좋은 보고서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