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한 산책 문학과지성 시인선 281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오랜만의 시집이다.

개인적으로 시라는 쟝르에 익숙하지 않다. 교육의 잘못이라고 혼자 궁시렁대며 탓을 돌리기도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짤막한 글들을 읽노라면 꼭 그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만이 내 속을 지배하여 시에서 응당 느껴야 할 감상이 슬그머니 사라지는 걸 매번 경험하기 때문이라는 게 더 큰 까닭이겠다. 게다가 누군가의 시집이라 함은 남들이 많이 읽고 내 눈에도 익숙한 시들만 있는 게 아니라 싫든 좋든 그(녀)의 작품들을 모조리 읽어내야 한다는 게 썩 내키는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시집을 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속에서 이 책을 산 것은 몇 편씩 조각조각 다가오는 싯구들이 내게 예사롭지 않은 감흥을 안겨주었던 탓이다. 느낌이라는 것에 많이 의존하는 나로서는 그러한 내 가슴 속 파장을 쉽사리 물리치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디 한번 하는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금빛 넘치는 금빛 낙엽들
햇살 속에서 그 거죽이
살랑거리며 말라가는
금빛 낙엽들을 거침없이
즈려도 밟고 차며 걷는다

만약 숲 속이라면
독충이나 웅덩이라도 숨어 있지 않을까 조심할 텐데

여기는 내게 자명한 세계
낙엽 더미 아래는 단단한, 보도블록

보도블록과 나 사이에서
자명하고도 자명할 뿐인 금빛 낙엽들

나는 자명함을
퍽! 퍽! 걷어차며 걷는다

내 발바닥 아래
누군가가 발바닥을
맞대고 걷는 듯 하다

- 자명한 산책 (全文) -

일상적인 것, 그래서 너무나 익숙해진 그 무엇에 대한 시인의 느낌은 마치 내 몸에 그 보도블록이 닿는 듯 매우 구체적으로 매우 탐미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표제시인 '자명한 산책' 하나만 보아도 이 시인의 시세계가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뭔가를 자꾸만 에두르고 뭔가 구름잡는 듯한 단어들로 나를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피부, 내 발, 내 손에 맞닥뜨려지는 사물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감정들을 아주 솔직하게 얘기함으로써 시인은 내게 신뢰감을 더해주었다. 그저 탐미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나이듦에 대한 고찰, 젊은 날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 심심한 삶에 대한 얘기 등등을 담은 황인숙 시인의 시들을 주욱 읽어내려가면서 문득 스산하게 비내리는 오후에 차 한잔 들고 창 앞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는 나를 떠올려본다.

나는 나이지만 나를 스치는 것들, 사람들은 조금씩 변해만 간다. 그 속에 남겨진 나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이 느껴보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되고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알게 되면서 세월을 견딘다. 그것이 슬프다 아름답다 가치판단을 하기에 앞서 그저 나를 바라보는 입장으로 약간은 관조적으로 슬슬 자신의 감정 실타래를 풀어놓는 시인의 글귀들이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어떤 화두를 던지는 듯 하다.

어디 한켠에 놓아 먼지 쌓이게 하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주말에라도 한번 다시 집어들어 조금 천천히 음미해보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수 하버드에 오다 - 1세기 랍비의 지혜가 21세기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하비 콕스 지음, 오강남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보다,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지은 하비 콕스라는 저자는 물론이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번역을 하신 역자도, 그리고 이 책을 출간하겠노라 계획했던 출판사에도 말이다. 솔직히 하비 콕스라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가 그리 유명한 신학자인지도 몰랐다. 바람구두님의 서재에서인가. 접해본 이 책의 제목이 어쩐지 마음에 와닿아 골라보았었는데 읽는 내내 감사함을 잃지 않고 지냈던 것 같다.

모태신앙인 나는 태어나서 기독교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지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예수님의 역사적 존재하심에 대해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 주위의 많은 분들은 언제나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삶에 대한 방향을 잡으셨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함으로써 삶의 어려움들을 이겨내시곤 했다. 나 또한 아무 생각없이 교회에 가서 주일학교를 다녔고 교회에 다니자고 친구들을 전도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생각에 큰 변화가 생겼던 것은 좀더 커서였다. 모태신앙인 사람들이 한번쯤은 겪는다고 하는 심적인 동요는, 내게도 다가왔다. 세상에 맞부닥쳐 지내면서 과연 하나님이 계신가 하는 건방진 생각에서부터 그렇다면 이 사회의 모순들은 어째서 계속해서 존재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또 왜 예수님은 늘 저멀리 계시는 걸까. 왜 이리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왜 이렇게 친근하지 않은걸까. 이 시대에서 예수님의 잠언들이 과연 얼마나 깊이있게 다가올 수 있을까..이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였었다. 그런 고민들, 생각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독교 서적들도 숱하게 읽었던 것 같은데 그다지 해답이 없었다고 기억된다.

아마 이 책이 반가왔던 이유는, 그러한 고민들을 해결해주었다 하는 안도감에서가 아니라(사실 그 어떤 문제도 일순에 해결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회의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고정적이지 않다는 것. 또 예수님이 수천년전 존재하셨던 성인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랍비로서 역사의 면면에 스며들어진 말씀들을 전하고 계시며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좀더 깊이를 가지고 생각해야 할 화두들을 던지고 있는, 참으로 가까운 '친구'라는 점을 알게 되어서인 것 같다.

저자 하비 콕스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예수님과 윤리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철저히 예수님을 그 시대에 존재했던 랍비 중의 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 말씀들이 나오게 된 배경들, 그리고 '설화'로 내려오는 복음서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문제의식들을 하나씩하나씩 짚어나가고 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불안감으로 시작되었던 그 강의는 20년동안 수천명의 학생들과 수많은 토의를 하면서 성숙되어졌고 단번에 효과가 나는 멋들어진 내용이기 보다는 살면서 두고두고 곱씹으며 나 자신과 주변을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이 책을 꼭 권해주고 싶다. 함께 고민하는 자세로 풀어나간 서술 형식이 마치 강의실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안겨주고 곳곳에 배여있는 저자의 문제의식 속에서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충분히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윤리라는 것, 이 첨단의 세상에서 자주 잊혀지곤 하는 그 진부할 수도 있는 단어가 사실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는 과제이며 결코 없어질 수 없는 주제임을 너무나 명쾌하게 전하고 있다는 점만 들더라도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저서임을 말하고 싶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05-03-2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시고 고민이 해결되셨다니, 대단한 책인 것 같습니다. 전 천주교가 모태신앙이지만, 지금도 회의 중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 님처럼 회의를 풀어 보려고 관련 서적을 읽거나 하지 않았다는 점이죠....제가 바르게 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 있는 게 아닐까요.

비연 2005-03-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이 해결되었다기보다는...고민을 공유할 구석을 찾았다는 게 더 정확할 듯.
저의 회의감도 아직 계속되고 있지만....이 책은 참 반갑더군요^^
글고..저도 아직...바른 생활은 못 하고 있는데..우헤헤~

플레져 2005-03-29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많은 사람들과 토의를 통해 가꿔진 한 권의 책은 정말 가치가 있는 책이지요. 비연님,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해요 ^^

아영엄마 2005-03-2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

책읽는나무 2005-03-30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하비 콕스라는 이름은 전 마냐님의 리뷰에서 언뜻 봤던 기억이 나는데요!
한번쯤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곤 하더라구요!
전 어렸을적 잠깐 교회를 다니긴 했었는데...성년이 되면서부터 발길을 끊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불교쪽에 가깝다고 해야하나요?
암튼..딱히 종교에 얽매이기 싫어 그냥 발길 닿는대로 마음 편한대로 좀 멀리서 종교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어릴적 교회를 다녔던 경험들은 오랫동안 잠재의식속에 남아 있는 듯 해요!..ㅡ.ㅡ;;
그래서 더욱더 님의 리뷰가 끌리고...관심이 가져지는 것 같습니다..^^

balmas 2005-03-30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축하드려요, 비연님!!
오오, 제가 아는 서재주인장님들이 주마다 마이리뷰에 당선되시는군요.
영광입니다, 이런 분들하고 알고 지내서. ^____________^

파란여우 2005-03-30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 드려요^^


날개 2005-03-3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비연님.^^*

로드무비 2005-03-30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축하드려요.^^

울보 2005-03-30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urblue 2005-03-30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비연 2005-03-3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출장 다녀와보니...이 주의 마이 리뷰 당선 메일이 날아온데다 축하인사들이 쇄도를...! 넘넘 감사합니다...아웅...넘 행복해요. 저^^

2005-03-31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05-03-3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보기만 해도 풍성한 꽃다발과 와인..넘 감사해요^^
여울효주님. 좋은 책을 공유하는 분이 주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네요~^^**

서연사랑 2005-03-3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위에 여울효주님이란 분과 같은 경우네요. 이주의 마이 리뷰 당선 적립금으로 '예수 하버드에 오다'샀는데.....
바로 이 책 리뷰가 눈에 띄여서 들어와보니 이런 공감대가 형성이 되는군요.^^
리뷰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비연 2005-03-31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홋. 이런 인연의 끈들이 이어지다니...서연사랑님, 만나뵈서 넘 기뻐요~^^

마냐 2005-04-05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비연님, 좋은 책을 널리 알리시는 좋은 일을 하셨군요..^^
전, 많은 고민을 해보지 못한, 오히려 기독교를 별로 안좋아하던 경우지만...어쨌든 유용했어요. 아, 정말 축하드려요. ^^

비연 2005-04-05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좋은 책을 공유하는 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나 기쁘게 하는 일이죠....축하 감사드립니다^^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마디로 놀라운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신청했을 때의 나의 심정은 호기심 반, 의구심 반이 복합되어 있었다. 오히려, 선전문구를 보면 셀수 없이 오래 전의 문명과 그 시대에 살았던 길가메쉬라는 영웅의 이야기라 하는데 도대체 그 때 인류가 가지고 있던 문명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하는 비판적인 생각이 더 컸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첫 장을 펼치면서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는 동안 나는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4000년도 전에 있었던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한 삶, 비슷한 감정, 비슷한 생활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에서 인간의 본연적인 토대를 이루는 것들에 대해서 두고두고 생각할 수 있었다.

길가메쉬는 인간인 아버지와 들소의 여신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반신반인의 실존 인물로 수메르의 도시국가 우루크 제1왕조의 5번째 왕이었다고 한다. 이 시기는 성경의 시기보다도 훨씬 앞선 시기이고 오디세이아보다는 더 훨씬 이전의 시기로 이 때 만들어진 많은 이야기들이 지금 우리가 흔하게 접하고 있는 신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길가메쉬는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던 영웅으로 친구 엔키두와의 우정을 쌓으며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 혁혁한 공을 세웠고 그 결과로 엔키두의 죽음을 맞게 된다. 친구의 죽음과 그 사라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정면으로 맞서며 부귀영화를 버리고 대초원을 방황하는 신세로 불멸의 방법을 찾다가 쓸쓸히 죽어간다.

"길가메쉬. 자신을 방황으로 몰고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요? 당신이 찾고 있는 영생은 발견할 수 없어요. 신들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에게는 필멸의 삶을 배정했고, 자신들은 불멸의 삶을 가져갔지요. 길가메쉬. 배를 채우세요. 매일 밤낮으로 즐기고, 매일 축제를 벌이고, 춤추고 노세요. 밤이건 낮이건 상관없이 말이에요. 옷은 눈부시고 깨끗하게 입고, 머리는 씻고 몸은 닦고, 당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을 돌보고, 당신 부인을 데리고 가서 당신에게서 즐거움을 찾도록 해주세요. 이것이 인간이 즐길 운명인 거에요. 그렇지만 영생은 인간의 몫이 아니지요."

이 대목이 아마도 이 신화의 전반을 지배하는 가치가 아닌가 한다. 사람은 신들에 의해 창조되고 즐거움을 누리며 현재를 즐기는 운명은 가질 수 있어도 영원히 살 수는 없도록 되어 있다. 인간이 늘 '죽음'이라는 화두 앞에 무력함을 느끼고 고뇌하고 그것으로 현재를 지배당하는 것은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임을,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의 고민만이 아니라 나의 핏 속을 면면히 흐르는 수천년 전의 선인들로부터의 근원적인 고민임을 이 신화는 말하고 있다. 어쩌면 길가메쉬는 그러한 고뇌의 첫 사람인지도 모른다.

죽음은 인간을 속박하기도 하고 자유롭게도 한다. 항상 이와 같음이 아니라 늙고 병들고 끝내는 조그마한 무덤 자리를 벗삼아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세상사의 많은 번뇌들로부터 벗어나기 쉬워진다. 그 어느 것에도 슬퍼하거나 절망하거나 의기소침하지 말고 다만 분노로 얽힌 마음만은 저승으로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엔키의 말처럼 인간은 누가 지정해주지 않아도 죽음이라는 한계 앞에서 자신의 살아가는 방식을 규정해야만 한다. 죽음을 예비하고 살아가는 인생은 달리 생각하면 더 당당해지고 더 초월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대의 수메르인들은 이러한 실존인물을 통한 신화로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버팀목을 삼았으리라 생각된다. 무엇하나 모자랄 것 없는 길가메쉬 왕도 결국 죽음 앞에 허무하게 스러져간 나약한 존재임을 되새기면서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 자신의 삶을 가다듬었을 게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하나 빠짐없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에 나는 오히려 안도한다.

삶에 대한 생각은 결국 죽음으로부터 비롯되고 그것에서 영원히 풀려날 수 없는 우리네 인간은 이 작은 머리로 비통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순순히 받아들인 채 현재의 삶에 용맹정진하는 것이 최선임을 이 신화는 큰 울림으로 말하고 있다. 그것은 현재에 안주하라고 하는 비굴하고 정체된 자세가 아니라 자신에게 유한하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도저히 어길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기억하며 자신을 겸손히 하고 더욱 용감히 살아가는 자세를 가지라는 일종의 경종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 신화가 명확하고 지혜로운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수천 년 역사의 귀중한 보물임을 나는 책을 덮으면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느낄 수 있었다.

지은이의 꼼꼼하고 깊이있는 연구와 고증이 출판사의 적절하고 깔끔한 편집과 잘 어우러져 책의 가치를 한층 더 높였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잘된 저작이 어떻게 빛을 발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르바나 2005-03-0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두꺼운 책읽기에 성공한 일을 축하드리고요.
좋은 리뷰를 올리신 일도 아울러 축하드립니다. 비연님

비연 2005-03-0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감사합니다^^ 님은 가끔씩 남기시는 덕담으로 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시는 것 같아요...이 책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미네르바 2005-03-01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두꺼운 책을 읽으셨군요. 저는 여러 서재 지인들의 리뷰만 읽었지, 아직 읽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는데... 님의 리뷰를 보니 꼭 읽어봐야겠어요. 잘 읽었어요.

비연 2005-03-0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정말 좋은 책입니다. 저는 이벤트에 응모해서 그냥 받았지만 사실
이런 책은 사서 봐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가고 잘 된 책이더군요. 꼭 읽어보세요~^^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으로 난 교육과 관련한 책인 줄 알았다. 막상 읽고 나니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일종의 호러나 SF 영화를 본 듯한 기분도 들고 정치적인 뉘앙스가 있는(마치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처럼) 것도 같고 아니면 그저 평범한 일상에 대한 안일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경고처럼도 느껴진다.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 덕분으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계속 읽을 수 밖에 없었다.

1960년대 영국. 가치관이 혼란스러워지고 사회에 불안과 살인과 실직이 만연하고 성(性)의 문란이 심각해지고 가족의 해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던 즈음, 해리엇과 데이비드라는 어찌 보면 매우 보수적인, 또 어찌 보면 매우 독특한 두 남녀가 한눈에 반하여 결혼을 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평범한 출발이다. 그들은 서른살과 스물다섯살의 젊은이들이었고 남자는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여자는 비교적 안온한 가정에서 자랐다. 큰 집과 정원을 두고 여럿의 아이를 낳아 주위의 친지들이 언제라도 스스럼없이 찾아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낙원'을 꿈꾸는 그 부부를, 주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지켜본다. 첫 아들이 금방 생기고 둘째딸, 셋째딸, 그리고 넷째 아들이 차례로 태어나면서 사실 번잡한 일상사가 반복되기는 해도 그럭저럭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 그 부부는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가정으로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음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물론 거기에는 경제적 지원을 하는 남자의 아버지와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주는 여자의 어머니가 있었긴 하지만, 가급적 크게 남들에게 기대지 않은 채 그들은 열심히 일하며 가정을 일구어나갔다. 그리고 불행은 다섯째 아이가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광폭하고 엄마를 고통스럽게 하던 아이. 너무나 아프고 두려워 진정제를 입에 '쏟아 부을' 수 밖에 없게 하던 그 아이는 마치 외계인과 같은 모습으로 태어난다. 증오와 분노를 한가득 안고 주위의 애정을 거부하며 커가는 그 아이, 벤으로 인해 가정은 붕괴되고 서로 경원시하는 상태가 지속되며 주위에 몰려들던 많은 사람들도 하나둘씩 다른 데로 흩어져 간다. 한때 요양원(말이 요양원이지 거의 수용소인 곳)에 벤을 버려두려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한 엄마 해리엇으로 인해 잠시의 행복은 또 무너지고 그 짐을 엄마가 다 짊어지게 된다. 그리고 벤은 이 세상이 자기가 머물 곳이 아닌 양 이상스레 부유(浮流)하다가 자신의 비슷한 '종족' 들을 찾아 집단을 형성하고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자신의 가정은 특별히 단란하고 특별히 이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걸까. 그녀는 데이비드에게 말하였다. "우린 벌받는 거야. 그뿐이야." "무엇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에 그가 증오하는 톤이 있었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그가 물었다.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 책 속에 나온 이 구절은 아마도 그러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지 모르겠다.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사회집단이자 일종의 보호막을 두른 존재는 가장 이기적인 집단일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들을 철저히 가리고 구성원들에게 가식적인 행복의 상태를 강요하기도 하는 그 불야성은 어느 한 순간 불거질 수 있는 작은 틈으로도 금새 붕괴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지도. 그리고 그 속에서 그 틈에 손가락을 끼우고 막아보려 하는 엄마 해리엇은 철저히 소외를 당하게 되고 결국 이렇게 소리친다.  "이건 정말 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들을 갖다니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해리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이제까지 그런 말을 안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전 그저 죄인이죠." 어떤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기 보다는 어떤 구성원에게 책임을 물거나 혹은 철저히 외면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허울로 한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비관론이 될까.

혹은 격세 유전자에 의해 생겨난 '에어리언'이 이 세상에 부적응한 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감을 가중시킨다는 설정으로 하나의 호러물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의 일상을 침범하는 무서운 방해꾼이 동시대인이 아니라 저 먼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다른 세계의 존재가 불현듯 끼어들어 공포를 자아내는 상황이나 인간 진화 과정에서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그 어떤 존재가 있었고 그들은 지하세계로 숨어들어가 자신들만의 세계를 형성함으로써 미래의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설정 등이 예사롭지 않다. 이는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일반적인 작품 세계에서 주로 엿볼 수 있는 내용이라 한다.

아뭏든 그것이 가족이데올로기의 문제이든 통제가 불가능한 유전자로 인한 괴물의 출현이든간에 작가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그냥 그렇게 영위되는 것이 아니며 늘 위태하고 누군가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매우 불안한 상태임을 규정한 채 그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진화의 소산인 인간이나 가족의 형태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어쩌면 신기루에 불과해서 훅 하고 불면 금새 흩트려질 허상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음산한 작품 분위기와 뭔가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함이 책을 덮고 나서도 왠지 개운치 않은 맛을 남기기는 하지만 이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떨까 라는 궁금증을 자아낼 정도로 이 책은 다른 소설류에 비해 많이 독특하고 재미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품은 영화로 먼저 접했었다. 음습한 감옥 안에서 단 두 명의 죄수가 앉아 끊임없이 떠들던 그 모습과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책으로 한번은 다시 봐야겠다 벼르고 벼르다가 이번에 보게 되었다.

낭만적인 동성애자 몰리나와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정치범 발렌틴이 한 감옥에 수감된다. 몰리나가 '캣피플' 이라는 영화의 줄거리를 얘기해주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되고 이러한 대화는 몰리나가 풀려나기 전까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계속된다. 그 이야기들은 그저 흔하디 흔한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몰리나의 마음과 시각을 담보하고 처음엔 싸구려 이야기라며 냉소하던 발렌틴은 갈수록 그 이야기들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 몰리나와 발렌틴은 '사랑'을 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가석방된 후 발렌틴의 부탁을 위험한 상황에서도 실행하려 했던 몰리나는 죽게 되며 고문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발렌틴은 몰리나처럼 자신의 상상을 한 편의 드라마로 완성하며 이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몰리나의 모습이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동성애자. 미성년자 추행혐의로 감옥에 들어오게 된 그는 어찌 보면 매우 추잡한 인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 무엇이고 그 사랑을 실천함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성적인 감성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책에서는 곳곳에서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에 대한 여러가지 이론들을 주석으로 달아놓아 과연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왜 낙인찍혀 버림받게 되었는가에 대한 고려를 하게끔 한다. 어떤 경로를 통해 그러한 성향을 가졌든간에 그것이 과연 질타와 비난의 대상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 작품에서 묘사된 몰리나라는 사람은 겉은 남성일 지 모르나 마음은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과 애정으로 충만하였다. 그는 이미 사랑하게 된 발렌틴을 사모하는 마음을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적절히 묘사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전달하려 했고 발렌틴이 (의도적으로 넣어진 음식을 먹고 걸린) 병으로 앓는 동안 조석으로 보살핀다. 또한 교도소장을 이용하여 먹을 만한 음식들을 가지고 들어와 자신보다는 발렌틴을 먹이기에 열중하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런 모습들 속에서 과연 성정체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규정하고 있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것이 생물학적 형태론에 입각하여 정해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정치범 발렌틴은 감옥 밖에서 배운 이데올로기적인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사람이다. 그는 사상을 위해 사랑을 희생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압한다. 그래서 몰리나의 애정지상주의에 서슴없이 경멸을 보이고 항상 강박적으로 사상서를 읽으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여기에서는 사상이 그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가두고 표현하지 못하게 하며 벽을 쌓게 만드는 도구로써 작용한다. 하지만 몰리나와의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에워쌌던 껍질을 벗어던지게 되고 끝내는 쓰레기처럼 여겼던 소설적 이야기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 묘사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몰리나와 발렌틴의 결합, 그리고 폭력에 희생되는 몰리나의 모습, 편견 자체였던 발렌틴이 변화하는 모습들이 시사하는 바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완전히 상반되는 성향의 인물 설정과 그 결합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억압과 폭력과 부조리에 대해 말하는가 하면 양 극단이 사실은 아예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비치기도 한다. 사회에서 멸시의 대상인 동성애자의 마음은 따뜻한 애정으로 가득차 있고 사상적으로 투철하고 지적인 정치범의 가슴은 냉정하기 이를 데 없다는 설정 또한 매우 아이러니하다. 중간 중간 사회의 주류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편입되지 못한 존재들이 주변인으로서 느끼는 심정들도 드러나는 점은 주시할 만 하다. 무엇보다 너무나 많이 얘기가 되고 있어서 이제는 소설의 주제로 다루기에는 지겨울 정도인 그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다른 각도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 대화체 형식으로 끌어가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아낌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작가의 솜씨에 이끌려 쉼없이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추었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현 세대에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문제들을 어렵지 않으나 천박하지 않고 쉬우나 의미심장하며 반복적인 형식 속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표현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almas 2005-02-0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추천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