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오천년 1 - 진순신의 중국 라이브러리
진순신 지음, 이혁재 옮김 / 다락원 / 2002년 2월
절판


신화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이야기만 나열한 것은 아니다. 반드시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나 혹은 그 무엇인가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일본의 신화 중 야마토(大和) 조정 탄생 당시의 신화를 예로 들어보자. 천손(天孫)이 강림한 뒤 천신(天神)이라 불리는 집단이 지방 호족을 흡수ㆍ합병해 간다. 나라를 상대에게 넘기는 전설 같은 경우 내용이 매우 확실하고 잘 정리되어 있다. 지방 호족은 지신(地神)이다. 천손족(天孫族)이 지방 호족들을 복속시킨 뒤 야마토 조정은 완성된다. 『고지키(古事記)』(712년 완성된 현존하는 일본 최고最古의 역사 책―옮긴이)에 나오는 신화는 야마토 조정의 탄생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고지키』는 혈연 관계가 없는 집단을 혈연으로 맺어진 것으로 조작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어떤 국가(집단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라도, 그 탄생 과정을 신화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시대를 이끌었던 국가가 종종 바뀌곤 했다. 하 왕조가 복수의 세습 왕조였을지도 모른다는 점은 다른 책에서도 언급한 적은 있지만, 시대를 이끌었던 국가가 멸망할 경우 멸망한 왕조가 만들어낸 신화는 전승되지 않는다. 새로 등장한 왕조 혹은 국가가 또다시 자신들을 위한 신화를 만들어낸다. 새 왕조 역시 언젠가는 붕괴하며, 다음 왕조가 자신들을 위한 신화를 탄생시킨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역사 시대를 맞게 된다.
따라서 중국의 신화가 단편적이고 체계가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대를 주도한 국가가 종종 교체되었기 때문에 신화가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의 수준만 놓고 '중국은 체계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민족'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쪽

단편적인 형태로나마 중국의 신화가 후세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배경은 국토가 넓었다는 데 있다. 권력 투쟁에서 패해 주인공 자리를 빼앗긴 집단이 다른 곳으로 도주해 살아갈 수 있을 만큼 토지가 넓었다는 얘기이다. 세력이 약해져 자신들의 신화를 생생히 전달할 에너지를 상실했지만, 그 중 일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남길 수 있었다. 신화는 원래 시대를 뛰어넘는 존재이다. 신화를 역사 시대에 정확하게 끼워맞추려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인간이 문화를 갖게 되었을 때부터를 역사 시대라고 정의한다면, 신석기 시대가 역사의 새벽에 해당한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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