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뒷골목 엿보기
홍하상 지음 / 예담 / 2005년 11월
품절


두번째 호텔은 호텔 소피텔 이 호텔은 콘티넨털 호텔, 즉 현대식 호텔로, 별 네 개짜리다.
호텔 소피텔은 파리에 여러 개 있는데, 트윈 객실의 경우 하룻밤에 13만 원대. 아침밥을 주고 현대식 식당에서 산더미같이 쌓아 놓은 오렌지, 파인애플, 사과, 치즈 등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이 역시 나그네들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출발 전에 미리 한국의 호텔 예약 전문 여행사에서 예약을 하고 가면 30퍼센트 정도 싸게 이용할 수 있다.
세번째의 경우는 호텔 발리 서프렌. 앵발리드 근처에 있으며, 별 두 개짜리 호텔로 싱글 하룻밤에 8만 원이다. 개업한 지 340년 되었고, 객실이 10여 개밖에 안 되는 작은 호텔로, 대단히 친절하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아침에 프런트로 내려가면 소피 마르소같이 아름다운 여종업원이 방긋 웃으며 식당을 가르쳐 주는데, 식당에는 주로 서양 관광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프랑스에 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기분좋은 호텔이다. -.쪽

네번째 호텔은 파리 시내 북쪽 몽트뢰일에 있는 알비옹 호텔이다. 이 호텔은 한국의 여행사뿐만 아니라 스페인, 독일, 미국 여행사에서 단체 패키지로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아침 식사는 식당에서 단체로 하며, 하룻밤 요금은 트윈에 8만 원 정도로 조금 싼 편이다. 이 호텔 앞에서는 토요일마다 벼룩시장이 열려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
이 지역은 아랍인 거주 지역이어서 이른바 치안이 좀 불량하다는 게 흠인데, 사실 겁낼 건 없다. 오히려 이 더듬수나그네의 경우 아랍인 거리로 나가 이 집 저 집에서 맥주까지 마시면서 아랍인들과 얘기하면서 놀다 들어왔으니까. 다만 하루 저녁에 한 번 정도는 싸움이 벌어지는 좀 어수선한 곳이기는 하다.
네번째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이다. 바로 낙원호텔 같은 곳이다. 우선 방 값이 1인당 2만 원 정도로 싸고, 호텔 안에 한국 식당이 있어서 외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편리한 곳이다. 그러나 외국에 왔다는 기분은 좀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쪽

이 더듬수나그네, 살아오면서 한 가지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다. 여행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행은 항상 본전 이상의 것을 가르쳐 준다. 여행을 하면 지겹다고 생각되던 일상이 갑자기 즐거운 것으로 변해 버린다. 여행을 하면 세상에 볼거리가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여행을 하면 내가 너무 속이 좁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의 키가 쑥쑥 크고, 정신이 건강해진다. 여행을 하면 유식해진다. 여행을 하면 다시 직장으로 복귀해서도 힘이 난다. 왜냐하면 돈 벌어서 내년에도 또 여행을 가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게 되니까.
여행이란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 입으로 맛을 느끼며, 코로 그 나라의 체취를 맡고, 귀로 그 나라의 말소리와 음악을 듣는 것이다. 평소 한국에서는 눈도, 귀도, 코도 닫아 놓고 필요한 것만 듣고, 보고, 냄새를 맡는데, 여행지에서는 눈, 코, 귀, 입, 머리 등 오관이 동시에 가동한다. 그러다보니 평소보다 다섯 배로 바빠지면서 평소보다 다섯 배로 많이 배우게 된다. 자연히 몸이 피곤하다. 이것을 사람들은 여독旅毒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건 독이 아니라 최고의 영양제다. 정신에는 이보다 더 좋은 영양제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간다. 돈이 없을 때는 꾸어서도 간다. 좀 미친 놈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돈은 빌릴 수 있지만 시간은 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신용 카드라는 물건이 있어서 아주 편리하게 쓰는데, 비행기표의 경우 12개월 할부로 끊어서 1년 동안 갚고, 그걸 다 갚을 즈음에는 다시 할부 비행기표를 사가지고 나가는 것이 지금까지 나의 여행 방식이었다.
어쨌거나 주머니에 돈이 넘쳐서 여행 가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아껴 쓰면서 화장실에 가서 돈이 얼마 남았나 몰래 세어 보고 고민을 하는 것이 정말 더 재미있다.-.쪽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가게는 타박tabac이다. 술은 팔지만 선술집이라기보다는 간이매점에 가깝고, 생맥주, 양주 잔술, 샌드위치와 달걀 프라이 정도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으며, 우표, 껌, 담배, 볼펜, 그림엽서, 복권 등도 살 수 있다. 타박은 골목마다 하나씩 있는데 손님들은 대개 동네 사람이다.
동네 노인들은 아침 10시경이면 문을 여는 이곳 타박에 모여 포도주를 한 잔씩 하면서 한담을 나누기도 하고, 청년들은 지나가다가 들러 커피나 양주, 생맥주 한 잔씩 마시고 간다. 잡화상이면서 술도 팔고 간단한 식사라도 할 수 있는 타박에 나 또한 자주 간다.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아프면 쉬거나 그림엽서를 사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쓴 뒤 우표를 붙여 주인에게 주면 그가 우체부에게 준다. 프랑스에서 우표와 엽서를 파는 곳은 타박밖에 없다. -.쪽

생 미셸 거리에 있는 생 미셸 카페로 갔다. 오늘의 추천 세트 메뉴가 출입문 앞 칠판에 분필로 적혀 있다. 보통 50프랑(1만 원)에서 100프랑(2만 원) 사이. 학생이나 가난한 문인들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기에 값이 싼 편이다. 카페는 점심 시간이라 제법 붐빈다. 일부러 행인 구경도 할 겸 노천 테이블에 앉았다.
파리에서는 햇빛이 잘 드는 테이블일수록 값이 비싸고, 실내의 으슥한 곳일수록 값이 싸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으슥한 밀실을 좋아하지만 햇빛이 귀한 이 나라에서는 그 반대인 것이다. 노천 테이블에 앉아 지나가는 파리지엔의 패션을 보는 것은 쏠쏠한 재미가 있다.
달팽이 요리를 시켰다. 언젠가 한국에서 제일 큰 호텔 레스토랑에서 달팽이 요리를 먹은 적이 있다. 그때 내 느낌은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였다. 혹시 달팽이 요리의 본 고장에 와서도 실패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도 됐지만 우선은 씩씩하게 달팽이 요리를 주문했다.
한 접시의 달팽이 요리가 나왔다. 접시 위에 10여 개의 달팽이 요리가 놓여 있다. 집게로 속살을 끄집어 내 씹어 보았다. 오우, 이렇게 맛있을 수가! 살은 부드럽고, 짭쪼름하면서 매끄러운 것이 입 안에서 살살 미끄러진다. 과연 본고장의 맛이다. 언젠가 마카오에서도 달팽이 요리를 먹었는데 맛은 고사하고 모래가 씹히는 통에 억지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헌데 이곳의 달팽이 요리는 그런 것도 전혀 없다. 비록 가난한 대학생과 문인들을 상대하는 대학가의 식당이지만, 요리 자체는 신실하고 맛이 있다. 양에 차진 않지만 달팽이 요리 한 접시를 다 먹었다. -.쪽

자, 밥을 먹었으니 어디 가서 차라도 한잔 해야 할 것 아닌가. 생 미셸 거리Bd. St-Michel에서 5분쯤 걸으면 생 제르맹 데 프레 거리다. 이곳은 주로 여성 의류와 구두 등 패션 제품을 파는 패션의 거리이자 철학자와 교수가 많이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파리에서 제일 오래 된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 앞의 큰길가에 그 유명한 카페 오 되 마고Caf Aux Deux Magot와 카페 드 플로르가 있다. 프랑스에 오면 한 번쯤은 그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한 잔 시켜 놓고 이 생각 저 생각 메모도 하고 엽서도 쓰고 행인 구경도 한다.
카페 혹은 비스트로는 프랑스의 명물이다. 프랑스의 문화는 카페에서 탄생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카페는 토론과 대화의 장소이다. 그래서 카페는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요리와 더불어 프랑스의 3대 문화에 들어간다. 그럼, 이쯤에서 프랑스 식당들을 살펴볼까? 오잉? 식당은 다 같은 식당 아니냐고? 아니니까 내가 굳이 그대들에게 얘기를 하겠다는 것 아닌가. -.쪽

나그네들은 레스토랑, 브라스리, 비스트로, 카페를 구별할 수 있는가? 이들을 구별할 수 있는 간단한 등식이 있다.
레스토랑>브라스리>비스트로>카페.
레스토랑Restaurant은 저렴한 가격의 것부터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고급 레스토랑까지 수준은 다양하지만 예약과 정장이 필수인 곳이고, 브라스리Brasserie는 원래 '맥주 홀'을 의미하는 말로 레스토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대중 레스토랑이다. 브라스리보다 규모가 작고 가정적인 분위기의 대중 음식점은 비스트로Bistrot다. 이는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당으로, 'Plat du jour'라고 칠판에 써놓은 요리가 주방장 추천 요리로 싸고 맛있다. 카페언제라도 부담없이 들를 수 있는 곳이다. 카페로 유명한 거리는 파리 시내에도 여러 곳 있지만 생 제르맹 데 프레 거리야말로 카페 1번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흔한 ○○카페와는 비교하지 말기를! 오리지널 카페 분위기를 흉내낼 만한 곳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좀 감이 잡히는가? 하지만 직접 가봐야 그 분위기를 제대로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 가면 꼭 종류별로 한 군데씩 가보길!
본론으로 돌아가서, 카페 오 되 마고는 젊은 시절 기병 장교였던 나폴레옹이 술을 마시고 돈이 없자 모자를 맡기고 나간 장소로도 유명하고, 왕년의 대화가들이 자주 드나들던 전통 있는 카페로도 유명하다. 바로 이 카페에서 1907년에 피카소Pablo Picasso와 브라크Georges Braque가 자주 만나 큐비즘, 즉 입체파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 카페 오 되 마고 옆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는 1950년대 파리의 철학자와 대학 교수들이 자주 모이던 곳이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그의 동거녀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차도 마시고 토론도 하고 집필도 했다는 곳, 여기가 바로 그 실존주의의 산실인 것이다. -.쪽

도둑놈의 창고, 루브르 박물관

파리에 와서 역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은 루브르 박물관이다. 그러나 루브르 박물관은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들르는 것과는 달리 들를 때마다 기분이 조금 상하는 곳이다. 입장료를 받기 때문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는 데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루부르에는 무려 225개 방이 있고, 총 30만 점이 넘는 작품이 있으니, 박물관을 하루 코스로 잡았다면 아예 아침 일찍 입장해서 하루 종일 볼 각오를 해야 한다. 우선 자신이 꼭 볼 작품을 미리 체크한 뒤 그것부터 보는 것이 요령이다. 만일 <모나리자>를 꼭 볼 사람이라면 곧바로 <모나리자>가 있는 방으로 직행하자. 처음부터 자세히 보겠다고 달려들었다간 결국 <모나리자>를 못 보고 나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가장 보고 싶었던 걸 봤다면 다음 순위의 것들을 구경하면 된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관내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하자. 화요일은 휴관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기를.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최대, 최고의 박물관이며, 유물이 너무나 많아 봐도봐도 끝이 없는 곳. 하루에 결판을 내기에는 다리가 아파 도저히 승부가 나지 않는 곳. 나는 파리에 갈 때마다 루브르 박물관에 들르는데, 아직도 보지 못한 것이 많다. 마음을 다잡고 박물관으로 직행!
루브르 박물관은 고색 창연할 것 같지만, 입구는 대단히 모던하다. 루브르 박물관의 입구는 유리 피라미드. 1989년 미테랑 대통령이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3대 조형물 중 하나다. 3대 조형물이란 라 데팡스 개선문과 우리 나라의 정명훈이 지휘자로 있었던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바로 유리 피라미드이다. 최첨단의 화사한 유리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서부터 사방팔방으로 전시관이 연결되어 있다. 세계 최대, 최고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쪽

나는 사실 이 책에서 루브르 박물관은 별로 쓰고 싶지 않지만, 안 쓰고 넘어가면 독자들이 매우 궁금해할 것 같아 몇 글자 적는다.
내가 루브르에 대해서 쓰고 싶지 않은 이유는 솔직히 루브르 박물관은 도둑놈의 창고 같기 때문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과연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 중 남의 나라에서 훔쳐오거나 뺏어오지 않은 물건이 몇 점이나 되느냐 말이다. 이건 런던의 대영 박물관도 마찬가지인데, 남의 나라 물건을 빼앗아다가 이렇게 보란 듯이 전시하는 건 또 무슨 가학 심리인지 모르겠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도 사실은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형이 그린 것이 아닌가 말이다. 다 빈치 형이 그린 그림이라면 그게 로마 박물관에 있어야지 왜 루브르에 있는가. 이건 남의 집 금송아지를 훔쳐다가 자기 거라고 우기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루브르나 대영 박물관이나 상당수의 유물은 이집트나 북아프리카의 국가에서 통째로 떼어온 것들이다. 파리의 그 유명한 콩코르드 광장에 우뚝 서 있는 그 거대한 오벨리스크도 이집트에서 통째로 떼어온 것이고, 대영박물관에 있는 로제타 스톤도 이집트 나일 강가에 있던 것을 영구그이 군인이 발견해 통째로 실어온 것이다. 이건 과거 일제 시대에 일본놈들이 조선땅에 있는 탑이며 건물 따위를 통째로 뜯어다 자기 집 안마당에 가져다 놓은 것과 다를 게 없다. 아랍인들이 프랑스를 미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독자 여러분들이야 여기에 가서 미켈란젤로의 조각도 보시고 라파엘로의 유화 <아름다운 여 가정교사>도 보시고, 렘브란트의 유화 <늙은 화가의 초상>도 보셔야겠지만, 루브르의 대표적 전시물들이 프랑스의 것이 아닌 남의 나라 것임을 알고 보시길! 고대 오리엔트 미술관이 그렇고, 고대 이집트 미술관이 그렇고,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관이 그렇다. 남의 나라 것들을 다 빼고 나면 남는 것은 겨우 18세기 이후의 프랑스 화가들이 남긴 그림 몇점니 고작인 것이다.-.쪽

평생 도보 여행을 하다가 일생을 마감한 미국의 콜린 프랫처라는 나그네는 이런 말을 했다.
"네가 여행 도중에 방울뱀에 물려 죽더라도 후회하지 말라. 이미 배낭을 매고 집을 나선 그 순간부터 모험은 시작된 것이다. 모험을 각오하고 나선 사람이 뱀에 물려서 죽게 됐다고 땅을 치며 후회한들 어찌 하겠는가. 어차피 인생은 모험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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