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뭔데 - 젊은 인권운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현장이야기
고상만 지음 / 청어 / 2003년 3월
품절


인권단체와 경찰 사이의 오래된 논쟁 중 하나가 바로 이 불심검문에 대한 논쟁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범죄 예방을 위해 법에 정한 권한에 따라 경찰이 수행한다는 불심검문과 반면 불심검문이 법의 엄격한 절차에 따라 요구되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인 인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인권단체는 불심검문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불심검문은 법률에 근거한 경찰의 권한이라는 점도 사실이다. 그런데 인권단체는 왜 이 법률로 정한 경찰의 불심검문에 대해 비판하는 것일까.
우리가 비판하는 것은 경찰의 권한 남용 내지는 불법 검문에 대한 반대이다. 불심검문이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공공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특정한 사람을 '정지'시켜 질문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러한 법률적 근거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명시되어 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3조(불심검문)에 따르면 불심검문의 대상은 합리적,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수상한 거동을 보이는 사람, 죄를 범하였다고 보이거나 죄를 범하려 하고 있다고 보이는 사람, 이미 행하여진 범죄 등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보이는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당한 의심의 '근거'가 있는 검문 대상자를 상대로 경찰관은 그를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으며 이때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도 이 법은 정하고 있다.-.쪽

즉, 검문을 하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증표를 제시하고 이어 질문을 하려는 목적과 이유를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영장 없이 실시되는 임의 수사의 일종이므로 경찰관은 검문 대상자에게 자신의 의사에 반해 답변을 강요해서도 안 되며 응하지 않는다고 그에게 수갑을 채우거나 그 장소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불법으로 정하고 있다. 인권단체가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법률을 경찰이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입장에서 대단히 불쾌한 이야기 일 수 있겠지만 나는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에게 "불심검문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을 때, 이를 정확하게 대답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겠지만 김영삼 정권 당시만 해도(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정권 때 아마 이런 질문을 경찰에게 했다가는 그냥 곤봉에 맞았을 것이다)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10명중 9명의 경찰은 자신의 왼쪽 가슴을 딱 쳤다. 그 왼쪽 가슴에는 '경찰' 이라고 써 있다. '경찰이니까.'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1명은 어떤 경찰이었을까.
"야, 니가 그렇게 똑똑해. 그래, 너 잘났다. 이 새끼야, 그냥 가라!"-.쪽

-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말씀은 어떤 이야기가 있었나요?
= 아까 이야기를 하다가 말았는데 내가 그 주사를 맞히기 위해 이리저리 부탁을 하고 있는데 태일이가 나를 막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라구. 그러더니 "어머니, 사람이 3도 화상을 입어도 살지를 못하는데 나는 빨리 분신을 하려고 옷안에도 솜을 끼어 넣고 거기에도 석유를 넣었는데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그러니 주사나 약은 필요 없으니 나와 함께 말이나 해 주세요." 하는 거야. 그래 내가 "그럼 우리 기도를 하자."고 하면서 성경책을 태일이 머리맡에 두고 나서 내가 태일이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어. "하나님, 사람의 생명을 죽이고 살리고는 하나님의 뜻인데 우리 태일이를 하나님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를 했는데 잠시 후에 태일이도 기도를 하더라구. "성경의 말씀에 자살을 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노동자를 위해서 죽으니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머니는 예수 믿지요. 예수를 믿으면 실천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하는 거야. 또 "물질이나 욕심에 물들면 안 돼요."라면서 나는 어머니를 믿는다고 하더라구. 그러면서 자기 친구들을 좀 불러달라는 거야. 그런데 병원에 있던 친구들은 이미 다 경찰이 연행해 가 버리고 단 두 명만 어떻게 병원에 있더라고. 그러니까 태일이가 그 애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너희들은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또한 살아가면서 여유가 있으면 나 대신 우리 어머니에게 효도를 해달라고 이야기했어.-.쪽

'아름다운 국민의 의무'와 '아름다운 국가의 의무'

이 같은 군내 사망사건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나는 더 이상 국방부 혼자만 사건을 해결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족이 추천하는 대리인이 수사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유족들이 제기해온 의혹이 충분히 해명될 수 있어야 한다. 투명하지 못한 수사가 결국 군대 사망사건을 의문사로 만들고 그 의문사한 아들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극약을 마시고, 강물로 투신하며, 끝내는 가정이 파탄 나는 비극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위해 군에 입대한 자랑스러운 아들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나약하고 소심해서 자살해 버린 못난 아들로 돌려주는 지금의 이 잘못된 수사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국민에게 무조건 '국민의 의무'만 이행하라는 요구하는 것은 민주국가가 아니다. 또한 설령 자살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그 '이유 있는 죽음'에 대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을 다시 사랑하는 가족들의 곁으로 돌려주지 못한 국가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그들에게 추모와 최소한의 예우가 뒤따라야 한다. 그리하여 힘있는 자들 다 빠져나간다는 '아름다운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머리 빡빡 깎고 입대한 후 그 원인도 밝혀지지 못한 채 숨져간 이 땅의 힘없고, 빽 없고, 권력 없는, 이름 없는 우리 형제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달래주는 '아름다운 국가의 의무'를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나는 바란다.-.쪽

서명 하나에 도망가던 사람들

왜 요즘 그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을까.
3대 독자의 외아들, 학기마다 장학금을 받던 착하디 착했던 그 아들이 그렇게 미군과 미 군속의 아들들에 의해 '재미 삼아' 죽임을 당한 후 어머니는 미국으로 도망간 패터슨의 송환과 살인자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평범한 주부에서 벗어나 서명지를 한 움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어머니는 그저 억울하게 죽은 중필이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부끄러움도, 발이 부어터지는 고통도 참고 매일 매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리를 찾아 나섰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매일 매일의 거리에서 아들의 죽음을 맞이한 것보다 더 깊은 절망과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명판을 들이미는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그 차가운 눈빛과 냉대에 서러움이 북받쳐 몇 번이고 거리에서 눈물을 쏟아야 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미군이 관련된 사건에 대해 서명을 요구하는 어머니에게 사람들은 마치 무슨 몹쓸 병균이라도 가진 사람을 대하듯 피했고 심지어 도망가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을 대하며 어머니는 너무나 답답하다고 말했다.-.쪽

그러면서 아들의 죽음을 겪기 전만 해도 바로 그들의 모습이 자신이었음을 그는 고백했다. 어머니는 우리 나라 사람들을 그저 재미 삼아 죽이고도 미국으로 도망가 버려 처벌을 할 수 없는 이 억울한 사연을 널리 알릴 수 없음을 통탄해했다. 겪어보니 이 일이 결코 내 일만은 아닌데, 사람들은 모두 너무나 관심이 없고 조중필이 그렇게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일도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며 어머니는 눈물지었다. 나는 그런 조중필 군의 어머니를 보며 별달리 힘을 보태줄 수 없는 자신에 대해 심한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그때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나는 지금 우리의 효순이와 미선이가 숨진 사건 앞에 전 국민들이 나서 미군과 미국에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우리에게 사과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모습을 보며 그때 그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록 그것이 억울하게 잃은 아들을 위한 목소리는 아닐지언정, 이제라도 우리 국민들이 우리의 주권을 생각하고 미국과 미군의 실체를 바로 보게 된 것이 그 어머니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광화문에서 이름 없는 수만 명이 흔들리는 촛불을 들고 그 동안 이 땅에서 미국과 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숨져간 이들의 영혼을 위로할 때 나는 그 속에서 '조중필'과 그 '어머니'의 아픈 사연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점차 잊혀져 가는 가슴 아픈 그 '이름'과 '어머니'를 세상에 남기고 싶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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