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
환경기자클럽 지음 / 궁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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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0년대 중반 당시 과천정부청사 5동 5층 장관실에서 ○○○ 환경부장관과 한 초급 과장(현재는 부이사관)이 결재를 둘러싸고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이다. 결국 과장의 끈질김에 장관은 결재를 하기는 한다. 그러나 김 장관은 만년필 대신 옆에 있던 연필을 집어 드는 게 아닌가. 결재는 하되 연필로 한 것이다.
정치인 출신 환경부장관의 연필 결재.
무슨 의미일까.
권한은 갖되 책임은 못 지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국민들이 위임해준 온갖 권한은 몽땅 행사하고 싶지만 행여 정치인으로서 타격은 면하고 싶은 마음이야 누군들 모르랴. 하지만 장관의 결재가 일반 국민이나 기업들의 행위에 제한을 받는다면 연필 결재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지워지지 않는 만년필 결재는 책임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화호 담수화 포기가 선언되자 국민들은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책임을 지우라고 명령하고 있다. 벌써 15년 전에 추진된 일인 데다 그동안 정권이 네 번이나 바뀔 정도로 결재 라인에 선 공무원들이 많은데 누굴 처벌하겠느냐는 변명도 나온다. 또 정책 결정 사항에 대해 처벌을 하면 어느 공무원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하소연도 들린다. 그러나 결재의 의미가 뭔가. 책임의 의미다. 책임지기 싫으면 신중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신중하지도 못하고 책임도 지기 싫으면 장관도 공무원도 하지 말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래서 연필 결재는 무책임의 극치다.

=>연필 결재.. 참 씁쓸하네요.-.쪽

어린이가 봉인가
2000년 10월 환경부는 천연가스(CNG) 시내버스 홍보 행사를 벌이면서 천연 가스 버스가 공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초등 학교 어린이들을 동원하여 김명자 환경부장관과 함께 버스 뒤를 따라 걷게 했다. 아무리 천연 가스 버스가 오염 물질을 적게 배출한다고는 해도 무공해 버스가 아닌 저공해 버스인 다음에야 어린이가 버스 뒤를 따르도록 하면서 배기 가스를 마시도록 한 것은 지나친 처사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관이 어린이와 손잡고 걷는 '그림'이 되도록 연출해 신문이나 방송에 크게 보도되도록 어린이를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을 만들기 위해 어린이를 이용한 것은 환경부만이 아니다. 댐 건설이 백지화된 강원도 영월 동강 지역을 보존하기 위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모금 시작을 알리는 2000년 8월의 행사에서도 초등 학교 어린이들이 첫 모금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환경부 김 장관과 함께 모금함에 성금을 넣는 장면이 각 신문에 게재되고 방송을 탄 것은 물론이다. 새만금 간척 사업을 반대하는 시민 단체에서 주관한 '미래 세대를 위한 소송'에서도 어린이들이 빠짐없이 등장했고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쪽

최근에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주민들이 초등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시위에 끌어들이고 등교를 막았다. 러브 호텔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경기도 고양시 주민들도 시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초등 학교 학생들의 등교를 거부하겠다고 밝히고 나서기도 했다.
어른들은 주장한다. "버스에서 멀찌감치 따라가는 거라 큰 문제가 없다" "환경 문제는 미래 세대인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환경의 중요성을 교육하기 위함이다" "오죽하면 부모가 자녀의 등교를 막겠는가" "러브 호텔이 들어선 학교를 어떻게 다니게 할 수 있겠느냐" 등등.
-.쪽

그러나 어린이의 참여가 대 언론 홍보를 위한 '일회용'이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부모나 어른들이 행사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언론에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위협 수단으로 어린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라고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언론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어른들의 욕심을 잘 알면서도 속아주고 오히려 부추기기까지 한다. '그림'이 된다면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를 취재해 보도하는 것이다.
사실 환경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오늘, 우리 어른들이 행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미래 세대에게 물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어린이들이 각종 사안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린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어린이들의 능력을 계발하고 어린이들의 용기를 북돋운다면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환경을 지켜 나가는 데 큰 몫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정말 어린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고 장래를 위한다면 무분별하게 어린이를 동원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단번에 승부를 내겠다거나 냄비 끓듯 일어나는 환경 운동, 주민 운동이 아니라 미리부터 꾸준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준비한 환경 운동이라면 굳이 어린이를 끌어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쪽

"저 넓은 땅을 그냥 놀리다니. 개발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저 땅 위에 자라고 있는 나무, 나무들이 보여주는 풍광, 인간에게 제공하는 휴식 등을 모두 따져보면 개발하는 것보다는 그냥 보존하는 게 더 경제적일지도 모른다."
필자가 최근 미국 로드아일랜드 대학에서 방문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미국인 친구와 나눈 대화다.

=>어쩜.. 가장 현명한 대답인지도 모르겠습니다.-.쪽

환경은 돈이다
최근 의약 분업으로 병원비 부담이 늘어났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감기 등 경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의약 분업 이전보다 진료비 부담이 50% 정도 늘어났다는 볼멘 하소연이다. 그러나 환경이 오염돼 가벼운 질병이 늘어서 병원비 부담이 늘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어린이들의 경우 병원을 찾는 대부분이 감기 때문이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견뎌보고 싶어도 폐렴이나 중이염으로 발전해 부모 처지에서는 병원을 찾지 않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감기에 잘 걸리는 것은 환경 오염이 주요한 원인이다. 공기가 좋은 시골에서는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 환경 보존이 잘 돼 있는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등에 살다 우리 나라에 온 사람들은 이 같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환경이 바로 돈이요, 건강인 대표적인 경우다.
그동안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구경할 때에는 돈을 지불해왔다. 국ㆍ도립 공원 입장료가 그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즐기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데는 익숙해 있다. 그러나 환경이 곧 돈이라는 사실에는 익숙하지 않다. -.쪽

우리 국민들이 환경이 돈이라는 것을 가장 많이 경험한 것은 쓰레기분리수거제도를 시행하면서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시민들은 쓰레기를 버리는 데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고, 쓰레기 봉투를 사서 사용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또 서울 강남의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가 한강이 보이지 않는 아파트보다 최고 1억 원이 비싸고, 단지 환경이 좋다는 이유로 아시안 게임 선수촌 아파트가 압구정동 아파트보다 훨씬 비싸다. 환경이 부동산 값을 결정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공기 좋고 물 좋고 전망 좋은 곳이, 교통과 학군과 함께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변인이 될 것이다.
환경, 무한재라고 여겼던 공기와 물, 흙 등은 오늘날에는 더 이상 무한재가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아끼지 못하고 무차별로 훼손한 까닭에 이제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물 쓰듯 한다'는 속담이 이제는 바뀌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미 수도권 시민은 지난해부터 물이용부담금을 톤당 100원씩 지불하고 있고, 조만간 낙동강과 금강, 영산강 등 4대 강 모두에 물이용부담금이 부과될 전망이다. 수도 요금 이외에 깨끗한 물을 보존하기 위해 개발을 자제하고 있는 한강 중ㆍ상류 주민들에게 또 다른 물 값을 내는 것이다.-.쪽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는 공기세나, 또는 물처럼 공기에 대한 '이용 부담금'을 아마존이나 시베리아 밀림 지역 주민들에게 내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지혜로 환경 오염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21세기 말에는 지구의 존폐나 인류의 멸망을 심각히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고 미래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이쯤되면 환경은 돈의 문제를 뛰어넘어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환경 파괴가 심각해지면서 환경 파괴가 곧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자연 보호의 중요성을 자각하면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자는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하나뿐인 지구의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경제 개발을 해 나가자는 지속 가능한 경제 개발은 이제 21세기의 주요 패러다임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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