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우리의 자화상
임석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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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휴먼 스케일이란 말이 내내 맘에 와닿는다.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너무 넓지도 너무 좁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크기라는 의미일게다.

우리집은 좋다는 남향은 아니고 북서향이다.
낮에 집에 있을 일이 별로 없으니 굳이 남향이 아니어서 불편하다는 생각은 잘 안든다.
오히려 휴일 오후쯤에 뽀송뽀송하게 말린 빨래를 걷어 마루에 앉아 활짝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바라보는 노을 진 저녁하늘이 이 집의 최대 보너스라는 생각이 들때면 다른 단점쯤은 살짝 눈감아진다.
아이들에게 하늘 좀 봐, 저게 노을이라는거란다. 참 예쁘지?라는 말을 던질 수 있게 해주는 여유를 주는 집.
이 때 집은 단순히 그저 잠만 자기 위한 곳이 아니라 삶의 쉼터, 머뭄의 편안함을 주는 그런 곳이다.
어쩌면 이 책속에 등장하는 휴먼스케일이란 말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단순히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기능을 갖추면서도 잠시 쉼터의 역할을 해주고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이란 의미.
이 때 건축은 단순한 실용성의 의미를 넘어선다.

언젠가 지인이 새로 이사를 했다해서 집들이를 간적이 있었다.
소위 요새 한참 뜨는 초고층 아파트.
투자의 의미에서는 최고의 조건이었고 나름 부러운 생각이 안 드는건 아니었으나,
막상 그 집에 갔을때는 정말 기겁을 하고 말았다.
베란다도 없고 창이라고는 쪽문같은 약간 열리는 창이 다이고(그 창을 열어놓으면 높이때문에 좁은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야말로 몰아친다고 해야 할까? 환기를 위해 잠시 열어둔다면 모르겠지만 창문을 열고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정말 못할 것 같은...)
거기다 요즘 부지를 최대한 절약하기 위한 Y자형 건물의 형태는 바로 옆집의 현재 상황이 너무나도 실감나게 중계되는 것이 아닌가?
내집 거실에 앉아 앞집 사람과 눈을 맞출수 있다는건 정이 아니라 기본적인 사생활 보호의 개념조차 없다는 말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집은 가족의 공간이고 쉼의 공간이고 그리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교류의 공간이다.
그런 집에 창을 열수 없고, 늘 창에 커튼이나 브라인드를 내려야 한다는건 아무리 투자가 어쩌고 해도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
이런 집을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작가 임석제씨는 아니라고 말한다.

임석재씨의 이 책에서는 이런 식으로 인간의 삶과 교류가  무시된 온갖 가지의 우리 건축 이야기가 나온다.
건축에 관한 책이라고 어려운 양식 이야기나 미학적 관점 이런걸 얘기하는 책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경험하는 공간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하는 얘기들이다.
아~~ 그 때의 내 느낌이 이래서였구나하는 생각들을 절로 들게 한다고하겠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최첨단 하이테크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기차역사들.
밖에서 보면 나름 멋져보이는데 막상 안에 들어가면 느껴지던 그 황량함.
어딘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도통 마음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던 거대공간의 압박
그것도 단지 특정 지역의 역 하나가 아니라 요즘은 가는 곳마다 도시역사들이 모두 똑같으니 지역의 특색은 커녕 우리나라의 건축의 특성도 먼 얘기일뿐이다.
최대한 위엄있게라는 모토로 지어지는 관공서 역시 마찬가지...
동사무소는 그래도 좀 낫지만 구청부터는 들어갈때마다 주눅드는 느낌을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구구절절히 공감이 가는 말들이다.
일명 공무원 양식이라는 비아냥으로도 통하는 관공서 양식의 건물들은 결국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지배자로서의 우리나라 공무원의 얼굴을 그대로 닮았다.
낮은 곳이 아니라 능선을 파괴하고 점점더 높은 곳으로 임하시며
동시에 대형화되어가는 거대공룡 교회들
도시의 중심이 문화공간도 역사유적도 종교시설도 아니고 백화점이라니...
우리가 당도한 자본주의의 얼굴을 가장 잘 보여주는 표징이겠다.
점점 도시의 모든 공간을 정복해가는 아파트
그 중에도 창조차 열리지 않는 초고층아파트들......

이 새로운 건축의 모습들에 사람냄새가 들어설수 있는 곳이 없다는게 우리시대의 비극적인 자화상이겠지....
사람의 채취가 묻어나고 만남이 있어야 할곳에 오로지 자본의 욕망만이 들어차 있는 도시, 그리고 건물들....
어딘가를 들어설 때 느껴지는 불안감이나 위축감같은 여러 불편한 감정들의 정체가
아~~ 이것이었구나 하면서 하나 하나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그럼에도 건축이란게 다른 분야와 달라서 한 번 지어진 건물을 허물수도 없고...
그것을 참고 견디고 봐주어야 하는 기간이 너무 길어진다는 거다.
청계천 복원이 이벤트처럼 되어진 것에 대해 개탄하면서,
진정한 청계천의 복원은 서울의 나이를 제대로 복원하는 전체 프로젝트하에 배치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많이 공감이 갔다.
그런데 지금 갈수록 돈만이 최고가 되어가는 우리 사회에서
그런 건축적 인간적 안목이 채택되어지는게 거의 불가능하다는데 씁쓸함을 금할길이 없다.
그래서 저자는 더 이런 얘기를 많이 하고 알리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우리가 사는 공간에 휴먼 스케일을 도입하자고...
남아있는거라도 제대로 관리하고 보존하자고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고칠 수 있는 것들은 고쳐보자고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임석재씨가 그래도 꼭 우리 거리에 남아있어야 하는 것을 짚는 대목은 참 인상적이었다.
뭐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데 그럼에도 우리를 미소짓게 하는 것들
꽃가게, 거리의 책상, 골목길
여기서 거리의 책상은 벤치만 있는 공원이나 우리 거리에 작으나마 책상을 두자는 얘기이다.
책상 몇개만 배치해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수 있고,
머무는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우리 거리가 단순히 통과의 의미만이 아니과 머뭄과 교류의 장이 될 수 있을거라는 것
이 작은 발상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어렵지 않게 내가 사는 공간을 휴먼 스케일에 맞출 수 있는 방법은....
조근 조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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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건축, 우리의 자화상을 읽고
    from 더불어 함께 사는 도시와집과나 2009-11-15 00:52 
    난 아름다운 건축물을 좋아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운 건축물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드라마를 통해 건축설계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장래희망으로 삼기도 했다. 건축설계사라는 장래희망에 부풀어올라 내가 설계한 집을 짓는 꿈을 꾼 적도 있고, 그 꿈을 기억해내어 직접 스케치해보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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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독특한 구성이다.
보통 미술사라고 하면 고대부터 시작해 연대기순으로 쭉 양식과 사회상, 대표작가와 작품들을 나열하는게 일반적인데말이다.
하기야 다시 그런 서술을 반복하고자 했다면 굳이 이 책을 안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독특한 구성부터 살펴보면 미술의 기본적인 요소
형태, 색채, 투시법, 미술의 내용, 양식의 순으로 미술사를 훑는다.
따라서 시대는 각 장마다 오르락 내리락 한다.
이런 면이 책을 읽어내는데는 어려움으로 작용하는 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해가 쉽게 되는 면도 분명 있다.
형태에서 모든 제작기준을 하나의 표준-카논으로 지정해놓았던 이집트 미술과 그런 표준이 있긴 했으나 이집트와는 달리 최대한 이상화된 자연과 일치시키려 했던 그리스 미술의 차이점을 이해하는데는 이런 방식이 훨씬 도움이 된다.
또한 드로잉 면에서는 별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중세 미술이 영적인 느낌이라는 면에서는 왜 르네상스 미술보다 나은지를 이해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아 여기서 더 낫다는 건 내 느낌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종교화들은 웅장해보이고 화려해보이지만 지나치게 세속화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랄까? 다만 진중권씨의 이 책을 통해 내가 받았던 그 느낌의 근거를 발견했다고 하면 맞겠다.)

다만 투시법에 있어서는 정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서양의 원근법은 워낙에 우리에게 익숙해서 쉽게 이해가 되었는데 그것이 러시아의 이콘같은 그림들의 투시법으로 넘어가니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명 역원근법이라는데 원근법이란 이런것이야라고 한 번 고정되버린 내 두뇌는 저자의 설명을 쫓아가기도 버거워서 헉헉거리는 실정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잘 모르겠다. ㅠ.ㅠ
이놈의 머리의 고정관념이란게 참 얼마나 깨는게 어려운지 실감중이랄까?

흔히 서양미술이 어렵다거나 하는건 대부분 도상학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어떤 것에 대해서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감탄하게 되는건 자신이 가진 문화적 사전지식이나 배경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데 서양미술은 우리에겐 낯선 분야이고 우리의 문화적 배경은 아니다.
서구인들이 어릴때부터 줄기차게 듣고 또 들어서 알고 있을 성경이나 그리스로마신화같은 것들을 우리는 뼈빠지게 공부하고 외워야 아는 것들이니...
근대 이전의 수많은 서양 미술, 그리고 근대 이후의 상당수의 서양 미술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성경 아니면 고대신화와 역사이다.
그런데 그 내용들이 어떤 시대에 어떤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서 그려지느냐에 따라 또한 그림의 의미가 달라진다.
이 책을 본다고 해서 그런 도상의 상징들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왜 서양미술을 어렵게 여기는지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있다고하겠다.

양식의 변화 역시 여러 관점에서 얘기되어질수 있는데 순수하게 미술 내적으로 보는 관점-보는 형식으로서의 양식-도 있으며, 미술외적인 부분 사회적 상황과 관련되는 해석도 물론 존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은 후자인데 솔직히 말하면 미술보다는 역사쪽에 관심이 많은 나 역시 후자쪽이 훨씬 재밌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 두부분을 모두 안고 간다.
어차피 예술이든 뭐든 단 한가지의 원인이란건 있을 수 없으니 그게 맞을것 같긴 하다.

여느 미술사 책과는 다른 독특한 서술이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다른 개설서와는 또 다른 면에서 미술을 읽어나갈 수 있었던 책이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미술책의 기본이랄수 있는 풍부한 도판과 그림사이의 비교등이 참 잘되어 있어 그림과 글을 함께 보는 재미 또한 배가시킨다.이건 미술책이면 당연한거 아니냐고 할수 있는데 의외로 도판과 글이 따로 노는 책들도 많으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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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8-07-22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사 관련 책을 보면, 바람돌이님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건 웬 일일까용?

바람돌이 2008-07-23 08:57   좋아요 0 | URL
어마나 진주님!! 와락!!
그동안 왜 그리 뜸하셨어요. 어제 딱 진주님 생각이 나더니 뭔가 통한걸까요? ^^ 건강하시죠? 윤이 영이도 잘지내구요? 가끔씩 소식은 전해주시라구요. 궁금하잖아요.^^
 
그림이 된 건축, 건축이 된 그림 1 - 신화와 낭만의 시대
김홍기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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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문의 지나친 세분화와 전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학문간의 유기적 연결, 통섭에 대해 이야기가 간간히 나온다. 한때 다재다능의 전인적 인간이 이상적이었던 적도 있지만 사회의 분화는 그런 이상향 자체를 이상으로 만들어버린게 요즘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짚으면서 저자는 예술분야에서라도 각 분야의 유기적 연결을 도모하고 싶다는 바램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시도로 주요하게는 그림과 건축이지만 그와 더불어 문학, 음악 그리고 예술가들, 시대적 배경들까지 아우르면서 학문의 통섭에 도전한 것이다.

서양 미술사에 약간의 관심이 있고 몇권의 미술사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익숙한 화가들과 그림 그리고 건축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전혀 다른 면에서 바라보는건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는 여러 곳에서 봐왔지만 그것이 영국의 정원문화에 끼친 영향과 풍경화가 정원으로 현실화 되어 나타나는 장면을 보는건 마치 책을 읽는게 아니라 내가 그 정원의 조성에 참여하고있는듯 착각을 느끼게하기도 한다.

늘 흥미로워보이는 에셔의 정교하고 이상야릇한 그림들이 알함브라 궁전의 벽면속 무수한 무늬들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면서 예술의 아름다움이 결국 서로 통하면서 서로를 어떻게 상승시키는지를 보기도 한다.
클림트로 대표되는 빈 분리파와 빈제체시온관의 관계를 보면서 빈 분리파의 역사와 세기말의 오스트리아의 분위기를 느낄수도 있다.
때로는 예술이라는 느낌보다는 무지막지하다는 느낌이 더 많이 드는 뉴욕의 마천루도 휴 패리스의 스케치속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르 보이기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듯 예술의 세계도 독야청청이란 어차피 불가능한 것. 예술의 세계가 어떻게 연관을 맺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지 그 다양한 파노라마를 보는건 꽤 유쾌한 경험이다.

다만 책에서 화보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책의 판형이 조금 더 커졌으면 하는 것과 더불어 도판들이 좀더 선명하고 컸다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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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미술사 - 위대한 유토피아의 꿈
이진숙 지음 / 민음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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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러시아 미술전 구경을 간 적이 있었다.
난 당연히 서구적인 역사화 뭐 이런게 중심일줄 알았는데 온 미술관의 벽이 이콘으로 도배돼 있었다. 당시에는 이콘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도 별로 없었고, 당연히 그것이 러시아 민중들에 가지는 의미도 알리가 없었다. 나 또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니 특별한 관심이 갈리도 없고 다들 비슷비슷해보이는 무수한 기독교적 상징들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그 무수한 이콘들이 말해주듯 러시아 미술의 시작은 이콘들이다.
이콘은 미술로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경배의 대상에서 출발한다.
예전에는 러시아의 집집마다 이콘을 두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러시아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비켜가서는 안될 것이 되겠지....
이 책에 나오는 이콘의 분위기들은 익숙한 서구의 종교화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맨처음 나오는 도판 <블라디미르의 성모>를 보는 순간 어찌나 마음이 아리던지...
대부분 서유럽지역의 성모 그림들은 풍만한 어머니상, 슬픔을 나타낼때조차도 우아한 귀족부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이 그림에서는 어머니로서의 지극한 슬픔이 너무 절절하게 배여나와 한숨을 쉬게 한다. 자식의 미래가 가시밭길임을 예감한 어머니의 눈동자는 지극한 슬픔외에 무엇이겠는가? 러시아인들은 항상 시끄럽고 격렬하다는데 <블라디미르의 성모>를 비롯한 이콘화의 그림들은 참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삶의 역동성보다는 삶에 대한 연민으로 충만한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천사들의 모습들이다. 아 이렇게 위로받았구나.....
때때로 종교에 대해 별로 탐탁치 않아 하면서도 이런 표정의 그림들을 보면 불완전한 인간의 삶에서 종교가 주는 위로는 결국 영원히 없어지지는 않겠구나싶기도 하다.

표트르대제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러시아의 서구화, 근대화의 물결은 러시아를 두 진영으로 나눈다. 서구화냐? 슬라브러시아주의의 고수냐? 미술 역시 예외일수 없어 이 두 진영은 팽팽히 대립한다. 하지만 언제나 말이다. 남의 것을 그대로 베낀것이 끝까지 살아남는 경우는 없다. 그나마 다행스런 법칙이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구근대화의 물결을 피해갈 수는 없는 것.
러시아 미술 역시 서구미술의 사조들과 기법들이 들어오고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러시아의 넓은 대지가 그렇듯 어느 사조도 러시아를 온전히 자기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러시아는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되 언제나 자기의 방식대로 그것들을 해석하고 적용한다.
러시아의 위대한 미술은 언제나 삶과 사람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서구의 인상주의는 빛을 순수한 회화적인 문제로만 바라봄으로써 그들의 미술에서 역사와 인간과 삶을 배제시켜버렸다. 하지만 러시아의 화가들은 자연 외광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인상파의 빛을 그림속에 끌어들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해야 할 진리를 잊지 않는다.
바로 '인간'과 '삶'의 문제를.....

러시아 미술작품을 보는 일은 멋진 문학작품을 보는 것만큼 즐겁다.
아니 러시아 미술 자체가 문학작품이라고 할까?
그림속에 담긴 풍부한 이야기들은 서구보다는 오히려 우리와 닮아있는 그들의 삶의 얘기를 전한다.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해학적으로 또 때로는 담담하게....
서구의 르네상스가 인간의 재발견이라고 하지만 그 인간은 현실의 인간이 아니었다.
신에 필적하기 위해 이상화된 인간의 모습은 늘 생경한 느낌을 준다. 아름답다고 감탄을 하지만 그속에서 동일시의 감동을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러시아의 미술은 인간의 삶의 기쁨과 눈물과 분노와 희망이 모두 담겨있다.
그러므로 감동적이다.

뱀꼬리 1 - 이주헌씨의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미술>을 재밌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권한다.
이주헌씨의 책이 미술관소장작품들만을 중심으로 해서 러시아 미술의 역사적 흐름의 파악에 아쉬운점이 많았었는데 이 책은 그 부분을 확실하게 메꾸고 있다. 독자를 러시아 미술의 세계로 이끄는 저자의 안내 솜씨 또한 앞의 책과 비교하여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뱀꼬리 2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 푸쉬킨은 아주 오래 살았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3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것도 자신의 아내와 염문을 뿌린 자와 결투하다가.... 이 서구인의 결투문화가 참 웃기다 생각했었는데 푸쉬킨의 아내의 초상이 책속에 있다. 아 이렇게 예쁜 여자라면 결투하다 죽은것도 이해간다. 얼마나 예쁜지는 책을 볼 것. ㅎㅎ

뱀꼬리 3 - 갑자기 러시아 미술에 대한 관심들이 늘었나? 일리아 레핀에 대한 책이 나왔다. <일리야 레핀 - 천개의 얼굴, 천개의 영혼> 레핀은 전부터도 관심이 많이 가고 좋아하던 화가였는데 보고싶어 죽겠네... 이번 달 책 너무 많이 샀는데 참....(책값도 무지 비싸더만... 아 레핀이 누구냐고 하면 아래 그림<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을 그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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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1-2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뱀꼬리에서 구미가 확! 당깁니다. 게다가 레핀의 책까지! 2008년의 결심은 책 그만사자인데 이게 너무 힘들어요ㅜ.ㅜ

바람돌이 2008-01-26 02:26   좋아요 0 | URL
책 그만사자는 결심은 저는 매달 합니다. 카드명세서 받을때마다.... ㅎㅎ 뭐 레핀의 책은 전 조만간 지르지 싶습니다. ㅎㅎ

bookJourney 2008-01-24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꽂을 자리도 없다는 구박을 받고 있어서 ... 이 책들은 찜해두었다가 도서관에 들어온 다음에 읽어야겠네요 ^^

바람돌이 2008-01-26 02:27   좋아요 0 | URL
저는 도판이 많은 책은 일단 구입용으로 점찍고 있는지라 샀어요. 저희집은 새로 책장을 들여서 아직은 꽂을데가 많다고 자랑질을.... ^^

글샘 2008-01-2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콘이 아이콘이죠?(정말 몰라서 묻는 것임)
아, 이 책 빨리 도서관에 신청해서 보고 싶습니다.

바람돌이 2008-01-26 02:28   좋아요 0 | URL
아이콘이 이콘에서 유래된거 맞아요. 보고싶은 책마다 바로 바로 사주는 도서관이 있어서 좋으시겠습니다. 게다가 글샘님 외에는 별로 빌려갈 사람도 없을테니 더더욱 말입니다. 우리동네 도서관은 사주긴 사주는데 좀 오래 걸리고 또 보고자하면 빌려가서 없을 경우도 많아서리.... ^^

점순이 2008-01-25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겠다.. 보충 마지막 날 놀러 갈테니, 집에 꼭 붙어있으라구!!^^

바람돌이 2008-01-26 02:29   좋아요 0 | URL
뭐가 좋은데? 요즘 온 식구가 병원나들이라 미치겠다. ㅠ.ㅠ
화요일에는 집에 꼭 붙어있지뭐... ㅎㅎ
 
센세이션展 - 세상을 뒤흔든 천재들
이명옥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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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예술의 역할은 흔히 말하듯 얘기한다면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라는게 어디 고정된 개념이던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게 미의 기준 아니던가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예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세상을 낯설게 보기 -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엎어 새로운 관점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는것일지도 모르겠다.

센세이션展이라는 제목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붙여졌다.
기존의 고정관념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던 예술가들의 삶과 생각 그리고 그들의 예술을 보여주는 것.
오늘날에 와서 보면 평범해 보이는 것도 있지만 그것이 당대 사회에서는 충분히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각을 제공했던 것들을 되살펴보자는 것이다.

전시의 첫번째는 역시 페미니즘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미술 역시 일정시기까지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시대에 등장한 여성화가라는 것 부터가 센세이션하지 않은가 말이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란 그림을 처음 봤을때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수많은 남성 화가들이 이 주제의 그림을 그렸지만 누구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만큼 충격적으로 이 주제를 다룬 화가는 없었다.
이 시대 남성화가들의 그림에서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여성적이고 아름답고 가련한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런데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속의 유디트는 강인한 팔뚝과 굳건한 의지와 단호함을 한 몸에 지닌 진정한 주체로 태어난다.
여성화가래봤자 정물화같은 소품들밖에 그릴 수 없었던 시대, 남성의 장르로 여겨졌던 역사화를 당당히 그려냈던 그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화가일 것이다.
그 외에 로댕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진 카미유 클로델의 이야기는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라서인지 흥미가 좀 떨어졌다.
하지만 이어진 존 레논의 부인이었던 오노 요코와 주디 시카고의 이야기는 남성들 속에 가려질 수 없는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당당함을 표현했던 이들이다.
주디 시카고의 작품 <만찬회>는 여기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대담한 발상에 통쾌함조차 느끼게 된다.
삼각형의 긴 테이블에 여성의 성기모양의 접시를 세팅하다니... 그것도 역사상 위대했던 여성들을 모두 끌어내어 그들에게 걸맞는 맞춤형 성기모양이라니...
여성의 성기는 음란하다 내지는 숨겨야 될 무엇이다라는 기존의 성개념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한순간에 전복해버리는 발상 - 유쾌하고 통쾌하다는건 이럴때 하는 말일게다.

실제 인물을 모델로 누드화를 그려 세상을 발칵 뒤집었던 고야<옷을 벗은 마하>
거기에서 한술 더 떠 고상한 신의 세계의 표현에서만 가능하던 누드를 현실의 창녀를 소재로 하여 그려낸 마네의 <올랭피아>
세계적인 걸작으로 추앙받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당대에는 얼마나 불경스러운 그림으로 매도당했는지를 쫒아가는 과정들은 저절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진진하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주시오.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소"라는 말로 유명한, 사실주의를 연 쿠르베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자고로 그림이 대작이 될수록 뭔가 위대한 것 - 영웅이나 역사를 그려야 한다는 사회의 고정관념을 확 깨버리고 일개 시골마을의 장례식 풍경을 엄청난 크기의 화판에 웅장한 역사화의 기법을 그대로 살려 그려낸 쿠르베의 그림은 당대 사람들을 엄청나게 분노시킨다.
작품 <오르낭의 매장>은 그야말로 비천한 사람들을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과 동격에 올려놓은 것처럼 그려냄으로써 당대의 난체하는 인간들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려버린 것.
<안녕하세요 쿠르베씨>에 나오는 쿠르베의 그 오만한 모습은 그 오만함으로 인해 아름답다.

덧붙이기 - 평소 이명옥씨의 책을 보면서 항상 뭔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번 책만큼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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