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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미술관 - 아름답고 서늘한 명화 속 미스터리 ㅣ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1년 9월
평점 :
어디로 여행을 가든지 항상 가는 곳은 그 지역의 박물관, 미술관이다.
그런데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는 곳은 왠만큼 규모가 있게 되면 소장품의 양이 엄청난지라 도대체 뭘 봤는지도 모르겠고, 뭘 봐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하여튼 당황스럽다는 것이 주된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해외의 경우에는 가기 전에 대부분 현지 미술관 가이드 투어를 신청한다.
돈이 좀 더 들더라도 복불복 가이드를 피하고, 공신력 있는 곳에서 투어를 신청하기 위해 엄청나게 검색을 해대는 것.
그런 일일 가이드 투어는 사전 조사로 가이드분을 엄청 신경써서 선택한 덕분인지 한번도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이었다.
이 책 <기묘한 미술관>은 실제 프랑스에서 문화해설사로 일하고 계시는 분이 지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딱 미술관 가이드 투어하면서 이야기 듣는 느낌이 물씬 난다.
코로나로 여행을 못다닌지 좀 있으면 2년이 될 터인데 모처럼 이 책 덕분에 미술관에 가 있는 기분을 물씬 느꼈으니 기분좋은 여행을 한 느낌이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재밌다.
아마도 재밌는 이유는 누구나 알만한 화가와 그림이 대부분이어서일테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작품들의 목록을 보면 앙리 루소, 마네, 드가, 페르메이르, 다빈치, 도미에, 렘브란트, 라파엘로, 고흐, 제리코, 고야, 벨라스케스, 밀레 등 교과서에서 한번쯤은 봤을 만한 화가들이다.
그외의 작품들도 화가 이름은 생소해도 그림을 보면 아 이 그림 할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조금 익숙하지 않을 화가래봤자 한스 볼롱기에르나 조토, 만테냐 정도?
이미 알고 있는 작품들의 뒷 이야기들이나 얽힌 사연들을 읽는 것은 익숙함속에서 새로움을 찾는 것이라 더 쉽게 흥미롭게 읽힌다.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페르메이르의 그림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 그림에서 여인이 들고 있는 월계관, 트럼펫, 책은 그리스 신화의 아홉 무사이 중 역사의 여신 클리오를 상징한다고 한다.
월계관은 영광, 트럼펫은 영광을 널리 퍼지게 하는 명성을 의미하며, 책은 모든 내용을 기록하는 역사 자체라고(67쪽).
그런데 이 그림을 가장 좋아한 이가 히틀러라네.
히틀러는 이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기존 소장자로부터 거의 강탈하다시피 구입했고, 이후 전쟁의 패배가 다가오자 이 그림을 영원히 소장하기 위해 비밀장소에 숨기는 노력까지 했다는데 작가는 아마도 히틀러가 이 그림을 통해 독일 민족정신과 역사를 강조하는 자신의 모습을 동일시하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어 그럴수도 있어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페이지를 보다가 정말 깔딱깔딱 넘어가는 에피소드를 발견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이후 네덜라드의 한 판메이헤런이라는 화가가 국가 반역죄로 기소되었는데 , 그 이유가 나치의 2인자 괴링에게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판매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화가는 자신이 판매한 것은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복제한 자신의 그림이었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실제로 증명해보임으로써 무죄판정을 받았지만, 웃기게도 그림값으로 괴링에게서 받았던 돈이 바로 위조지폐였다는 것이다.
아 이거 진짜 있었던 일이라기엔 너무 코믹해서 책 읽다가 혼자서 낄낄거렸다.
조토의 그림을 예로 들면서 중세말 황금보다 비쌌던 청색물감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울트라 마린으로 불리우는 이 색은 청금석이라는 암석을 갈아서 만드는데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수입해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색깔을 수입해 썼는데 조선시대 청화백자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시 이 색깔은 너무 귀하고 비싸서 원래 조선시대에 청화백자는 왕만 쓸 수 있는 도자기였다.
뭐 권세있는 양반들은 몰래 숨겨서 소유하고 했겠지만 원칙적으로 그러했다.
12세기부터 유럽에서는 푸른색이 성모 마리아의 색이 되면서 인기가 치솟는데 이 색깔을 둘러싸고 염색업자들간에 다툼이 벌어지는 것도 흥미롭다.
붉은 색 염료를 생산하던 이들이 푸른색에 대항하기 위해 교회에 악마를 푸른색으로 칠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니, 역시 예술에도 돈의 간섭은 어쩔수 없다보다. 저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에도 말이다. 성모의 색으로 악마를 칠해달라니....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순식간에 책은 마지막 페이지를 고한다.
아 뭔가 무료하고 심심하다싶을 때 읽으면 딱 좋을 재밌는 책이다.
앗 이 책이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도판이 굉장히 훌륭하다.
미술책이면서 도판 엉망인 책도 많은데 이 책은 도판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느낌이 팍팍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