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
알렉산드라 해리스 지음, 김정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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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보면서 소설과는 달리 이 사람을 삶을 좀 더 알고싶다는 생각을 강렬하게 하게 된다.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때론 투사처럼 보이고 때론 살아가는 모든 것에 연민을 느끼는 섬세한 여성으로 보이기도 하며, 여성의 역사를 얘기하는 곳에서는 치밀한 학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이런 다면성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 아름다운 인간에 대해서 좀 더 내밀한 것까지 알고싶다는 욕구를 끊을 수가 없다. 

단 그녀의 소설이나 에세이는 읽기가  쉽지 않으므로, 그녀의 삶에 대한 글은  일단은 좀 쉽게 알아먹을 수 있게 워밍업부터 시작하고픈 마음이 막 솟구치는데 이 책이 딱 그 지점에 위치한다. 


버지니아 울프를 한마디로 대표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버지니아 울프는 <쓰는 사람>이라고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정말 너무나 성실하게 글을 썼고, 바로 그 글을 쓰는데서 삶의 의미와 존재이유를 찾았던 사람이다.

존재 이유를 가진 사람은 염세적일 수 없다. 더더군다나 성실하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채워나가는 사람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녀는 정말 열심히 쓴다.

소설을 쓰고, 일기를 쓰고, 에세이를 쓰고, 서평을 쓰고.....

그녀가 남긴 글의 양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쓰는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는 쓰기 위해 열심히 읽는 사람이었으며, 론볼이라는 스포츠를 평생 즐긴 사람이기도 하고, 산책을 즐기며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명민하게 관찰하는 사람이었고, 당대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촉각을 세우며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고 발언하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자기 집에 출판사를 만들고 직접 책을 출판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편지를 쓰고,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삶의 마지막까지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를 염세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단 하나 그녀의 신경쇠약이었는데, 그것은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아마도 조울증이었던 듯 싶다. 

얼마전에 읽었던 책에 의하면 조울증은 우울증과는 다른 신체 질환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병하는, 당시에는 제대로 원인이나 치료방법도 없어서 그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울증의 시기를 무조건 버텨내야만 했던 질병의 고통속에서도 그녀는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가고 쓰고자 했다.


단지 그의 죽음이 '자살'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삶 전체를 애수와 염세주의로 얘기하는 것은 너무 부당하지 않은가? 그녀의 병을 알면서 나는 그녀의 자살도 삶에 대한 절망이나 세상에 대한 염세주의로 생각해서는 안되는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이 더 이상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완결짓고자 하는 욕망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지금 태어났다면 그래서 조울증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우리는 아주 나이 든 노년의 울프가 쓴 더 원숙해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의 자살을 나는 절망으로 읽기 보다는 자신의 삶의 마지막 마침표를 스스로 찍음으로써 자신의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마감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본 버지니아 울프의 삶은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 - 그래서 이런 글을 쓸 수 있었구나-과 그녀는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계속 가지고 살았을까 하는 의문들이 이율배반적으로 뒤섞이게 만든다.

역시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녀의 그 이율배반들까지 이해하게 될 때 온전히 그녀를 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그건 불가능하리라...

나 자신조차도 나를 다 알지 못하고, 그 때 내가 왜 그랬지?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버리지 하면서 살아가는게 인간이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로 알려져있다.

나 역시 처음 그녀의 이름을 안 것은 이 시를 통해서인데, 이 시속에서 풍기는 그녀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목마와 숙녀>는 많은 사람이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을 알게 했지만, 그녀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 - 낭만적인 소녀감성, 염세주의자, 불행한 삶에 침몰당한 여성작가 이런 식의-를 심어주는데도 너무 큰 공헌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의 이름을 부를 때 함부로 부르지 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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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지 2021-04-15 08: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쓰는 사람으로 존재한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차분하게 기술한 리뷰를 읽으며 이 책을 접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오늘 하루도 웃어서 행복한 시간 보내길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1-04-15 14:51   좋아요 1 | URL
저처럼 버지니아 울프를 막 읽기 시작했다면 먼저 그녀의 삶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성지님도 오늘 하루 웃으며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1-04-15 08: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목마와 숙녀 첨들어 봐서 찾아봤어요. 바람돌이 님이 그렇게 표현하신 이유를 알겠더라는~! 저는 버지니아 울프 책을 몇권 안읽어봤는데, 읽고 싶어지네요^^

바람돌이 2021-04-15 14:56   좋아요 1 | URL
어머 여기서 또 새파랑님이 젊다는 게 보이네요. ^^ 저처럼 연식이 오래된 이들 중 중고등학교 때 책 꽤나 읽는다 하면 저 시가 아주 유명했거든요. ㅎㅎ 저도 몇권 안 읽었어요. 버 지니아 울프 책 2권, 관련 책 요것까지 2권이 다입니다. 이 책은 저처럼 입문하는 사람한테 딱 좋은 것 같아요. ^^ ,

scott 2021-04-15 11: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생각에 동감 !!
[낭만적인 소녀감성, 염세주의자, 불행한 삶에 침몰당한 여성작가]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건
영문학자들(버지니아 울프를 전공한)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고딩때 올랜도로 울프 여사 책을 처음 읽고 난후 대학에 들어가서
영문학 전공하는 친구가 울프 올랜도 강독 수업 있다고 알려줘서 한한기 수강(청강)한적이 있는데 분열된 자아 동성애 ,,,이런쪽으로만 집중했어요.
이후 울프 여상가 남긴 일기 기타 지인들과 주고 받았던 편지들을 읽어보니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정말 성실하고 근면하게 글쓰기에 집중하며
스포츠 활동을 활발히 하며 변화하는 사회를 면밀하게 관찰하며 혼돈의 세계 속에 여성이 어떤 목소리를 내야할지 줄기차게 자기 목소리를 냈던 인물입니다.
병에 시달리고 정신병으로 몰아간건 후대인들의 편협한 시각이라는것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았어야 하는데 어린시절에 방치 당하고 학대 당한,,,
울프 여사가 남기고 간 작품들이 현시대에 더더욱 활발하게 읽고 재조명 해야 할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1-04-16 00:15   좋아요 1 | URL
그쵸 그쵸 scott님
울프는 정말 성실한 생활인 작가. 그녀의 병이나 동성애는 진짜 그녀 삶의 일부일뿐 그녀 삶 전체와 작품의 결정적인 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근데 scott님은 고등학생 시절에 벌써 울프를 읽었다니 우와 오늘도 존경합니다. ^^

2021-04-16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6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9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20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1-04-18 0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가 글을 써서 조금 괜찮아지기도 했겠지만, 나중에는 그게 좋아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더군요 힘들어도 자기 삶을 살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었다면 치료를 받기도 했을 텐데... 자기 마음도 모르고 다른 사람 마음은 더 모르겠지요 저도 요새 좀 그런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희선

바람돌이 2021-04-18 01:40   좋아요 1 | URL
버지니아 울프의 병과 그녀 자신을 떼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녀의 글을 병과 너무 관련짓는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그녀의 정신분열이 그녀의 글을 낳은 것 처럼... 그녀는 단지 몸이 아팠을 뿐, 글을 쓰는 그녀의 정신은 누구보다 건강햇다고 생각합니다. ^^희선님 남은 주말 편안히 보내세요. ^^
 

왠이라는 글자가 왠지 낯설게 느껴지시나요? 그럴 만도합니다. 왠은 왠지를 제외한 다른 경우에는 절대로 쓰일 일이 없기 때문이지요. 아무래도 여느 글자들에 비해 눈에 덜익어 선뜻 쓰기는 어렵겠지만 왠지는 왜인지가 줄어든 말이다! 생각하시면서 왠과 친해지도록 노력해 보세요.
- P47

몇일이나 ‘몇 일은 모두 틀린 표현입니다.
며칠로 써 주세요.
- P65

아무래도 오랫동안‘ 이라는 단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은 오래와 동안이 합쳐진 말입니다. 여기에 뭣 같은 사이시옷 이 끼어들어 오랫동안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된것이지요. 그러나 오랜만은 오래간만이 줄어든 말이기 때문에 사이시옷이고 뭐고 필요 없이 그냥 오랜만이라고 쓰시면 됩니다.
- P99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발표되었던 1935년 즈음에는 금시에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던 모양인데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는 금시에가 줄어든 금세라는 말이 더욱 익숙하지요.
금세보다 금새라는 잘못된 표현이 더더욱 익숙하다는 게함정이긴 합니다만,
- P103

늘이다와 늘리다는 늘다에서 온 말입니다. 두 단어 모두늘어나게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쓰임은 사뭇 다릅니다. 늘이다는 길이를 늘일 때, 늘리다는 길이를 제외한 모든 것을 늘릴 때 사용하지요..
- P137

처는 마구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처먹다는 마구 먹는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쳐는 치다의 뜻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러니까 쳐먹다는 음식을 한번 치고 먹는다는말이 되어 버리겠네요. 김치부침개 먹기 전에 주먹으로 내리치고, 갈비 먹기 전에 갈빗대 잡고 바닥에 패대기치고,
- P140

명사형 종결 어미를 만드는 방법은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임. 문장을 그으로 끝내면 됨. 하지만 주의할 게하나 있음. 알다. 놀다. 들다처럼 받침이 들어가는 말은이 아닌 으로 마무리 지어 줘야 함. 그러니까 암, 놈, 듬이 아니라 앎, 높, 듦이라고 써야 한다는 말임.
- P168

3. 의존명사는 띄어 쓴다.
명사란 남자, 여자, 연애처럼 무언가의 이름을 나타내는품사입니다. 명사의 한 종류인 의존명사는 명사는 명사인데 혼자서는 쓰일 수 없는 명사를 뜻하고요. 것, 데, 바, ,
따위 등이 이에 속합니다. 비록 독립성은 없지만 그래도명사는 명사니까 다른 단어들처럼 띄어 써야 한답니다.
- P183

그렇지만 저는 알아요. 여러분 이거 안 읽고 있죠? 용언이랑 보조용언이라는 말 나오자마자 건너뛰어 버렸죠? 지금나 혼자 떠들고 있는 거 맞죠? 괜찮아요. 몰라도 돼요.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어요.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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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4-11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몰라서 저는 글을 쓸 때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확인할 때가 많아요. 맞춤법과 띄어쓰기, 참 어렵다고 느끼죠. ㅋ
완벽하게 알 수는 없을 듯해요.

바람돌이 2021-04-11 23:4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특히 띄어쓰기는 정말 정말 어려워요. ㅠ.ㅠ
원래 한글 띄어쓰기 없었는데 말이죠. 이게 잘한건지 아닌건지 참.... ^^

하양물감 2021-04-11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식적으로 제출하는 글은 반드시 맞춤법 검사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블로그 글은 그렇게 안되더라고요 하하하..

바람돌이 2021-04-11 23:47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일할 때 쓰는 건 다 맞춤법 검사도 하고 하지만 블로그 글은 오타도 많아요. ㅎㅎ
 

갑자기 타인들 (자신만의 은밀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개인의 의식에 구멍이 뚫리는 순간의 충격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신이 아닌 삶, 자신이 모르는 삶이 있구나 하는이 인식이 어린 아이였던 울프에게 거듭 충격을 안겨주었다.  - P15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 사람이 남긴 물리적 흔적이 거의 없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게 아닐까? 《등대로>에서 내내 던져지는 질문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버지니아 울프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사라짐에 맞서는 저항이었다. 무언가를 글로 옮겨놓는다는 것은 그것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방법이었다.
- P19

훗날 울프는 《밤과 낮>을 회상하면서 "관습적 문체를 연습해본"
작품이었다고 했다. 그때의 문법 수업이 나중에 규칙을 깨뜨릴 수있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였다.2 그때 울프가 문학의 관습에 대해서 고심했던 것은 분명하다. 작품을 끝내기 직전에 남녀 주인공을결혼시켜버리는 제인 오스틴처럼 문학의 관습을 의도적으로 활용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 P75

울프는 단편소설들을 통해 외적 사실에서 내적 삶으로의 중대한 이동을 단행한다. 생각이 실체가 된다. 예컨대 쓰지 않은 소설>의 화자는 기차에서 한 여자의 맞은편에 앉아 머릿속으로 그여자의 일대기를 생각해본다. 그 여자의 얼굴에 깃든 슬픔을 설명해줄 만한 맥없고 쓸쓸한 생활의 디테일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기차는 이스트본에 도착하고, 그 여자는 플랫폼에서 아들을 만나행복한 얼굴로 함께 떠난다. 화자에게 그 여자는 모르는 사람, 알수 없을 사람이다. 외적 사실을 가지고 사람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저 계속 추측해보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 P82

울프의 삶에서 새로운 형식의 픽션으로 이행한 시기가 일기의 리듬을 정착시킨 시기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P82

도 했다. 울프는 이미 새로운 소설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새로운 형식을 모색 중이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현재를 붙잡고싶었다.
"정말 바쁨, 정말 행복함, 한마디만 할까. 시간이여, 게 섰거라.  - P100

아니었다. 하지만 미스터 램지가 자기 작업에 강박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은 그대로 울프 자신의 모습이고, 미스터 램지가 보여주는야심, 기벽, 보호 받고 싶어 하는 마음, 자기 삶을 머리에 떠오른인용문에 맞게 조율하는 습관 등도 모두 울프 자신의 것들이다.
- P124

바로 이런 단순한 사실에 감정적 무게를 실을 수 있다는 것이울프의 특징이자 강점이다. 울프는 어떤 면에서는 복잡미묘한 작가지만, 울프가 늘 추구하는 것은 아무 군더더기 없는 더없이 단순한 문장이다. 완성을 앞둔 릴리에게 남은 일은 화폭의 중심에선 하나를 긋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 선은 바로 그 선이어야 한다.
- P129

<파도>에서 울프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수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우리로존재하는 것은 우리를 바로 이런 우리로 존재하게 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다만 《올랜도가 내 모든 친구들의 윤곽을 그리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다가 비타라는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끝낸 책이었다면, 18 《파도》는 여러 친구들의 삶이 "서로가 서로의 연장"이 될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는모습을 상상해보는 책이었다.
- P149

《파도》의 등장인물들이 어느 차원에서 "모두 하나"라면, 화자가 바뀌는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모두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이다.
말하는 내용은 달라도 말하는 리듬은 똑같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은 플롯을 따르는 글이 아니라 리듬을 타는글이다."
- P154

정도였다. 울프는 읽히는 작가가 되기를 원했고 어느 정도의 돈을원했고 무엇을 쓸 것인가를 결정할 자유를 원했다.  - P167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을 거야. 계속 변할 거야. 뇌를 열고 있을 거야. 눈을 뜨고 있을 거야. 논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동상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 P176

《세월이 울프를 자살 직전까지 몰아갔다는 것, 세월과 1930년대 중반의 정치 상황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 《세월이라는 픽션은 3기니》라는 난폭한 논픽션과 짝을 이루는 작품이라는 것, 《세월》의 형식 패턴은 총체성의 비전보다는 와해와 결렬에 가깝다는 것은 모두 사실이다.  - P182

울프가 생동감"과 "보람"을 이 소설의 특징으로 꼽았다는 것도우리가 기억할 점이다.21 울프가 "사실들에게로 돌아섰던 것은거기서 "무한한 기쁨" (40년 동안 자기 손으로 매일매일의 기록을 보관해놓은 그거대한 창고에서 뭔가를 꺼내 펼쳐놓는다는 데서 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실제로 울프는 《세월》 곳곳에는 사실들에게 극도의 아름다.
움을 허용함으로써 자신이 일상의 것들을 미학적 쾌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 P183

하지만 근본적으로 울프에게는 소설이 곧 정치적 작업이었다. "생각하는 것이 나의 싸움법"
이라는 것이 울프가 전쟁 중에 사용한 표현이었다. - P187

히틀러 독재가 가부장 독재의 가장 폭력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가부장 독재에 공모하는 사회라는 점에서는 모든 가부장 사회가 히틀러 독재와 마찬가지라는 것이 <3기니>의 주장이었다. - P190

우리 스스로를 사냥개에 비유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우리는아직 울프를 따라 달리고 있다. 죽은 지 70년이 지난 울프가 아직한참 앞에서 우리를 이끌어주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서산토끼처럼 뛰어나가는 다프네처럼, 버지니아 울프는 살아 있기위해 자꾸 모양을 바꾸는 작가다.
- P231

울프는 겨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아, 이게 다 기러기사냥wild geese chase 이라는 건 저도 잘 알아요. 우리가 8월에 만난다면 이 강의는 "여름의 울프"가 되겠지요. 아시다시피 울프는 여름 작가잖아요. (중략) 계절은 우리 없이도 지나가지만,
지금은 겨울이니까, 우리도 이렇게 겨울이 어떤 계절인지 이야기하면서 눈 쌓인 들판에 이렇게 작은 발자국을 찍었네요.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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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픽션을 쓰고자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여러분이 곧알게 되겠지만 이러한 견해는 여성의 참다운 본성이니, 픽션의참다운 특성이니 하는 문제는 미해결로 남겨두는 셈입니다. 나는이 두 문제에 관한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 의무를 피해왔으므로 나에 관한 한 여성과 픽션은 미해결의 과제입니다.  - P10

그러나 그 생각이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 하더라도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신비로운 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마음속에도로 집어넣으니까 즉시 매우 재미있고도 중대한 것이 되더군요.
그것은 쏜살같이 나아가다가 밑으로 가라앉고, 여기저기에 번쩍번쩍 나타나며, 여러 상념의 대단한 파도와 격랑을 일으켜서 나는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자신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굉장히 빠르게 걸어가게 된 것이 이렇게 하여 일어난 일이지요.  - P13

그런데 여기 나는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문에 실제로와 있었습니다. 내가 그 문을 틀림없이 열었나 봅니다. 왜냐하면하얀 날개 대신 검은 가운을 펄럭이며 길을 가로막는 수호 천사처럼, 뭔가 불허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은발의 친절한 신사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돌아가라고 손을 흔들며, 낮은 목소리로 숙녀분들은 대학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지녔을 경우에만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고 유감스럽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 P16

옥스브리지의 오찬회와 정찬회를 다녀오자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니까요. 왜 남자들은 포도주를 마시고 여자들은 물을 마시는가? 왜 한쪽 성은 그렇게 부유하고 다른 쪽 성은 그다지도 빈곤한가? 가난은 픽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데는 어떤 조건들이 필수적인가?  - P39

또한 우리는 무엇보다 환상의 동물이므로 인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요구합니다. 자신감이 없이는 우리는 요람 속의 어린 아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헤아릴 수 없으면서도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자질을 가장 빠르게 갖출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함으로써 이지요.
즉,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타고난 우월함을 가지고 있다고 느낌으로써 이지요 - 그 우월함은 재산, 지위, 곧은 콧대, 혹은 롬니가 그린 할아버지의 초상화일 수도 있지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애처로운 책략에는 끝이 없으니까요. 따라서 뭔가 정복하고 지배해야만 하는 가장에게는 사실상 인류의 절반인 수많은 사람들이 본디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되겠지요. 이것이 실제로 그의 권력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임에틀림없습니다.  - P52

그 시절의 쓰라림을 기억해보면고정된 수입이 가져오는 엄청난 기질의 변화는 실로 괄목할 만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의 어떤 강제력으로도 나에게서 내오백 파운드를 빼앗아갈 수는 없지요. 음식과 집과 옷은 이제 영원히 내 것이지요. 따라서 단지 노고와 노동뿐만 아니라 증오와신랄함도 그치게 됩니다. 나는 어떤 남자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가 나를 해칠 수 없으니까요. 나는 어떤 남자에게도 아첨을 떨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나 자신이 인류의 절반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미세하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 P56

픽션은 거미집 같아서 어쩌면 대단히 가볍게, 그러나 여전히 네 귀퉁이가 모두 삶에 부착되어 있지요. 종종 그렇게 부착되어 있다는 것이 거의 감지되지 않는데,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희곡은 홀로 완벽하게 매달려 있는 듯이 보이지요. 그러나 거미집을 비스듬히 잡아당기고 가장자리에 갈고리를 걸어 끌어올리고 가운데 부분을 찢어보면, 이 거미집들은 실체 없는 피조물들이 공중에다 친 것이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들의 작품이며 건강과 돈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같이 지극히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부착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P61

그리하여 하나의 매우 기이한 합성체가 나타나게 되지요. 즉,
상상 속에서는 여성이 대단히 중요하나 실제로는 완전히 무가치하다는 말입니다. 시에서는 그녀가 표지에서 표지까지 스며들어있고, 역사에서는 거의 부재중이라는 말입니다. 픽션 속에서 그녀는 왕과 정복자들의 삶을 지배하고, 사실에 있어서는 그녀의손가락에 억지로 반지를 끼워주는 부모의 아들에게 속한 노예였지요. 문학작품에서는 가장 영감을 받은 말과 가장 심오한 생각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고, 실생활에서의 그녀는 거의 읽을 줄도철자법도 모르며 단지 그녀의 남편이 소유한 재산이었던 거지요.
- P63

게다가 19세기 초에 여성들이 받았던 문학훈련은 인물의 관찰과 감정의 분석에 대한 훈련이었지요. 그녀의감수성은 몇 세기 동안 공동 거실의 영향을 받으며 교육되었지요. 사람들의 감정이 그녀에게 새겨졌으며 개인적인 인간 관계들이 눈앞에 항상 있었지요. 따라서 중산층 여성이 글쓰기에 전념하였을 때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소설을 썼습니다. 비록 꽤 분명하게 보이다시피 여기에 언급된 네 사람의 유명한 여성들 중 두명은 본래 소설가가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에밀리 브론테는 시극을 썼어야 했고 조지 엘리엇의 넘쳐나는 넓은 마음은 그 창조적 충동이 역사나 전기를 쓸 때 널리 퍼져나갔을지도 모릅니다.
- P94

아마 여성이 종이에 펜을 갖다 대면서 발견하게 되었을 첫 번째 일은 그녀가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공통의 문장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새커리, 디킨스, 발자크와 같은 모든 위대한 소설가들은 빠르면서도 추레하지 않고 표현력이 풍부하면서도 까다롭지 않은 자연스런 산문을, 공동 소유물이 되기를 그치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색조를가지고 썼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널리 통용되던 문장에다 그 산문의 기초를 두었지요.  - P106

 그러나 거의 예외 없이 여성들은 남성들과의관계를 통해서 보이고 있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시대까지 픽션속의 모든 위대한 여자들은 다른 성에 의해 보일 뿐만 아니라 다른 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보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이상하였지요. 그런데 그것은 여성의 삶 중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인가요. 그리고 남성이라는 성이 자신의 코 위에 걸쳐놓은 까맣거나 장미빛인 안경을 통하여 그것을 관찰할 때 남자들은 그 작은 부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지요. 아마 이래서 픽션 속의 여성들이 특이한 성격으로 나타나는데, 그녀는 놀랄 만큼 극단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혐오스럽고, 천국 같은 선함과 지옥 같은 타락 사이를 왔다 갔다 하지요 - 왜나하면 그녀의 연인인 남자가 자기의 사랑이 올라가고 가라앉는 대로, 순조롭거나 불행한 대로, 거기에 따라서 여성을 보기 때문이지요.  - P115

예를 들어, 문학작품 속에서 남자들이 오로지 여자들의 연인으로만 그려지고 남자들의 친구나 군인, 사색가, 공상가로는결코 그려지지 않는다고 가정해보십시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얼마나 작은 역할이 그들에게 할당되었을 것이며, 문학은 얼마나 상처를 입었을까요! 오셀로 같은 인물의 대부분과 안토니같은 인물의 상당수는 아마 계속 존재하겠지요. 그러나 시저나브루투스, 햄릿, 리어, 혹은 자크는 없었을 것이며 문학은 믿을 수없을 정도로 빈곤해졌을 겁니다. 실로 문학이, 이제까지 여성에게 닫혀 있었던 문으로 인해 축적할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해졌듯이 말입니다. - P116

우리는 그 당시의 셰익스피어에게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양성적이었으니까요. 키츠, 스턴, 쿠퍼,
램, 그리고 콜리지도 그러했지요. 아마도 셸리는 무성無性이었지요. 밀턴과 벤 존슨은 내면에 너무나 많은 남성적인 허세를 지녔지요. 워즈워스와 톨스토이도 그러했지요. 우리 시대에는 프루스트가 양성적인데 아마 여성적인 성격이 조금 더 많다고 말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런 단점은 너무나 희귀해서 불평을 할 수가없습니다. 그런 유의 혼합이라도 없이는 지성이 우세하게 되어마음의 다른 능력들은 굳어지고 메마르게 되니까요.  - P143

누가 되었든 글 쓰는 사람이자신의 성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히 그리고 단순히 남성 또는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이며 우리는 남성적 여성 또는 여성적 남성이 되어야만 합니다. 여성이 어떤 불평불만이든 그것을 조금이라도 강조하는 것, 정당하더라도어떤 주장의 변론을 펴는 것, 어떤 식으로든 의식적으로 여성으로서 말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그리고 ‘치명적‘ 이라는 것은 언어상의 비유가 아니지요. 왜냐하면 그런 의식적인 편견을 가지고쓰인 것은 반드시 없어질 운명에 처하게 되니까요. 그런 것은 더이상 풍부하게 되지 않지요. - P144

예찬과 비난은 똑같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니, 가치를 재는 소일거리가 제아무리 즐겁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일 중에서 가장 쓸모없는 일이며 그 측정 자들의 법령에 굴복한다는 것은 태도 중에서 가장 굴욕적인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는 한 그것이 중요한 전부이지요. 그것이 몇 세기 동안 중요한 것인지 아니면 몇 시간 동안만 중요한 것인지는 아무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손에 은항아리를 들고 있는 교장 선생님이나 소맷자락에몰래 측정 자를 숨기고 있는 어떤 교수님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여러분 비전의 머리카락 한 올이나 그 색조의 미묘한 차이라도희생한다는 것은 가장 비열한 배반입니다. 이에 비한다면 인간의재난 중에 가장 엄청난 것이라고 일컬어지곤 했던 부와 정조의희생은 벼룩에 뜯긴 정도의 사소한 상처에 불과하지요.
- P147

그 누구도 문제의 요점을 이보다 더 명백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난한 시인은 오늘날 쥐뿔만 한 기회도 갖지 못하고 지난 이백 년 동안에도 그러했다.…… 영국의 가난한 아이가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 위대한 작품이 탄생되는 지적 자유에로해방될 희망이 더 많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것이지요.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의존하지요. 그리고 여성들은 단지 이백 년 동안만이 아니라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줄곧 가난하였지요. 여성들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더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성은 시를 쓸 쥐뿔만 한 기회도 갖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돈과 자신만의 방을 그렇게도 강조한 이유이지요. - P149

내자신의 마음을 샅샅이 뒤져봐도 나는 남성의 동료나 남성과 대등한 사람이 되어 더 고귀한 목적을 향해 세상에 영향을 끼쳐보고자 함에 대해서는 어떠한 숭고한 감정도 발견하지를 못하니까요. 알고 보니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되기보다 자기 자신이 된다.
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고 간략하고도 단조롭게 스스로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만일 내가 그 말을 고귀하게 들리도록 하는 법을 안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자 하는 것은꿈도 꾸지 말라고 말하는 것일 테지요. 사물을 있는 그 자체로 생각하십시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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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0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엄청 어렵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ㅎㅎ 등대로나 델러웨이 부인 읽으려고 대기중~~!

바람돌이 2021-04-04 22:06   좋아요 1 | URL
등대로를 엄청 어렵게 읽어서 전 미리 각오를 하고 읽기 시작했어요. ㅎㅎ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등대로보다는 낫더라구요. 그래서 이게 어딘가 하면서 읽었습니다. ^^
전 다음 책으로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 평전 나온거 한 번 읽고 그토록 재밌다는 올랜도로 가볼까 싶어요. 우리 같이 힘내서 열심히 읽어봐요. 버지니아 울프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으니까요. ^^

새파랑 2021-04-04 22:09   좋아요 0 | URL
자기만의 방 읽고 좌절했다가 올랜도 읽고 다시 관심이 가더라는ㅎㅎ 알겠습니다^^
 

노벨상 연설에서 사라마구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충분히 이들과 동화했는지 잘 알 수 없는 유일한 지점은그 여자들과 남자들이 그런 가혹한 경험에서 얻은 미덕, 바로삶에 대한 당연하다는 듯 소박한 태도입니다…… 저는 매일제 정신에 울리는 끈질긴 호출처럼 그 교훈을 느낍니다. 저는 광활한 알렌테주 평원에서 제게 주어졌던 존엄의 예시와같은 위대함을 조금 더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아직은 잃지 않았어요. 시간이 이를 말해 줄 겁니다.
-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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