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여행 산문집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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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남들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한다 많은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있을 나는 더욱더 자유로워진다그런 점에서 나는 모든 사람이 되고 싶지만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그래서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책이있는  아닐까원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라도   있다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 P75

 

책을 읽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제일 쉽게 대답할 수 있는건 재밌으니까요 정도?

하지만 뭔가 더 멋있는 말을 하고싶은 욕망은 분명히 있다.

가끔 잘난체 해도 될 듯싶은 대화에서는 한 번씩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나는

"책 특히 소설을 읽으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물, 살아보지 못한 삶을 한번 살아보는 느낌이 들어요. 나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한번 바라보고 나면 내가 뭔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자꾸 책을 찾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몇번은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된 느낌을 좀 더 확장하려면 인문학이나 예술쪽 책들도 좀 더 읽어줘야 할 것 같고요라는 대답까지는 한번도 한적이 없고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다.

 

김연수 작가의 여행에세이집인 이 책에서 작가가 책에 대해 하는 저 말을 읽으면서 "아 정말 내가 생각한 것과 똑같은데 어쩜 저렇게 멋있고 정확하게 표현했지"라고 감탄하면서 역시 작가는 작가구나라고 생각한다.

 

여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여행의 목적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꾸는  있다는 그러므로 여행자란 움직이는 사람이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다바뀐 풍경은 낯설다새롭고 또 신기하다한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상대적인 이야기다나를 둘러싼 풍경만 낯설고 새로운 게 아니라  풍경 속의  역시 낯설고 새로운 존재 이방인이다- P255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이 된 나를 바라보면서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여행의 즐거움은 책이 주는 즐거움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나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쳇바퀴처럼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을 치우고 밥을 하고 매일 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에 갇혀지낸다.

매일 매일 새롭고 스펙터클한 일이 터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말이다.

또한 일상에서 매일이 새롭고 스펙터클하다면 아 그건 그것대로 커다란 불행이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책과 여행은 안전하게 내가 매일이 새롭고 스펙터클해질 수 있는 길이었구나, 그래서 내가 이 2가지를 그토록 좋아하고 열심이었던거구나.

역시 책은 다른 세상을 보는 것 뿐만이 아니라 나의 일상을 새롭게 보게 하고 더 소중하게 여기는 힘도 있었구나 하면서 감탄하게 된다.

 

김연수작가는 5년동안 론리 플래닛에 여행에 관한 58편의 짧은 글을 연재했고, 그 결과가 이 책이다.

각 글의 길이는 3-4페이지 정도로 짧고, 여행이 주제라는걸 제외하면 딱히 공통적인 점이 없어 심심할 때마다 부담없이 들고 읽기에 좋다.

하지만 그런만큼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생각을 품고 있어 누가 읽어도 아 맞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라는 문장 몇개 쯤은 얻어낼 수 있을 테고, 또는 그런 상황과 관련해서 나도 글을 한번쯤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러니 일개 서커스단으로서는 코끼리의 먹이를 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운반하기에도 상당히 버거웠을 것같다하루키 소설에서 코끼리는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사라지는 것처럼 그려지는데먹이 문제를 생각하면 어쩐지 코끼리에게는 그런소멸 방식이 어울리는 듯하다.- P111

 

김연수 작가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온 서커스단에서 본 코끼리 얘기를 풀어놓고 하루키 소설을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조선 태종 때 느닷없이 우리나라에 왔던 코끼리를 생각한다. 일본에서 선물로 보내졌던 코끼리는 처음에는 모두가 신기하게 보고 했지만 어쩌다가 사람을 두명이나 밟아 죽이게 되고 결국 유배형에 처해진다.

전라도로 유배를 간 코끼리는 곧 그 지방의 큰 골칫거리가 되는데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너무 많이 먹어서였다.

지방의 없는 살림에 코끼리가 먹어대는 걸 감당할 수 없자 지방관은 중앙에 서신을 보내 제발 코끼리 좀 어떻게 해달라고 사정사정하게 되고 불쌍한 코끼리는 이 고을 저 고을을 떠돌게 되는데 그 코끼리의 마지막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 코끼리에 대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설을 쓸까? 에세이를 쓸까 잠시 고민했지만....

에휴~~ 내 주제에 무슨... 리뷰나 쓰지 뭐....

작가가 되고 안되고는 글감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또한 원래 글을 잘 쓰느냐 못쓰느냐라는 것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건 쓸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이게 가장 중요한 거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아 나는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 저 조선의 코끼리 좀 살려주면 안될까라는 생각도 막 하게 된다.

 

이런 부산 말고 다른 부산은 없을까그러자 부산을  아는사람이 가야시장 맞은편으로 가서 186 버스를 타보라고 말했다. 다음  나는 186 버스그것도 운전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알지 못하던 부산으로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피난지 부산의 삶과 애환을 담은 노래만 있으면 최고였는데그러니 다음에는 노래까지 준비해서 다시 타봐야겠다.-P103

 

또 하나 이건 것.

여행이 굳이 멀리 떠나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다시 보고, 나를 다시 보는 것도 여행이다.

김연수 작가의 186번버스 부산 여행에 대한 짧은 글을 읽으면서는 그 186번 버스의 노선이 눈에 확 펼쳐졌다.

부산의 산복도로 곳곳을 휘감고 저 멀리 영도 태종대까지 가는 버스

좁고 가파른 길을 돌고 돌면서 여전히 너저분하고 어질러져있는 가난한 동네를 누비다가 어느 순간 멀리 부산항의 확 트인 바다를 보여주는 그 노선은 사실 부산의 속살같은 이야기들을 많이도 품고 있는 길이다.

오래 전 가끔 그 버스를 탈 때면 나는 '아 이런 곳도 사람이 사는구나'라며 더불어 그 동네들에 살고 있는 몇몇 친구들을 떠올리곤 했었다.

어느 여름 날 그 버스가 지나는 길에 살던 친구가 연락을 했었지.

집에 좀 와달라고...

혼자 자취하던 그 친구의 집이 아니라 방은 전날 내린 비로 천정의 벽지가 불룩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벽을 타고 내린 물로 방은 엉망이었다.

그래도 젊었던 우리는 낄낄 대며 천정 벽지에 구멍을 뚫어 몇 바께스(양동이)나 되는 물을 밖으로 퍼날랐고, 청소를 하고 짐을 꺼내고 하면서도 그게 그렇게 비참하거나 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낄낄대고 있었고, 일을 마치고는 라면이었는지 짜장면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뭔가를 또 맛있게 먹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지나치게 현대화되어버린 자갈치 시장에서는 느끼기 힘든 사람들의 오래된 묵은 그런 이야기가 아직도 그 길에는 남아있을 것이다.

그 길에 얽혀있는 이야기들을 써봤으면 좋겠다.

나 말고 김연수 작가가.... ㅠ.ㅠ

 

이 책을 읽으면서 에세이라는 장르를 다시 생각한다.

많은 종류의 글이 있지만 에세이라는 이 장르는 그만의 방법으로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거였구나.

작가의 글이 내게 와 나의 마음이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때문에 에세이를 읽는구나

에세이를 읽는 동안 나는 작가의 마음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로 인해 잠시지만 내 글을 써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래서 진짜 작가가 되기도 할테고,

역시 책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구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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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2-19 0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연수 작가님도 써주시고, 바람돌이님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바람돌이 2021-02-26 00:40   좋아요 0 | URL
하하하 그럼 김연수 작가님이 안쓰면 제가 쓰는걸로요. 비교라도 되면 다행인데 사실 비교도 말이 안되잖아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1-02-19 04: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행의 목적이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꾼다는 말이 참 와 닿습니다. 자신을 잃지 않고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는 의미로도 생각되네요. ^^:)

바람돌이 2021-02-26 00:43   좋아요 1 | URL
저도 그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나의 자리를 바꿔보는 것, 그래서 뭔가 또 다른 시선으로 세상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뭐 그런 말이겠죠? ^^ 책을 읽는 것도 여행을 가는 것도 결국 얻는 것들은 비슷한 것 같아요. ^^

scott 2021-02-19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님 말씀에 동감!!
186번 버스의 노선~부산의 산복도로 곳곳을 휘감고 저 멀리 영도 태종대까지 가는 버스~
광고에 휘황찬란하게 나오는 유럽 풍경이 아닌!!
부산,뿌산의 186번 버스, 바람돌이님에 그친구!
에피소드가 더 더 감동적임
오늘에 이페이퍼는 나와 다른 사람들 바람돌이님 김연수님의 여행지 에피소드로 만나게 되는 !
제임스 설터 옹이 쓰지 않으면 모든게 사라져버린다고
오로지 글로 기록된것 만이 진짜 ...모든건 꿈일뿐....

바람돌이 2021-02-26 00:45   좋아요 1 | URL
scott님 말씀 감사해요. ^^ 아 186번 버스 노선은 그냥 타봐야 돼요. 진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굉장히 다양한 감흥을 가져다 주거든요. 근데 이 버스 노선 무지 길어요. 진짜 날잡아서 맘먹고 타야 되는데요. ㅎㅎ
제임스 설터 옹이 그랬군요. 맞는 말 같아요. 이 글 쓰다가 아주 오래전 연락이 끊기고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 그 친구 생각을 다시 살려냈기도 하고, 그 덕분에 전 그 친구를 잊지 않겠죠? ^^

희선 2021-02-26 0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선 시대에 그런 코끼리가 있었군요 살던 곳을 떠나 모르는 곳으로 오게 되고 이리저리 가게 되다니... 그 코끼리는 나중에 어떻게 됐을지... 멀리 가지 않고 가까운 곳을 돌아보는 것도 여행이겠지요 어떤 사람은 밖에 나가는 게 다 여행이다 하더군요 그런 마음으로 다니면 즐거울 듯도 합니다 저는 다른 데 가는 거 안 좋아하지만... 실제로 안 가고 책으로 가죠


희선

바람돌이 2021-02-26 00:50   좋아요 1 | URL
아마도 동남아쪽에서 일본으로 선물을 보낸 듯한데 그걸 또 일본이 다시 조선으로 선물을 보낸거죠. 일본도 아마 코끼리 먹이 주는게 너무 부담스러워서 보낸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뭔가 새로운걸 발견하는 것,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모두 여행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심지어 집밖을 안나서도요. 내방 여행하는 법이란 책도 있잖아요. ^^ 그러니 책을 통한 여행은 더 넓고 무한한 여행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

scott 2021-03-05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이달의 당선 !
추카~*추카~*
바람돌이님의 추억의 여행기도 하나씩 풀어 놓셔야 할것 같아요 ㅋㅋ


바람돌이 2021-03-05 23:19   좋아요 1 | URL
scott님도 축하드려요. 그것도 두편이나.... 알라딘 적립금은 들어오기만 하면 또 더 보태서 무슨 책을 사나 고민하기 시작한다죠. ㅎㅎ

모나리자 2021-03-05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바람돌이님~ 모두 대단하시네요~ 주말도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1-03-05 23:2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모나리자님도 행복한 주말 되새요
 

그러고 보면 그건 정말 대단한 단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세계의 끝이랄 수는 없지만, 조선의 끝이나 다름 없는 곳이고,
그런 데서 사내들이 모여서 손가락을 자르는 발가락을 자르는이 세계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게 뻔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손가락을자른 것이다. 만약 안중근이 이토를 죽이지 못했다면, 그 손가락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연해주 벌판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 P140

조직은 인간을 난쟁이로 만든다는 것, 고독은 우리의 성장판이라는 것,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해야 할 일을 할 때 인간은자기보다 더 큰 존재가 된다는 것. 비록 나는 안중근의 손가락은 찾지못했지만, 그의 여정이 내게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P141

죽음을 앞둔 폐결핵 환자 카프카는 베를린 그루네발트 길을 걷다가 울고있는 소녀를 만났다. 카프카가 우는 이유를 묻자, 소녀는 아끼던 인형을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카프카는 "네 인형은 그냥 여행을 떠난 거야"라고말했다. 소녀가 그 말을 믿지 않자, 그는 "네 인형이 나한테 편지를보냈는걸" 하고 대답했다. 정말이냐고 소녀가 물었다. 그렇다고 카프카가대답했다. "지금은 안 가져왔지만, 내일 여기 오면 내가 줄께." 그리고전영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렇게 그때 카프카와 함께 산책을 했던 도라 디아만트는 전한다. 어떻게그날부터 카프카가 그 고유한 창작의 열의를 쏟아 인형의 편지를 써갔으며,
하루하루,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녀에게 읽어주었는지를, 인형이 이곳저곳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마침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그리하여 이제 옛 소녀에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삼십여 통의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팔십여 년이 지난 몇 년 전, 한 카프카 연구가가이제 와서 그 편지를 찾아보겠다고 나서면서 화제가 되었다.
- P171

이 일은 두 가지 부작용을 갖고 있다. 우선 오만해지고 독선적인 사람이된다는 것. 이를 선지자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남이 못 보는것을 꿰뚫어보는 자는 자기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자를 낮춰볼수밖에 없다. 싱클레어가 낮과 밤을 나눴듯이 선지자 콤플렉스에 빠진사람 역시 세상을 이분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어떤 이분법을펼쳐도 자신은 좋은 쪽에 속한다는 것이 함정이다.
- P188

두 번째 부작용은 음모론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세계를 불신하기 때문에 어떤 현상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므로분석이 필요하다. 분석이라고 썼지만, 선지자 콤플렉스와 결합되면 이는
‘관심법, 즉 다른 사람의 속셈을 훤히 꿰뚫어보는 일을 뜻한다. 한 사람을둘러싼 리얼리티는 그의 성장 과정과 가치관에 따라 선별적으로재구성된다. 그러므로 같은 리얼리티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각자의리얼리티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같은 교통사고를 목격해도 목격담은달라질 수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그간 예술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여러 번 증명됐다. 그러므로 관심법으로 알 수 있는 타인의 마음은없다는 게 자명하다. 그럼에도 자꾸만 알아내고자 할 때 문제가 생긴다.
- P188

기억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포토샵이 사진의 노출을보정하듯 기억은 과거에 관한 판단을 보정한다. 좋았던 시절은 더또렷하게, 나빴던 시절은 더 흐릿하게 혹은 그 반대로, 그제야 우리는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바라보느냐, 더 나아가서어떻게 말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P235

여행의 목적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세계를 바꾸는 데 있다는 걸, 그러므로 여행자란 움직이는 사람이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바뀐 풍경은 낯설다. 새롭고 또신기하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상대적인 이야기다. 나를 둘러싼 풍경만 낯설고 새로운 게아니라 그 풍경 속의 나 역시 낯설고 새로운 존재, 즉 이방인이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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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일개 서커스단으로서는 코끼리의 먹이를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운반하기에도 상당히 버거웠을 것같다. 하루키 소설에서 코끼리는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사라지는것처럼 그려지는데, 먹이 문제를 생각하면 어쩐지 코끼리에게는 그런소멸 방식이 어울리는 듯하다.
- P111

음, 그러나 컴퓨터가 더 중요해졌다는 건 인정해야겠다. 당시김정흠 교수는 컴퓨터의 도움으로 초등학교 5학년 학생도 대학교1학년과 비슷한 수준의 교양을 갖추리라고 예언했는데, 틀린 말도아니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종일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게임에몰두하느라 대학교 1학년의 교양 수준이 초등학교 5학년 정도로 떨어진것 같으니까.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인 셈이다.  - P113

여행의 교훈은 내가 보는 세상이 이처럼 상대성의 원리로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인지도 모른다. 빈민이 많은 저개발국을여행하고 돌아오면, 미안하지만 한국에서 사는 게 참 행복하게느껴진다. 하지만 유럽 여행 뒤에 바라보는 한국은 전생에 나쁜 일을하다가 죽은 이들이 오는 곳 같기도 하다. 당연히 한국은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한국은 그저 한국이다. 여행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두 지역을 한데 놓고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피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래야 여행이 가능하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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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라는 약한 존재가 되고 난 뒤에야 나는 사람의 선의에기대는 법을 익히게 됐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에게는근처에 있는 호텔을 찾아가는 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일이겠지만, 그 동네 주민에게는 산책만큼 쉽다. 그러므로 그 여행자에필요한 행운은 단 한 사람, 그 호텔의 위치를 아는 현지인을 만나는일이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대단한 결심이 아니어도 괜찮다.
서로가 약간의 용의를 내기만 하면 된다.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용의.
선뜻 도와주겠다는 용의, 여행지의 행운이란 이런 두 사람이 만날 때일어나는 불꽃 같은 것이다.
- P5

여행이란 가지 못한 길에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여행을 통해 나는 비정함을익혔다. 눈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그토록 찬탄하던 곳과 작별하는 법을알게 됐으니까. 이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 P31

2009년 캐용고는 글로벌 소프 프로젝트 Global Soap Project 를설립했다. 그 단체는 호텔 체인과 연계해 한 번 쓰고 남은 호텔 비누들을회수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설립 3년째인 2012년에는 60 만개가 넘는 재활용 비누를 만들어 제3세계 아이들에게 나눠줬고,
2013년에는 200만 개가 넘는 비누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여행하는내내 나는 그 많은 호텔 비누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건 마치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질문처럼 느껴졌다.
심각하고 복잡해진다면, 정답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 많은 호텔 비누는 제대로 씻지 못해 질병에 시달리는 제3세계아이에게 간다. 정말이지 이건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멋진 정답이다.
비누는 계속 청결의 상징이 되어야겠다.
- P35

 20년 전의 나는하루라도 빨리 늙어버리고 싶은 20대였고, 이제야 그 소원을성취해나가고 있으니까. 하지만 젊음은 소중하다고 남들이 말하거나말거나 기필코 낭비하고 마는 그 무모함만은 부러웠다.
- P38

그래서 여행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젊은이가 되는데, 이 젊은이란 사실실제적인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낯선 도시에 처음 발을 디딘사람이라면 누구나 ‘여행자 또는 젊은이‘가 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너무나 서툴러서 태연하게 황당한 실수를 저지르는 자신을감당해야 한다. 만약 그게 힘들다면, 당장 여행을 포기하는 수밖에.
물론 예외는 있다. 잘 짜인 패키지 관광을 떠나는 방법도 있지만,
이쯤이면 왜 효도 관광은 예외 없이 패기지로 떠나는 것인지 알겠지.
여행은 그렇다 치고, 그게 인생이라면 어떨까? 서투른 자신을 보는 게싫다고 패키지 인생을 선택한다면? 이번 여름 여행지에서는 이 질문을자신에게 던져보자.
- P39

자유는 남들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이해에서 비롯한다. 더 많은 사람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바라볼 수있을 때, 나는 더욱더 자유로워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모든 사람이되고 싶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래서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책이있는 게 아닐까? 원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 이 자유를만끽하고 싶다.
- P75

이런 부산 말고 다른 부산은 없을까? 그러자 부산을 잘 아는사람이 가야시장 맞은편으로 가서 186번 버스를 타보라고 말했다.
다음 날 나는 186번 버스, 그것도 운전수 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알지 못하던 부산으로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피난지 부산의 삶과 애환을 담은 노래만 있으면 최고였는데. 그러니다음에는 노래까지 준비해서 다시 타봐야겠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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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에서 중요한 것은 감각과 관련된 매개체인데 주로 빛이나 색 같은 시각적인 정보를 이용한다. ‘봄은 봄을 본다‘는 알 듯 말 듯한 시각적 지각 외에도 바람, 소리, 향기, 질감 등 ‘만짐은 만짐을 만짐이다‘라는말처럼 다양한 감각으로 확장하여 공간에 장소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도시 건축적 작업이 건축현상학이다.  - P81

오래된 역사의 한 부분인 로마 시대 유적지 위에 현대 건축 양식의박물관을 지으면서 내부 바닥은 유적지를 그대로 보존하고 그 위에지그재그 형태의 동선을 넣고 외부에서 벽돌 벽의 틈새로 빛을 비춰서 마치 유적지를 탐사하는 듯한 분위기를 극대화하여 도시 역사를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했다.  - P102

건축에서 현상학적 공간을 만드는 매체로는 단연코 빛이 최고다. 밝음과 어두움을 이용하여 극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현상학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이용되는 것이 현대 건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축 재료인 유리 그리고 자연에서 가져온 수공간이다. 유리와 물의 특징을 이용해 공간을 투명하게 만들고 주변 환경을 비추고 굴절시키고 반사시켜서 기존의 관념을깨는 뒤집힌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들의 작품을 대하면 저절로 그들이 창조한 공간에 빠져들게 된다.  - P106

서울 도심부는 서울의 역사가 층층이 쌓여 있는 장소로 그 역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그런 다양성이 시간의 총체성을 나타내듯이 한 공간에 압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공간을 지나는 사람들은 현대사회를 살지만 건축물들이 보여주는 시간을 인식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다.  - P134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의 건축적 가치는 충분하다. 자세히 보면외부 공간 절반을 그대로 비운 것이 아니다. 오른쪽 건물은 뮤직라이브러리라는 기능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왼쪽의 비워진공간과 지붕 프레임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 결과 왼쪽 광장은 바닥,
벽, 지붕의 형태는 있으나 가운데 공간은 비워진 박스 형태가 된다.
이것이 ‘관통‘이라는 현대 건축 개념이다. 이태원과 한강으로 나누어 한쪽만 사용하던 기존 공간에 도넛처럼 구멍을 뚫어서 양쪽 공간이 하나로 엮이는 새로운 위상학적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이태원에서 한강 쪽을 보고 숨을 쉬게 되었다.
- P154

무주의 종합운동장은 건축가 정기용의 애정이 담긴 프로젝트이다. 종합운동장의 햇빛 아래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관람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등나무를 심어 그늘막을 만드는 것은 간단하고 단순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무주 종합운동장 같은 그늘막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건축가가 어떻게 사회를바라보고 고민하고 애정을 가져야 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되는 프로젝트이다.  - P163

생물학을 통한 디자인 방법론은 생체의 형태와 기능 등을 모방하여건축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법이다. 재닌 베뉴스 Janine Benyus는 자연에대해 배우기보다는 자연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바이오미미크리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지금까지 인간에게 정복 대상에 불과했던 자연은 이제 스승이 된다.  - P192

현대 건축은 기존의 건축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력한 기하학적 형태를 하고 있고 그로 인해 시각적인 지각을 하여 형태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체험 공간이다. 한번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곳이다. 그러나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실인 강제로 움직여야 하는강제동선, 거대한 장벽 같은 벽체, 콘크리트 같은 인공 재료 등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새 시대의 건축가들은 이러한 문제점들을섬세하게 파악하여 각자의 디자인 방법을 동원해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라 더욱 관심이 간다.
- P194

근대 건축에서 돔-이노 구조의 특징인 바다 슬래브와 기둥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면 현대 건축은 그마저 사라지게 하고 싶어 한다. 바닥과 기둥 그리고 천장의 상호의존성이 있어야 하는 건축구조와 공간을 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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