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기원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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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화는 강의나 교육을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배우게 된다는 강렬한 말!
하지만 작가는 강연보다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 더 강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토니 모리슨을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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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화는 강의나 교육을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배우게 된다. - P30

그런데도 이 제도는 어떻게 유지가 가능했을까? 여러 국가들은 노예제도라는 퇴행적인 제도를 받아들이기 위한 한가지 방법으로, 바로 폭력을 동원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이 노예제도의 ‘낭만화‘였다. - P31

노예들이 과장을 보탰다고 가정해도 노예 소유주들의 정서는 야만적이다. 마치 "나는 괴물이아니야! 괴물이 아니라고! 내가 나약하지 않다는걸 증명하기 위해 힘없는 것들을 괴롭히는 것뿐이야"라고 외치는 것 같다. 이방인을 동정하는 행위는 자신 또한 이방인 취급을 당할 가능성 때문에 위험한 행동이다. 인종화된racial-ized 지위를 잃는다는 것은 그동안 높이 평가되고 한껏 떠받들려온 자신만의 차별성을 잃는 것이다. - P63

이방인은 바깥의 존재도 아니고 임의로 존재하는 사람도 아니다.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기억된 존재이다. - P74

어떤 경우에든 경계심을 갖는 헛된 존경심을 느끼든-인간은 타자에게 개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 자신은 꼭 지녀야 한다고 고집하는 그 개인적 특성을 남에게는 허락지 않는 것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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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소재뿐만 아니라 무더운 날씨, 혼잡한 거리, 악취, 먼지, 술취한 사람들, 창녀촌, 집세를 내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가난한 사람들, 도저히 사람이 거주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좁은 방, 자신의 딸이 몸을 판 돈으로 싸구려 보드카를 마시며 인생을 한탄하는 하급 관리 같은 도시의 어두운 모습을 서술한 대목은 작가의 상상이라기보다 그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면을 조명한 르포에 가깝다. 한마디로 《죄와벌>은 첫 문장의 ‘찌는 듯이 무더운 날씨를 포함해 186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신문 기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리고 러시아 역사 전문가인 W. 브루스 링컨이 쓴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당대 러시아 문호들이 자신의 문학에 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실제 모습이 소설처럼 펼쳐진다. - P29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는 <광인 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 <외투>, <코>에서 고골은 자신이 경험하고 관찰한 도시 하층민의 뼈아픈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네프스끼 거리>는 그중에서도 백미다. 19세기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가 네프스끼 거리는이미 런던, 로마, 파리의 중심가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화려했다. 그러나 고골은 "오, 이 네프스끼 거리를 믿지 마라! 나는 그 거리를 지날 때외투로 항상 몸을 꼭 감싸고, 도중에서 마주치는 대상들에게 일체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한다. 모든 것이 기만이고 모든 것이 꿈이며 모든것이 겉보기와는 다르다!"라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화려함 속에 숨은 이면을 고발했다. - P36

톰 조드 가족은 66번 도로를 타고 더스트볼, 천둥 같은 트랙터 소리.
태풍과 가난을 탈출한다. 66번 도로는 서부 개척 시대에는 금광을 쫓는 사람들의 길이었고, 대공황 시기에는 일자리를 잃고 굶주린 사람들이 포도와 오렌지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66번 도로는 시기마다 이주민이 운전하는 차로 가득했다. 이들은 누구나 성실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여정을 떠났지만, 불행하게도 66번 도로는 꿈의 허상과 냉혹한 현실로 그들을 인도했다.  - P48

사람들은 본인이 질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롤랑바르트가 쓴 《사랑의 단상》을 읽으면 왜 우리가 질투를 부끄러워하는지 알게 된다. "질투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네 번 괴로워하는 셈이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질투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내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 봐 괴로워하며, 통속적인 것의 노예가 된 자신에 대해 괴로워한다."" - P120

<마담 보바리>에서 요리는 단순히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지 않고 등장인물의 결정적인 심경의 변화와 욕망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마담보바리>에서 요리는 사랑을 전달하는 매체로 자주 사용된다. 우선 샤를의 어머니는 의학 공부를 하러 타지로 간 아들에게 매주구운 송아지 고기를 보냈고, 엠마의 아버지이자 샤를의 환자였던 루오노인은 다리를 고쳐준 것에 감사를 표하며 매년 칠면조를 그에게 보낸다. 그리고 엠마는 불륜 상대와 맛난 음식을 나눠 먹는다. - P129

이렇듯 중세 수도원의 도서관은 지식을 얻는 장소가 아니었고 오히려 해로운 지식을 차단하고 감추는 곳이었다.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수도원 도서관은 도서 목록을 암호화해 사서만이 어떤 책이 있는지 알수 있도록 했다. 일반 수도사들은 도서관에 구체적으로 어떤 책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게다가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었지만 일단 들어가고 나면 다시 나오는 길을 알 수 없도록 설계되었으며, 매우 한정된 사람에게만 출입을 허락했다. - P142

 도스토옙스키는 바덴바덴에서 도박에 쓸 요량으로투르게네프에게 50 루블을 빌리고 갚지 않았는데 투르게네프는 이 일을 잊지 않고 연기》라는 소설에 100루블을 빌리고선 갚지 않은 채 유유히 바덴바덴을 떠나는 한 배은망덕한 인물을 등장시켰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인물의 모델이 자신이라고 확신해 《연기》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질세라 《악령》에서 투르게네프를 비꼬고 비판하며 복수를 했다.
도스토옙스키는 투르게네프의 친유럽적인 사고를 풍자한 것으로 모자라 그의 성격까지 꼬집어 비판했다. - P172

다른 문화가 주로 곡식을 지킬 용도로 고양이를 곁에 두었다면 우리나라는 좀 더 숭고한 이유로 고양이를 들여왔다. 한반도에 고양이가 들어온 시기는 고구려가 중국에서 불교를 수입한 서기 372년 전후이다. 신앙심이 도타웠던 우리 조상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불교 경전을갉아 먹는 쥐를 퇴치할 목적으로 고양이를 들여왔다고 한다. - P181

(제임스 조이스가 피네간의 경야를 집필하면서 원고를 마감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공저자를 구하는데)고심 끝에 낙점한 사람이 제임스 스티븐슨이었다. 그가 자신과 친하다거나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아니었다. 제임스 스티븐슨과 공저를 하면 그가 사랑했던 더블린 위스키 ‘존 제임슨 앤 선 John Jameson & Son‘의 첫 글자인 "JJ&S‘를 책 표지에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 P194

젊은이들이 로큰롤에 맞춰 춤을 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성 세대가 혀를 차던 시대에 가정주부가 버젓이 위스키를 즐긴다는 소설의 묘사는 당시 미국인들에게 큰 파문을 던지기에 충분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숨을 죽이고 살던 여성들은 《페이턴 플레이스>의 애독자가 되었고 여권 신장에 눈을 떴다. 그리고 작가인 그레이스 메탈리어스는부와 명예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미국 페미니즘의 선구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소설 한 권으로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명제를극명히 증명하기도 했다. 명성과 악평이 동시에 오가는 혼란에 메탈리어스는 담배와 술에 의지했다. 온갖 소송에 휘말렸으며 남편은 직장에서 쫓겨났고 자식들은 괴롭힘을 당했다. 급기야 그녀의 결혼생활은 종지부를 찍었고, 그녀는 7년간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페이턴 플레이스>는 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 자리를 59주 동안 지켰으며 미국에서 오랜 기간 가장 많이팔린 소설로 남았다. 순위를 이어받은 소설은 마거릿 미첼이 1936년에 발표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다. - P198

애초에 문학 전문 서점을 대내외에 공표했을 때부터 마리서사의운명은 결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점 문 오른쪽에는 프랑스어로LIBRAIRIE MARIE‘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Littérature(문학),
Poésie(시), Drame(연극), Artistique(예술)‘, 문 왼쪽에는 한글로 ‘마리서사‘라는 서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도 문학 전문 서점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종로 대로에 자리 잡은 마리서사는 일반 독자와 문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 P221

다이어트가 근대의 산물이라는 점이 다이어트를 규정하는 첫 번째특징이라면, 두 번째는 다이어트가 지극히 ‘미국적인 문화‘라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이어트의 초강대국은 미국이다. 왜 하필이면 미국이 다이어트의 본산이 되었을까? 정답은 19세기 말 미국 식탁의 극적인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식탁이 갑자기 풍요로워졌고 기름진 음식은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미국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야말로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탄생시킨 주범이라는 사실은하와이의 예로 증명된다. - P240

살진 남성은 엄청난 힘을 가진 무서운 존재로 여겨졌지만, 살진 여성은 환자로 치부되었다. 이렇게 비만한 남성과 여성의 평가가 완전히달랐고 비만 남성에게는 격려가 쏟아졌지만 비만 여성에겐 치료와 관찰이 뒤따랐다. 여성의 비만은 돌이킬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운명 같은것으로 여겨졌다. 자신의 의지로 신체를 바꿀 특권은 오직 남성에게만 속한다는 사고가 지배하던 시절, 미국의 성직자이자 그레이엄 크래커의 발명가로 잘 알려진 실베스터 그레이엄은 감히 여성에게 다이어트를 권하는 강연을 하다가 대중의 공분을 샀고 강연장에 폭도들이 난입하는 곤욕을 치렀다. 여성이 자신의 의지대로 체형을 가꾸고 새로운인생을 살게 된다면 그동안 남성이 독점했던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문화가 비판받을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에게 다이어트를 권한 그레이엄의 생각은 대단히 위험하고 불온하게 여겨졌다.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여성은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가꾸고 책임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즉 다이어트와 여성의 권리는 동반자로함께 성장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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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2-08-08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안에서 건져올리고 싶은 책이 많을 것 같네요.
다이어트 면에서 남녀차별 의식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건강면에서는 적정한 체중을 유지하는 게
좋긴 하지요.
건강하고 편안한 나날 보내세요. 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22-08-08 22:52   좋아요 1 | URL
이 책의 최대의 장점이 바로 새로운 책을 막 건져올리는거예요. 문학과 인문학이 아주 즐겁게 만나고 있어서 읽으면서 즐거웠습니다.
다이어트부분은 당시에 실제로 사람들의 의식이 저렇게 차별적이었던건데 뭐 지금이라고 아주 달라지지는 않은것 같아서 늘 씁쓸한 부분이죠. 모나리자님도 건강하고 편안한 날 되세요. ^^
 

요즘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2번씩 집앞 공원으로 걸으러 나간다.

나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사실 지금 빨리 못걷는지라 거의 산책수준이다. 

특히 아침은 아침이라도 햇살이 따가워서 1시간쯤 걷고나면 온몸이 흠뻑 젖는다.

그래도 내 평생에 이렇게 시간맞춰 딱딱 운동을 하고, 더더구나 남들이 모두 출근한 시간에 이렇게 산책이라니, 이것도 나름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주어진 선물같은 시간이라 생가하면 걷는 길이 즐거워진다.

아침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아 좀 더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걷게 되는데 아주 드물지만 이곳에서도 책읽는 사람이 눈에 띈다.


며칠 전 아침에는 공원 내 그늘이 드리워진 계단에 한 청년이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복장은 자전거 라이딩 복장- 헬멧까지 야무지게 쓴 모습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2권의 책을 옆에 쌓아놓고 나머지 1권은 열심히 읽고 있는 모습. 그 1권은 거의 다 읽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같이 데려온듯한 멋지게 생긴 개 1마리.

주인이 책읽는 모습을 배려하는건지, 아니면 주인이 자전거 타고 올때 같이 뛰어오느라 지친 것인지 너무 얌전하게 앉아 그늘과 바람을 즐기고 있는 모습.

그냥 그 자체로 한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정말 보고 싶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하고, 3권의 분량이 비슷하고 책의 꾸밈새가 비슷한 걸로 보아 시리즈물인듯 보였다. 


어제는 공원 곳곳이 좀 어수선 했다.

공원관리팀 여러분들이 곳곳에서 청소를 하고 보수도 하고 그러느라 좀 분주한 모습.

한참 걷다보니 공원관리팀 조끼를 입은 여러분들이 앉아서 쉬고 계시더라.

그런데 그 중 나이가 좀 지긋하신 여자분 한분이 다른 분들과 약간 떨어져서 앉아 책을 읽고 계시는거다.

역시 무슨 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하는 중간 잠시의 틈을 이용해 그 작은 그늘틈에서 6월의 아침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모습, 공원관리팀의 글자가 선명한 파란색 조끼와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 살짝 울컥했다.


물건에 마음이 담기지 않을 때는 그저 그것은 물건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집 20살짜리 딸래미가 아직도 집에 있을 때는 끼고 사는 너덜너덜하고 찢어지고 시커무죽죽한(원래는 하얀색이었던) 애착인형 같은건 그냥 물건일수가 없다.

딸에게 제발 좀 버려라고 하면서, 아무리 눈에 거슬려도 내맘대로는 절대 버릴 수 없는 딸아이의 마음 그 자체일지도 모르는 것. 그 애착인형을 단지 물건이라고만 부를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책은 단지 책일뿐이지만, 지금 읽고 있는 책도 아무리 감탄하며 읽은 책도 그 순간이 지나면 잊혀질 책이 대부분이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 내 인생에서 소중한 기억이 되어주거나 내 인생의 반짝였던 순간을 함께 했거나 그런 내 삶의 한 장면을 품고 있는 책이 있다.  

인형이 특별해지면 애착 인형이 되듯이, 책 역시도 특별한 그 무엇이 될 수 있다.

















헌책방을 운영하는 윤성근씨가 모으고 쓴 이야기들의 모음인 이 책에는 꼭 반드시 그 책이어야만 하는 책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있다. 솔직히 책을 읽기 전에는 책에 얽힌 사연들이 뭐 그리 많을것이며 그런 책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사연과 이야기들이 책과 얽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시작을 여는 이야기는 한 노신사의 방문인데 이 분은1963년에 출판된 구라다 하쿠조의 <사랑과 인식의 출발>이라는 책을 찾는다. 젊은 시절 마음을 둔 여인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할까 연애편지를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하다 이 책의 앞부분을 읽고는 아 이거다 하면서 연애편지를 술술 써내서 그 여인에게 완성된 연애편지를 건넬 수 있었다는 이야기. 

비록 그 여인과 맺어지지는 못했지만 젊은 시절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노년의 신사는 이 책을 찾았다는 소식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택배를 마다 하고 직접 상경하여 책을 고이 모셔간다. 그리고 남긴 말이 


"오랫동안 찾아다닌 내 젊은 시절의 고운 사랑 같은 책을 찾았는데 어찌 우편으로 받겠소? 내가 직접 모셔가야지."(23쪽)


노신사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저 말이 저자로 하여금 책에 얽힌 이야기를 수집하는 길로 들어서게 한다.

나라도 저런 말을 듣는 다면 마음 한켠이 뭉클해지리라. 

아무리 찾기 어려운 책도 그 책을 찾는 마음이 간절하면 어느날 그냥 문득 나타나기도 한단다.

때로 사람이 책을 찾는게 아니라 책이 사람에게 와 주는 것이라고 저자는 표현하는데 어쩌면 사물들간의 인연과 간절함이 그런 힘을 가지게 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학창시절의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준 시집을 찾는 이는 사실은 시집이 아니라 그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서로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캐나다 이민을 택해 연인이 떠나버리자 선물받았던 시집과 함께 모든 책을 헌책방에 처분해버렸던 K씨는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책을 다시 찾는다. 시집을 찾아 가지고 있으면 그 연인을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다린다고..... 그들이 헤어졌던 이유는 그들이 남자와 남자 동성간이었기 때문이고, 그것을 가족에게 커밍아웃하는 바람에 더 이상 같이 있지 못하게 됐던 것. 1970년대에 커밍아웃이라니 그들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단박에 와닿으며 지금 그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 애틋하게 사무쳐 온다.

부디 시집이 그리운 이를 데려다 주길 같이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난다.


병으로 죽은 아내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그들이 맞선을 볼때 아내를 꼬드기기 위해서 읽은척하며(실제로는 앞부분밖에 안읽었던) 함께 얘기했던 책을 찾는 중년의 남자, 돌아가신 아버지가 선물했던 책을 읽지 않았던게 끝까지 마음에 걸려 다시 찾고자 하는 이, 철학을 공부하던 동생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그 동생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하면서 동생이 권했던 책을 찾는, 그래서 책이 너무 두꺼우니 읽다가 어려우면 덤벨로도 쓰면서 천천히 읽겠다는 근육맨, 시집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채로 외워 완벽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확인하고 싶었던 이는 먼 훗날 다시 그 시집을 찾으면서 삶의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책에 얽혀 있는 이야기들은 정말로 너무나 다양해서 아 정말 사람들은 누구나가 모두 특별한 존재구나.

또한 모든 책은 누군가에게는 또 특별한 무엇이 되는구나

문득 나와 나의 서재와 나의 책을 둘러보게 하는 이야기들로 꽉 채워진 이 책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의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집 서재 제일 아래칸을 훑어봤다. 

그 칸은 오랜동안 몇번의 이사를 하고 그 과정에서 오래된 책들을 처분하는 과정에서도 버리지 않고 끝끝내 안고 온 오래된 책들이 꽂혀 있다.

거기서 두권을 살짝 꺼내 먼지를 틀고 한장씩 한장씩 열어본다.

















알라딘의 검색에서는 1989년 4월에 출간된 증보판이 뜨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1979년에 발간된 초판본이다.

내가 이 시집을 산게 1986년 고3때였는데 참 어지간히도 안팔렸던가 보다. 

여전히 초판이 서점에 남아 있었으니......

출간된지 40년이 넘었으니 시집의 페이지마다 둘레 1cm정도는 다 누렇게 변색되어 있다.

하지만 이 시집은 아마 내가 죽기전까지도 계속 가지고 갈, 혹시 잃어버린다면 책을 찾아주는 헌책방 기담 수집가 윤성근씨에게 찾아달라고 의뢰할지도 모르는 책이다.

별 사연은 없지만, 고등학교 시절 시를 아주 쉽게 우습게 알던 내가 우연히 시집의 제목이 있어보여 샀던 이 시집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아 이런 시를 쓰는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절절하게 피를 토하듯 말을 토해내는 사람도 있구나.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싶어 찾아본 작가의 연혁에서 그가 단국대 사학과를 나온걸 알았다.

그리고 그 때 내 진로는 그냥 사학과로 결정되어졌다. 

한번도 역사를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내가 고3때 읽은 이 시집 하나로 단박에 사학과로 진로를 결정해버린게 한 이 시집은 어쩌면 충동적이고, 그만큼 에너지가 넘쳤던 내 젊은 날의 길잡이가 아니었을까?

그저  젊음 하나로 빛나고, 그렇기에 한순간의 충동적인 결정도 가능했던 내 어린 시절의 표상같은 책

오랫만에 먼지를 틀고 책속 시들을 들춰가며 읽는데 여전히 신동엽 시인의 시는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고종석 작가의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도 꺼내놓고 먼지를 튼다.

이 책은 책의 내용보다도 연애시절 남편이 내게 선물한 책이다.

남편이 내게 선물한 유일한 책. 참 오래도 연애하면서 책선물은 진짜 안했구나. 

책의 뒷면에 김용택 시인의 시 "참 좋은 당신"을 써주며 몇자 적은 말이 오래된 연인에게도 심쿵할 수 있구나 했던....

연애 시절의 마지막 설렘을 기억하는 책이 이 책이구나

이 책은 설사 잃어버린다 해도 어디에도 찾아달라 할 수 없는 , 세상 유일한 책


며칠전과 어제 운동길에 만났던 그 청년과 여성분도 어쩌면 그 순간의 책이 무언가 빛나는 한순간을 담은 책일 수도 있을 테고, 이 글을 읽어줄 알라딘 서재의 여러 지인분들도 그런 빛나는 순간의 책이 다들 어딘가 한편쯤은 있을 것이고...


그래서 여전히 책을 읽는 것은 소중한 시간이다.

앞으로 또 어떤 책이 나에게 새로운 빛남을 만들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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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6-03 18: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 님만의 책의 역사. 유난히 애착 가는 책이 있지요. 그 시절의 어떤 순간과 연결되는. ^^

바람돌이 2022-06-04 12:27   좋아요 2 | URL
저의 책사연이야 누구에게나 있을 평범한 사연이지만 저 책안에는 정말 애틋하고 기이하기도 한 사건들이 많더라구요. 사람이 사는 것이 이토록 다채로운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구나 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03 18: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을 만나는 과정이 모두 만남이고 인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편분께서 해 주신 유일한 책 선물과 진로를 선택하게 만들어준 책 저라도 결코 버리지
못하고 간직할 것 같아요^^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애틋한 글이었습니다.

바람돌이 2022-06-04 12:29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책은 뭐가 있지라고 다시 돌아보는 순간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마음에 남는 책이 안타깝거나 슬픈 사연이 아닌 것도 고마운 일이네요. ^^

미미 2022-06-03 18: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이 사람에게 오는거라고 생각하니 제게 온 책들이 새롭게 보입니다 *^^*

바람돌이 2022-06-04 12:30   좋아요 1 | URL
그쵸? 하루에만도 출판되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 중에 저렇게 내게 와 이사 할 때마다 애물단지도 되어주고, 삶의 어떤 순간에는 다시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말입니다. ^^

새파랑 2022-06-03 18: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사연이 있는 책도 좋고, 헌책방 기담 수집가 책에 쓰인 사연들도 너무 좋네요~!! 저도 사연이 있는 책을 한번 찾아봐야 할거 같아요. 근데 과연 있으려나 ㅋ

바람돌이 2022-06-04 12:31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도 분명 있을걸요. 그토록 많은 책을 읽으시는데 없을리가 없어요. 저도 바로 떠오른건 아니고 이 책 읽으면서 내가 만약 잃어버린다면 꼭 찾고싶은 책은 뭐가 있을까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 두권의 책이 떠오르더라구요. ^^ 새파랑님의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

mini74 2022-06-03 18: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누가 책을 읽고있으면 그렇게 반갑고 궁금하고 그렇더라고요. 따님인형 지켜주세요ㅎㅎ ~ 바람돌이님 연애이야기에 저도 심쿵합니다 ㅋㅋ

얄라알라 2022-06-03 23:44   좋아요 3 | URL
무슨 책읽까, 무슨 책을 저렇게 열심히 강아지도 주인님 독서 도와주며 읽는 걸까? 글 읽는 저조차 궁금해지는데요.

책에 폭 빠져 읽고 있는 분 있으면(자주 못 보지만) 맞앙 맞아요 반가워요.

바람돌이 2022-06-04 12:44   좋아요 3 | URL
진짜 누가 책읽고 있으면 그거 꼭 무슨 책인지 보고 싶은 우리들의 이 심리는 도대체 뭘까요? 진짜 답답 답답.... ㅠ.ㅠ
mini74님 우리집 딸래미 인형은 매일 버리라고 말만 할 뿐 손댈수가 없어요. ㅠ.ㅠ 제가 제발 새인형 똑같은걸로 사줄게 해도 안되네요. 지켜준다기보다는 더러움을 참는 인내심을 기르는 쪽이랄까? ㅠ.ㅠ

얄라알라 2022-06-03 23: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엔가 국제도서전에 윤성근 사장님(헌책방 대표로서) 오셨었는데, 이번 국제도서전에는 작은 책방들이 왔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바람돌이 2022-06-04 12:48   좋아요 3 | URL
서울 나들이 가면 이분이 운영하는 헌책방에도 한번 가보고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서울국제도서전이 지금 하고 있네요. 언젠가는 저도 국제도서전 관람 한번 해보고 싶네요. ^^

psyche 2022-06-04 00: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공원에서 책 읽는 분들의 모습도 좋고, 헌책방 기담 수집가 내용도 좋고 바람돌이 님의 책과 얽힌 이야기도 너무 좋아요!

바람돌이 2022-06-04 12:49   좋아요 3 | URL
공원에서 책 읽는 분들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저도 이 책 내용도 재밌었고, 저의 추억을 돌아볼 수 있어서도 참 좋았어요. ^^

희선 2022-06-04 01: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래 기억에 남는 책이나 다시 찾고 싶은 책이 있다는 거 좋을 듯합니다 바람돌이 님은 신동엽 시인 시집을 보고 대학 과를 정하셨군요 신동엽 시인 시집은 잊지 못하겠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버리지 못하겠네요 남편분이 주신 시집도...


희선

바람돌이 2022-06-04 12:51   좋아요 4 | URL
그렇죠. 어떤 것이든 기억에 남는다는건 소중한 것이었다는거고, 우리 삶에서 이렇게 소중한 것이 많을 수록 그만큼 소중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도 될테니까요. 희선님도 그런 기억들이 있으시겠죠. 어떻게 간직하든 소중한 것들은 그것들만으로 좋은거 같아요.

감은빛 2022-06-04 23: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신동엽 시인의 전공을 보고 사학과를 선택하셨군요. 어떤 물건에 사연이 담기듯 책에도 사연이 담기곤 하죠. 젊은 시절에는 그런 책들과 사연들이 있었는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그런 극적인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게 되는 느낌이예요.

좀전에 다른 알라딘 서재 이웃님이 윤성근님의 다른 책에 대해 쓴 짧은 글을 읽었는데, 여기서 이 책을 만나니 반갑네요. 바람돌이님의 책 두권에 대한 이야기는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다워요.

바람돌이 2022-06-05 14:14   좋아요 2 | URL
나이가 들수록 그런 극적인 일들이 일어나지 않은다는데 동감입니다. 어쩌면 나이들면서 많은 것들에 무덤덤해지기때문인듯도 해요. 어떤 때는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어서 좀 좋은 것도 있는데, 그래도 감동이나 이런건 여전히 민감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합니다. ^^

이 책의 저자인 윤성근님이 책을 많이 쓰셨더라구요. 쉬엄쉬엄 조금씩 찾아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

mini74 2022-07-08 1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서재가 무지 궁금해졌던 리뷰! 축하드립니다 *^^*

바람돌이 2022-07-09 16:32   좋아요 1 | URL
아 제 서재요? 그냥 서재죠. ㅎㅎ 의외로 문학책은 별로 없습니다. 전공책들로 거의 꽉찬..... ㅎㅎ
감사합니다. 미니님도 당선 축하드려요. ^^

새파랑 2022-07-08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플의 바람 바람돌이님 당선 축하드려요~!! 오늘 밤에 바람이 좀 불게 해주세요. 너무 덥네요 ㅜㅜ

바람돌이 2022-07-09 16:32   좋아요 2 | URL
지금 바람 보냈어요. 내일이 일요일이니 아무래도 다음주 월요일은 돼야 가지 않을까싶네요. ^^
 

"오랫동안 찾아다닌 내 젊은 시절의 고운 사랑 같은 책을 찾았는데 어찌 우편으로 받겠소? 내가 직접 모셔가야지." - P23

S씨가 돌아가고 난 다음 나는 혼자 남아 우두커니 주위를 둘러봤다. 눈길 닿는 곳마다 책이 가득 쌓여 있고 그 위로 무심하게 음악이 흐른다. 이 책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갖가지 의미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숱한 사연들을 생각하면 곧 연주회가 시작되는 공연장 맨앞자리에 앉은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늘 마음이 설렌다. 이것이 내가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다. - P32

사람의 이야기란 얼마나 사소하면서 깊은가. 나는 C씨가 왜 이토록 잔잔한 서해를 좋아하게 됐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바다는 오늘도 알려지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조용히 찰랑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 곁에서,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풀잎은 그들의 언어로가만히 노래한다. - P83

모든 책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아이러니하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책을 쓴 사람의 갖가지 인생 이야기가 거기 오롯이 담겨 있기때문이다. - P106

"책은 제가 찾았지만, 이 책이 나타날 마음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어느 도서관 책 무더기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을 겁니다."
"책이 자기 스스로 나타나줘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제 경험상 그렇습니다. 책은, 그 책을 만날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책은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 간절한 마음을 알아보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거라고 할까요?
이번 경우엔 K님의 마음이 책과 통했나 봅니다. 그러니 이 책을 오래 간직해주세요. 이번엔 꼭 읽어보시고요." - P115

"서삼치書"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책에 관한 세 가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가책을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요, 둘째는 빌려달란다고 순순히 빌려주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빌린 책을 돌려주는 사람, 혹은빌려준 책을 돌려받으려 하는 사람이다. - P217

"이 책은 예전 모습 그대로네요. 기억이 납니다. 수십 년 전 일들이요. 부끄럽던 제 생각과 행동도 이 책은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변한 건 접니다. 진짜 감옥에 있던 건 신영복 선생이 아니라 저였어요. 저 자신을 가둔 생각의 감옥에 갇혀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어요."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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