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의 세계

저자 찰스 브라메스코

다산북스

2024-05-29

원제 : Colours of Film (2023년)

예술/대중문화 > 대중문화론





영화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의 색상은 다르다. 색상의 변화는 창의적으로 의도한 개입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불가피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 관점이 바뀌면 광고, 포장, 건축, 그리고 길을 가다 마주치는 모든 대상의 색채적 의도를 좀 더 깊이 관찰하고 비판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이를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다.

색은 기쁨이자 에너지요, 삶 그 자체다. 적절한 도구와 화학물질, 그리고 약간의 영감만 있다면 영화는 우리를 어디로든 데려가서 무엇이든 보여줄 수 있다.



색상의 간섭 자체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피부색을 교묘하게 밝게 하거나 어둡게 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빨간색을 파랗게, 어두운 색을 밝게 만들 수 있다면 대중매체의 교묘한 속임수에는 한계가 없어질 것이다.



1939년, 대공황에서 비롯된 10년 동안의 경제적인 빈곤으로 미국인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 시기에 개봉한 「오즈의 마법사」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오락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신비한 나라로 떠나는 도로시의 상상 속 모험은 현실에 지친 관객에게 일탈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비록 고단함에서 벗어나는 시간은 한두 시간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여전히 해마다 가장 예술적이며 모험적인 개봉작 중 일부는 디지털이 아닌 코닥 필름으로 촬영해 호응을 얻고 있다. 2021년 개봉한 에드거 라이트의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웨스 앤더슨의 「프렌치 디스패치」, 스티븐 스필버그의 리메이크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은 필름 스트립의 생생한 색채와 질감으로 과거의 미학을 모방한다. 물론 이 방식은 현대 영화 산업의 재정적 제약과 기술 노하우 부족으로 더는 참신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이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역사적 전통을 중시하는 관객에게 코닥의 필름은 그 자체로 인간의 독창성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작품으로서 영화의 정수를 담아낸다.



정적이 내려앉아 장례식을 연상케하는 실내는 불안을 암시하는 빨간색과 충돌한다. 가령 자매 한 명이 남편을 내쫓기 위해 유리 파편으로 자해하며 피 흘리는 장면이 회상으로 등장한다. 베리만 감독은 페이드인 기법을 빨간색으로 처리해 인간은 모두 빨간색에서 비롯됐음을 전달한다. 그래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화면은 붉게 물든다.



컬러 영화가 등장하고부터는 선악을 묘사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영화 제작자들은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을 어떻게 활용할지 서로 엇갈린 의견을 보였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에서 평화의 수호자 제다이의 라이트세이버는 파란색이나 녹색(내면이 평온하게 하나 됨을 의미)으로 빛나고, 테러리스트 시스의 것은 빨간색(분노와 충동, 불을 의미)으로 빛난다. 그러나 「해리 포터」에서는 소년 마법사 해리의 지팡이가 빨간색(용맹함을 지닌 고결한 귀족 혈통을 암시)을, 어둠의 군주 볼드모트의 지팡이가 녹색(뱀, 화려함, 독성을 암시)을 띤다. 그러니 색에 대한 결론은 하나로 내리기 어렵다.



영화의 첫 장면, 꽉 막힌 로스앤젤레스의 도로에서 원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동차 위로 올라와 춤을 춘다. 수영장이 딸린 정원에서 불꽃놀이도 즐기는 파티로 미아를 끌어들이기 위해, 그녀의 친구들은 젤리 같은 알록달록한 드레스를 차려입고 그와 어울리는 진청색 드레스로 미아를 유혹한다. 다음날 아침은 다소 실망스러울지언정, 파티의 밤은 놀랍도록 짜릿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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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는 고슴도치

저자 재발견생활

훨훨나비

2024-05-22

어린이 > 동화/명작/고전 > 창작동화





'잘할 수 있을까?'


고슴도치는 밤새 걱정으로 뒤척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앉았어요.

오늘은 숲속 마을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고개 숙여 짧은 다리를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지요.

두 팔을 앞으로 한껏 뻗어 봅니다.

역시나 가늘고 짧아서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주눅이 들었어요.


"어딜 그렇게 힘없이 가니?"


하얗고 보드라운 털을 가진 큰고니가 나타났어요.

하늘을 날다가 고슴도치를 발견하곤 우아한 동작으로 살포시 내려앉았지요.

큰고니가 앞에 서니 고슴도치는 가뜩이나 볼품없어 보이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달리기 경기하러 가. 잘해야 할 텐데 말이야."

"암, 잘할 수 있고말고. 네가 매일 달리기 연습하는 걸 하늘에서 지켜봤단다. 나도 참가하는 경기가 있어. 우리 함께 잘해 보자!"


고슴도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큰고니는 웃으며 말을 건넸어요.


환호성 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이지 쓸쓸했습니다. 태양은 하늘 높이 빛나고 그림자 하나 없는데, 오직 고슴도치만 어둠을 뒤집어쓴 것 같았지요.


울다 보니 목이 말랐던 고슴도치는 두 손 모아 맑은 물을 떠 마셨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요?


정신이 번쩍 든 고슴도치는 벌떡 일어났어요.

가슴에서 유난히 밝은 빛이 새어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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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9세 찰리에게 배운 것들
데이비드 본 드렐리 지음, 김경영 옮김 / 동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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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9세 찰리에게 배운 것들

저자 데이비드 본 드렐리

동녘

2024-05-10

원제 : The Book of Charlie

에세이 > 외국에세이





저자는 밤이 되면 네 자녀에게 동화 속 세계를 선물해주었습니다.

조금 더 크면 이 시간도 사라지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시간이 빠르게 찾아오고 말았죠.

그런 그에게 네 자녀는 아빠가 작가 비슷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자신들을 위한 책을 써달라고 조르게 됩니다.

저자는 네 자녀에게 선물할 인생 지침서를 집필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험난한 폭풍우가 몰아쳐도 지혜의 열쇠가 될 수 있는 책을 말이죠.

저자는 책을 위해서라면 세상 어디라도 갈 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날 필요도, 어딘가 멀리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바로 길 건너편에 그 열쇠를 지닌 사람이 있었으니깐요.

저자 앞에 운명처럼 나타난 한 노인의 이름은 찰리, 그의 나이는 109세입니다.



2007년, 워싱턴에서 캔자스시티로 저자는 이사를 오게 됩니다.

8월의 폭염으로 숨이 턱 턱 막히던 날씨였죠.

그런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으니 바로 새 이웃이 길 건너편에서 세차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트렁크 수영복 하나만 걸친 채 근육질 가슴을 드러내고 세차를 하고 있었죠.

찰리 화이트, 전직 의사인 그의 나이는 102세입니다.

며칠 전 옆집에 사는 그의 사위 더그에게 소개받았는데, 더그의 아내가 찰리의 막내딸입니다.

나이가 무색하게도 두 눈은 맑고 짙었으며 청력도 멀쩡했고 대화는 주제를 넘나들 정도로 매우 영민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자가 찰리의 길 건녀편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7년 우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의사였기에 남다른 수명을 보여줬다기보단, 그는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만은 가장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비극과 상실, 가난과 좌절, 그리고 때때로 기회를 날려버리는 경험을 하면서도 찰리는 꾸준함과 침착함, 그리고 요즘 말로는 회복탄력성이라고 부를 자립심을 잃지 않았죠.

찰리는 즐거운 순간을 누리고, 기회를 붙잡고, 중요한 것을 지키는 재능을 타고난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 더 어려운 일을 해내는 남다른 요령을 가지고 있었죠. 바로 다른 모든 일은 잊어버리기.

철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철학자와도 같던 찰리의 조언에는 스토아 철학의 본질이 담겨 있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의 평정심,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토대입니다.



찰리는 삶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깨우쳤던 생각과 지혜뿐만 아니라 미국의 109년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저자는 몇 시간이고 한 자리에서 찰리의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 이후 찰리의 성격이 바뀌게 되었음을 알게 되죠.

참고로 찰리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승강기에서 운전원의 잘못으로 9층 높이에서 추락하게 됩니다. 비극적인 사고로 인해 큰 상실을 겪은 찰리는 밥 한 술 못 넘기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죠.

찰리의 크나큰 상실은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었습니다.

이때 그는 깨닫게 됩니다. 몇 달이 몇 년이 되든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컴컴한 우울의 파도가 지나가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이 순간을 계기로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찰리는 운명이나 시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행동, 감정, 세계관, 정신력을요.



어느 날, 찰리는 저자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줍니다.

뒷마당에 있는 이끼색 장난감 집부터 거실 한가운데 놓인 노래하는 큰 산타까지.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 치울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저자는 틈만 나면 찰리의 집을 찾아갔고 그때마다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오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찰리가 느낀 향수는 어떻게든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고, 찰리가 지나온 과거는 미래를 위한 준비였다고.



저자가 찰리를 만나던 해가 애플이 처음 아이폰을 선보인 해였습니다.

글쓰는 게 업인데다 타자기로 작업을 해와서 단순히 아이폰을 값비싼 타자기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찰리는 달랐습니다.

라디오가 발명되기도 전에 태어났던 찰리는 어느새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변화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변화를 통한 성장은 새로움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시대(어느 시대나 그렇긴 하지만)에는 많은 사람이 단번에 답을 얻고 싶어 한다.

지금의 추세는 미래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을까?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찰리는 우리가 사는 곳이 미래의 세상이 아님을 이해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과 의지가 만들어낸 훨씬 더 작은 영역 안에서 현재의 순간을 살아간다.

우리는 내일을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이 현실주의다.

반면 낙관주의는 미래를 기다리며 미래를 이해하고자 노력할 수 있다고, 미래를 붙잡고 심지어 미래를 정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도약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찰리의 의붓딸인 린다는 예순여섯 살에 휴가를 다녀오고 몸이 좋질 않아 검사를 받아보니 몸 전체에 종양이 퍼져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녀가 죽고 몇 주 뒤에 찰리는 102세가 됩니다.

어느 날, 찰리는 현관 밖에서 얼음 조각을 밟고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졌는데 요양시설에 가보니 찰리는 유쾌하게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찰리가 106세 겨울이 되던 해입니다.

찰리는 발목 부상을 떨쳐내고 환각에도 동요하지 않았지만 폐렴에 걸려 입원하게 되는데, 잠시나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잡담을 나누게 됩니다.

찰리가 107세가 되던 해입니다.

그리고 108세가 되던 해에, 찰리는 자립 능력을 잃어 연인인 메리 앤과 함께 로비를 걸을 수 있는 고급 요양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급격히 쇠약해진 찰리는 이왕 버틴 거 109세까지 살아보자고 마음을 바꾸게 됩니다.

2014년 8월 17일, 찰리는 이른 새벽 생일 밤을 넘기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삶의 교훈을 주는 어른과 대화하는 시간을 참 좋아합니다.

제게는 참어른 몇 분이 계시는데 그 중 한 분이 문학을 가르쳐주던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삶 자체에 큰 깨달음을 얻곤 합니다.

마음가짐과 태도의 중요성을 항상 마음 속에 새기는 선생님은 나이를 먹을 수록 그 무게감도 비례하듯 책임감도 커져야 한다고 생각하신답니다.

특히 상대방의 말에 온 마음을 다해 귀 기울여주시죠.

그래서인지 선생님 주변에는 오랫동안 따르는 제자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모두가 다같은 어른은 아니지요.

찰리의 이야기를 들으니 꼭 훗날 선생님의 모습을 미리 본 것만 같았습니다.

찰리의 인생은 희노애락이 가득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교훈 그 자체였습니다.

페이지 수가 적어질수록 아쉬움이 진해졌고 그의 마지막 소식을 접할 때는 슬펐지만, 그가 남겨준 가르침은 보다 풍족했습니다.



자유롭게 생각해라.

인내심을 연습해라.

자주 웃어라.

특별한 순간을 마음껏 즐겨라.

친구를 사귀고 사이좋게 지내라.

사랑하는 이들에게 감정을 표현해라.

용서하고 용서를 구해라.

깊이 느껴라.

기적을 알아차려라.

해내라.

때로는 부드러워져라.

필요하면 울어라.

가끔은 실수를 해라.

실수에서 배워라.

열심히 일해라.

기쁨을 널리 퍼뜨려라.

기회를 잡아라.

경이로움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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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엔 무적의 여름이 숨어 있다

저자 바스 카스트

갈매나무

2024-06-17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교양 심리학




"처음 내가 그런 주장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극도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죄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신경정신의학 분야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은 뇌 속의 특정 분자들을 생각하고, 이 분자들에 어떻게 약물로 영향을 미칠까를 생각하는 데 훈련이 되어 있다. 그렇게 하면서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신체가 복합적인 체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소식은 건강한 식생활, 피트니스 프로그램, 해독요법 같은 것이 해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질 좋은 식단은 머릿속의 해마를 빠릿빠릿하게 만들어 신경발생을 자극함으로써, 정신적 경직과 과도한 반추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 해마가 튼튼하면 스트레스 회복력이 높아지며, 나아가 건강한 식생활은 일상적 스트레스에도 더 잘 대처하게끔 하여, 균형 잡힌 마음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펠리체 자카가 식단 실험을 하며 환자들의 뇌까지 자세히 들여다본 건 아니었다. 대신 지중해식 식단과 같은 건강한 식단의 주재료들이 해마의 수축을 막아주거나, 해마가 성장하도록 자극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다른 연구들이 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질병 행동sickness behavior'은 감기에 걸렸을 때는 나타나지만, 허리가 아프거나 이명이 있을 때는 나타나지 않는다. 질병 행동은 '감염'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꼭 직접적으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감염된 상태가 아니어도 말이다.

그렇다. 진짜 범인은 바로 면역계다. 면역계가 경보 상태로 옮겨가자마자 뇌는 '질병'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전환된다.



운동 자체가 스트레스 요인이므로, 운동은 스트레스 또는 더 나아가 부정적인 감정 조절을 연습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여기서 이로운 점은 동료의 기분 나쁜 말이나, 신기하게도 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날아드는 나쁜 소식과는 달리, 운동은 난데없이 벼락처럼 떨어져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동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지만 우리는 그 스트레스와 스트레스 수준을 적절한 정도로 조절할 수 있다.



한 연구에서 미국의 연구진은 적외선 전신온열 가온 장치를 이용해 우울증 환자들의 체온을 일시적으로 38.5도까지 끌어 올렸는데, 이 요법은 1회에 평균 한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 결과 단 한 번의 온열 요법만으로도 몇 주간 우울증을 경감시키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뇌는 자극을 거르거나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가 없다. 그냥 편히 쉬면 된다. 능동적으로 주의력을 조절하거나,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릴 필요가 없다.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자극에 심신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의 지친 주의력과 마음이 자연 속에서 새로운 힘을 충전받을 수 있다.



어떤 꿈들은 인과적 연결고리가 있는 경우 정말로 심리치료 기능을 떠맡을 수 있다. 뇌는 최대로 이완된 상태에 있게 되는 시간에 스트레스가 되었던 경험을 되풀이한다. 그러면 그 사건은 우리의 전기에 편입되며, 차츰 그것을 경험할 때 느꼈던 직접적인 감정의 무게를 잃는다.



우리는 곧 마음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마음과 잘 지내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동양 문화, 특히 불교에서는 일찌감치 ‘직접적으로’ 행복에 이르는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외부 세계를 바꾸는 게 아닌 내면세계로 향하는 길 말이다. 결국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외부 세계를 거쳐 간접적으로 행복에 이르려 하는 대신에 내면세계, 즉 마음에 집중하여 자족하는 마음을 훈련하라고 권한다.



우리가 어느 순간 마음을 열고 그 경험과 대면할 때라야 치유를 기대할 수 있다. 힘들었던 경험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때 말이다.

'그래 맞아, 그랬어. 그리고 그거 알아? 뭐 괜찮아. 나는 이런 거부를 경험했고, 그런 경험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어. 나는 그런 경험을 받아들여. 내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내가 사랑받을 만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야. 이런 개별적 경험은 객관적인 진실을 말해 주지 않아. 우리 부모님이 내게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는지 누가 알겠어. 하여튼 내가 경험한 일은 마음 아픈 일이야. 하지만 나는 더는 그 일과 내적으로 싸우지 않을 거야. 이런 방식으로 더 고통스러워질 따름이니까. 내가 그 경험을 받아들이면, 어느 정도의 아픔은 남을 거야. 하지만 아픔으로 인한 괴로움은 멈출 거야.' 이런 식으로 마음챙김 기법의 두 가지 핵심인 열린 마음과 수용을 결합해 우리 마음의 평화에 상당히 이바지할 수 있다.



명상과 마음챙김은 삶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그 모든 불안과 걱정을 위한 직면 요법이라 할 수 있다. 명상하기 위해 앉아 있는데 머릿속의 목소리가 온갖 걱정을 늘어놓으면, 그런 생각을 그냥 지각하라. 그리고 가능하면 평온하게 관찰자 모드로 거리를 둔 채, 그것이 먹구름인 양 우리 곁을 지나가게 하라.



기존의 항우울제는 그것이 어떻게 변화를 이루어내는지 당사자는 잘 모르는 채로 심리 안정 효과를 얻는다. 이런 도움은 사실 순전히 화학적인 것으로, 우울증 환자는 어쩔 수 없이 약물에 의존하게 된다. 환각제는 이와 달리 자신의 화학 작용을 통해 우리의 정신을 함께 끌어들인다. 환각제는 우리의 뇌와 정신이 동전의 양면과 같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환각 경험이 아주 강렬한 이유는 자신의 뇌에 놀라운 자가 치유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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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문학과지성 시인선 601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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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저자 이병률

문학과지성사

2024-04-24

시 > 한국시





언젠가는 알게 될 모두의 것들



사람들은 사랑을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심하게 구부러뜨리거나 질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요

나는 사랑을 시작하기 시작했고

개인적입니다


언제나 좋은 맛이 나는 음식을 바라지는 않아요

맛이 없거나 입에 안 맞는 음식이 나올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사랑과의 잘못은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을 떨어뜨린 줄기가 땅을 파고들어 열매를 맺는 것이 땅콩입니다

그것을 줄기로 치느냐 뿌리로 치느냐 관점의 차이는 있습니다

사랑은 계속해서 내 앞에서 헷갈려 하지만요


사랑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난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은 이성적으로 나를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러기 떼의 숫자나 세고 돌아와도 되는 것입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어합니다

마술사라는 직업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어합니다

싫어하는 것에는 없지만

좋아하는 것에 암호가 있다고 오래전부터 뻣뻣하게 믿어왔습니다


사랑을 감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번 생의 암호를 풀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러고 삽니까


사랑이 후방에라도 있는 겁니까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마음은 꽃게



생각을 할 때 사선으로 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식한 적 없습니다

이름에 꽃 자가 달려 있다는 사실도요

뭐든 자르고 끊어낼 것 같지만 소문이 건드릴 때뿐입니다

집게는 한 번 사용한 후에 끊어냈으니 여태 대상에 매달려 있을 겁니다

왼쪽보다는 다른 쪽으로 비켜서기 쉽습니다

경우에 따라 상하좌우는 뒤집혀 섞입니다

은신처를 여럿 파놓고 자주 숨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후퇴 뒤에는 번번이 실패만 있습니다

중요한 문제는 자주 연속적으로 거품을 문다는 점이고요

죽을 때까지도 옆으로 걷는다는 사실을 모를 뿐 아니라

대체 뭐 하러 양손을 번쩍 허공에 쳐들고 다니며 씩씩대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조각들을 좋아해



싸움을 좋아해

하지만 싸워보질 않아 얼마나 잘 싸우는지 모르지


나는 시 쓰기를 좋아해

하지만 종속되어 있기만 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지


말하고 싶었지

멀리서 혼자서만 좋아해온 그것들은 실제로 만져진다고


음악에 영향받는 것을 좋아해

때문에 하루가 망가지거나 기분이 가라앉기를

한없이 그렇게 반복해


나는 말했지

소금 만드는 일을 하라고

먹을 정도는 되지 않겠지만 옷 틈새 살 접히는 틈새에

우수수 떨어질 정도의 소금을 맺으라고


그것이 우리 몸을 영하로 떨어뜨리지 않는 길이라고

오래 왔다는 사실과 멀리 갈 거라는 계산은

그래서 중요한 축적이라고


나는 철길을 좋아해

진실을 향해 멀리 뻗어 있어서

뱀을 좋아해

마주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곳에 씨앗이 모여 고인다는 사실을 좋아하고


빨간 덩어리 하나가 있어

천천히 쳐다보고 오래도 쳐다보고 있으면

당돌하게 장미가 되어 피는 것처럼


말간 숨 하나

오래 안에 들여놓고 키웠더니 춤이 되고

큰 사과 하나 깊이 먹었더니

나 또한 하루 만에 똑같이 사과가 되는 것처럼


좋아하는 하나 종일 들고 걸으면

언덕 너머 나무 밑 살고 싶은 곳에 도착하지


아, 나는 나에게 전화 거는 것을 좋아해

도대체 그게 가능하기나 한 건지

어떻게 걸고 받아야 하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이병률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사랑의 순간들을 연상케하는 구절들이 마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도 같아 사랑과 이별, 외로움을 더 부각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 생각나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시'입니다.

중학교 때, 봄에 만난 선생님께서 종종 시 한 구절을 뽑아 선물해주셨는데 지금도 제게 시 한 구절을 꼭 보내주신답니다.

많은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아도 신기하게 제 기분을 바로 알아차리시곤 제 상황에 맞는 시 한편을 보내주세요.

그래서인지 시를 떠올리면 사랑은 물론 따스한 격려와 용기가 자연스레 연상된답니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문학 선생님께서 보내주셨던 시를 모아놓고 있는데 이병률 시인의 시도 한 편 있답니다.

훗날 보내주셨던 시들을 차곡차곡 모아 이야기를 덧붙여 책으로 만든 뒤 선생님께 선물로 드려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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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6-0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에 시를 잘 읽지 않는 편인데, 하나의책장님 서재에서 좋은 시를 읽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하나의책장님, 오늘부터 6월 시작입니다.
좋은 일들 가득한 한 달 되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