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신세계 메타버스를 선점하라 - 앞으로 인류가 살아갈 가상 세계를 위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
자오궈둥.이환환.쉬위엔중 지음, 정주은 옮김, 김정이 감수 / 미디어숲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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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한 번쯤은 메타버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엄청난 화제가 된 메타버스인데,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시작된 것은 1992년이다.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쉬」는 현실세계를 떠나 온라인 속의 평행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이 두 세계에 대해 느낀 바와 깨달은 바를 묘사한 소설로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처음 제기하였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지금, 메타버스가 엄청난 충격파를 줄 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저자, 자오궈둥은 중관춘 빅데이터산업연맹 사무총장으로 국가발전 개발위원회 디지털 경제 신인프라 프로젝트팀 리더, 중국 인민대학교 디지털 경제 및 디지털전환연구센터 공동주임, 중국 컴퓨터학회 빅데이터 전문가위원회 위원, 민간 싱크탱크인 판구츠쿠의 발기인이자 학술위원을 맡고 있다.

저자, 이환환은 이구텐샤 대표이사 겸 화젠 사모펀드 CEO이다. 선완훙웬 증권연구소의 임원 및 궈진 증권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중국 증권업계 과학기술 분석에서 손꼽히는 인물로 중국 금융기술 분야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바 있다.

저자, 쉬위엔중은 다산셩 그룹 대표이사이자 ZHIS-MAGS 창업 파트너로 중국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플랫폼 정허다오의 부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중국 청년기업가클럽 및 글로벌 인공지능 블록체인 30인 포럼의 발기인이다.




Ⅰ 다차원 가상 세계, 메타버스가 온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볼 때마다 '아, 나도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하고 부러워하며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상상을 하곤 했다.

<아바타>에서 하늘을 나는 새 '이크란'을 부리며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장면을 본 관객들은 아마 '이게 바로 인생이지, 한없이 자유로운 인생!'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메타버스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여가와 일상생활 및 업무를 영위하는 가상세계를 우리는 메타버스라고 부른다.

가상 상품의 생산부터 소비까지 플랫폼 안에서 이루어지는 순환적 산업 체인을 갖춰 가상 상품이 주거래 대상이 되는 독자적인 경제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기본 가치관은 이렇다. 모든 이용자가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고, 함께 관리하는 것이다.

현재 전문가들은 15년 뒤에 인터넷이 일대 변혁을 겪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즉, 전혀 다른 인터넷 시대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메타버스는 현실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어 전통 문화와 융합하는 과정에서 인류 문명이 재창조될 수도 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한때 남동생이 하는 스타크래프트에 맛들려서 잠깐 한 것이 전부였으니깐.

혹시 엔더 드래곤이 무엇인지 아는가? 크리퍼는?

모두 마인크래프트에 나오는 캐릭터들이다.

몰랐어도 한 번쯤은 나처럼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들어는 봤지, 어떤 게임인지는 잘 모른다.

마인크래프트는 게임 속 캐릭터들이 게임에서 생존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플레이어가 방심하는 틈을 타 공격을 시도하는 게임으로, 특이하다면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물체와 생물은 네모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태양까지도!

플레이어는 이 블록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며 플레이어들이 모여 이벤트를 열 수도 있다.

간결하기보다는 복잡해보이는데도 다들 이 게임에 열광한다고 한다.


게임은 단순히 게임이 아닌 경험이다?

로블록스는 설립 17년만에 지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었다.

여기는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을 제작할 수 있는 툴까지 제공하며 활발한 소셜 활동까지 지원하고 있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자체적인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게 되었고 로블록스는 독립적이고 폐순환적인 경제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로블록스 내 콘텐츠 대부분은 아마추어 게임개발자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게임을 하다가 플레이어들이 다양한 요구를 하면 또 그에 맞춰 크리에이터들이 신속하게 업그레이드를 시킨다.

이렇듯 끈힝멍ㅄ이 구축되고 변화하고 확장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블록스 경제 시스템의 방식에 대해 살짝 살펴보자.

이용자는 로벅스를 구매해 소비하고 개발자와 크리에이터는 게임을 만들어 로벅스를 획득한다.

여기서 로벅스는 게임에서 다시 사용할 수도 있고 재투자를 하거나 현실 세계의 통화로도 바꿀 수 있다.

이용자가 의상, 액세서리 등을 구입할 때 지불하는 로벅스는 그 아이템의 개발자에게 주어지고 이 과정에서 로블록스는 소정의 수수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실제 통계를 보니 2020년 한 해에만 120만 명 이상의 개발자가 로벅스를 벌었고 이 중에서 1250명 이상의 개발자가 1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획득했다고 한다.

1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을 올린 개발자도 3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다만 로벅스로 의상 등을 구매한 후에야 수입을 확인할 수 있어 회사가 로벅스를 판매하는 것돠 매출을 확인하는 데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로블록스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순이익을 실현하진 못했다.

이는 플랫폼과 커뮤니티 정비를 위한 투자, 즉 크리에이터와 개발자에 대한 보상에서 비롯된 손실이다.

비용 구조에서는 이미 플라이휠 효과를 내고 있으니 더 많은 개발자가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면 결국 플랫폼은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로블록스에 대한 설명이 꽤 길었지만 이유가 있다.

바로 로블록스가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자사의 증권 신고서에 써넣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리를 메타버스의 범주 안에 넣는다. 이는 가상 우주 속에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3차원 가상 공간을 묘사하는 용어다."

메타버스는 매번 향상되는 성능의 컴퓨터 설비, 클라우드 컴퓨팅,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이 출현하면서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로블록스는 이미 초기 형태를 갖춘 셈이다.

또한 로블록스는 Identity(신분), Friends(친구), Immersive(몰입), Low Friction(저마찰), Variery(다양성), Anywhere(어디서나), Economy(경제), Civility(문명) 등 메타버스로 향하는 8가지 핵심 특정을 밝혔다.


경험의 다양성 측면에서 가상 세계는 현실의 물질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즉, 메타버스의 특성 중 하나는 물질세계를 초월한 경험이 진실하다는 것이다.




Ⅱ 메타버스 경제학


'마음이 있으면 꿈도 있는 법, 세상에는 아직 진실한 사랑이 있어. 성공과 실패로 자신을 판단하다니, 인생 꿋꿋하게 살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이게 바로 메타버스다.


전통 경제학은 실물 상품을 다루고 메타버스 경제학은 가상 상품을 다룬다.

디지털 경제는 실물 상품의 디지털화 과정을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메타버스 경제학은 디지털 경제의 유기적 구성 성분으로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메타버스 경제의 4대 요소는 디지털 창조, 디지털 자산, 디지털 시장, 디지털 화폐다. 메타버스 경제는 계획과 시장의 통일, 생산과 소비의 통일, 규제와 자유의 통일, 행위와 신용의 통일을 실현한다.


영화 「아바타」에서 인간들은 아름다운 판도라 행성을 차지하려고 한다.

판도라 행성에는 거대한 체구의 나비족을 길러내고 있었다.

인류 발전 단계에 따라 분류하면, 나비족은 말그대로 원시시대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중요한 것은, 판도라 행성에서 나비족은 사냥과 채집만으로도 '안락하고 풍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전통 경제학의 의미는 이렇다.

일상생활에서의 수요와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 화폐 그리고 이를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인 재산권, 법률 등과 같은 경제 질서를 의미한다.

디지털 기술을 빌려 만든 제품을 우리는 디지털 제품이라 일컬으며, 디지털 제품의 창조, 교환, 소비 등 디지털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경제 활동을 메타버스 경제라 부른다.

즉, 메타버스 경제의 규칙을 연구하는 학문이 메타버스 경제학이다.

메타버스 경제학은 논할 때는 전통 경제학의 제약 조건은 무시해도 된다.

메타버스 내 사람과 제품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쳐 특정 관념을 만들었고 이것이 현실 세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여 더 나아가 실제 사람들의 행동까지 바꾸는 결과를 낳았으니, 결국 메타버스 경제학도 더 큰 사회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Ⅲ 메타버스의 초대륙을 선점하라


대규모 디지털 시장을 창설해 아름답고 환상적인 메타버스 세계로 진입하려면 단순하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창조 툴을 마련해 사람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줘야 한다.

통일된 공동 플랫폼을 마련해, 한 번 창조되면 범우주적으로 통용되게 해야 한다.

이렇게 생산된 디지털 제품을 실제 가치를 지닌 디지털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메타버스의 번영은 무엇보다 디지털 기반시설 구축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인해 유럽의 세력 확장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듯이 메타버스 시대에는 새로운 초대륙이 탄생할 것이다.

메타버스에서의 초대륙은 디지털 창조, 디지털 자산, 디지털 거래, 디지털 소비 등 기본 요소를 제공함 플랫폼을 말한다.

예로서, 게임에서는 로블록스 플랫폼을 초대륙으로 꼽을 수 있겠다.


초대륙은 메타버스의 기반시설로 물리층, 소프트웨어층, 데이터층, 규칙층, 애플리케이션층을 포괄하는데, 이는 서로 영향을 미치고 발전을 촉진하며 함께 진화하게 된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렇다.

메타버스에서 한발 물러나, 전통 산업의 업그레이드와 디지털 전환을 살펴보면 모두 자체적으로 초대륙을 건설해야 하며 산업의 측면에서 기업을 생각해야 한다.



2021년 3월 10일, 샌드박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가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증권신고서에 써넣었었는데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성공적으로 상장된 것이다.

상장 첫날부터 시가총액 400억 달러를 돌파하여 그야말로 과학기술계와 자본시장을 뒤흔들게 된다.


사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00년도 아니고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우리의 생각을 담는 것은 2차원 형실이었다.

지금은? 3차원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이 모든 공간이 3차원이다.

문자메시지와 통화만 가능했던 휴대폰을 시작으로 지금은 휴대폰으로 신용카드 결제까지 할 수 있으니 웬만한 모든 것은 다 할 수 있다.

가짜를 진짜로 여길 때, 진짜는 가짜와 같아진다.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여길 때, 있는 것은 없는 것과 같아진다.

세계는 이미 융합발전의 시기로 접어들은 지 오래이다.

뛰어난 제품으로 시장을 휩쓸던 시대는 이미 지났으니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메타버스에 대한 나의 인식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콜럼버스가 말했다. 우리가 마음속에 희망의 대륙을 굳게 담고 있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폭풍우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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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오브제 -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이재경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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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시나요?

수집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모으는 무언가 혹은 상상치도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브제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품이나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한 후 작품에서 사용해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물체를 일컫는다.

즉, 사물 하나에도 사연을 가지게 된다.


어쩌면, 막연히 평범해보이는 오브제지만 번역가인 저자에게 사물 하나도 이야기로 보이는 것만 같다.

그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치 고전부터 현대를 배경으로 타임슬립하며 영화 한 편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저자, 이재경은 서강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했다.

경영컨설턴트와 출판 편집자를 거친 월급쟁이 생활을 뒤로하고, 2010년 전업 번역가가 됐다. 번역가는 생각한 만큼, 겪은 만큼, 느낀 만큼 번역한다.

자기객관화와 감정이입에 동시에 능해야 한다. 그간의 내 이력이 밑천이요, 비전공자로 산 세월이 저력이었다.

어느덧 번역이 가장 오래 몸담은 직업이 됐다. 밑천이 바닥날까봐 번역가의 참호 안팎에서 틈틈이 소소한 모험을 추구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거기서 얻은 발상과 연상을 기록한다.

산문집 『젤다』, 시집 『고양이』, 고전명언집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해』를 엮고 옮겼고, 『편견의 이유』 『쓴다면 재미있게』 『깨어난 장미 인형들』 『민주주의는 없다』 『바이 디자인』 『소고기를 위한 변론』 『가치관의 탄생』 『셜로키언』 『뮬, 마약 운반 이야기』 등 50권 넘는 책을 번역했다.




Ⅰ 소소한 모두스 오페란디


지난 시대의 실용, 장식이 되다! 【뱅커스 램프】

"특정한 분위기가 있지만 놀랍게도 어느 공간에나 어울린다.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위에 올라앉아 있어도 멋스럽고, 차가운 철제 가구 사이에서도 멋진 포인트가 된다. 어둠 속에서는 고양이 눈처럼 빛나고, 데이지 화분 옆에서는 더없이 정겹다."

초록색 유리 갓과 황동 받침대 그리고 쇠줄 스위치가 달린 탁상용 전등!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영미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으로 일명 뱅커스 램프이다.

뱅커스 램프는 영롱한 초록색 유리 갓이 포인트로 안쪽은 오팔처럼 유백색이고 바깥쪽은 에메랄드빛이라 불을 켜면 아늑하게 밀도감 있는 빛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뱅커스 램프라 불리우는 것일까? 은행보다는 법정과 도서관에 더 많이 등장하는 느낌이던데 말이다.

분명한 것은 녹색이 피로를 덜어주는 색이기에 아마 장시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애용했을 것이고 은행업 종사자를 비롯해 장시간 장부를 보며 계산하는 사람들이 녹색 바이저를 쓰고 일했다는 것이다.

초록색 갓이 달린 전등을 뱅커스 램프라고 부르게 된 데에는 이렇게 시력 보호용 바이저라는 꽤 실용적인 연결고리가 있다. 아니, 있다고 추정한다.



참을 수 없는 수집의 가벼움! 【페이퍼백】


책을 정리했다. 눈 딱 같고 정말 많이 버렸다. …… 20대부터 가방에 늘 한 권씩 넣고 다니며 출퇴근길에, 카페에서 누구 기다릴 때, 짬짬이 버릇처럼 읽던 작은 책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인 텍스트와 '먹고사니즘'과 상관없는 내용은 뇌의 정보처리 프로세스가 평소 닿지 않던 구석들을 은밀하게 자극하는 쾌감을 주었다.


페이퍼백은 대중적 수요가 있는 책을 값싼 종이로 다시 찍어낸 보급판 종이커버 책을 말한다. 즉, 하드커버, 페이퍼백 두 가지로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양장본 아니면 반양장본 식이라 외국과는 조금 다르다.

나 또한 외서를 구입할 때 소장가치가 있는 것은 하드커버로 구매하고 단순히 읽기만 할 책들은 페이퍼백으로 구매한다.


나는 페이퍼백 책들을 한참 버리다가 문득 미련이 생겼다. 그래서 마지막 몇 권은 충동적으로 표지를 뜯어내고 버렸다. 표지만 남겨서 뭐할 건데? 나중에 메모장 만들 때 표지로 쓰자. 아니면 북마크로 활용? 아니면 카드 대용으로? 껍데기의 용도 변경. 껍데기의 재해석.


저자의 말처럼 참 동감하는 것이 사람의 수집욕이란 참 묘한데서 황당한 핑계로 발동한다.

사실 나도 이렇게 책을 수집할 줄은 몰랐다. 지금은 북카페를 차릴 정도의 책을 가지고 있으니 10년, 20년 후에는 도서관을 세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

책장으로 데려온 만큼 선물하고 버리고 팔고 있는데도 금세 채워지는 건, 내 책장에 꼬마 마법사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페이퍼백들의 표지만 남겨둔 것도 한때 읽은 것에 대한 일종의 목록화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치의 고백(의지)도 선혐의 발현(운명)도 없었다. 그저 충동적 미련이 남긴 경험의 조각들이었다.


책을 읽고 수집하기도 하지만 책에 있어서 꼭 수집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책을 찍은 사진이다.

사람도 프로필이나 증명사진을 찍듯이, 나 또한 새롭게 들어오는 책들의 사진을 꼭 남겨준다.

예전에는 책표지를 인쇄하여 독후감을 쓴 후에 붙여넣는 식으로 글쓰기 노트를 채워갔었는데 나의 실수로 인해 글쓰기 노트 절반 이상이 쓰레기통 신세가 되어 그 때 이후로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남기다 보면, 쌓여가는 기록물이 되고 이는 추억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나'를 표현하기도 하니깐.



Ⅱ 일상의 궤도 밖에서


지구 서식자의 행복! 【에스프레소】

1996년 7월, 나는 브장송을 떠나며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켰다. 프랑스에서는 그냥 "커피 주세요." 하면 우리가 아는 에스프레소가 나온다. 커피가 곧 에스프레소다.


우리나라에서 밥을 깨작거리는 것만큼 프랑스에서는 커피 한 잔을 오랫동안 홀짝 거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에스프레소와 에스프레소 음료, 그 중 카푸치노를 수없이 마셨다는 저자는 특히나 20대의 어느 여름 브장송 기차역에서 3.8프랑 내고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플랫폼을 바라보며 선 채로 마셨던 그 에스프레소가 최고였다고 찬사한다.

그 때만 해도 번역가가 되어 처음 번역하는 책이 커피의 역사에 관한 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니 인상깊었던 첫 경험은 평생 가는 것 같다.


에스프레소는 원두를 곱게 갈아 다져 넣고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빠르게 추출하는 커피로 열대 원시림의 축축한 바닥에서 자라던 작은 나무가 커피 전용 추출 기계의 발명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16세기 말, 커피콩이 유럽 대륙에 처음 상륙했지만 커피머신은 파리 만국박람회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이후 이탈리아 장인들의 손을 거치며 발전되었다고 한다.

espresso는 이탈리아어로 '특급'을 의미하는데, 십여 초만에 커피가 완성되는 추출 속도를 반영한 이름이다.

또한 '특별히'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주문 순서대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한 잔씩 뽑는 것이니 이 의미도 들어맞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에스프레소는 지구 서식자의 행복이라고.

삶의 애착을 일으키고 무위에 짜릿함을 주고 집중의 고통을 덜어주는 각성의 영약이라고.



도시 산책자의 자의식! 【트래블러 태그】

트래블러 태그는 여행자의 신분을 부여함으로써 능동적 자기 보고라 할 수 있다.

초현실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여행자의 신분을 제대로 누린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소설가 스콧&젤다 피츠제럴드 부부이다.

집 없이 유럽과 미국의 호텔들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하는데, 젤다는 호텔을 "세상사에 포위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렇다. 여행자의 신분이 되면 생활에서 분리되어 관찰자의 자의식을 얻게 된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질수록 여행이 더 간절해진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참 좋을 수밖에 없다.



Ⅲ 욕망의 부득이함


시간을 밀봉하다! 【차통】

땅이 넓고 생산물이 다양해 자국 생산만으로도 충분했던 중국은 아쉬울 게 없었다.

17세기 중반, 중국 차는 포르투갈에서 시집온 왕비를 통해 영국 왕실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 이후로 차 문화가 왕실에서 귀족층으로 퍼졌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중산층, 서민층에게까지 퍼지면서 차 수입량이 크게 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차' 문화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중국이 아닌 영국부터 떠올리게 된다.

중국과 맞교역할 수 있는 아이템이 없었던 영국은 그 금액을 은으로 지불하면서 심한 국부 유출을 겪었는데 이를 뒤집기 위해 수를 쓰게 된다.

바로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밀수로 유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영국의 차 열풍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편에 중독되었고 이를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청나라의 선종이 아편 반입 금지령을 내리게 되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를 영국이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빅토리아 왕은 곧장 전쟁을 일으켰고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반식민지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전쟁이 나도 티타임은 꼭 해야 할 만큼 영국인의 차 사랑은 매우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저자는 이 차보다 티캐디로 불리는 차통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사치품이었던 차는 주인이 차통 뚜껑에 자물쇠를 달아두고 안주인이 직접 보관하면서 차를 냈다고 알려져있다.

그래서 부엌이 아닌 응접실에 어울려야 했기에 차통은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저자는 차는 꼭 향수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원래의 용도를 다한 후에도 녹을 훈장처럼 달고 추억과 앞날을 모아두는 용도로 쓰이니 담아둘 수 없는 것들을 담아두려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꽤 성공한 케이스라고.


대학교 때, 예쁜 카페에 가서 먹었던 홍차가 나의 첫 홍차라 할 수 있겠다.

밀크티는 먹어봤지만 순수하게 우린 홍차를 처음 마셨을 때의 느낌은 딱 이랬다.

'이게 무슨 맛이지?'

절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면서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커피만큼이나 차를 좋아하고 차에 대해 이해도가 높았던 언니에게 홍차를 배웠고 차츰 그 맛과 향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 때, 한창 틴케이스도 모으면서 커피보단 차를 많이 마셨었었다.

특히 버찌 그림이 있는 카렐 티를 참 많이 마셨는데, 마지막으로 언제 마셨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4-5년 전에 시즌티를 직구해 마셨던 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차통은 브랜드별로 특색있게 예쁘다보니 모으는 재미가 있긴 하다.

집에 있는 차통도 꽤 오래되었는데 시즌 틴케이스는 창고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연필꽂이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저자의 마지막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차통은 원래의 용도를 다한 후에도 녹을 훈장처럼 달고 추억과 앞날을 모아두는 용도로 쓰인다. 담아둘 수 없는 것들을 담아두려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차통은 꽤 성공한 케이스다.




'검색'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을 꼽자면, 번역가인 저자를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직업적인 이유때문에도 검색하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이해하고 터득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사물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그녀는 사물이 지닌 물성을 넘어 감성을 소유하기까지에 이르게 된다.

갖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수집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시나요?

수집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모으는 무언가 혹은 상상치도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브제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품이나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한 후 작품에서 사용해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물체를 일컫는다.

즉, 사물 하나에도 사연을 가지게 된다.


“매일 언어의 국경에서 텍스트가 건널 다리를 짓고 그림자처럼 참호 속에 숨습니다.”

사물 뒤에는 문화적 맥락이 쌓여 있을 때가 많다. 사물에 붙은 이름과 그것이 일으키는 심상도 그 맥락들과 무관하지 않다.

…… 우리가 읽는 텍스트는 거기 등장하는 사물들 뒤의 사연들까지 모두 합쳐서 완성된다.


엄마도, 동생들도 내 방에만 오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신기하다는 것이다.

뭐 하나만 톡 건들이면 보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볼거리가 많아 이것저것 헤쳐보면서 구경하고 싶다는 것이다.

외할머니께서 그리고 엄마가 물려준 오브제도 물려받아 잘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희한한 것도 참 많다.

이 외에도 물건으로 보관하기 힘든 것들은 꼭 사진으로 남겨 보관한다.

그 사진이 곧 그 물건이리라.

앨범 속 사진 하나하나를 짚어내면 그것과 나의 추억을 저절로 읊게 되는 것이다.

수집가는 꼭 온전하게 사물의 모양을 유지시키며 보관할 필요는 없다.

저자의 말처럼 단순히 사물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감성까지 수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물의 뒤를 캐다 보면 고전부터 대중문화까지 인문의 다양한 분야가 두루 소환된다. 사물을 매개로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지식과 감상이 얽힌다. 범주화가 없는 대신 교차점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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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다, 월마다 기록하는 책탑


『우리는 이미 여행자다』 | 섬북동, 이유정, 서미현, 김경영, 김주은, 박재포, 이승은, 차매옥

여행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일상 여행자들의 이야기로, 일상에서 여행의 기분을 누리고 여행의 감각을 유지하고 다시 돌아올 여행을 준비하는 일상 여행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드라마 작가, 카피라이터, 그래픽 디자이너, 번역가, 브랜드 마케터, 영화 마케터 등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7명의 필자가 일상이 여행이 되는 노하우를 털어놓았다.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

"故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서원의 기록"

14년 전, <날게 하소서>란 제목의 시에 선생님의 구술 해설을 입혀 서문을 완성한 책이다.



『설레는 오브제』 | 이재경

한 전업 번역가가 마음을 사로잡고 설레게 한 사물들을 수집한 기록으로 저자는 사물의 물성 대신 감성을 수집한다.

나 또한 수집품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고 무엇보다 사물 그 이상으로 생각하기에 매우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디지털 신세계 메타버스를 선점하라』 | 자오궈둥, 이환환, 쉬위엔중

메타버스는 단순한 경제가 아니라 사회이며 더욱이 M세대가 만든 포스트모던 사회로 불리고 있다.

메타버스에는 경제 현상은 물론이고 문화 현상과 사회 현상도 있다.

곧 도래할 메타버스 시대를 준비하고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선 그 흐름을 꼭 알아야만 한다.



『열 평짜리 공간』 | 이창민

대한민국 청년이자 작가로서 대한민국 주거와 공간에 대한 관점과 혁신을 표현한 책으로 세계 최초 주거보험 비롯한 주거 공간에 대한 힌트와 아이디어를 담아내었으며, 어르신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모은 폐지로 재탄생된 나눔페이퍼 캠페인 책이다.



『고전 신화 백과』 | 아네트 기제케

역사서, 백과사전… 이런 단어들은 언제 봐도 설렐 정도로 좋다.

[신화 + 백과사전] 조합이라니! 당장에라도 책장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인류와 수천 년을 함께 해온 고전 신화가 아직도 헷갈리는 당신을 위한 맞춤형 백과사전"

세이렌의 노래, 아킬레우스의 발목, 에로스의 화살과 같은 표현들은 모두 신화에서 기원되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체계적으로 정리된 『고전 신화 백과』, 첫 장 펼치자마자 순식간에 마지막 장으로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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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22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하나님 책탑은 분야가 엄청 다양하네요~! 전 한권도 읽은 책이 없네요 😅

하나의책장 2022-06-15 23:30   좋아요 0 | URL
잔뜩 사다놓은 책들 중에서 당장 읽고 싶은 책들로 쌓아놓고선 일주일동안 후루룩 읽고 있어요! 맥락없이 다양한 느낌이죠?📚🤭 히힛 저도 새파랑님이 읽은 책들 중에서 안 읽은 책들이 많아요! 그래서 매번 새파랑님 읽은 책들 중에서 읽고싶은 책들을 열심히 장바구니에 담고 있지요❣️
 



어쩌다보니 보름이 훌쩍 지나버렸다.

괜찮다가도 아프면 이렇게 잠수아닌 잠수를 탈 수밖에 없는, 나의 상황.

보름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만 한 보따리다.




0.

이제야 얘기할 수 있지만,

작년 겨울에 하마터면 코로나에 걸려 죽을 뻔 했었다.

몸이 좋질 않아 백신을 맞지 못했었고 마침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으니 온종일 집에만 콕 박혀있었다.

평소 온갖 노력은 다 하고 있었기에 코로나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었다.

가족들 또한 나때문에 특히나 조심했었는데, 동생이 직장에서 걸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행히 동생은 무증상이었지만 나는 고열, 폐렴까지 다 앓고 말았다.

크게 아프면 안색이 파리해지거나 새하얗게 질리곤 하는데, 안색이 새까맣게 변하는 건 처음이었다.

영상통화로 그런 내 모습을 본 엄마는 끝내 울었고, 나도 울었었다.

심상치 않게 아팠었기에 부모님과 동생들 그리고 외할머니만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전화를 받질 않으니 엄마에게 우연히 전화했다가 알게 되었는데 손녀 걱정에 보름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셨다고 한다.


결국 생일도 못 보냈었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나면, 기억에 남는 생일을 보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저 바램이었다.

당시 격리 기간은 2주였지만 보름 이상을 격리된 채 시간을 보냈었고 한 달은 목소리가 아예 나오질 않았었다.

한 달이 훌쩍 지나고서야 병원에 다니면서 폐 사진도 두어번 찍고 링거도 맞고, 그렇게 또 두어달을 보내게 되었다.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실제, 경험했던 일이다.

종일 누워 있는데도 기억이 끊길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던 어느 날 꿈을 꿨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꿈에 나왔었는데 아직도 그 꿈이 선명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꿈에 나와주셨으니 이번이 두번째였다.

꿈의 마지막 부분을 살짝 얘기하자면,

(지금도 희한한데 외할아버지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휴대폰도 아닌 수화기를 들어 외할아버지 번호를 꾹 꾹 눌러 전화를 걸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전화를 안 받으셨다.

나 외에 5-6명 정도의 사람들도 휴대폰이 아닌 수화기를 들어 데리러 오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차를 타고 하나 둘씩 떠나고 있었는데, 의자만 덩그러니 있는 이 공간에 나만 혼자 남을 것 같아 초조해졌었다.

외할아버지 번호로 계속 전화를 걸었는데도 결국 전화를 받지 않으셨고 결국 모두 떠나버린 그 공간에 나홀로 의자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고개를 들어보니 길 건너편에 언제 오셨는지 외할아버지가 서 계셨었다.

나는 대뜸 "할아부지, 왜 전화를 안 받으셨어요?", "할아부지, 저 여기서 하루종일 기다렸어요.", "빨리 오셔서 저도 데려가요."라며 툴툴거렸는데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한껏 웃어주시더니 가라는 손짓을 보냈었다.

그리고선 그렇게 잠에서 깼는데 두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었다.

참 희한한 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희한하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가 어린 나이에 외할아버지께서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었기에 외할아버지와의 기억이 전혀 없다.

유일하게 딱 한 장면만 기억난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외할아버지께 서툴게 세배한 후에 외할아버지 무릎에 풀썩 앉아 고개를 들어보니 외할아버지께서 한껏 웃어주신 기억, 그 기억만이 유일하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기에 가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엄마는 들을 때마다 신기하다고 하신다.

그 때의 내 나이가 세 살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시 안방의 구조는 물론 분위기와 향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가끔씩 엄마랑 외할머니가 '사진으로 남겨줄 걸'이란 말을 종종 하신다.

외할아버지께서 나를 정말 예뻐해 주셨었는데 당시 삼촌들은 결혼하지 않았었고 유일한 손녀가 나 뿐이었으니 더 아껴주셨던 게 아닐까 싶다.

엄마에게도, 외할머니께도 꿈 얘기를 했었는데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해주셨다.

"그렇게 생전에 손녀 예뻐하더니 지켜주고 싶었나보다."


심하게 앓았으니 후유증이라도 없었으면 좋겠거니 했지만, 심하게 앓으면 후유증도 심하게 온다고 한다.

병원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영양제까지 열심히 챙겨먹고 있으니 올해 정말 건강에 힘써야 할 것 같다.

지금은 경증에 가깝다고 하지만 워낙 심하게 앓아서인지 지금도 나는 예민하게 받아들여져 긴 외출은 조금 무섭게 느껴진다.

4월 하순 쯤, 거의 반 년만에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셔봤으니;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 곧장 미각과 후각을 잃었고 5개월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 천천히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완벽하게 돌아오진 못했고 후각신경에 이상이 생겨 분명 집 안에 있는데도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나 숨을 못 쉴 때도 있다.

특히 어이없을 정도로 금세 피로감이 심해져 뭘 할 수가 없다.

병원 한 번 갔다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곧장 이불 속으로 뛰어드니 나가는 것도 자신이 없다.

스승의 날, 선생님과 만나려고 했지만 반나절 이상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다음으로 기약하고 선물만 따로 보내드리고선 통화로 아쉬움을 달랬다.

요즘 내과, 안과, 피부과, 한의원 그리고 대학병원까지 나의 일주일, 나의 한달은 병원 가는 날로 가득하다.


올해 액땜 제대로 치뤘다고 웃어 넘기... 기에는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며 남은 반년은 웃음 가득하게 보내보자고 주문을 걸어본다.




1.

그간 주문했던 책들도 한가득이고, 받았던 책들도 한가득이다.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해 올리지 못한 포스팅이 이렇게 또 쌓여만 간다.

일단은 마무리만 하면 바로 올릴 수 있는 리뷰만 9개니, 얼른 마무리짓고선 하루에 1-2개씩 매일 매일 올리면 될 것 같다.

괜찮다가도 갑자기 심하게 아프면 일주일이든, 보름이든 잠수아닌 잠수를 탈 수밖에 없지만 최선을 다해 올려봐야겠다.

이렇게 나는 또 마감에 늦어지게 되고 동시에 마음의 짐 또한 더 얹혀지게 된다.




2.

가운데 책상을 기준으로 오른쪽 벽 한 면이 책장으로 쭉 둘러져 있고 바로 건너편에는 세 개의 칼림바, 피아노, 가야금, 하프 그리고 기타가 있다.


건반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려 연주해보는 피아노, 명주실 위에 손을 얹어 한 줄, 한 줄씩 뜯어보는 가야금……에 이어 새롭게 배우고 있는 악기가 있다.

바로, 바로 하프와 기타이다.

물론 독학으로 나름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기타는 나중에 원데이클래스 한 번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쉬엄쉬엄 하다보니 진도가 전혀 나가질 않지만 악보보고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까지의 실력이 목표이다.


아! 가볍게 악기를 하나 배우고 싶다면 칼림바를 추천하고 싶다.

요령만 터득하면 칼림바는 전혀 어렵지 않다고 자부할 수 있다.

선물받은 칼림바를 받자마자 코드를 눈에 바로 익히니 연습없이도 처음부터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었는데 코드만 볼 줄 안다면 쉽게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새로운 악기를 배울 때면,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는 정도를 목표로 잡고 연습한다.

그래야 한동안 악기를 다루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 잡는다 해도 손이 저절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예 잊어버리면 너무 아깝기에, 아쉽기에.




3.

마당 한 켠에 옥외마루를 "하나의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실내에서 키우던 화분들을 밖으로 꺼낸 것밖에 없어 아직 꾸몄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키우는 식물과 다육이들이 꽤 많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고추랑 방울토마토도 심었는데 벌써 키가 많이 자랐다.

모종을 사면서 조그마한 식물도 세 개 데려왔는데 분갈이하기도 전에 며칠 지나고나니 이렇게 꽃이 활짝 폈다.

예쁘게 꾸미는 게 마무리되는 그 때, 살포시 완성된 공간을 올려보도록 하겠다.




따스했던 계절 내내 피었던 꽃이 점점 져가고 잎마저 다 떨어지면 그 때 겨울이 온다.

잎이 지고 앙상한 나뭇대만 덩그러니 남았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물을 주며 사랑을 속삭였다.

그렇게 봄이 다가오니 한껏 반기듯이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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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9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의책장 2022-05-20 00:09   좋아요 1 | URL
집에서도 방역 철저히 했었는데.. 결국 걸리게 되더라고요ㅠ 오미크론도 아니고 델타에 걸려서 더 호되게 아팠었나봐요. 최고조로 아팠을 때, 실제로 파노라마처럼 막 지나가는데 뭔가 억울함이 앞서더라고요😭 그 때 두 주먹 꼭 쥐며 낫자고 마음먹었던 게 컸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 편하게 말할 수 있긴한데 아직도 제게 코로나는 마냥 무섭게만 느껴져요😱

mini74 2022-05-20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고생하셨어요. 세상에 ㅠㅠ 외할아버님의 사랑이 뭉클합니다. 하나의 책장님 얼릉 건강해지시길 기원합니다.

하나의책장 2022-06-15 23:14   좋아요 1 | URL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어요😢
 
골목길 역사산책 : 한국사편 골목길 역사산책
최석호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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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나를 찾아 역사를 걷는다.

한반도를 걷는다.

한국인의 혼을 걷는다.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님, K-POP, BTS 그리고 오징어 게임 - 전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을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전세계인들에게 문화적으로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각인시켰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미국에서 잠깐 아카데미에 다닐 때 선생님께 일대일 수업을 받을 때였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들어봤어요. 다만 김치 정도밖에 모른다는 게 참 아쉬워요.'

'대한민국에도 유명한 명소가 있나요?'


만약 이런 질문을 실제로 받는다면 어디를 소개시켜 줄 것인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적인 명소도 좋지만, 역사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명소 몇 군데는 제대로 알아둬야 하지 않을까?


저자, 최석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레저관광사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노팅엄 트렌트 대학교에서 유산관광을 전공하고 문화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과 서울신학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관광세계화·문명화과정·엔터테인먼트산업 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UN 여가 관련 자문을 맡고 있는 World Leisure Organization의 학술지『World Leisure Journal』국제편집자문위원, 중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World Hotel Association 부회장, 한국문화사회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장을 역임했다.




Ⅰ 남촌 대한민국길 산책


계획적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한 걸음씩 발로 밟아서 다진 동네다. 그래서 한양은 남촌 사람 동네고 조선은 남촌이다. 외세가 쳐들어와서 나라를 빼앗는다면 되찾을 때까지 다툴 것이다. 남촌 사람들은 독립 전쟁 선봉에 선다. 되찾은 나라를 독재로 얼룩지게 한다면 민주주의를 회복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 남촌길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길이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제국주의 도시체제로 변화하게 된다.

일제는 구리를 황금으로 바꾸고 동을 정으로 바꿔 중심으로 삼아 수도를 뜻하는 글자 경과 마찬가지로 중심에서 여섯 방향으로 길을 낸다.

남산 예장자락에 통감부를 짓고 남산 회현 자락에 조선신궁을 짓는다.

'신성하게 높이 솟은 울' 서울은 빼앗기고 이내 경성이 되어, 남촌은 식민통치의 수도가 되고 만다.

이후 광복을 되찾고도 1년이 지난 뒤에야 경성은 다시 서울이 된다.

덧붙이자면, 당시 서울시를 우남시로 하자는 사람들의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우남시? 뜬금없이 왜 우남시가 나온 것일까? 바로 우남은 이승만의 호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서울역에는 역사가 두 개나 있다.

서울종합민자역사는 KTX개통과 함께 만들어졌고 구 서울역사는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1925년에 지어졌다.

이때, 일제는 일본 시모노세키와 조선 부산을 부관페리로 연결하고 부산에서 만주까지 철도를 부설한다.


서울역의 생김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일본 중앙역인 동경역으로, 경성역은 조선과 만주의 중앙역이다.

동경역사는 암스테르담 중앙역사를 본떠 만들었는데 서울역사는 동경역사를 본뜨게 되었다.

르네상스풍 절충주의 양식으로 근대와 전통이 섞어져 있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철골과 벽돌 쌓은 것은 근대적이고 돔과 첨탑은 고전적이다.

즉, 서구적 기준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서울역 앞에서 버스를 타거나 서울역에서 열차를 탔기에 딱히 둘러볼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었다.

서울역에는 동상 하나가 있다고 한다.

바로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네 남매 중 남매로 태어나 친형에게 한학과 한의학을 배웠다고 한다.

애국운동에 관여하면서 신변에 문제가 생기자 송원 중심가 남문거리에서 잡화상을 운영했다고 한다.

다른 상인들에게 돈을 꿔 주기도 하고 예컨대 이동휘 선생이 함경도를 순회할 때면 그의 집에서 종종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경술국치를 당하자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다고 전해진다.

북간도 근방으로 이주하여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교회를 세웠고 이후 북만주로 이주하여 동포마을인 신흥동을 개척하여 러시아에 있는 우리 독립운동 단체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광동학교를 세우고 직접 교장을 맡아 조선인 자제를 교육하는데 전념했다고 한다.

이후 일제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일제는 오히려 강우규 의사의 사형을 집행한 뒤 불어 닥칠 후폭풍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판사마저 처음에는 피고라고 부르다 선생님 또는 영감님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니깐.

이후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짤막한 시를 남기고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한다.




Ⅱ 운주사 고려길 산책


운주사 하늘에 별은 빛나고 그 아래 땅은 아름답다. 누구든 운주사에 들어가면 고려 신선이 된다. 고려 하늘을 날아 빛나는 별과 아름다운 땅을 내려다보며 노닌다. 서울에 북악 스카이웨이(하늘길)가 있다. 화순에는 고려 스카이웨이가 있다.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려길을 걷는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리면 운주사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운주사는 아마 생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불교와 아무 관련 없는 이름이다.

운주사 앞 주차장에 내려 경내로 들어서면 일주문이 사람을 맞이한다. 희한한 것은 불이문도, 사천왕문도 없다고 한다.

본래 사찰이라면 일주문 뒤에 불이문이나 사천왕문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애초에 운주사는 불교 사원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 중앙정권과 지방토호 간에 정치적 이해를 공유하면서 빚어낸 도관(도교사원) 중 하나이다.


"운주사 : 천불산에 있다. 사찰의 오른쪽 왼쪽 산등성이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천 개가 있다. 또한 석실에 석불 두 개가 서로 등지고 앉았다." _《신증동국여지승람》


"운주사 : 천불산 서쪽에 있는데 사찰이 오래전에 폐해졌다. 그 왼쪽 오른쪽 산기슭에 석불과 석탑이 크고 작은 것이 심히 많아 이를 천불천탑이라 부르며, 또한 한 석실이 있는데 그 안에 두 개의 석불이 벽을 격하여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 백성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신라 시대 때 조영한 것이라 한다. 혹은 고려 승려 혜명이 따르는 이들 수천 명으로 하여금 만들었다고 한다." _《동국여지지》




Ⅲ 강릉 조선길 산책


…… 변치 않는 것도 많다. 오죽헌·율곡기념관·선교장·경포대……. 신사임당 그림 그리던 곳이다. 율곡 선생 나신 곳이다. 허초희 시를 짓던 곳이다. 허균 젊은 시절 기억이 서린 곳이다. 효령대군 후손들이 정착한 곳이다. 강릉에서 변치 않는 것은 한결같이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모두 조선 시대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강릉에서 걷는 길은 조선길이다.


강릉은 본래 예국 땅으로 고구려는 하서량 또는 하슬라주라고 불렀다.

신라 지증왕때, 하슬라주 군주가 된 내물왕 4대손 이사부가 꾀를 내어 우산국을 합쳤다.

우산국 사람들은 쉽게 항복받기 어려울 정도로 사나워 계략으로 복속시키기 위해 나무로 가짜 사자를 많이 만들었었다고 전해진다.


강릉에서 사는 사람들은 좀상날 달과 좀생이별 사이 거리를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한다.

좀생이별이 달을 바짝 따라가면 흉년이 들고 떨어져서 따라가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었던 것이다.

(여기서 달은 밥통이고 좀생이는 밥을 얻어먹으려고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뜻한다.)

"강릉 사람이 이처럼 별자리에 밝았던 것은 하늘 자손이기 때문이리라."


'강릉'하면 역시 '오죽헌'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이 율곡은 어머니 신사임당이 오죽헌에서 용꿈을 태몽으로 꿨었다고 한다.

효심이 지극했던 율곡은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자 3년간 여묘살이를 하고선 금강산으로 들어가 승려가 된다.

이후 21살 되던 해에 율곡은 한성시에 급제하고 다음해에 정3품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인 곡산 노씨와 결혼하게 된다.

그 이후 장인을 찾았다가 예안 도산서원에 들려 퇴계를 만나게 된다.

퇴계는 율곡의 사람됨과 똑똑함에 만힝 놀랐다고 한다.

"노력하고 공부하여 날로 새로워지자"라고 당부할 정도였으니깐.

율곡은 을사삭훈을 통해 왜곡된 정치를 바로잡고 개혁을 통해 백성을 편안케 하고 동서분당을 조제보합함으로써 그 폐해를 막고 변방을 튼튼하게 지켜 오랑캐가 넘볼 수 없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서울시에서 친일매국 조각가 김경승이 만든 안중구 의사 동상을 철거했었다.

이어 서울특별시 강남구에서 설치된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국회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그리고 정읍시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 등 김경승이 만든 동상 철거 및 교체가 줄을 잇고 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강릉시에서는 친일매국노가 그린 영정을 교체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율곡 선생께서 살아계신다면 친일매국 화가에게 당신을 그리라고 하지 않았을 테니깐.




Ⅳ 경주 신라길 산책


알타이 적석목곽분으로 웅대한 역사를 말한다. 한혈마를 타고 드넓은 스텝루트를 달린다. 동아시아 바다를 장악한다.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두루 잇는다. 당나라에 신라마을을 경영한다. 페르시아 사람이 춤을 춘다. 박트리아 황금비도가 빛을 발한다. 로마와 시리아 유리로 아름답게 장식한다. 경주가 아니라 신라 왕경이다. 가장 약한 나라가 아니라 삼한일통 대업을 달성한 동아시아 최강국이다. 신라는 왕도에서 세계를 경영한다. 신라에서 우리는 세계를 걷는다. 세계로 가는 신라길!


태종무열왕인 김춘추는 곧장 왕위에 오를 생각은 없었다. 인맥을 두텁게 하여 신뢰를 쌓고 적국인 고구려로 가 친구를 사귀었다.

이후 선덕왕과 진덕왕을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후에야 왕위에 올랐으니 그 기간이 무려 43년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도 문화도 군사력도 오래 갈고 닦은 것만 같았다.

로마 유리와 페르시아 유리를 응용하여 신라 유리를 만들었으니 신라황금과 합금강철은 신라가 어떤 나라인지 신라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중국에서 난리를 피해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을 살게 해주기도 했다.

서역 사람이 원성왕 괘릉을 지켰고 아랍 사람이 왕 앞에서 나와 노래하고 춤추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세계 문화인들이 함께 했던 것이다.

신라는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했었다.

온 세상을 한 곳에 모아 놓았으니 경주는 세계 문화도시이며, 세계 문화도시 중에서도 최고여서 황금도시라 할 수 있겠다.

즉, 경주는 세계 문화인이 만든 황금도시이다.


대릉원은 신라 최대 무덤군으로 천마도를 발굴한 제155호 천마총과 남분 및 북분으로 쌍북을 이룬 제98호분 황남대총은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1973년 4월부터 12월까지 진행했던 발굴조사가 온 나라를 발칵 뒤집는다.

일제가 천마총 꼭대기에 대공초소를 설치했었는데 1971년까지 그대로 있었기에 이를 제거하고 나니 자갈층이 드러나게 된다.

신라 고분은 고구려나 백제 고분보다 도굴이 덜 됐었다.

그렇게 파고 보니 자갈층 밑으로 굳게 다진 점토층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무덤방이 나타나게 된다.

유리구슬, 큰고리귀걸이, 작은고리귀걸이, 나비모양금관꾸미개 등을 발굴하게 되면서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게 된다.

우리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국보급 부장품들이 끝도 없이 쏟아졌고 그렇게 끝인가 싶었는데, 끝이 아니었다.

세상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부장품 상자 안에서 나오게 된다.

아열대 고동 껍질로 만든 말띠 꾸미개, 대나무로 장식한 금동판 말다래, 코발트색 유리잔 및 녹색 유리잔, 청동 다리미 등과 함께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천마도 말다래와 새그림판을 발굴한 것이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것이 바로 '천마도'이다.

사실 금동판 말다래를 보존 처리하기 위해 뿌린 약품 때문에 하마터면 천마도를 못 볼 뻔했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천마도 말다래가 두 장이어서 아래쪽에 있는 말다래 천마도를 무사히 수습했던 것이다.

제128분에서 금관이 나왔으므로 금관총, 제129호분에서 봉황으로 장식한 금관이 나왔으므로 서봉총이라 하였고 천마도가 나왔으니 제155호분은 천마총이다.

천마총에서 발굴한 천마도의 시원형은 고구려 덕흥리 벽화고분 북쪽 천장 천마도이다.

천마총 천마도는 갈기와 꼬리털이 수평을 이루며 날리고 있기 때문에 무용총 천마도와 가장 비슷하다고 전해진다.




마치 내가 걷고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이렇게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는 책이 있었던가.


산책과 드라이브를 좋아해 장소 하나 딱 정해놓고 그 근방을 천천히 걸으며 눈에 담곤 한다.

코로나 터지기 전 그 해 여름날, 엄마와 함께 강릉에 갔다왔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난 해에 강릉에 다녀온 기억이 선해 엄마와 함께 시간을 맞춰 단둘이 KTX를 타고 조금 먼 산책에 나섰었다.

바다 한 번 보다가 신선한 해산물로 요기하고, 바다 한 번 보다가 커피 한 잔씩 시켜놓고……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고 또 걸었다.

하루를 꼬박 선선한 바람, 따스한 햇살 그리고 바다 내음과 함께 보냈었다.


미국에서 잠깐 아카데미에 다닐 때 선생님께 일대일 수업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내게 말하셨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들어봤어요. 다만 김치 정도밖에 모른다는 게 참 아쉬워요.'

'대한민국에도 유명한 명소가 있나요?'


만약 이런 질문을 실제로 받는다면 어디를 소개시켜 줄 것인가?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현대적인 명소도 물론 좋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명소도 절대 빠뜨려선 안 된다.


그 때, 나는 여러 장소 중 가장 처음 입을 열었던 장소가 바로 '고궁'이었다.

국어, 영어, 한국사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기에, 고궁 곳곳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며 사진도 보여줬었는데 다채로운 색감은 물론 미국에선 볼 수 없는 문화재에 선생님이 감탄하셨던 기억이 선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버릴 것 없는 내용이라 꼭 읽어봤으면 한다.

요새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고궁 나들이는 물론 강릉과 경주에도 한 번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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