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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오브제 -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이재경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4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시나요?
수집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모으는 무언가 혹은 상상치도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브제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품이나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한 후 작품에서 사용해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물체를 일컫는다.
즉, 사물 하나에도 사연을 가지게 된다.
어쩌면, 막연히 평범해보이는 오브제지만 번역가인 저자에게 사물 하나도 이야기로 보이는 것만 같다.
그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치 고전부터 현대를 배경으로 타임슬립하며 영화 한 편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저자, 이재경은 서강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했다.
경영컨설턴트와 출판 편집자를 거친 월급쟁이 생활을 뒤로하고, 2010년 전업 번역가가 됐다. 번역가는 생각한 만큼, 겪은 만큼, 느낀 만큼 번역한다.
자기객관화와 감정이입에 동시에 능해야 한다. 그간의 내 이력이 밑천이요, 비전공자로 산 세월이 저력이었다.
어느덧 번역이 가장 오래 몸담은 직업이 됐다. 밑천이 바닥날까봐 번역가의 참호 안팎에서 틈틈이 소소한 모험을 추구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거기서 얻은 발상과 연상을 기록한다.
산문집 『젤다』, 시집 『고양이』, 고전명언집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해』를 엮고 옮겼고, 『편견의 이유』 『쓴다면 재미있게』 『깨어난 장미 인형들』 『민주주의는 없다』 『바이 디자인』 『소고기를 위한 변론』 『가치관의 탄생』 『셜로키언』 『뮬, 마약 운반 이야기』 등 50권 넘는 책을 번역했다.
Ⅰ 소소한 모두스 오페란디
지난 시대의 실용, 장식이 되다! 【뱅커스 램프】
"특정한 분위기가 있지만 놀랍게도 어느 공간에나 어울린다.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위에 올라앉아 있어도 멋스럽고, 차가운 철제 가구 사이에서도 멋진 포인트가 된다. 어둠 속에서는 고양이 눈처럼 빛나고, 데이지 화분 옆에서는 더없이 정겹다."
초록색 유리 갓과 황동 받침대 그리고 쇠줄 스위치가 달린 탁상용 전등!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영미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으로 일명 뱅커스 램프이다.
뱅커스 램프는 영롱한 초록색 유리 갓이 포인트로 안쪽은 오팔처럼 유백색이고 바깥쪽은 에메랄드빛이라 불을 켜면 아늑하게 밀도감 있는 빛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뱅커스 램프라 불리우는 것일까? 은행보다는 법정과 도서관에 더 많이 등장하는 느낌이던데 말이다.
분명한 것은 녹색이 피로를 덜어주는 색이기에 아마 장시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애용했을 것이고 은행업 종사자를 비롯해 장시간 장부를 보며 계산하는 사람들이 녹색 바이저를 쓰고 일했다는 것이다.
초록색 갓이 달린 전등을 뱅커스 램프라고 부르게 된 데에는 이렇게 시력 보호용 바이저라는 꽤 실용적인 연결고리가 있다. 아니, 있다고 추정한다.
참을 수 없는 수집의 가벼움! 【페이퍼백】
책을 정리했다. 눈 딱 같고 정말 많이 버렸다. …… 20대부터 가방에 늘 한 권씩 넣고 다니며 출퇴근길에, 카페에서 누구 기다릴 때, 짬짬이 버릇처럼 읽던 작은 책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인 텍스트와 '먹고사니즘'과 상관없는 내용은 뇌의 정보처리 프로세스가 평소 닿지 않던 구석들을 은밀하게 자극하는 쾌감을 주었다.
페이퍼백은 대중적 수요가 있는 책을 값싼 종이로 다시 찍어낸 보급판 종이커버 책을 말한다. 즉, 하드커버, 페이퍼백 두 가지로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양장본 아니면 반양장본 식이라 외국과는 조금 다르다.
나 또한 외서를 구입할 때 소장가치가 있는 것은 하드커버로 구매하고 단순히 읽기만 할 책들은 페이퍼백으로 구매한다.
나는 페이퍼백 책들을 한참 버리다가 문득 미련이 생겼다. 그래서 마지막 몇 권은 충동적으로 표지를 뜯어내고 버렸다. 표지만 남겨서 뭐할 건데? 나중에 메모장 만들 때 표지로 쓰자. 아니면 북마크로 활용? 아니면 카드 대용으로? 껍데기의 용도 변경. 껍데기의 재해석.
저자의 말처럼 참 동감하는 것이 사람의 수집욕이란 참 묘한데서 황당한 핑계로 발동한다.
사실 나도 이렇게 책을 수집할 줄은 몰랐다. 지금은 북카페를 차릴 정도의 책을 가지고 있으니 10년, 20년 후에는 도서관을 세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
책장으로 데려온 만큼 선물하고 버리고 팔고 있는데도 금세 채워지는 건, 내 책장에 꼬마 마법사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페이퍼백들의 표지만 남겨둔 것도 한때 읽은 것에 대한 일종의 목록화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치의 고백(의지)도 선혐의 발현(운명)도 없었다. 그저 충동적 미련이 남긴 경험의 조각들이었다.
책을 읽고 수집하기도 하지만 책에 있어서 꼭 수집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책을 찍은 사진이다.
사람도 프로필이나 증명사진을 찍듯이, 나 또한 새롭게 들어오는 책들의 사진을 꼭 남겨준다.
예전에는 책표지를 인쇄하여 독후감을 쓴 후에 붙여넣는 식으로 글쓰기 노트를 채워갔었는데 나의 실수로 인해 글쓰기 노트 절반 이상이 쓰레기통 신세가 되어 그 때 이후로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남기다 보면, 쌓여가는 기록물이 되고 이는 추억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나'를 표현하기도 하니깐.
Ⅱ 일상의 궤도 밖에서
지구 서식자의 행복! 【에스프레소】
1996년 7월, 나는 브장송을 떠나며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켰다. 프랑스에서는 그냥 "커피 주세요." 하면 우리가 아는 에스프레소가 나온다. 커피가 곧 에스프레소다.
우리나라에서 밥을 깨작거리는 것만큼 프랑스에서는 커피 한 잔을 오랫동안 홀짝 거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에스프레소와 에스프레소 음료, 그 중 카푸치노를 수없이 마셨다는 저자는 특히나 20대의 어느 여름 브장송 기차역에서 3.8프랑 내고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플랫폼을 바라보며 선 채로 마셨던 그 에스프레소가 최고였다고 찬사한다.
그 때만 해도 번역가가 되어 처음 번역하는 책이 커피의 역사에 관한 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니 인상깊었던 첫 경험은 평생 가는 것 같다.
에스프레소는 원두를 곱게 갈아 다져 넣고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빠르게 추출하는 커피로 열대 원시림의 축축한 바닥에서 자라던 작은 나무가 커피 전용 추출 기계의 발명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16세기 말, 커피콩이 유럽 대륙에 처음 상륙했지만 커피머신은 파리 만국박람회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이후 이탈리아 장인들의 손을 거치며 발전되었다고 한다.
espresso는 이탈리아어로 '특급'을 의미하는데, 십여 초만에 커피가 완성되는 추출 속도를 반영한 이름이다.
또한 '특별히'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주문 순서대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한 잔씩 뽑는 것이니 이 의미도 들어맞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에스프레소는 지구 서식자의 행복이라고.
삶의 애착을 일으키고 무위에 짜릿함을 주고 집중의 고통을 덜어주는 각성의 영약이라고.
도시 산책자의 자의식! 【트래블러 태그】
트래블러 태그는 여행자의 신분을 부여함으로써 능동적 자기 보고라 할 수 있다.
초현실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여행자의 신분을 제대로 누린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소설가 스콧&젤다 피츠제럴드 부부이다.
집 없이 유럽과 미국의 호텔들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하는데, 젤다는 호텔을 "세상사에 포위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렇다. 여행자의 신분이 되면 생활에서 분리되어 관찰자의 자의식을 얻게 된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질수록 여행이 더 간절해진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참 좋을 수밖에 없다.
Ⅲ 욕망의 부득이함
시간을 밀봉하다! 【차통】
땅이 넓고 생산물이 다양해 자국 생산만으로도 충분했던 중국은 아쉬울 게 없었다.
17세기 중반, 중국 차는 포르투갈에서 시집온 왕비를 통해 영국 왕실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 이후로 차 문화가 왕실에서 귀족층으로 퍼졌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중산층, 서민층에게까지 퍼지면서 차 수입량이 크게 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차' 문화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중국이 아닌 영국부터 떠올리게 된다.
중국과 맞교역할 수 있는 아이템이 없었던 영국은 그 금액을 은으로 지불하면서 심한 국부 유출을 겪었는데 이를 뒤집기 위해 수를 쓰게 된다.
바로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밀수로 유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영국의 차 열풍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편에 중독되었고 이를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청나라의 선종이 아편 반입 금지령을 내리게 되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를 영국이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빅토리아 왕은 곧장 전쟁을 일으켰고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반식민지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전쟁이 나도 티타임은 꼭 해야 할 만큼 영국인의 차 사랑은 매우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저자는 이 차보다 티캐디로 불리는 차통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사치품이었던 차는 주인이 차통 뚜껑에 자물쇠를 달아두고 안주인이 직접 보관하면서 차를 냈다고 알려져있다.
그래서 부엌이 아닌 응접실에 어울려야 했기에 차통은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저자는 차는 꼭 향수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원래의 용도를 다한 후에도 녹을 훈장처럼 달고 추억과 앞날을 모아두는 용도로 쓰이니 담아둘 수 없는 것들을 담아두려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꽤 성공한 케이스라고.
대학교 때, 예쁜 카페에 가서 먹었던 홍차가 나의 첫 홍차라 할 수 있겠다.
밀크티는 먹어봤지만 순수하게 우린 홍차를 처음 마셨을 때의 느낌은 딱 이랬다.
'이게 무슨 맛이지?'
절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면서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커피만큼이나 차를 좋아하고 차에 대해 이해도가 높았던 언니에게 홍차를 배웠고 차츰 그 맛과 향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 때, 한창 틴케이스도 모으면서 커피보단 차를 많이 마셨었었다.
특히 버찌 그림이 있는 카렐 티를 참 많이 마셨는데, 마지막으로 언제 마셨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4-5년 전에 시즌티를 직구해 마셨던 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차통은 브랜드별로 특색있게 예쁘다보니 모으는 재미가 있긴 하다.
집에 있는 차통도 꽤 오래되었는데 시즌 틴케이스는 창고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연필꽂이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저자의 마지막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차통은 원래의 용도를 다한 후에도 녹을 훈장처럼 달고 추억과 앞날을 모아두는 용도로 쓰인다. 담아둘 수 없는 것들을 담아두려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차통은 꽤 성공한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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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을 꼽자면, 번역가인 저자를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직업적인 이유때문에도 검색하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이해하고 터득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사물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그녀는 사물이 지닌 물성을 넘어 감성을 소유하기까지에 이르게 된다.
갖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수집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시나요?
수집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모으는 무언가 혹은 상상치도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브제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품이나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한 후 작품에서 사용해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물체를 일컫는다.
즉, 사물 하나에도 사연을 가지게 된다.
“매일 언어의 국경에서 텍스트가 건널 다리를 짓고 그림자처럼 참호 속에 숨습니다.”
사물 뒤에는 문화적 맥락이 쌓여 있을 때가 많다. 사물에 붙은 이름과 그것이 일으키는 심상도 그 맥락들과 무관하지 않다.
…… 우리가 읽는 텍스트는 거기 등장하는 사물들 뒤의 사연들까지 모두 합쳐서 완성된다.
엄마도, 동생들도 내 방에만 오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신기하다는 것이다.
뭐 하나만 톡 건들이면 보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볼거리가 많아 이것저것 헤쳐보면서 구경하고 싶다는 것이다.
외할머니께서 그리고 엄마가 물려준 오브제도 물려받아 잘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희한한 것도 참 많다.
이 외에도 물건으로 보관하기 힘든 것들은 꼭 사진으로 남겨 보관한다.
그 사진이 곧 그 물건이리라.
앨범 속 사진 하나하나를 짚어내면 그것과 나의 추억을 저절로 읊게 되는 것이다.
수집가는 꼭 온전하게 사물의 모양을 유지시키며 보관할 필요는 없다.
저자의 말처럼 단순히 사물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감성까지 수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물의 뒤를 캐다 보면 고전부터 대중문화까지 인문의 다양한 분야가 두루 소환된다. 사물을 매개로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지식과 감상이 얽힌다. 범주화가 없는 대신 교차점들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