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혁신 - 혁신을 원한다면 반역자가 되라
이주희 지음 / EBS BOOKS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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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편리성과 실용성을 위해 기계화되어가는 세상을 보고 있으면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틀린 말도 아니다.

무한경쟁시대에서 로봇에 밀려나는 것도 결국은 후퇴이다.

뒤처진 자는 역사에서 기억해주지 않는 것처럼 역사의 다음 장은 처절한 혁신을 이룬 자들의 몫이다.

『강제혁신』은 다큐멘터리 <강제혁신>을 연출한 EBS 이주희 PD가 쓴 책으로 전작인 『강자의 조건』에 이어 또 한 번 정치와 권력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저자, 이주희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에 EBS PD로 입사했다. 인간의 삶으로서의 역사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역사전문 PD로서 다양한 역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

제작한 작품으로 『역사극장』(2003), 『정치교실』(2004) 등이 있으며, 어린이 역사 드라마 『점프』 (2005-2006)로 서울 드라마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 EBS 다큐프라임 『절망을 이기는 철학 - 제자백가』, 『무원록 - 조선의 법과 정의』, 『킹메이커 - 대통령 선거전의 비밀』, 『강대국의 비밀』 등을 제작했으며, 집필한 책으로 『강대국의 비밀』을 도서화한 『강자의 조건』(2014)이 있다.




혁신은 기득권을 공격한다


1516년 알레포 인근에 오스만제국과 맘루크 술탄국의 군대가 집결해 있었다.

양쪽 모두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만큼 이슬람 세계의 맹주가 가려질 수 있는 결정적인 전투가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거대제국끼리의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싱거울 정도로 빠르게 끝났다.

결과는? 맘루크 술탄국의 패배였다.

직접 참전한 술탄 알 가우리가 전사할 정도였으니 전멸과 다름없었다.

한 번의 전투에 패한다고 해서 이어진 전쟁에서도 패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북방 유목제국들과의 전쟁에서 대부분 패했어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아 결국은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맘루크 술탄국도 이와 같이 전세를 역전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복수전에서도 더 쉽게 무너지고 만다.

결국 200년 넘게 이집트와 시리아를 군림한 맘루크 술탄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앞선 전투에 오스만제국과 맘루크 술탄국 모두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는데도 대결은 왜 싱겁게 끝난 것일까?

바로 오스만제국은 화약혁명이라는 혁신을 받아들였고 맘루크 술탄국은 화약혁명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맘루크는 화약 무기라는 혁신을 거부하고 오스만은 혁신을 받아들인 것일까?


인류 역사상 강력한 군사집단을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모든 군대에는 약점과 강점이 있기에 무적의 군대를 고르는 것은 사실 불가하다.

그런데 이 상성을 뛰어넘는 군대가 있으니, 바로 13세기 몽골군이다.

13세기 몽골군은 동시대를 기준으로 기동성도 뒤어나고 야전에서 패하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공성전도 잘하고 보급에도 강한 부대였다.

즉, 약점을 거의 찾을 수 없는 군대였다.

그러나 이러한 몽골군에게도 전략적 목적을 포기할 정도의 패배를 당한 전투가 하나 있었으니, 1260년에 벌어진 아인잘루트 전투이다.

1253년, 칭키즈칸 사후 가장 유능한 군주로 불렸던 몽케칸은 쿠릴타이에서 두 개의 전선에 병력을 집중하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전선은 남송이었다. 남송이 정복될 경우 대칸의 직할지가 될 것이 분명했기에 몽케칸은 동생인 쿠빌라이를 남송 전쟁의 책임자로 임명하게 된다.

남송과 함께 뛰어난 경제력과 문화를 가진 서남아시아, 이곳이 바로 두 번째 전선이었다.

몽골제국으로서도 반드시 정복해야 할 지역이었기에 또 다른 동생인 훌라구를 서방 원정대 책임자로 임명했다.

몽골에서 출발한 훌라구의 1차 목표는 전설적인 암살자 집단인 아사신파였다.

전설적인 암살자들과 정복자들의 대결은 마치 엄청난 전투가 될 것만 같았지만 몽골군의 손쉬운 승리로 결과는 매우 싱거웠다.

수백 년간 어둠 속에서 활동한 암살자 집단이 쉽게 무너진 이유는 암살자 집단이라는 아사신파의 특성이 몽골군에 대해서는 오히려 약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살특공대라 불릴 정도로 암살 방식이 매우 단순하고 잔인하다.

은밀하게 잠입하여 공격했던 수법이 주였기에 암살자 집단이 정규군을 군사적 대결로 이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했다.

그렇게 음지에서 활동했던 아사신파는 토벌당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몽골군은 반란을 일으킨 다마스쿠스를 진압하던 중이었다.

그 덕분에 바이바르스를 선봉으로 한 맘루크군은 갈릴리 지역에서 확실하게 전투 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이 때, 며칠의 여유가 전투에서 결정적인 차리르 만들게 된다.

맘루크군의 진출 소식을 들은 키트부카는 소수의 고위 군관만 남겨두고 십자국 기사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병력과 함게 갈릴리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혹여나 피정복민들이 또 다른 반란을 일으킬까 싶어 서둘러 도착했고 갈릴리 인근의 아인잘루트에서 맘루크군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맘루크 군의 작전이었다.

좁은 협곡이 특징인 이 지역은 맘루크 군처럼 육박전이 주특기인 중기병들은 행동에 제약이 없지만 기동성에 의존해야 하는 경기병들은 행동에 제약이 있어 불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형의 이점을 이용한 맘루크 군들은 완승을 거두게 된다.

사령관인 키트부카는 생포되어 처형당하고 몽골군 대부분이 살아남지 못했다.

노예 출신의 병사들이 역사상 최강의 정복자들을 몰아내고 이슬람 세계를 구원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맘루크 군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스스로를 엘리트라 생각하지 않았으며 기병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도 않았다.

맘루크들과 달리 보병이었기에 이해관계나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맘루크가 노예였던 것처럼 오스만제국의 예니체리 또한 노예였다.

공통점이 많은 두 제국이지만 화약혁명을 대하는 자세가 결국 승패의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맘루크들은 화약 무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기병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예니체리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혁신은 전혀 예상 밖의 영역에서, 기득권에 연연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비웃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는 한다.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상상력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다. 정말 무서운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내는 패러다임의 변화다. 아예 전쟁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기존의 전쟁 방식 안에서만 전쟁을 바라보는 맘루크 같은 기득권 세력은 신기술의 진정한 위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도태되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낡은 방식의 성공에 집착하는 기득권자들에게 혁신은 아예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상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혁신으로 도태당할 자들을 권력의 자리에 둔 채 혁신은 불가능하다.

혁신에 반대하는 세력과의 권력투쟁에서 혁신을 추구하던 세력이 패배함으로써, 혁신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혁신을 위해 천재가 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단지 실행하는 부분이 문제이기에 이때 권력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권력에 집중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 바로 추진력으로서의 권력이 필요하다.

진정한 혁신은 기득권을 공격할 수밖에 없기에, 권력에 대한 정치적 행위가 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반역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천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용감한 전사는 되어야 한다.


장마로 인해 둑이 무너져 14명의 사망자를 낸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고 채수근 상병.

초등학교 6학년생이 담임 선생님을 폭행한 사건부터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이 목숨을 끊은 사건.

그리고 어제 일어난 신림역 칼부림 사건까지.

근래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다 보니 마음까지 어지럽다.

동생이 신림역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그 골목을 지나치던 중 피해자를 봤다고 한다.

웅덩이가 있을 정도로 피를 많이 흘려 피해자는 구급차에 곧장 실려갔다고 하는데 처음엔 무슨 일인가 싶었다고 한다.

번화가다 보니 그 길만 웅성웅성하고 거짓말처럼 옆옆 골목이나 가게들은 모르는 눈치였다고 하는데 무차별 칼부림이란 소식에 얼마나 소름이 끼치던지.

전과 3범에 소년원 송치만 무려 14건이고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어서 일면식 없는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른 것인데 이제는 지나가는 길도 조심해야 하는 세상인가 싶었다.

사실 범죄자에 관대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대한민국 아니겠는가. 도처에 전과 10범 이상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닌다고 하는데, 이들이 교화되기는커녕 더 큰 범죄를 낳게 하는 법의 구조가 참 야속하다.

명백한 인재임이 틀림없는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와 고 채수근 상병 사건.

당시 참사 사고가 나기 전에 인부 몇 명이 삽 하나씩 들고 임시 제방 보강 공사를 했었다는데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지하차도 침수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망자들이 나와 안타까웠는데 예천의 하천에서 구명조끼 없이 맨몸으로 실종자 수색을 하던 해병대원들 중 한 대원이 실종되어 결국 사망했다는 소식은 참, 뭐라 말할 길이 없었다.

두 사건 모두 확실하게 막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막지 못했다.


앞서 열거했던 사건들 모두 막을 수 있는 정답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실이 그렇게 바뀌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혁신'이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라는 타이틀은 이미 짓밟혀진 지 오래이다.

살기 힘든 대한민국, '살기 좋은'은 바라지도 않으니 '그래도 살 만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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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7-23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쟁할 사람들이 많은데 이젠 로봇과도 경쟁을 해야 하니 할 말을 잃습니다.
각종 사고, 사상자들. 요즘 뉴스를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와요.
가장 이상적인 국가는 바라지도 않아요. 님의 말씀대로, 살 만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