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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평점 :
『하나, 책과 마주하다』
로봇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없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과의 진정한 접촉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로봇에게 있어서 감정 공유는 불가한 것일까.
분명 둘로 나뉠 테다, 감정이 없는, 그저 입력한 데이터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 혹은 그를 초월해 인간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로봇으로.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나면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 그 둘이 공유하는 감정을 진짜, 가짜로 구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0년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해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 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어 낸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1982)으로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받았다.
일본인 예술가의 회고담을 그린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1986)로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고, 부커 상 후보에 올랐다.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무수한 사람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얻고자 했던 것.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 만큼 너무나도 소중한 것, 그것이 자유지요."
문득 책을 읽고나면 자연스레 영화 한 편이 떠오를 것이다.
바로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Bicentennial Man 바이센테니얼 맨」이다.
로봇 앤드류는 가사 로봇으로서 주인님 리처드와 그의 아내를 모신다.
때때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기계답지 않은 이상한 질문들을 던져 때론 가족들을 곤란하게, 때론 웃음짓게 만드는 등 점차 그의 요상스런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는 앤드류가 '감정'을 느끼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후 로봇 제조회사에서 그를 불량품으로 간주하고 연구용으로 분해하기 위해 리처드에게 끊임없이 반환을 요구하지만, 리처드는 오히려 앤드류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계좌를 만들어 앤드류가 작품을 팔아 얻는 수익을 적립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앤드류는 작은 아가씨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데 리처드의 죽음으로 인해 앤드류는 잠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것이 긴 여행이 될 줄은 모르고.
그렇게 길고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작은 아가씨는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그녀를 쏙 빼닮은 손녀 포샤를 만나자마자 다시금 '사랑'에 빠져 앤드류는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지금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
"기계로서 영원히 사느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죽고 싶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에게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이 인간을 위해 움직인다면?
창백한 얼굴, 마른 몸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걸음걸이, 그것이 클라라가 처음 마주한 조시의 모습이었다.
몸이 아픈 조시는 일상 속 평범함을 누리지 못하는 한 소년이다. 그러다 에이에프로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인 클라라를 만나게 된다.
클라라는 다른 로봇들과 달리 에너지원을 태양광 에너지로 사용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관찰력 뿐만 아니라 공감능력까지 뛰어나 다들 클라라를 조금은 특별하게 생각한다.
"가끔, 이런 특별한 순간에 사람은 행복과 아픔을 동시에 느껴. 클라라, 이 모든 걸 주의 깊게 관찰하다니 장하다."
매니저가 가고 난 다음에 로사가 말했다. "정말 이상하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한 말일까?"
"별 얘기 아니야 로사. 바깥세상 이야기를 한 거였어."
어떻게보면 입력값에 움직이는 깡통에 불과하지만 클라라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편, 조시의 집으로 가게 된 클라라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선에 반응할 수 있기에 모든 것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로봇이 눈치를 본다고 할까나. 가정부 멜라니아에게도, 조시의 엄마에게도.
그렇게 클라라와 조시가 함께 하는 일상이 지속된다.
순탄하게 흐르는 일상은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강물 흐르듯이 흐른다.
즉, 약했던 조시의 몸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그런 조시의 모습을 보며 클라라는 자신이 햇빛으로 에너지를 충당하는 것처럼 조시에게도 '햇빛'을 주고 싶어한다.
거지 아저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조시에게도 해의 자양분은 효과적이었다.
조시는 햇빛을 통해 튼튼해졌고 이내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
클라라와 조시, 그 둘은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을까?
클라라, 조시, 릭 그리고 태양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조시에게 가족보다 클라라가 더 특별했을지도 모른다고.
물론 클라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조시를 지켜내려고 했으니깐.
앞서, 내가 클라라를 깡통으로 비유했는데 감정이 없는 빈껍데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일반적인 로봇에 빗대어 사용한 단어였다.
허나 클라라는 어쩌면 인간보다 더 세심하고 배려있었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어루만지는 클라라의 모습과는 달리,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행동을 보고 있으면, 어쩌면 그 일부 인간들이야말로 감정 없는 깡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야기의 끝무렵에 클라라와 릭의 대화가 나온다.
"기억나니, 클라라." 릭이 물었다. "오전 내내 날씨가 정말 이상하다가 조시 방에 햇빛이 똑바로 들어온 날?"
"그럼요. 그날 일은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요새도 가끔생각해. 꼭 조시가 그때부터 좋아진 것처럼 보였어. 착각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돌아보며 마치 그랬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
"무슨 얘기 하는지 알겠어. 그날, 두 번째로 헛간에 갔던 날 네가 한 말 기억나. 가기 전에 엄청 진지해져서는 우리 사랑이 진짜냐고 물었지. 나하고 조시가. 그리고 내가 진짜라고 대답했던 것 같아. 진짜고 영원하다고. 그래서 그것 때문에 걱정하는 거지."
……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요."
"그러니까 내 말은, 조시와 내가 각자 세상에 나가서 서로 안 만나고 산다 해도 어떤 부분은,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늘 같이 있을 거라는 거야. 조시는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세상에 나가면 항상 꼭 조시 같은 누구를 찾으려고 할거야. 그러니까 절대로 속임수가 아니었어. 거기에서 네가 누구랑 거래를 했는지는 몰겠지만 그 사람들도 내 마음속, 조시 마음속을 들여다본다면 네가 속이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겠지."
책을 읽을 때, 클라라와 조시뿐만 아니라 릭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며 읽어보는 것이 좋다.
(스포일러가 될까 생략하겠지만) 초반부터 등장하는 릭이라는 인물이 무언가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클라라는 온전히 릭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고 했던 게 아닐까.
각 인물들이 보이는 그 사랑 또한 어쩌면 같은 맥락이지 않았을까.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AI의 등장으로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게 요즘인데, 즉, 로봇과 함께하는 일상이 먼 얘기는 아닐 것이다.
좋다, 나쁘다로 단정지을 순 없다. 편해질 순 있겠지만 그로 인해 손해보는 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깐 말이다.
일전에 썼던 리뷰를 참고하자면, 로봇과 함께한다는 것의 일차원적인 현실적인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 로봇과 일자리 전쟁, 『로봇 시대 일자리의 미래』 ▶ https://blog.naver.com/shn2213/222396914512 ]
영화 「아이 로봇」을 보면 각 개인마다 로봇과 함께하는 일상을 보여준다.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고 집안일을 도와주고 나아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까지 말이다.
잠시 영화 속 이야기를 빌리자면, 주인공은 한 사건으로 인해 로봇을 싫어한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주인공이 탔던 차와 옆차가 함께 강물로 빠지게 된다.
지나가던 로봇이 소생가능성을 빠르게 판단하여 주인공을 구하려는 찰나, 주인공은 옆차에 타고 있는 소녀를 구하라고 외쳤지만 이미 판단이 내려진 로봇은 주인공만 억지로 끌고 올라오게 된다.
주인공에게 로봇은 값으로 결과를 내려 판단하는 깡통에 불과했다.
그러다 메인 컴퓨터의 '각성'으로 인해 국방력까지 지배되며 로봇은 이내 인간들을 지배하려고까지 한다.
현실적으로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이 고스란히 잘 드러나 책과 비교하기에도 좋다.
아무튼, 극중 주인공은 감정을 공유하는 로봇, 써니의 등장으로 로봇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다.
클라라가 조시에게 보여주는 행동처럼, 영화에서 보는 써니의 모습은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나면 로봇이 우리(인간)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해 초점이 맞춰진 것 같이 생각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면, 결국은 감정, 도덕성 등 인간의 내면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게끔 한 책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