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축구와 쿵푸덩크는 닮은듯 다르다. 쿵푸를 소재로 스포츠와 접목시킨 점, 화려한 특수효과, 그리고 포복절도할 만한 황당함 등등이 닮아 있다. 더군다나 스포츠를 다루는 영화가 그렇듯 갈등, 경쟁을 통해 끝끝내 승리하는 감동적 드라마를 선사한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소림축구와 쿵푸덩크는 차이를 보인다. 주인공들이 모두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그 색깔이 다르다. 그 다름은 달인과 천재의 차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주성치를 비롯해 소림축구의 조연들, 그리고 이들의 영향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은 모두 쿵푸의 귀재가 된다. 차를 주차하고, 2층 버스에 올라타고, 넘어질 위기에서 덤블링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간 주인공들마냥 쿵푸 또한 일상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쿵푸가 삶 속에 스며든 것이다. 모두가 쿵푸의 달인이 된 것이다. 삶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달인들-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보여지듯-을 떠올리게 만든다.

반면 주결륜의 쿵푸덩크는 천재들간의 싸움이다. 이들 천재들의 솜씨는 범인들이 쫓아갈 수 없다. 오직 멀리서 바라보고 응원하는 것 이외에는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은 오직 영웅적 이미지만 부각된다. 주걸륜 탄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반전과 그 뒤에 이어지는 일상으로의 복귀는 그저 천재의 인간적 성품일 뿐이다.

웃음으로 결말짓는 소림축구와 감동으로 결말지으려 한 쿵푸덩크. 사람 속에 들어와 호흡하는 방식에 있어서 역시 주성치가 한 수 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드라마 <이산>을 보다 약점에 대해 생각해봤다.

정순왕후와 장태우, 그리고 홍국영간의 역학관계는 한마디로 약점으로 인해 그 우세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장태우를 몰아내기 위해 약점을 거머쥔 홍국영, 하지만 그 약점을 얻기 위해 정순왕후에게 약점을 잡히게 된다. 약점은 이렇게 힘의 관계로 나타난다. 하지만 반대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라는 영화에선 서로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친밀함을 더해준다. 이 비밀은 타인에게는 약점으로 보일 수 있다. 즉 약점을 서로 공유하고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는냐 그러지 않는냐에 따라 이것은 힘의 역학관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친밀함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병헌이 자신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친밀함과 약점을 교묘히 이용했기 떄문이다.

때론 기꺼이 나의 약점을 상대방에게 표현하기도 한다. 둘만의 공유라는 것을 통해 보다 가까워지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약점이 누군가 제 3자에게 노출되면 이 친밀함은 깨질 수 있는 상태로 돌변한다.

누군가에게 보다 가까워지고 싶다면 약점을 드러내라. 하지만 그와의 관계가 힘을 다투는 경우라면 절대 약점을 노출하지 마라. 하지만 때론 가까운 사람이 멀어져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약점도 간혹 세상을 떠도는 경우가 있다. 그럴땐 이미 떠도는 것을 붙잡을 수 없으니, 그것을 가리려 애쓰지 말고 그것을 장점으로 변모시킬 방법을 찾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혹, 그것이 불가능할지라도.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담담히 포기할 수밖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8-03-25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와는 사이좋게 지내면 그만이지만 적은 더 가깝게 지내야 한다
뭐 그런 얘기죠?^^
리뷰를 그새 쫘르륵 올리셔서 읽느라고....
-뱃살의 약점을 극복 못하는 여우-

하루살이 2008-03-26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꿈보다 해몽이...^^
 
마인드 세트
존 나이스비트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발이 아니라 마음이다"라는 서문이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그렇다고 일체유심조와 같은 철학적 형이상학적 사유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어떻게 마음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마음이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는가를 보여주는 탁월한 예가 있다.

망치를 손에 쥔 어린 소년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기 마련이다.(20쪽)

이와 비슷한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남자의 경우라면 군대 제대 후 길거리에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띌 수 있고, 여자의 경우 결혼 이후 임신한 여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깨우치게 된다는 등등.

즉 그 사람이 어떤 마음상태에 있는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결정되고, 그것에 맞추어 행동도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세상을 좀더 제대로 보기 위한 방법으로 11가지를 제안한다.

1. 아무리 많은 것들이 변한다 해도 대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2. 미래는 현재에 있다

3. 게임 스코어에 집중하라

4. 언제나 옳을 필요는 없다

5. 그림 퍼즐처럼 미래를 분석하라

6. 너무 앞서서 행진하지 말라

7. 변화에 대한 저항은 현실의 이익 앞에 굴복한다

8. 기대했던 일은 언제나 더디게 일어난다

9. 성과를 얻으려면 기회를 활용하라

10. 덜어낼 수 없다면 더하지 말라

11. 기술의 생태학을 명심하라

게임 스코어에 집중하라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자신이 바라는 결론을 얻기 위해 정보를 왜곡시키기 때문에 사실적 기록에만 집중하라라는 것을 말한다. 즉 꿈이나 회고, 계획, 포부 등에 현혹되지 말고 기록에만 충실하라라는 것이다.

언제나 옳을 필요는 없다라는 것은 누가 옳을까 보다는 무엇이 옳을까가 중요하다라는 의미이다. 즉 누가 옳을까에 집착한다는 것은 내가 항상 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올 수 있기에 무엇이 옳은 가에 집중한다면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퍼즐처럼 미래를 분석하는 것은 순열처럼 나열된 연관성이 아니라 조각 조각의 귀퉁이를 맞추어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성과를 얻으려면 기회를 활용하라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환경을 찾고 또는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의 생택학이란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새로운 기회를 찾을 것인가의 선택으로 해결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무엇이 개선되고 무엇이 사라지며 어떤 것들이 변화로 인해 대체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보편화되어 갈수록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문화적 정체성에 집착한다. 경제를 바라보는 것도 국가적 경계이기 보다는 휴대폰, 자동차 와 같은 일정 품목을 도메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운명이나 점 등에 시선을 돌리고 미래학에 관심을 쏟는다. 어떻게해서라도 미래를 엿볼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마인드세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도움을 줘 미래를 가늠할 수 있음으로 인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런데 이 11가지 방식 결코 만만치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책과 자본주의
김영민 지음 / 늘봄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 고유의 말이지만 일상용어에서 사용하지 않은 것을 접할 때면 사전을 뒤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 이후 한글을 읽으면서 국어사전을 펼쳐야 할 때가 별로 없을뿐더러, 설령 알지 못하는 단어라 하더라도 문맥상 이해해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 책, 사전이 필요했다. 깨단하다, 반지빠르다, 명개 등은 어림짐작 뜻을 알겠지만 적확한 뜻을 위해 사전을 이용해야 했다. 물론 요즘은 인터넷 사전으로 쉽게 그 뜻을 찾을 수 있어 편해지긴 했지만 아무튼 책을 읽는 속도를 더디게 만든다. 게다가 문체 또한 친숙하지 않아 머릿속에서 문맥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장점은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토록 한다는 것에 있다. 물론 개인적으론 전체적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한 관계로 오히려 아포리즘 형식으로 다가오지만 그 번뜩임만은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아파트 관리비와 그 실제가 일치한다면 이데올로기도 유토피아도 힘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이론에 틈이 생기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속의 본질이고 환상의 체계와 무리의 정치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계속될 것이다. (51쪽)

이론대로 현실이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어딘가 어긋남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어긋남을 알려고 드는 순간 그 틈을 통해 이익을 획득하는 권력과 마주치게 된다. 흔히 말하는 알면 다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바로 투쟁의 역사로 표현될 수도 있겠다. 그 간극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쪽으로 세상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진보 또는 발전이라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

물론 이론과 실제의 차이는 변주를 일으키고 그 변주가 삶을 풍성하게 만들수도 있다. 간격의 틈을 메우는 것뿐만 아니라 그 변주를 즐겁도록 만드는 것 또한 다른 이름의 진보가 될 수도 있겠다. 이것은 그 차이에 대해 무관심한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어떻던가 현실은.

몸은 의도를 하염없이 비껴가고(113쪽) 무관심이 구조적으로 관심의 흉내를 내는 것으로부터 우리들의 자본주의는 제 몫을 다한다.(165쪽)

간격을 메우는 것도 변주도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움직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제자리에서 스피드의 쾌락을 제공함으로써, 또는 다른 쾌락을 통해 그 늪에 빠지도록 만든다. 관심의 영역을 바꿈으로써 무관심하도록 이끄는 셈이다.

그러한 것들을 이겨내고자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자들은 매사를 의도 중심으로 이해하려하지만 원천적 한계를 단숨에 드러내게 된다. 진리는 늘 진실보다 한발 늦은 엉성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늪에 빠뜨리는 자본주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낭비와 잉여에서 스스로의 취향을 티내고 권력의지를 과시하고 노동과 축적의 세계에 결락한 존재감을 보충한다.(214쪽) 소비가 사용가치에 머무는 적은 없었고, 그리고 인간의 소비는 언제나 사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또 어떤가.

주체는 곧 타자와의 교환방식이자 그 내용이며, 그 어긋남과 결락에 대한 자아의 상징적 대응 방식이다.(225쪽)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자기 생각의 비용을 치르느라고 인생을 허비하는 것(250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내 몸을 이끌고 자본주의라는 세상에서 산책에 나설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 변주에 주목해야 할 듯싶다. 무상한 삶 속에서 변주만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고, 차이에 무관심하지 않으면서 그 변주가 놀이가 된다면 삶은 조금 더 흥미로워지지 않을까. 변주란 자본주의가 내세우는 낭비와 잉여로부터 벗어난 여유로부터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소유의 여유와 텅 빔의 여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놀이의 달인, 호모 루덴스 - 이제 베짱이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한경애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은 당연히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하라는 것, 그래야 굶어죽거나 얼어죽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겠다.

하지만 베짱이처럼 살면서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면 당신은 그래도 개미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플라톤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 사람들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고 탄식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베짱이처럼 사는 길을 택할 것이라고 본다. 일은 자아성취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이미 노동이 되어버린 사회이니 말이다. 이 노동은 너무나 지루하고 또한 현대인을 그 노동에 갇혀 살도록 만든다. 잠깐의 여유라는 것도 돈으로 사서 즐겨야 하는 여가 상품일 뿐이다. 그래서 노동도 여가도 지루한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삶을 이런 지루함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놀이의 주인공이 되자고 말한다.

놀이란 일상을 새롭게 바꾸고 즐거운 리듬을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무늬(67쪽)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샘솟아 삶을 메마르지 않게 하는 능력이며 나의 삶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운다. 이러한 놀이는 소비해야하는 여가 상품이 아니라 자발적 공동놀이로 표현된다.

이러한 놀이는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이건 노는 것, 어떤 일을 할 때 취하는 특정한 태도이며, 움직임으로만 포착되는 동사다.(73쪽)

따라서 이런 놀이는 우연과 의외성을 품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며 서로간의 관계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를 즐긴다. 따라서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나 일이 된다.

그런데 이런 놀이의 즐거움이 현재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과연 가능할까. 사람들은 관계의 차이가 주는 즐거움과 놀이를 즐기고 싶어하면서도 현실이 아닌 사이버공간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그 속에서 사이버 관계가 만들어지고(그 관계는 때론 현실화되기도 하지만) 떄론 그것이 현실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사이버 공간은 미래사회의 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고, 현실 공간의 관계에서 이끌어지는 놀이보다도 더욱 많은 놀이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 공간이 끝없는 소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단한 노동을 필요로 한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또다른 한편으론 탈출하고 싶은 현실이 과연 특정한 태도와 움직임을 통해 놀이의 공간으로 변할 수 있을까라는 부분이 염려된다. 대량생산 또는 규격화된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우연성은 재앙이지 않겠는가.

과연 태도와 움직임만으로 변화는 가능할지 궁금하다. 그러나 놀이의 달인에 대한 꿈을 저버리지 않기 위한 마음과 의지만은 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난 항상 즐겁게 놀고 싶으니까...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 다른 십대의 탄생]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4-06 16:49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