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자본주의
김영민 지음 / 늘봄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 고유의 말이지만 일상용어에서 사용하지 않은 것을 접할 때면 사전을 뒤적일 수밖에 없다. 대학 이후 한글을 읽으면서 국어사전을 펼쳐야 할 때가 별로 없을뿐더러, 설령 알지 못하는 단어라 하더라도 문맥상 이해해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 책, 사전이 필요했다. 깨단하다, 반지빠르다, 명개 등은 어림짐작 뜻을 알겠지만 적확한 뜻을 위해 사전을 이용해야 했다. 물론 요즘은 인터넷 사전으로 쉽게 그 뜻을 찾을 수 있어 편해지긴 했지만 아무튼 책을 읽는 속도를 더디게 만든다. 게다가 문체 또한 친숙하지 않아 머릿속에서 문맥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장점은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토록 한다는 것에 있다. 물론 개인적으론 전체적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한 관계로 오히려 아포리즘 형식으로 다가오지만 그 번뜩임만은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아파트 관리비와 그 실제가 일치한다면 이데올로기도 유토피아도 힘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이론에 틈이 생기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속의 본질이고 환상의 체계와 무리의 정치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계속될 것이다. (51쪽)

이론대로 현실이 펼쳐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어딘가 어긋남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어긋남을 알려고 드는 순간 그 틈을 통해 이익을 획득하는 권력과 마주치게 된다. 흔히 말하는 알면 다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바로 투쟁의 역사로 표현될 수도 있겠다. 그 간극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쪽으로 세상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진보 또는 발전이라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

물론 이론과 실제의 차이는 변주를 일으키고 그 변주가 삶을 풍성하게 만들수도 있다. 간격의 틈을 메우는 것뿐만 아니라 그 변주를 즐겁도록 만드는 것 또한 다른 이름의 진보가 될 수도 있겠다. 이것은 그 차이에 대해 무관심한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어떻던가 현실은.

몸은 의도를 하염없이 비껴가고(113쪽) 무관심이 구조적으로 관심의 흉내를 내는 것으로부터 우리들의 자본주의는 제 몫을 다한다.(165쪽)

간격을 메우는 것도 변주도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움직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제자리에서 스피드의 쾌락을 제공함으로써, 또는 다른 쾌락을 통해 그 늪에 빠지도록 만든다. 관심의 영역을 바꿈으로써 무관심하도록 이끄는 셈이다.

그러한 것들을 이겨내고자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자들은 매사를 의도 중심으로 이해하려하지만 원천적 한계를 단숨에 드러내게 된다. 진리는 늘 진실보다 한발 늦은 엉성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늪에 빠뜨리는 자본주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낭비와 잉여에서 스스로의 취향을 티내고 권력의지를 과시하고 노동과 축적의 세계에 결락한 존재감을 보충한다.(214쪽) 소비가 사용가치에 머무는 적은 없었고, 그리고 인간의 소비는 언제나 사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또 어떤가.

주체는 곧 타자와의 교환방식이자 그 내용이며, 그 어긋남과 결락에 대한 자아의 상징적 대응 방식이다.(225쪽)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자기 생각의 비용을 치르느라고 인생을 허비하는 것(250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내 몸을 이끌고 자본주의라는 세상에서 산책에 나설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 변주에 주목해야 할 듯싶다. 무상한 삶 속에서 변주만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고, 차이에 무관심하지 않으면서 그 변주가 놀이가 된다면 삶은 조금 더 흥미로워지지 않을까. 변주란 자본주의가 내세우는 낭비와 잉여로부터 벗어난 여유로부터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소유의 여유와 텅 빔의 여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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