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 시골은 꼬투리가 콩깍지가 되는 시기다.
꼬투리란 콩을 감싸고 있는 껍질. 따라서 꼬투리를 잡으면 그 안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이야기다. 꼬투리를 캐거나 꼬투리를 잡는 것의 의미는 이런 것에서 파생했을 듯 싶다.
콩을 까고 난 후 남은 빈 껍질이 콩깍지다. 콩깍지가 씌웠다는 것은 알맹이가 없는데도 알맹이가 있는듯 착각에 빠진다는 것으로부터 연원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콩깍지에 씌여 살면 행복한 듯하지만 콩깍지가 벗겨지는 날은 꼭 온다. 그러기에 꼬투리를 부여잡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그 안에 콩이 들었을지, 동부가 들었을지, 팥이 들었을지 알 수 없지만, 꼬투리를 잡으면 무엇인가는 캔다. 콩깍지 부여잡으면.... 말짱 헛것이다. 흔히들 꼬투리 잡지 말라고 하지만, 꼬투리라도 잡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이곳이 상주임을 알려주는 곳감들.
옛 시골집의 정취가 물씬 난다.
담 너머 살짝 엿보는 풍경이 정겹다.
만약 할머니라도 있었다면...
살짝 인사를 건네면
작년에 말렸던 곶감이라도 하나 꺼내주실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랜만에 보는 돌담길이다.
성인남자의 눈높이를 살짝 넘기는 돌담의 매력.
까치발을 하면 안이 보인다.
즉 누군가의 삶이 궁금하다면 까치발을 하는 정도의 티를 내고 노력을 하라는 것.
반대로 담을 쌓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가로막지는 않는 속내.
이게 흔히들 말하는 소통을 향하는 최고의 방법이지 않을까.
돌담의 소통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따님이 서서 오줌을 누어요"
"네? 뭐라고요?"
"아이들이 수근대길래 화장실에 가봤더니 글쎄 서서 오줌을 누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옷에 오줌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너무 잘 눠서 혹시 집에서 가르치신게..."
선생님, 당, 당황하셨어요. 그렇다고 집에서 교육한 걸로 아신다면...
쩝. 아버지 입장에서 조금 황, 황당하다는...
우리 딸내미. 대견(?)스럽다고 해야 하나. 옷에 묻히지 않고 오줌을 잘 쌌으니 ^^;
아마도 아빠와 함께 남자화장실에 가끔 들어가다보니 흉내내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축측해본다.
그런데 여자는 앉아서, 남자는 서서가 생리구조상의 차이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우리 딸내미의 오줌 싸는 솜씨를 보아서는 ...말이다.
아련히 기억을 떠올려 보니 아프리카 쪽 어딘가에선 여자들도 서서 오줌을 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나였던 것으로)
최근 중국의 한 대학교에선 물을 아끼기 위해 여자 화장실에도 남자 화장실처럼 서서 오줌을 눌 수 있는 변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기본적 생리를 해결하는 문제에서조차 우리는 문화의 옷을 입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군대 휴가 나오면 군복 입은 사람만 보이고, 아내가 임신하면 임신부만 보이고, 남자가 육아휴직 쓰면 평일에 아이 안고 있는 남자만 보이고......
현재 관심사에 따라 세상이 보이는 부분이 다르다.
그리고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게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극장 가서 영화 본다는 것은 꿈에도 불가능한 일.
그나마 케이블 TV로 늦게나마 쫓아갔던 영화도 반년 가까이 TV없이 살다보니 닭 쫓던 개보다 못하다. 그러던 차 이번 추석 연휴기간 고향에 있으면서 특선영화를 실컷 봤다. 예전 같으면 극장에서 다 봤을 영화들이었을텐데 이번에 정 반대다. 정말 하나도 본 것이 없다. 횡재한 거지 뭐.

그래서 본 영화들이 '도둑들' '댄싱 퀸' '마이 웨이' '베를린' 이다. 뭐, 영화평을 나불거리기엔 역부족이고... 그냥 기억에 남은 대사, 그것도 정확하지 않지만, 곱씹어 보고 싶다.

"도둑인데, 그럴 수 있지" -도둑들 중
"사람은 배신을 하거든" - 베를린 중

네 영화 모두 믿음과 배신으로 읽혔다. 인간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인지, 그래서 인간에 대한 믿음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감하게 됐다는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왜' 배신하는가를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믿음이 깨진 자의 아픔을 동감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출하고 치유할 수 있을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영화는 영화다. 믿음은 끝내 깨지지 않았고, 그것은 오해였을 뿐이다. 상처는 자연스레 아물고, 치유는 이미 이루어졌다. 오해가 아닌 자들은 영화관 밖에 서 있을 뿐이다. '사람은 배신한다'는 말을 곱씹으면서. '베를린'처럼 독약 주사도 총의 방아쇠도 당기지 못하면서. 그저 서 있을 뿐이다. 그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